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담긴 소리 들려주고파 - 돌비 코리아 김재현 지사장

김영우 pengo@itdonga.com

자신의 취미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이들의 꿈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현실의 무게 때문이다. 너무나 원하는 직종이건만, 이를 선택하기엔 수입이 넉넉하지 않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인맥과 같은 보이지 않는 장애물 때문에 좌절하기도 한다. 또한, 운 좋게 원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하더라도 일이 되어버린 취미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니게 되어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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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자신의 취미에 맞는 업종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해당 업종의 정상에 서게 되는 사람들은 수는 적을지언정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소리’에 대한 열정 하나로 음향 업계에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 세계 굴지의 음향 기술 업체인 돌비(Dolby)의 한국 지사장이 된 김재현(50세) 대표가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IT동아가 김 대표를 만나 그의 삶과 철학, 그리고 돌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음악광 소년, 음향기기 제작에 뛰어들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열정이 컸습니다. 처음에는 연주하는 것을 좋아해서 피아노를 열심히 배우기도 했지요.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안 사업이 실패해서 채권자들이 들이닥쳐 집에 있는 피아노를 가져가버리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후부터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에 좀더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타가 공인하는 음악 매니아가 되었죠. 생전 처음 구입한 음반인 폴 모리아의 ‘크리스마스’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재현 대표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며 인터뷰의 문을 열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음향기기에 대한 열정으로도 이어졌으며, 이는 이후 대학 전공(서울대 전기공학과)을 선택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는 대학 시절에도 공부보다는 음악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1982년에 MBC의 대학생 DJ 경연에 나가서 우승은 못했지만 입상은 했고, 이를 계기로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 DJ를 하기도 했지요. 이런 열정 때문에 대학 졸업 이후 금성사(현재의 LG전자)에 취업해 음향기기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첫 직장, LG전자에서 이룬 성공과 좌절

첫 직장인 LG전자에서 김 대표는 한국 최초의 CD-ROM 드라이브 개발에 참여, 1988년에 시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 1990년대 초중반들어 멀티미디어 PC가 본격적으로 부각되면서 LG전자의 광 디스크 드라이브 사업은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에 힘입어 LG전자는 세계 광 드라이브 시장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당시 LG전자는 의외로 음향기기 개발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컴포넌트 오디오는 물론이고 자동차용 오디오, 그리고 전자악기 개발도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LG전자의 전자악기 개발부서로 자리를 옮겼는데, 여기서 개발한 신디사이저는 1991년 독일 메세(Messe: 산업 박람회)에 소개되어 현지 언론에서 큰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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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음원 프로세서를 개발하다가 1995년에 LG반도체로 옮겼으며, 미국 실리콘밸리에 파견되어 제품 개발뿐 아니라 해와 바이어들과의 마케팅 업무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다.

“IMF 이후 환율이 폭등해서 해외 파견 직원들의 봉급이 반 토막이 나버렸습니다.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졌죠. 결국 회사를 관두게 되었습니다. 퇴직 후에 무슨 일을 할까 한동안 생각하다가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던 녹음기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했지만 결국 이해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할리우드의 녹음기사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지요. 생활은 극도로 가난했지만 열정은 넘치던 시절이었지요. 그때가 저의 나이가 37세였습니다.”

대기업 임원을 포기하고 녹음실 심부름꾼이 된 이유

대기업 임원에서 다시 학생이 된 그는 녹음 기술을 배움과 동시에 조지 루카스가 세운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음향 업체인 스카이워커 사운드에서 심부름꾼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선진 음향의 노하우를 익히기 시작했다. 당연히 보수는 없었다.

“당시(1999년)은 영화 음향이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었습니다. 저장 매체 또한 테이프에서 하드디스크로 바뀌던 시절이었죠. 저는 녹음기사들이 영화음향을 녹음해서 분류한 데이터를 마스터링(취합, 편집)하는 곳으로 옮기는 일을 했는데, 이런 와중에 스타워즈나 인디아나존스와 같은 당대 최고의 영화에서 음향을 담당한 거장들과 만나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해외 생활을 하던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이른바 ‘닷컴 열풍’이 일던 2000년경이다. 그는 미국에서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 최초의 풀 디지털 영화 녹음실을 세웠고, ‘선물’,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불꽃’ 등 다수의 영화 및 드라마의 사운드 트랙 제작에 참여했디.

닷컴 열풍과 함께 귀국, 그 결과물은 ‘멜론’과 ‘컬러링’

“영화 사운드 트랙 사업이 즐겁긴 했지만 수익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대학 동기들과 함께 음향 기술 포털 기업을 세우고 여기서 개발한 기술을 데이콤, SK텔레콤 등의 대기업에 솔루션을 납품했죠. 그 와중에 SK텔레콤의 자회사인 ‘와이더댄’의 본부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유무선 통합 음악 포털인 ‘멜론’을 런칭하게 되었죠.”

멜론은 다들 알다시피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국내를 대표하는 음악 포털로 성장했으며, 와이더댄은 나스닥에도 상장, 미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와이어댄의 플랫폼에 큰 관심을 보이던 미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음향 기술 기업인 리얼네트웍스는 2006년에 와이어댄을 인수, 김 대표는 아시아 태평양 사업 부문의 책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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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외국인 회사의 임직원이 되었죠. 미국, 인도들을 누비며 컬러링, 멜론과 같은 사업모델을 판매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덕분에 외국에 이름도 제법 알려지게 되었죠. 그 와중, 2011년 초에 돌비에서 처음으로 영입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땠냐고요? 너무나 기쁘게 수락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바라던 꿈이 이루어진 것이거든요.”

‘돌비’ 로고는 음향 품질 보증서?

김 대표는 2011년 5월에 돌비의 한국 지사인 돌비 코리아의 지사장으로 취임했다. 지향점이 분명한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는 실감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돌비는 과연 어떤 회사일까?

“돌비는 47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 최대의 음향 기술 업체입니다. TV나 오디오, DVD와 같은 제품에 돌비의 로고가 찍힌 것을 종종 보셨을 텐데 바로 돌비의 기술을 라이선스해서 적용한 제품이라는 의미지요. 단지 제품뿐 아니라 영화 감상 시에도 돌비의 로고가 등장하는 모습을 종종 보셨을 겁니다. 절대 다수의 영화들이 돌비 방식으로 음향을 수록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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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돌비의 로고가 찍힌 제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돌비의 기술이 각 제조사로 라이선스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설명했다.

“라이선스 과정에서 돌비는 기술 표준을 제공하는 것 외에 전반적인 개발 과정에 도움을 줍니다. 제조사에 프로토타입(시험 생산품)이 나오면 이를 돌비 본사에서 직접 테스트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여기에 합격해야 비로소 돌비의 인증을 받고 돌비 로고가 찍히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각 제조사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인증 제품 중에 돌비 로고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돌비 디지털 플러스’로 모바일 시장에 임하는 돌비의 자세

과거 돌비는 영화관이나 홈시어터 등에 적용되는 비교적 큰 규모의 입체 음향 기술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기기에도 돌비의 로고가 찍히는 모습이 종종 보이곤 한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 LG전자, 팬택과 같은 주요 업체들의 스마트폰에 돌비 기술이 적용되면서 돌비는 홍보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돌비의 주요 플랫폼이 모바일로 옮겨진 것인지, 그리고 기존 홈씨어터와 모바일에 임하는 돌비의 방향성을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았다.

“돌비는 당연히 홈시어터와 같은 기존의 플랫폼도 변함 없이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만, 장차 모바일이 시장의 중심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죠. 모바일은 기존의 홈씨어터와 달리 하드웨어의 성능이 제한적이고 소프트웨어의 용량 역시 적지요. 때문에 낮은 대역폭(데이터의 통로)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홈시어터와 다름 없는 품질의 음향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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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돌비에서 모바일 시장에서 주력으로 보급하는 기술이 바로 ‘돌비 디지털 플러스’다. 이는 2채널의 음원 소스와 일반 헤드폰, 혹은 이어폰을 가진 환경에서도 5.1채널 입체음향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후처리 기술이라고 돌비는 최근 홍보하고 있다. 다만, 돌비 디지털 플러스는 2000년대 중반 처음 발표될 당시에는 홈씨어터를 위한 입체음향 코덱(codec: 데이터 수록 방식)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으며, 당연히 이를 즐기기 위해서는 음원 소스는 물론, 기기도 5.1채널이나 7.1채널을 지원해야 했다. 돌비 디지털 플러스라는 기술이 그 동안 개념이 변한 것일까?

“돌비 디지털 플러스가 발표 당시에는 홈시어터용 코덱의 하나로 인식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실 돌비 디지털 플러스는 본래 내부적으로 코덱 뿐 아니라 후처리 기술도 다수 포함하고 있었죠. 예를 들어 앞서 이야기한 2채널 음향을 5.1채널로 분리하는 기능 외에도 음량이 각각인 여러 음원의 음량을 고르게 평준화하는 기능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최근 들어 돌비 디지털 플러스가 변했다기보다는 이제야 비로소 돌비 디지털 플러스의 숨겨진 진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 같습니다.”

돌비에게 있어 한국 시장은?

돌비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라면 아무래도 한국과 같이 규모가 작은 시장을 소홀하게 취급할 수도 있다. 돌비에게 있어 한국 시장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돌비 코리아의 주요 업무가 무엇인지 김 대표에게 물어보았다.

“한국에는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돌비의 대표적인 고객들이 다수 있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돌비 본사의 책상 위에는 한국 기업들에 대한 분석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것이고요. 소홀히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한국 시장은 규모는 작지만 트랜드에 민감하고 의사 결정 속도가 빨라서 새로운 사업을 하기 전에 반드시 참고해야 할 테스트 베드(Test Bed)로 통하지요, 돌비 코리아는 한국의 주요 기업들과 협력을 함과 동시에 한국 시장의 상황을 본사에 정확히 보고해 돌비의 글로벌 사업 전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음향뿐 아니라 영상 부분에도 도전한다

돌비는 음향 기술 업체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들어 영상 부문까지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영상 기술 기업 돌비’라는 수식어는 아직 어색하지만, 돌비는 내부적으로 착실하게 이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살짝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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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 처리라는 큰 틀에서 보면 영상과 음성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음성 기술에서 쌓인 노하우가 영상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돌비의 영상 부분 진출에 대해서 현 단계에서는 모든 것을 밝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조만간 추가 정보를 드릴 예정입니다. 현재 나온 결과물이라면 작년에 돌비에서 처음 출시한 ‘프로패셔널 레퍼런스 모니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이는 전문가 전용 모니터로, HD의 4배에 해당하는 UHD 해상도를 갖추고, 색감이나 휘도 면에서 완벽하게 원본을 재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상업적인 영상물을 제작하고 편집할 때 필수적인 장비라고 할 수 있지요.”

그의 꿈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

인터뷰를 마칠 즈음, 김재현 대표는 IT동아의 독자들과 음향기기 애호가들에게 인사말을 남겼다.

“제가 돌비 코리아의 지사장에 처음 취임한 것이 작년 4월이니 이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참 재미있게 일하면서 회사의 비전을 한국 시장에 충실하게 실현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지요. 아직 성과가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만, 돌비의 기술을 적용한 수많은 제품들이 많은 소비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회사의 역사만큼이나 혁신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돌비 코리아의 김재현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소리에 대한 애착을 바탕으로 삶의 방향성을 일찌감치 정했으며, 이를 이루기 위해 계속 달려왔다. 대표적인 글로벌 음향 기술 기업인 돌비의 한국지사장이 되면서 그 꿈은 어느 정도 완성을 이룬 것 같지만, 여전히 남은 일이 많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 꿈의 최종단계는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것이 돌비가 앞으로 제시할 새로운 멀티미디어 기술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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