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금융 뜬다", 그런데 소비자는 안전할까?
[IT동아 정연호 기자] 은행이 점포와 인원 감축에 나선 배경엔 ‘비대면 금융’이 있다. 금융 업종은 금융과 기술의 결합인 핀테크로 인해서 빠른 속도로 디지털 전환을 겪고 있다. 2016년 7101개였던 전국 은행 점포 수는 2021년 9월 6326개로 11% 감소했고, 코로나 19 발생 이후로는 2년 동안 383개의 지점이 통폐합됐다.
비대면 채널은 기술 투자 등 초기 고정비용이 클 수 있으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때 발생하는 한계비용(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드는 추가비용)이 낮아 고객이 늘어날수록 평균비용이 낮아지는 규모의 경제가 발생한다. 판매 채널을 비대면 채널로 전환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선택인 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은행 업무를 볼 수 있어 편리하고, 맞춤형 금융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다만, 이러한 비대면 금융으로의 전환은 명암이 뚜렷하다. 고령층 등의 디지털 소외계층은 모바일 기반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익숙지 않으며, 비대면 금융사기 문제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비대면 전환에 따른 소비자 권익이 침해되는 문제도 지적되는 상황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비대면 시장으로 전환되는 시장의 흐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대면 시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금소법'
지난 3월부터 금융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고 금융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이 시행됐다. 금융회사가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소비자의 재산 상황이나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목적을 확인하고, 적합한 상품을 권유해야 한다는 원칙이 법적으로 명시됐다. 또한, 금융상품 판매 원칙이 위배되었을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분쟁 조정 또는 소송을 위해서 금융회사에 자료 열람을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이성복 연구원이 발표한 ‘비대면 금융상품 수요증가에 따른 금융상품 시장변화와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방향’은 “금융상품 판매규제가 강화되면서, 금융회사 입장에선 규제 준수 비용과 판매 행위 책임에 대한 부담이 적은 비대면 채널로 전환할 유인이 커지게 됐다. 금소법이 시행되면서 대면 채널 이용 시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용자도 비대면 채널을 더욱 선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소법이 시행되면서 금융상품 판매대리ㆍ중개업이 도입되고, 대출성 금융상품의 중개판매가 가능해졌다. 핀테크 기업이 금융상품시장에 진출함에 따라, 대출성 금융상품의 중개판매는 더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상품을 제조하는 금융회사도 비대면 채널 역량을 강화하면서, 자체 플랫폼으로 상품을 직접 판매할 기회를 확대해왔다.
우리은행은 2021년 7월에 최초로 모든 과정을 100% 비대면화 한 주택담보대출 서비스를 출시했고, 카카오뱅크도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서비스를 곧 출시한다. 증권사는 개인의 디지털 자산관리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비대면 채널을 보강했으며, 보험사도 보장성 금융상품의 비대면 채널을 구축해왔다. 앞으로, 비대면 방식의 중개판매와 직접판매 간의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금융상품 시장이 비대면 채널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대면 중심으로 기술된 금융상품 판매 규제의 실효성이 저하될 수 있다. 비대면 채널에선 금융회사가 판매 행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금소법은 일부 상품에 적용되던 6대 원칙을 모든 금융상품에도 확대 적용했다. ‘적합성 원칙’에 따라, 금융회사는 금융소비자가 제공한 정보 간에 모순이 있으면 이를 조정해야 한다. 소비자의 연령, 재산 상황, 계약 체결 목적 등을 미리 파악한 뒤,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상품을 권유해선 안 된다. 비대면 채널은 소통이 제한적이라 조정 절차가 구현되지 않으면, 금융소비자의 적합성이 잘못 평가돼 부적절한 금융상품이 권유될 수 있다. 적합성 평가 오류의 책임이 모순된 정보를 제공한 금융소비자에게 있다고 판단되면, 위법계약해지권과 같은 금융소비자의 적극적 방어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설명 의무의 원칙은 금융상품을 설명하는 주체를 ‘금융회사’로 규정한다. 하지만, 현재 비대면으로 계약을 체결할 때 금융소비자가 금융상품 설명서를 다운로드할 경우 금융회사가 설명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비대면 채널에선 고의·과실에 의한 설명의무 위반 사례가 있음을 입증하기 어렵게 됐으며, 금융회사 임직원이 금융상품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는 의무도 실효성이 떨어지게 됐다.
핀테크의 금융상품 서비스는 ‘중개업’인가 ‘광고행위’인가?
지난 9월 7일, 금융위는 핀테크 플랫폼의 금융상품 서비스가 권유, 중개 행위로 판단될 경우 플랫폼 기업은 금융상품판매대리·중개업자로 등록해야 한다고 지도했다. 금융위는 올해 초부터 비대면 채널의 광고와 중개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해왔다.
금융위가 제시한 ‘중개’의 기준은 ‘상품 추천, 설명과 함께 금융상품판매업자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지원’, ‘금융상품판매업자가 맞춤형으로 광고를 제공’, ‘광고에 더하여 청약서류 작성, 제출 기능을 지원’, ‘금융상품판매업자로부터 특정 금융상품 추천에 대한 대가 받는 것’이다. 광고의 기준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금융거래를 유인하기 위해 금융상품 관련 정보를 게시하는 것’, ‘특정 금융상품 추천, 설명이 없는 광고를 클릭할 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금융상품판매업자에 연결하는 것’이다.
이성복 연구원의 보고서는 “이 기준만으로 비대면 채널의 금융상품 관련 서비스를 광고와 중개로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문제는 판단에 따라 적용되는 규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권유ㆍ중개행위로 판단되면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규제가 적용되지만, 광고행위로 판단되면 광고규제만 적용될 수 있다. 단순하게 금융상품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판단되면 어떤 규제도 적용받지 않을 수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비대면 채널에서 제공되는 금융상품 서비스는 금융상품 광고, 정보제공, 권유·중개 등이 있다. ‘금융상품광고’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과 고객 개인 정보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광고로 분류되고, ‘정보 제공’은 개인 정보를 입력하지 않고 사용하는 비교 및 검색과 고객의 정보 입력을 요구하는 맞춤형 정보 제공으로 나뉜다. 권유ㆍ중개는 금융소비자의 구매의사가 분명하며, 직접 금융상품 계약을 체결하거나 이를 대리ㆍ중개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개인정보를 별도로 입력하지 않더라도, 플랫폼은 저장된 개인정보를 분석해 맞춤 광고, 비교조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금융위 해석에 따르면 모든 유형의 금융상품 정보제공이 권유·중개로 해석되며, 맞춤 광고와 불특정 광고까지도 권유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금융상품 관련 서비스가 권유·중개로 판단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 금융소비자의 적합성을 평가하고 설명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에 로그인해 금융상품 서비스를 이용하는 금융소비자가 금융상품을 구매할 의사가 없다면, 금융회사가 금융소비자의 적합성을 평가하고 설명 의무를 이행할 이유가 마땅하지 않다.
금융위는 “비대면 채널에서 금융소비자가 금융상품 권유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제공하거나 특정조건으로 금융상품을 검색하는 경우, 금융상품 권유를 받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간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들은 금융상품을 탐색할 때 조건 검색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기준으론 금융상품 구매 의사를 표시했다고 보긴 어렵다.
결국, 권유와 중개에 대한 논란의 소지를 명백하게 해소할 필요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보고서는 “금융소비자가 금소법 규정에 맞게 금융상품을 구매할 의사를 표시하고 직접 계약을 체결하거나, 계약 체결을 직·간접적으로 대리하는 경우에만 권유 중개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금융소비자가 쉽게 식별할 수 있게 해당 서비스에 광고·정보제공·권유 등의 문구를 표시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비대면 채널의 고객 적합성 평가 제도의 미비점을 확인하고, 금융회사가 고객 적합성 평가와 관련된 기록을 적법하게 기록하고 보관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비대면 채널의 특성을 반영하여 금융회사가 설명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도록 영상이나 인공지능을 활용할 것을 독려하고, 금융소비자가 금융상품의 핵심 설명사항을 충분하게 숙지하였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전했다.
충돌하는 이해관계, 막으려면 ‘등록’이 아닌 ‘행위’규제
금소법은 금융상품 판매대리·중개업자에 대한 이해상충 규제를 규정하고 있다. 다만, 대출성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금융상품 판매대리·중개업자에게만 적용되며, 대출성 금융상품을 대면과 비대면 채널에서 병행하여 취급하는 금융상품 직접판매업자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보고서는 “금융상품 판매대리ㆍ중개업자에 대한 이해상충 규제에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상품을 제조하는 금융회사가 자신이 직접 판매하는 대출 상품과 금융상품 판매대리·중개업자를 통해 위탁 판매하는 대출의 조건을 다르게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혹은 보험회사가 직접 판매하는 보험의 보험료보다 보험대리점에서 위탁 판매하는 상품을 더 비싸게 하거나, 보험료가 동일하더라도 보장 범위나 해지조건을 다르게 설계할 수도 있다.
이성복 연구원은 “현재 대출성 금융상품 판매대리 중개업자만 금소법에 따라 등록을 하고, 투자성 금융상품 등 나머지 금융업은 각 금융업별 법에 따라 등록하게끔 돼 있다. 금소법에선 다른 금융상품을 판매대리, 중개하는 업자에 대해선 이해상충 규제가 명확하게 적시되지 않은 것이다. 금소법은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규제 6대 판매 행위 규제를 두고 있는데, 이해상충의 문제를 막으려면 행위 규제에 이해상충규제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