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열전: 하워드 슐츠]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 커피 제국 '스타벅스'를 세우다
[IT동아 강일용 기자] 6월 4일,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스타벅스 회장이 두 번째 은퇴를 선언했다. 6월 26일까지 자신이 키운 세계 최대의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Starbucks)'에서 맡고 있는 모든 직위를 내려놓은 후 두 번째 삶에 도전하겠다는 것. 슐츠 회장이 자신의 향후 거취를 직접 밝힌 적은 없지만, 미국 언론은 그가 정치권에 투신해 2020년 열리는 차기 미국 대선에 도전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슐츠 회장은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후원인으로서 동성결혼 지지 같은 많은 조언을 해왔다. 힐러리의 인기 하락과 샌더스의 고령 때문에 마땅한 차기 대권주자가 없었던 미국 민주당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처럼 성공한 사업가 경력을 보유한 슐츠 회장은 충분히 영입을 고려해볼만한 인재다.
슐츠 회장은 기회의 땅 미국에서도 손 꼽히는 자수성가 사례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영업사원을 거쳐 작은 커피 브랜드를 인수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의 회사를 세계 최고의 커피 브랜드로 만들었다. 현재 스타벅스는 77개국에서 2만 8000여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한국에 보유한 매장의 수만 1150여개가 넘는다.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전 세계 주요 국가 도시 어디에서나 스타벅스를 만나볼 수 있다. 스타벅스의 성공비결은 뭘까. 슐츠 회장은 "커피와 함께 경험과 공간을 파는 것이 주효했다"고 스타벅스 성공비결을 요약하고 있다.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슐츠 /출처 스타벅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에서 성공한 영업사원으로
커피 프랜차이즈의 역사는 크게 '세 차례의 물결'로 요약된다. 첫 번째 물결은 초창기 커피 프랜차이즈의 등장이다. 초기 커피 프랜차이즈는 원두를 구매한 후 오랜 시간을 거쳐 커피 원액(에스프레소)을 추출해서 마셔야했던 번거로움을 해결해주었다. 고객이 커피를 주문하면 미리 추출해둔 커피나 로스팅해둔 원두를 판매해 좀 더 쉽고 빠르게 커피를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첫 번째 물결에 해당한 커피 프랜차이즈는 커피를 판매만할 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은 턱없이 모자랐다. 고객들은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커피를 마시거나, 포장한 후 집에 들고가서(테이크 아웃) 마셔야만 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결한 것이 두 번째 물결이다. 커피와 함께 여유롭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함께 제공해 고객들이 커피를 더욱 쉽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한 것. 스타벅스는 이러한 커피 프랜차이즈 두 번째 물결의 대표주자다. 1990년대 초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커피 프랜차이즈의 두 번째 물결에 올라타 스타벅스와 슐츠 회장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워드 슐츠 /출처 플리커>
슐츠 회장은 1953년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유태계 트럭 운전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슐츠 회장은 성공한 유태계 사업가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핏줄은 그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슐츠 회장의 아버지는 형제자매를 먹여살리기 위해 트럭 운전 등 많은 일을 했지만 가난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슐츠 회장은 반지하 단칸방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슐츠 회장이 7살이 된 그해 그의 아버지는 아무런 의료 보험 없이 운전 사고를 당하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가뜩이나 힘들던 가세는 더욱 심하게 기울었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슐츠 회장이 선택한 길은 '운동'이었다. 미식축구에 투신해 두각을 드러냈고, 이를 바탕으로 장학금을 받아 노던미시간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보 선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자 슐츠 회장은 운동의 길을 포기하고 회사원의 길을 걷게 된다. 1975년 일찌감치 대학을 졸업한 슐츠 회장은 당시 복사기로 유명하던 제록스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평범한 삶이었다. 3년 동안 제록스에서 일한 후 스웨덴의 생필품 회사인 햄머플래스트(Hammarplast)로 이직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자그마한 회사였던 햄머플래스트에서 두각을 드러낸 슐츠 회장은 1980년대에 들어 미국내 판매 총책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스타벅스를 인수하다
당시 햄머플래스트의 주력 제품은 드립커피메이커였다. 커피메이커를 판매하던 슐츠 회장은 시애틀에 있는 작은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가 대량으로 커피메이커를 주문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들에게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음을 직감하고 스타벅스의 창업주들을 만나러 시애틀로 날아갔다. 스타벅스에 방문해 커피를 마셔본 슐츠 회장은 지금까지 마셔온 커피와 차원이 다른 스타벅스 커피 품질에 큰 감동을 받았다.
<스타벅스 시애틀 매장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널리 알려진 것처럼 스타벅스는 슐츠 회장이 창업한 회사가 아니다. 이점에서 스타벅스는 맥도날드, KFC처럼 천재적인 사업가가 가능성 있는 사업 아이템을 알아보고 인수한 후 전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키운 사례에 해당한다.
스타벅스는 원래 1971년, 제브 시겔, 제리 볼드윈, 고든 보우커 등 시애틀 커피박람회에서 만난 세 명의 친구가 의기투합해 설립한 커피 원두 판매업체였다. 강렬하지만 쓴맛이 강한 '로부스타' 커피 원두 대신 부드럽고 향기가 강한 '아라비카' 원두를 시애틀에 소개하기 위해 만든 매장이었다. 스타벅스란 이름은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커피를 좋아하는 일등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에서 따왔다. 회사의 상징은 그리스 신화의 바다요정 '사이렌'으로 정했다. 초기 스타벅스는 커피 원두만 고객들에게 판매하고, 직접 커피를 만들어 팔지는 않았다. 커피 프랜차이즈의 첫 번째 물결에 해당하는 회사였다.
<스타벅스 초창기 로고 /출처 스타벅스>
누구나 손쉽게 고품질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하겠다는 스타벅스의 목표에 공감한 슐츠 회장은 1982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세 창업자를 설득해 스타벅스에 마케팅 이사로 합류했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던 도중 고품질 커피메이커를 구매하기 위해 커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방문한 슐츠 회장은 큰 충격을 받게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거리마다 커피를 손 쉽게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존재했다. 단순히 커피와 커피 원두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누구나 잠깐 쉬어가거나 모임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바로 '카페'였다. 이탈리아어로 커피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하는 단어다. 1980년대에 이미 이탈리아 전역에 20만개가 넘게 존재한 카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 그 자체였다.
시애틀로 돌아온 슐츠 회장은 당시 스타벅스의 대표였던 볼드윈에게 스타벅스가 원두만 판매하는 업체가 아닌 커피와 공간을 함께 판매하는 업체로 거듭나야한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세 명의 창업주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결국 슐츠 회장과 세 명의 창업주는 갈라서게 되었다.
<1985년 슐츠 회장이 창업한 일 지오날레 로고. 훗날 스타벅스 로고에도 영향을 준다. /출처 스타벅스멜로디>
1985년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를 떠나 밀라노 지역 신문사의 이름에서 따온 '일 지오날레(Il Giornale, 매일)'라는 커피 프랜차이즈를 창업했다. 이탈리아를 카페 문화를 미국 고객들에게 소개하겠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비록 서로 간에 의견이 달라 다른 길을 가기로 했지만, 슐츠 회장과 세 창업주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슐츠 회장은 아내의 임신으로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다. 세 창업자는 슐츠 회장이 일 지오날레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최초의 투자자가 되어 주었다. 여러 군데에서 받은 투자를 바탕으로 1986년 슐츠 회장은 첫 번째 일 지오날레 매장을 열었다. 이탈리아의 카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오페라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스크림을 제공하는 등 고객들의 경험을 확대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일 지오날레 사업을 진행하기 앞서 슐츠 회장은 242명에 달하는 지인과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217명이 그 사업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슐츠 회장은 자신과 커피에 대한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사업을 밀어붙였다. 그의 나이 34살 때였다.
스타벅스의 세 창업자는 자신들의 원래 목표였던 더 나은 품질의 커피 원두 판매를 위해 그들의 스승 알프레드 피트(미국의 전설적인 커피 전문가)가 물려준 '피트의 커피와 차(Peet's Coffee&Tea)' 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회사의 근거지가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다보니 자연스레 시애틀에 있던 스타벅스를 처분해야만 했다. 1987년 세 창업자는 슐츠 회장에게 스타벅스의 모든 권리를 380만 달러에 넘겼다.
스타벅스의 성공 비결... 본질에 충실하라
스타벅스를 인수한 슐츠 회장은 재빨리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6개의 일 지오날레 매장 이름을 스타벅스로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커피와 공간을 함께 파는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는 시애틀을 벗어나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대되었다. 슐츠 회장은 프랜차이즈라는 사업 방식에 큰 불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매장이라도 제대로된 품질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브랜드 전체가 타격을 받는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타벅스 본사가 모든 매장을 관리하는 직영점 방식을 고집하고 모든 직원들을 직접 고용했다. 이후 미국 전역으로의 매장 확대와 해외 진출을 위해 파트너와 합작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지만, 이때도 커피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사업자와 협력했고 5:5로 지분을 나누는 합자 회사 방식을 고수했다.
이러한 슐츠 회장의 전략은 당시 난립하던 커피 프랜차이즈의 두 번째 물결 속에서 스타벅스가 두각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확장에만 급급해 커피 품질 관리에 소홀했던 경쟁자들과 달리 스타벅스는 어떤 매장에서나 우수하고 균일한 품질의 커피를 제공했다. 경험과 공간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커피라는 사업의 본질을 소홀히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실천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 매장 확장도 매우 공격적으로 진행했다. 미국은 넓은 땅 크기 때문에 같은 사업을 두고 지역별로 강세를 보이는 브랜드가 다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햄버거 판매 사업을 들 수 있다.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가 시애틀과 그 근교에 머무르는 브랜드가 되지 않길 바랬다. 1992년 나스닥에 회사를 상장한 후 투자금을 모아 미국 방방곡곡에 매장을 냈다. 1992년 미국 전역에 165개의 매장을 두고 9300만 달러의 매출을 내던 스타벅스는 2000년 3500개의 매장을 두고 22억 달러의 매출을 내는 미국 최고의 커피 브랜드로 우뚝서게 되었다.
<출처 스타벅스>
1996년부터는 미국을 벗어나 전 세계로 그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일본 도쿄에 매장을 낸 것을 시작으로 필리핀, 영국, 멕시코, 중국 등에 매장을 설립했다. 한국에는 1999년 이대 앞에 1호점을 설립하면서 진출했다. 굴지의 유통 대기업인 신세계와 5:5로 합작해 스타벅스커피코리아를 설립하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미국 유학 도중 스타벅스 매장에서 커피와 공간을 경험하고 이를 한국에 알리기 위해 스타벅스를 들여온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2000년 6월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부사장이었던 오린 스미스에게 넘기고, 스타벅스의 전 세계 확장을 위한 글로벌 전략가라는 한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타벅스를 성장시키기 위해 18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 그를 소진(Burn)시켰기 때문이었다. 슐츠 회장의 첫 번째 은퇴였다.
흔들리는 스타벅스... 돌아온 슐츠 회장의 선택은?
슐츠 회장의 은퇴 이후 스타벅스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커피 프랜차이즈의 세 번째 물결이 닥쳐온 것이다. 커피 프랜차이즈의 세 번째 물결은 커피의 고급화다. 천편일률적인 커피 품질에서 벗어나 뛰어난 바리스타가 만든 고급 커피를 즉시 맛볼 수 있는 '블루보틀' 같은 차세대 커피 프랜차이즈와 개인 카페가 속속 등장해 스타벅스의 자리를 위협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 경영진들은 타성에 젖어 있었다. 회사는 성장하고 있었지만, 그 성장은 새로운 매장을 여는 것에 기댄 속빈 강정에 불과했다. 개별 매장에서 판매되는 커피의 양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결국 스타벅스는 매출과 영업이익 급감이라는 쓴잔을 들이키고 만다.
<하워드 슐츠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자신이 키운 회사가 흔들린 것을 본 슐츠 회장은 2008년 8년만에 다시 최고경영자로 복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흔들리는 스타벅스를 위해 슐츠 회장이 내린 처방전은 커피라는 본질에 다시 충실해지는 것이었다. 스타벅스가 타성에 젖게 만든 원흉인 임원들을 해고하고, 제대로된 매출이 나지 않는 수백개의 매장을 폐쇄했다. 직원들이 양질의 커피를 만들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매장을 쉬는 한이 있어도 모든 직원이 이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했다. 최고급 커피메이커 제조사인 '클로버 장비 회사'를 인수해 스타벅스 산하에 두고 해당 회사에서 만든 커피메이커를 모든 스타벅스 매장에 설치했다.
슐츠 회장은 세상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중심으로 변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처음으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고용해 인터넷 기반의 '스타벅스 리워드 카드'를 도입했다. 리워드 카드를 보유한 고객은 스타벅스 매장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었고(후에 전면 무료로 개방), 모은 포인트를 이용해 어떤 스타벅스 매장에서나 다양한 음료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고객 충성도를 높였다. '마이 스타벅스 아이디어'라는 홈페이지를 열고 고객들의 제안과 불만을 수집한 후 이를 통해 스타벅스의 문제점을 하나씩 개선했다.
고품질 커피를 제공하고 고객 충성도(로열티)를 높인다는 슐츠 회장의 처방을 통해 위기의 스타벅스는 다시 반등하는데 성공했다. 커피 프랜차이즈 두 번째 물결의 대표주자였던 스타벅스가 세 번째 물결의 대표주자로 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8년 3억 1500만 달러였던 스타벅스의 영업이익은 슐츠 회장이 돌아오고 2년이 지난 2010년 9억 4500만 달러로 3배나 증가했다.
같이 볼 기사: [CEO 열전: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의 미래를 위한 슐츠 회장의 세 가지 전략 - http://it.donga.com/27839/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