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빅딜 터뜨린 마이크로소프트, 전례없는 게임 공룡 탄생
[IT동아 권택경 기자]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18일(현지시각)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전격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가는 687억 달러(약 82조 6천억 원).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서 지난 2020년 ‘엘더스크롤’, ‘폴아웃’, ‘둠’ 등 인기 게임 IP(지식 재산권)를 보유한 제니맥스 미디어를 81억 달러(약 9조 7천억 원)에 인수하며 게임 업계를 놀라게 한 바 있는데, 이번 인수는 그 6배가 넘는 규모다. 불과 일주일 전 테이크투 인터랙티브가 모바일게임 개발사 징가를 127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세운 게임 업계 인수합병 기록도 큰 차이로 갈아치웠다. 게임 업계는 물론, IT 업계 전체를 통틀어도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2008년 당시 블리자드 모기업이었던 비방디 게임즈가 액티비전과 합병하며 탄생한 게임 공룡이다. 액티비전은 ‘콜 오브 듀티’, 블리자드는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오버워치’ 등 인기 게임 프랜차이즈를 보유하고 있다. ‘캔디 크러쉬 사가’로 유명한 모바일게임 개발사 킹 스튜디오도 액티비전 블리자드 산하다. 지난해 2분기 기준 게임 사업 매출 기준으로 전 세계 7위 업체다. 하지만 텐센트, 넷이즈와 같은 중국 업체와 소니,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을 제외하고 보면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사면초가였던 액티비전 블리자드, 극적인 반전
마이크로소프트 인수 소식 발표 전까지만 해도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에 쳐해있었다.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고소한 걸 계기로 수년간 사내에서 성희롱과 성차별, 사내 괴롭힘 등이 자행됐으며, 바비 코틱 액티비전 블리자드 CEO가 이를 사실상 묵인하고 방조했다는 혐의가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자체 조사로 혐의에 연루된 직원들을 대거 해고 및 징계하고, 임원진을 교체하는 등 여러 후속 조치를 내놓았지만 주가는 이미 곤두박질친 이후였다. 지난해 2월 103달러에 달했던 주가는 같은 해 12월 5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이처럼 회사를 둘러싼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고, 경영진을 향한 사퇴 압박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액티비전 블리자드 경영진이 먼저 회사 매각을 추진했다. 미국 매체 벤처비트에 따르면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지난해 11월 초 마이크로소프트에 먼저 매각 의사를 전달했고, 연말 연휴 동안 세부 사항을 조율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액티비전의 주식을 주당 95달러에 전액 현금 매입하기로 했는데, 이는 인수 발표 전 종가에서 45%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다.
인수 소식이 발표된 후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주가는 전일에 비해 37% 폭등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이번 인수가 액티비전 블리자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액티비전 블리자드 안팎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회사를 둘러싼 논란에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바비 코틱이 막대한 거금을 손에 쥐고 회사를 떠날 기회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게임 업계 소식통으로 유명한 블룸버그의 제이슨 슈라이어 기자는 액티비전 블리자드 직원들 사이에서 ‘경영진 교체와 여러 마이크로소프트 산하 개발사들이 공유하는 긍정적 문화에 대한 낙관론’과 ‘바비 코틱에게 거액과 ‘소프트 엑시트’ 기회를 준 마이크로소프트를 향한 분노’가 공존한다고 전했다.
게임 IP 공룡의 탄생, 게임계의 디즈니?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번 인수로 얻을 효과는 많지만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게임 사업에서의 경쟁력 강화다. 이번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예정대로 마무리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 업계에서 손에 꼽을만한 인기 게임 시리즈들의 IP 중 상당수를 거느리게 된다. 블리자드는 한국에서 국민 게임으로 통하는 ‘디아블로’나 ‘스타크래프트’와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워크래프트’를 보유하고 있고, 액티비전은 북미에서 국민 게임 수준의 위상을 지닌 ‘콜 오브 듀티’를 보유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IP와 제니맥스 미디어를 인수하며 취득한 IP에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IP까지 더해지면 전례 없는 게임 IP 공룡이 탄생한다. 마치 디즈니가 루카스필름, 마블, 21세기 폭스 등을 잇따라 집어삼키면서 픽사, 마블, 스타워즈 등을 모두 보유한 미디어 IP 공룡이 된 것을 연상시킨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구독형 게임 서비스 ‘게임 패스’의 성장도 한층 더 가속할 전망이다. 게임 패스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처럼 월 구독료만 내면 게임을 구매하지 않아도 게임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다. PC나 엑스박스 게임기에 게임을 설치해서 즐길 수도 있지만, 설치없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버에서 실행한 게임을 스트리밍으로 즐기는 ‘클라우드 게이밍’도 가능하다. 게임 패스는 현재 전 세계에서 25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하며 구독형 게임 서비스 시장을 사실상 선점한 상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현재 자사 퍼스트파티 게임(자회사 게임)을 발매 당일부터 게임 패스에 제공하고 있는데,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가 마무리되면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게임도 점차 게임 패스에 추가될 예정이다.
떨고 있는 소니
마이크로소프트가 자회사 게임들을 게임 패스에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타사 게임기에는 출시되지 않는 ‘독점작’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럴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엑스박스와 경쟁 중인 소니다. 실제로 소니 주가는 인수 소식이 전해진 이후인 19일 10% 넘게 급락했다.
소니 입장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콜 오브 듀티’의 독점화다. 북미 시장에서 ‘국민 게임’ 위상을 지녔으며, 플레이스테이션 매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콜 오브 듀티가 엑스박스 독점화되면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소니 측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계약을 준수하고, 액티비전 게임들을 여러 플랫폼에 발매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이러한 우려를 직접 내비치기도 했다. 다행히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사업 부문 수장인 필 스펜서는 이에 응해 모든 기존 계약을 준수하고 콜 오브 듀티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계속 발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사협정이 계속 지켜지리라고 막연히 기대하기는 어렵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전 제니맥스 미디어 인수 때도 인수 이전 맺어진 플레이스테이션 독점 계약을 모두 준수하긴 했지만, 신작 일부는 PC와 엑스박스로만 출시하기로 한 바 있다. 소니로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게 된 셈이다.
진짜 노림수는 메타버스?
그렇다면 마이크로소프트가 거액을 들여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한 건 비디오게임 전쟁에서 소니를 이기기 위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마이크로소프트 전체 사업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업부는 크게 생산성 부문, 클라우드 부문, 컴퓨팅 부문으로 나뉘며, 게임은 컴퓨팅 사업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10% 안팎을 오간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좀 더 큰 그림을 보고 액티비전 블리자드에 베팅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 큰 그림으로 꼽히는 게 바로 메타버스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발표하며 이번 인수가 게임 사업 성장을 가속하는 것과 더불어 메타버스를 위한 기본 요소(Building Blocks)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티아 나델라 CEO도 “게임은 메타버스 개발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현재 증강현실 헤드셋인 홀로렌즈2를 산업용으로 출시하며 메타버스 B2B(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는 나름의 입지를 쌓아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인수는 산업 분야를 넘어서 엔터테인먼트 분야로까지 메타버스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한 연결고리를 게임으로 보고 그 기틀을 강화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수많은 이용자가 동시 접속해서 즐기는 인기 온라인 게임들을 개발하고 운영한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경험이 메타버스 플랫폼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예정대로 인수 마무리될까?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는 회계연도로 2023년까지 마무리된다. 즉, 2023년 6월 말까지 인수가 마무리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전에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반독점 심사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일단, 마이크로소프트는 인수 무산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규제 당국 결정으로 인수가 무산될 경우 내야 하는 무산 수수료로 30억 달러(약 3조 6천억 원)를 내건 만큼 법리적 검토를 충분히 마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전례를 살펴봐도 동등한 위치에 있는 기업이 아닌, 하위 분야에 있는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수직적 거래에 규제 당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 가지 변수는 리나 칸 FTC 위원장이 거대 테크 기업들의 독점 행위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이다. 특히 칸 위원장은 빅 테크의 독점 문제는 기존 독점 규제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유명해진 인물인 만큼, 이번 인수안에 대해서도 새로운 기준이나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제 칸 위원장은 지난 19일(현지시각) 미국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건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우리가 적용하는 기준이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부합하는지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