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용량 경쟁, 소비자는 웃는다
생활가전, 크다고 무조건 좋을까? 얼핏 큰 것이 작은 것보다 좋아 보이긴 하나, 어느 정도의 선을 넘으면 과유불급이 되는 일이 흔하다. 예를 들어 TV의 크기는 거실 면적 및 시청거리와 관계가 있다.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큰 TV를 놓으면 오히려 시청에 방해가 되기 십상이다(영화관 맨 앞줄이 인기가 없는 이유와 비슷하다). 세탁기의 크기 역시 세탁패턴에 좌우되는데, 빨래감이 적게 나오는 가정에서는 큰 세탁기가 오히려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냉장고만은 ‘크면 클수록 좋다’는 게 정설이다. 식품을 냉각하는 용도로 쓸 때보다 식품을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냉장고가 있어도(그리고 김치냉장고까지 있어도) 살림을 담당하는 주부들은 공간이 부족하다며 아우성이다. 신혼부부들 역시 대형 냉장고를 혼수로 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형냉장고의 판매량은 다른 대형가전보다 높은 편이다. 관련업계에 의하면, 2012년 냉장고 판매량 중 800리터 대형냉장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4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실질적인 수요는 없고 기술과시에 가까운 초대형 TV와는 달리, 최근 출시된 초대형 냉장고는 날개 돋친 듯이 팔린다. 지난 7월 4일, 삼성전자가 출시한 900리터 냉장고 ‘지펠 T9000’의 초기 생산량은 2010년 10월에 출시한 양문형 냉장고 그랑데 스타일 시리즈보다 3배나 높다. 삼성전자는 “광주사업장의 냉장고 생산라인이 풀가동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누가 더 크게 만드나… 치열한 자존심 싸움
더 큰 냉장고가 필요한 소비자들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냉장고 용량 전쟁을 반기기 마련이다. 몇 년 전부터 양 사는 경쟁사 제품보다 조금씩 용량을 늘린 대형냉장고를 출시하며 치열한 ‘용량 1위’ 경쟁을 벌여 왔다. 2010년 LG전자가 800리터의 벽을 먼저 넘었고, 같은 해 삼성전자가 840리터 냉장고로 1위 자리를 빼앗았다. 2011년에도 850리터, 860리터, 870리터 제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시됐다. 그리고 2012년 7월 삼성전자가 900리터 냉장고로 역사를 다시 쓰는가 싶더니,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LG전자가 910리터 냉장고를 선보였다. 기술력에서 절대로 밀리지 않겠다는 양 사의 각오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LG전자가 선보인 ‘현존’ 세계 최대 용량 디오스 냉장고는 4도어 방식의 양문형 냉장고다. 냉장실은 상단에, 냉동실은 하단에 배치됐다. 냉장실 폭이 기존 양문형 냉장고보다 2배로 넓기 때문에 피자 등 부피가 큰 식품도 수납할 수 있다. 독자기술인 ‘4세대 리니어 컴프레서’를 적용해 강력한 냉각 성능 및 전력 고효율을 자랑한다. 공식 출하 가격은 349만~439만 원이며, 7월 16일부터 한 달간 예약 판매에 들어간다.
한 달 만에 1위를 뺏긴 삼성전자의 지펠 T9000도 디오스와 비슷한 4도어 방식 양문형 냉장고다. 상단 냉장실, 하단 냉동실의 구조도 동일하고, 냉장실의 폭이 넓다는 점도 같다. 경쟁제품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독립적인 냉각기를 탑재한 ‘참맛 냉동실’이다. 냉동실뿐 아니라 냉장실로 활용할 수 있어서 탄력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 출고가는 349만~399만 원이다.
비록 현재는 LG전자가 세계 최대 용량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조만간 삼성전자가 1위를 다시 탈환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LG전자 역시 더 큰 냉장고로 반격을 시도할 것이다. 선두를 다투는 업체들은 피가 마르지만, 소비자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이처럼 치열한 기술 경쟁이 가능한 이유는 양 사가 냉장고 시장을 양분할 정도로 비슷한 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점유율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독과점 상태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다. 소비자들이 더 좋은 냉장고를 계속해서 만날 수 있도록, 양 사의 용호상박 승부가 앞으로도 계속되길 기대한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