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로 영화 보는 시대를 열다 - DivX(디빅스)

김영우 pengo@itdonga.com

DivX(디빅스)

지금은 PC를 이용하여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매우 보편화되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PC 성능이 받쳐주지 않아 영화를 원활히 즐기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비디오 CD나 DVD를 이용해서도 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비디오 CD는 화질이 상당히 열악했고 DVD의 경우에는 동영상 가속 카드나 DVD-ROM 드라이브 등 당시로서는 상당히 비싼 추가 장비를 달아야 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PC 성능이 크게 향상됨에 따라 DVD 정도는 문제 없이 구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PC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일반 사용자들에게 생소한 일이었다. DVD로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일단 영화 타이틀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을 찾아야 했으며,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PC로 영화를 즐기고 싶은데, 문제는 '코덱'

그러다 2000년대 초반을 즈음하여 초고속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됨에 따라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인터넷망을 통해 영화 동영상 파일을 내려 받아 감상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당시에는 영상이나 음성 데이터의 용량을 압축하는 코덱(codec)기술이 열악했기 때문에 동영상 파일의 덩치가 매우 크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파일을 내려 받는데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데다, 하드디스크의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소장 및 관리가 쉽지 않았다.

물론 원본 동영상의 화질을 떨어뜨리면 파일 용량이 줄어들긴 하지만 그만큼 영화를 보는 재미도 줄어든다. 고화질을 유지하면서 파일 용량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코덱의 개발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당시 고화질 영상 매체의 대명사였던 DVD에 쓰이는 ‘MPEG-2’ 코덱의 경우 데이터 압축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 그리고 DVD에는 ‘돌비 디지털’ 등과 같이 용량을 많이 차지하는 5.1채널 입체음향까지 수록되기 때문에, DVD에서 동영상 파일을 그대로 추출한다 해도 DVD 원본 수준의 하드디스크 용량을 차지한다(DVD의 용량은 단층 디스크 기준 4.7GB, 복층 디스크 기준 9.4GB).

이러한 와중, 1998년에 발표된 것이 ‘MPEG-4’ 기술이다. MPEG-4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코덱은 이전에 사용되던 MPEG-1, MPEG-2 등에 비해 데이터 압축률이 높았기 때문에 용량은 적으면서 화질이 우수한 동영상을 제작하는데 적합했다. MPEG-4 기술 개발에 깊이 관여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규격의 가능성에 주목, 이를 윈도우 기반 PC용으로 최적화시킨 ‘마이크로소프트 MPEG-4 버전 3(이하 MS-MPEG4 V3)’ 코덱을 개발하여 배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코덱이 누구나 쉽게 다운로드 하여 저장할 수 있는 동영상 파일용으로 사용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런 동영상 파일은 불법으로 영화를 복사, 감상하기 위해 제작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는데, 특히 MS-MPEG4 V3 코덱을 이용하면 저용량 고화질 동영상을 쉽게 만들 수 있었으므로, 영화 콘텐츠가 불법적으로 복사되는 행위가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MS- MPEG4 V3 코덱을 실시간 스트리밍 동영상용(내려 받기 불가)으로만 사용하도록 제한을 걸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 많은 네티즌들이 반발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DVD급 영화를 CD급 용량으로, DivX의 등장

그런데 1998년 말, 프랑스의 프로그래머인 ‘제롬 로타(Jerome Rota)’가 ‘DivX(통상적으로 ‘디빅스’라 읽음)’라는 새로운 코덱을 만들어 인터넷에 배포하기 시작했다. DivX는 공개된 코덱 규격이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며, 당연히 저장용 동영상 파일에 적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더욱이, DVD(9,4GB)에 담긴 영화 한 편을 거의 화질 저하 없이 CD(700MB) 수준의 용량으로 저장할 수 있을 만큼 데이터 압축률이 우수했다.

이러한 DivX 코덱의 등장에 많은 네티즌들이 열광했고, DivX 코덱을 사용한 영화 동영상이 대량으로 제작되어 인터넷에 배포되기 시작했다. PC에 영화 파일을 저장하여 감상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다만, 이렇게 배포되는 DivX 영화 동영상의 절대 다수가 영화 저작권자의 배포 허가를 받지 않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합법적인 DVD 및 VOD(주문형 비디오) 서비스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물론 현재도 그러하다).

PC로 영화 보는 시대를 열다 - DivX(디빅스) (1)
PC로 영화 보는 시대를 열다 - DivX(디빅스) (1)

그런데 이렇게 콘텐츠 산업에 큰 영향을 준 DivX 코덱은 사실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된 것이 아니다. DivX 중에 가장 처음으로 공개된 버전인 ‘DivX ;-) 3.11 alpha’는 MS-MPEG4 V3과 세부적인 사항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었으며, 사실상 MS-MPEG4 V3를 해킹하여 사용 제한을 풀어놓은 것에 불과했다. 코덱의 이름 표기가 ‘DivX’가 아닌 ‘DivX ;-)’로 된 것도 원 개발사에 대한 조소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DivX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코덱 개발자 그룹인 ‘프로젝트 마요(Project Mayo)’가 결성되기도 했다. 프로젝트 마요에서 1999년에 공개한 DivX 4.0는 과거의 DivX와 호환은 가능하지만 MS-MPEG4 V3와 관련이 없는 코덱이었기에 해적판 코덱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상용화, 그리고 반발

이 때를 즈음하여, 조단 그린홀(Jordan Greenhall)이라는 미국의 사업가가 DivX의 엄청난 인기에 주목, DivX의 최초 개발자인 제롬 로타를 영입하여 ‘디빅스네트워크(DivXNetworks, 이후 DivX, Inc.로 변경)’라는 회사를 1999년에 설립했다. 그리고 버전 5.2(2004년 발표)까지는 공개용으로 배포되던 DivX 코덱을 이후 버전부터는 상용화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11년 현재, 상용화된 DivX 코덱은 PC외에도 DVD 플레이어, 비디오 게임기, PMP, 스마트폰 등의 다양한 기기에 탑재되고 있다.

PC로 영화 보는 시대를 열다 - DivX(디빅스) (2)
PC로 영화 보는 시대를 열다 - DivX(디빅스) (2)

다만, 디빅스네트워크(DivX. Inc)에 합류하지 않고 잔류한 DivX 관련 개발자들은 DivX의 상용화에 반발, DivX의 이름을 거꾸로 배열한 ‘Xvid’라는 새로운 코덱을 2001년에 내놓았다. Xvid는 MPEG-4 기반의 코덱이라는 점에서 DivX와 유사하지만, 오픈 소스이므로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기술 발전의 빛과 그림자, DivX

DivX의 등장을 계기로 하여 PC로 영화를 보는 문화가 완전히 정착되었으며, 각종 멀티미디어 관련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의 개발도 가속화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각종 불법 영화 동영상이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해 영화 산업 전반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것도 사실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르는 빛과 그림자가 무엇인지 DivX는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DivX 코덱’의 등장 이전에 같은 이름의 영화 판매 서비스가 선보인 적이 있다. 1998년, 미국의 전자기기 유통업체인 ‘서킷 시티(Circuit City)’가 할리우드의 영화 배급사들과 계약을 맺고 ‘Digital Video Express’, 줄여서 ‘DIVX’라고 하는 특수한 형식의 영화 디스크를 판매한 바 있다. DIVX 디스크는 일반 DVD 보다 싸게 판매되지만 구매 후에 48시간 동안만 감상이 가능하며, 이후에는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재생 가능 시간을 연장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출시 후 2년도 지나지 않아 DIVX 서비스는 중단되어 시장에서 사라졌다. 서킷시티의 ‘DIVX’ 서비스는 동영상 코덱인 ‘DivX’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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