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오비맥주·라피끄, 손 잡고 화장품 '클린 뷰티' 이끈다

[IT동아 차주경 기자] 우리는 건강 보조 식품이나 영양제를 살 때, 효능을 내는 ‘원재료의 함량’을 중요하게 여긴다. 원재료가 많이 들어있어야 효능이 좋을 것으로 생각해서다. 그런데, 우리는 화장품을 살 때에는 원재료의 함량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화장품의 효능을 결정하는 것이 원재료의 함량이지만, 우리는 그보다 어떤 원재료가 들어갔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원재료의 화려한 이름과 광고만 보고, 정작 중요한 함량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범주 라피끄 대표. 출처 = 라피끄
이범주 라피끄 대표. 출처 = 라피끄

이범주 대표는 이런 오해를 바로잡으려고 그린바이오 연구개발 스타트업 ‘라피끄(Rafiq)’를 세웠다.

고유 기술로 식물 재료의 원형과 효능 그대로 전하는 화장품 만들어

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대학원에서 분자생물학을 배운 그는 우리나라 굴지의 화장품 기업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화장품의 내용물, ‘식물 추출물’을 다뤘다. 식물 추출물은 재료인 식물을 가공해서 추출한 물질이다. 추출 과정에서 유효 성분이 파괴되거나 아예 추출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범주 대표는 의아했다. 식물이 피부에 좋은 성분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로를 원료로 써야지 왜 추출물을 사용할까. 식물이 가진 좋은 성분을 피부가 그대로 흡수하게끔 이끄는 기술은 없을까. 나아가 식물의 숨겨진 효능을 이끌어낼 기술은 없을까. 연구 끝에 개발한 기술이 라피끄 고유의 ‘식물 연화 기술(SofTech)’과 ‘생물전환’이다.

라피끄 연구개발 공간. 출처 = 라피끄
라피끄 연구개발 공간. 출처 = 라피끄

“라피끄의 식물 연화 기술은 식물을 원형 그대로 화장품 재료로 쓰도록 가공하는 기술입니다. 녹차를 예로 들게요. 다른 화장품 기업은 녹차앞에 물을 타고 그 물을 원료로 씁니다. 녹차 추출물이 원료이지요. 반면, 저희는 녹차잎 자체를 고스란히 화장품 원료로 씁니다. 재료에 물을 타서 쓰는 것과 재료를 그대로 쓰는 것, 어느 쪽이 성분 함량이 높을까요? 단연 후자입니다.

라피끄가 만든 화장품을 보면, 잎이나 꽃잎 등 재료가 원형을 유지한채 그대로 들어가 있어요. 피부에 바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른 화장품처럼 피부에 스며들어요. 어떻게 잎이나 꽃잎이 피부에 스며드냐고요?

라피끄가 고유 기술로 만든 화장품. 식물 잎이 그대로 담겼다. 출처 = 라피끄
라피끄가 고유 기술로 만든 화장품. 식물 잎이 그대로 담겼다. 출처 = 라피끄

먼저 식물성 재료의 활성 물질들을 저분자 고활성 물질로 바꿉니다. 여기에 효모를 넣으면, 효모가 특정 성분을 먹고 자라 저분자 고활성 물질을 단순화합니다. 다음에는 식물성 재료를 잘게 잘라 원형을 유지한 채 잘 분해되도록 했습니다. 성분을 유지한 채 흡수율을 높이는 기술, 이것이 식물 연화 기술이에요.

라피끄만의 두 번째 기술은 생물전환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발효의 일종이에요. 미생물로 재료를 발효하거나, 효소만 추출해 특수 반응을 일으키는 원리입니다. 그러면 유효 물질의 분자 구조가 단순하게 바뀌고 효능이 좋아져요.

심지어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효능이 생물전환 과정에서 생기기도 합니다. 어성초는 살균 효과를 가진 식물로 알려져 있지요? 어성초를 생물전환하면 염증 완화 효과가 새로 생깁니다. 물론, 생물전환한 재료에 식물체 연화 기술을 적용하는 것도 됩니다. 그러면 효과는 더욱 좋아지지요.”

라피끄 연구개발 공간. 출처 = 라피끄
라피끄 연구개발 공간. 출처 = 라피끄

라피끄의 고유 기술, 식물체 연화와 생물전환은 화장품의 효능은 크게 높이고 재료 사용량은 크게 줄인다. 이범주 대표의 계산에 따르면, 라피끄는 두 기술을 활용해 기존의 4%에 불과할 만큼 적은 재료로 화장품을 만든다. 이 화장품의 효능은 자사의 일반 제품보다 250배나 높다고 한다.

맥주 부산물은 천혜의 화장품 재료, 오비맥주와 CV 구성해 클린 뷰티 이끈다

식물 연화와 생물전환 기술을 개발한 이범주 대표는 이어 화장품 소재 연구에 나섰다. 소재가 가진 효능을 고스란히 피부에 전달하는 기술, 소재에서 새로운 효능을 이끌어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여기에 피부에 좋은 효능을 가진, 라피끄의 기업 철학인 그린 바이오(친환경)와 업사이클링(자원 재활용)을 만족하는 소재가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화장품 소재를 찾던 이범주 대표의 눈에 막걸리와 맥주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이 들어왔다.

라피끄가 고유 기술로 만든 화장품. 식물 잎이 그대로 담겼다. 출처 = 라피끄
라피끄가 고유 기술로 만든 화장품. 식물 잎이 그대로 담겼다. 출처 = 라피끄

“생물전환할 때 쓰는 효모는 토종 막걸리 효모균입니다. 그러다가 별안간 맥주 효모를 써 보고 싶어졌어요. 막걸리와 맥주는 둘 다 곡물 발효로 만드니까요. 그 때부터 맥주 회사와, 되도록이면 여러 맥주 회사와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맥주마다 효모가 다르니 효능도 다를 테니까요. 맥주의 맛은 맥아와 홉, 그리고 효모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화장품의 효능 역시 효모에 따라 달라집니다.

연구해 보니, 맥주 부산물은 천혜의 화장품 원료였어요. 피부의 미백은 물론 탈모 완화 효능도 가졌더군요. 게다가 효모도 풍부해 식물 연화 기술에 적용하기 알맞았어요. 모발을 건강하게 하고 탈모를 완화하는 샴푸가 떠올랐습니다.”

기술과 소재를 찾은 이범주 대표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다가왔다. 맥주 부산물을 얻을 방법이 마땅찮았다. 맥주 부산물을 얻으려면 당연히 맥주 대기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실험 결과와 데이터만 가진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제휴를 이끌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민하던 그는 서울창업허브(SBA)의 도움을 받아 데모데이에서 파트너 오비맥주를 만났다고 한다.

발표하는 이범주 라피끄 대표. 출처 = 라피끄
발표하는 이범주 라피끄 대표. 출처 = 라피끄

오비맥주는 오픈 이노베이션(기업 외부에서 혁신을 시도하는 것)과 CV(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 모델)에 적극 나선 기업이다. 이미 데모데이, 밋업 등 행사에서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파트너십을 맺은 바 있다.

오비맥주는 데모데이에서 라피끄의 기술을 눈여겨보고, 연간 31만 톤 생기는 맥주 부산물을 효과적으로 재활용할 파트너로 점찍었다. 데모데이 우승의 영광이 라피끄에게 돌아간 것은 물론이다. 알고 보니, 오비맥주의 모기업인 에이비인베브는 일찌감치 라피끄를 주목하고 있었다. 데모데이 시상식 직후, 에이비인베브 관계자가 오비맥주에 ‘맥주 부산물을 기발하게 재활용하는 스타트업, 라피끄가 한국에 있다는데 이 기업을 아느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오비맥주 덕분에 맥주 부산물로 실컷 실험을 할 수 있었어요. 맥주 부산물을 가공해 화장품을 만들어 보니 효과가 너무 좋아 놀랐습니다. 멜라닌을 억제해 탁월한 피부 미백 효과를 냈어요. 미세 플라스틱 대체 효과도 있어 세안제로도 만듭니다. 맥주 부산물을 캡슐에 담은 기능성 화장품도 있어요.

저희 기술은 맥주 부산물을 100% 재활용, 단 하나도 남기지 않습니다. 제로 웨이스트 재활용, 맥주 부산물을 완전히 없애 화장품을 만드니 ‘클린 뷰티’인 셈이지요. 지금까지 화장품 업계는 포장을 없애거나 재활용하는 의미로 클린 뷰티를 말했습니다. 저희는 한발 더 나아가 화장품 재료의 낭비를 막고 재활용하는 새로운 클린 뷰티를 이끌려 합니다.”

라피끄가 개발한 화장품. 출처 = 라피끄
라피끄가 개발한 화장품. 출처 = 라피끄

이범주 대표는 오비맥주와의 CV로 이룬 성과로 다양한 사업을 꿈꾼다. 우선 오비맥주와 함께 ‘원료 제작’과 ‘화장품 판매’ 두 가지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맥주 부산물을 가공해서 추출물, 스크럽(세안제), 그래뉼 등 다양한 기능성 원료를 만들었다. 이 원료에 오비맥주의 상품명을 붙여 판매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맥주 부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 받으려 오비맥주의 모회사인 에이비인베브와 공급 계약도 맺었다. 다른 맥주 대기업의 제휴 문의도 받았다고 한다.

화장품 소재 연구에도 매진한다. 라피끄는 지금까지 23종의 식물 원료를 찾았다. 이를 100종 이상으로 늘린다. 재활용 개념과 함께다. 배추나 감 껍질 등 지금까지 버리던 식물 원료의 효능을 발견해 화장품 재료를 만들려 한다.

해조류도 후보군 중 하나다. 라피끄는 최근 제주도에서 자라는 120종 이상의 식물과 해조류를 분석 중이다. 이를 활용해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로 화장품을 만들고, 이 화장품을 호텔 어메니티(샴푸, 비누 등 편의 물품)나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방안도 기획했다. 자연스레 지역 농가와의 협업도 이뤄진다. 식물 재료를 원활하게 받으려 스마트팜과의 연동도 고려한다.

라피끄가 만들어 공급한 화장품 제품군. 출처 = 라피끄
라피끄가 만들어 공급한 화장품 제품군. 출처 = 라피끄

단, 라피끄는 당분간 화장품을 만들어 다른 기업에 납품하는 B2B로만 영업할 예정이다. 일반 소비자를 위한 자체 상품을 만들 계획은 있다. 하지만, 마케팅과 홍보 경쟁이 어느 곳보다도 치열한 화장품 시장이기에 우선 기술의 장점과 상품의 특성을 충분히 알린 후 B2C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SBA “CV 보람 크다, 환경과 사회 생각하는 스타트업과 대기업 연결 도울 것”

이범주 대표는 대기업과의 CV 결성을 꿈꾸는 스타트업에게 조언을 건넸다.

“스타트업 대표라면 대부분은 한 번쯤 대기업과의 협업을 꿈꿨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기 어렵지요. 어디에 연락해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지 모를 것이고, 기술이나 인력을 대기업에게 빼앗길까 겁도 날 것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렇다면, SBA CV처럼 검증된 프로그램을 이용해보세요. CV 파트너를 찾아주고 중간에서 소통 창구 역할도 해 줍니다.

CV는 스타트업에게 정말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대기업과 함께 성과를 내는 것 자체가 홍보의 수단이 됩니다. 비즈니스의 규모도 단시간에 크게 키울 수 있어요. 라피끄와 비슷한 연구개발 스타트업에게 CV는 기술을 고도화하는 계기,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발굴하고 현실화하는 계기, 투자 유치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스타트업 대표는 정말 바쁩니다. 기술과 상품 개발, 미래 먹거리 발굴, 회사 운영과 홍보 전부 대표가 혼자 해야 해요. SBA CV는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도와준, 회사의 도약을 이끌어준 정말 고마운 프로그램입니다.”

이범주 라피끄 대표(왼쪽)와 최수진 SBA 파트장
이범주 라피끄 대표(왼쪽)와 최수진 SBA 파트장

최수진 SBA 파트장은 2021년의 마지막 달 12월, 오비맥주와 라피끄의 CV 성공 사례를 만들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ESG,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가 중요해진 이 때에 라피끄처럼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스타트업을 더 발굴해, 대기업과 상승 효과를 내는 CV 사례를 꾸준히 만들겠다고도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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