보수적인 '보험'도 변한다.."똑똑하고, 세심한 보험이 살아남을 것"
[IT동아 정연호 기자] 테슬라의 자동차 보험은 전통보험사 보험보다 20~30% 정도 저렴하다. 기존 보험사가 보유하지 못한 자동차주행 데이터로 개발한 보험이라 보험료 산정과 같은 계리 산출이 정확하고, 고객 스스로가 가입해 영업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가능한 혜택이다. 현재 업계에선 신차 구매 중 절반 이상이 테슬라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국내 자동차 보험은 적자 사업이라서, 테슬라는 직접 상품을 개발하는 대신 제휴 보험사에 자동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자동차 제조사도 주행 데이터를 활용해 저렴한 자동차 보험을 출시하고 있다. 미국 GM은 직접 보험사를 설립해서 자동차 보험을 개발한다. 차량운행 정보를 기반으로 GM고객 뿐 아니라 모든 차량에 판매할 계획이다. GM은 커넥티드카(무선랜이 탑재돼 다른 전자 기기와 인터넷 접속을 공유할 수 있는 자동차를) 서비스 ‘온스타’로 수집한 운전자 및 차량정보를 분석한 뒤, 기존 보험사보다 보험료를 저렴하게 책정할 계획이다. 일본 도요타도 손해보험사와 공동으로 안전운전 점수를 기반으로 자동차 보험을 개발해 차량 구매 고객에게 저렴한 보험을 판매한다.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로 운전자의 안전운전 수준을 측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할인하는 상품이다. 국내에선 현대자동차가 커넥티드카로 수집한 운행 정보를 보험 파트너사에 제공하고 있다.
인슈어테크 등장, 맞춤형 보험 뜬다
보험업은 보수적인 금융업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으로 꼽힌다. 보험료를 결정하고 보장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불확실함이 높기 때문에, 보험 계약을 체결할 때도 대면 거래로 만나서 서면 거래를 하는 게 기본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런 보험업에도 가격 투명성과 원가 절감을 목적으로 하는 보험 가격 비교 사이트가 나타나고, 보험 증권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다양한 앱이 등장하고 있다.
인슈어테크(Insurtech)란 AI, 빅데이터, IoT 등을 활용해 보험금 청구 간소화, 고객 맞춤형 상품 추천 및 설계를 하는 새로운 보험 서비스를 뜻한다. 인슈어테크는 크게 맞춤화와 자동화 두 가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고객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해 이를 보장 설계에 활용하는 것이 맞춤형 상품 설계다. 보험은 가입자 개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상품을 설계해 위험을 최소화한다. 이를 위해 보험은 대수의 법칙을 주로 활용한다. 우연한 사건과 결과의 발생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반복되는 수가 많아지거나 표본이 커질수록 일정한 수준으로 수렴하게 되면서 미래에 대한 예측이 정확해진다는 게 대수의 법칙이다. 동전을 3번 던졌을 때 앞과 뒤가 나올 확률을 구하기는 어렵지만, 수천 번 반복하면 각각의 확률은 1/2로 일정해진다. 보험도 개인에겐 우연한 사고일 수 있지만, 가입자가 많을수록 사고 발생 확률을 통계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최근 모바일 기기와 사물인터넷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됐고, 보험 상품을 개인 맞춤형으로 설계할 때 이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대수의 법칙은 전체 가입자 규모(N)를 늘리는 방식을 취한다. 보험 가입자가 많아지면 그 집단엔 실제로 위험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고루 분포하게 되며, 고위험군으로 인한 손실을 저위험군을 통한 이익으로 상쇄시킬 수 있게 된다. 빅데이터는 ‘N1’, ‘N2’, ‘N3’ 각각에 대한 데이터를 늘려, 위험성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방식이다. 개인의 위험도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던 기존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보험연구원의 손재희 연구위원은 “빅데이터를 통하면 개인의 리스크에 대한 정보가 훨씬 더 많아진다. 이러한 정보를 기반으로 위험에 대응하는 보험료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 상품 설계 과정에선 빅데이터는 직접적인 데이터보단 간접 데이터를 활용해 위험을 산정하게 된다. 손 연구위원은 “건강을 예로 들면, 건강과 관련된 직접적인 리스크 데이터가 있으면 좋지만 이러한 정보를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특정 지표를 측정한 간접적인 데이터를 통해서 기존 보험사가 알지 못했던 의료 건강 리스크를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보험산업의 빅데이터 활용이 저조한 이유를 묻자, 손재희 연구위원은 “빅데이터를 통해 위험을 산정하는 건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빅데이터를 통한 보험료 산정 방식은 보통 간접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보험회사가 보험료 산정 메커니즘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가입자가 그 메커니즘을 납득하지 못한다면 상품을 판매하기도 쉽지 않게 된다.
이어, 그는 “국가마다 위험을 산정할 때의 규제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나라가 발전이 더 잘됐다고 말하기 힘든 면이 있다”면서 “다만, 국내에서도 마이데이터 등을 통해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 개인정보라서 조심스러운 활용이 필요하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진 않지만, 과거에 비해선 빅데이터를 검증하는 기회가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데이터란 정보 주체인 개인이 본인이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갖고, 이를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관리 및 처리하도록 하는 패러다임을 말한다. 보험연구원의 노현주 연구위원은 ‘금융 마이데이터 현황과 시사점’에서 “마이데이터를 통해서 회사는 고객 정보의 최신성을 유지할 수 있다. 보험 회사는 확보된 신용정보를 통해 고객의 총체적인 재무 상황과 투자 및 소비 패턴을 분석해, 보다 정교한 고객 맞춤형 보장 설계를 제안할 수 있다”면서 “한국 신용정보원에 집적되어 있는 개인신용정보와 보험정보를 결합 분석해, 보험가입 보조지수 개발 및 위험률, 인수조건 세분화 등에 활용할 수 있을지를 우선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보험 설계도 실시간으로 가능하다
월간손해보험의 ‘글로벌 인슈테크 트렌드로 보는 국내 보험산업의 미래(신승현)’는 “(보험)계약 후에도 고객 행동에 대한 데이터를 계속 업데이트 할 수 있다면, 위험 평가를 지속·정교화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 비대칭의 점진적인 해소가 가능하다. 양질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활용하여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고객 데이터 업데이트는 사물인터넷을 통해서 가능하다. 주변 정보를 수집 전달하는 센서가 있는 시계 등의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스마트기기로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이를 보장 및 보험료에 반영하는 것이다. 데이터 수집이 비교적 쉬운 자동차 보험과 건강보험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건강관리 프로그램처럼 고객의 위험을 분석한 뒤 위험이 증가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 이에 대한 관리 프로그램도 제공되고 있다.
해외의 선도 보험사들은 전략적 제휴 혹은 인수합병을 통해서 기술력을 확보하고, 다양한 보험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의 디지털 보험사 히포는 IoT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집과 관련된 철도, 화재, 재물 등의 보험상품 보험료를 할인하고 있다.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사고 위험을 낮추고 손실을 예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애트나(Aetna)는 의료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보험서비스를 제공하며, 애플과의 협업을 통해 애플워치로 건강 증진형 헬스케어를 제공한다. 캐나다 최대 보험사인 인택트 파이낸셜은 농장 건물의 전기회로망을 모니터링해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경고를 보내는 화재예방 서비스에 가입한 고객의 경우 보험료를 할인한다.
다만,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데이터가 초래할 보험시장의 변화’ 리포트는 “국내의 경우 캐롯손보사가 최초로 디지털전문보험사로 등장했지만 해외 보험사만큼 혁신적이지 않고 전통손보사와 차별점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중심으로 재설계 되는 보험 산업”
보험산업의 자동화는 온라인 중심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데이터를 활발하게 공유하는 것을 뜻한다. 보험은 고객에게 직접 상품을 설명하는 오프라인 인력 구조로 설계돼 있었으나, 디지털 고객접점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또한, 현재 보험심사 과정에선 고객, 설계사, 계약 속성 등을 분석해 신규 보험계약의 사고발생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위험수준이 낮을 경우 자동으로 보험계약을 인수하는 보험심사 자동화 시스템도 운영되고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땐 사고의 규정과 보고를 빠르게 진행하면서, 클레임을 성격에 따라 자동 분류하기도 한다. 일본의 닛폰생명과 다이이치생명은 AI 기반으로 상담지원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중국 핑안생명은 설계사가 보험영업 중 겪는 궁금증을 실시간으로 해결하는 AI봇을 사용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보고서는 “전통보험사는 디지털전문보험사·제조사 등 신규 진입자 등장으로 빅데이터 및 AI를 활용한 상품개발, 보험심사, 보상 등 업무 프로세스 전반의 개선이 필요하다. 업무 프로세스 개선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발굴을 위해서는 데이터분석 전문가와 업무 담당자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한편 웨어러블 데이터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보험회사가 이를 활용함에 있어서 개인정보보호에 유의해야 한다. 웨어러블 데이터를 활용한 보험상품을 설계하거나 건강보상 프로그램을 운영할 경우, 웨어러블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소비자에 대한 보험료 차별과 서비스 소외 문제 등과 같은 형평성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