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DONGA

[CEO 열전: 마이크 모하임] 27년 노력으로 블리자드 제국 건설, E스포츠 활성화와 탈 스팀이 다음 목표

강일용

[IT동아 강일용 기자] 마이크 모하임(Michael "Mike" Morhaime)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 공동창립자 겸 최고경영자는 한국의 게이머들에게 유독 친숙한 외국인 최고경영자다. 무엇보다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오버워치 등 한국인이 즐기는 수 많은 게임을 만든 업체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세 때문에 블리자드가 '꽃길(순조로운 길)'만 걸어온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힘들게 운영되어온 회사였다. 모하임은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회사를 운영해 세계 최고의 게임 회사로 꼽히는 현재의 블리자드를 일궈냈다. 모하임의 일대기를 통해 블리자드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보자.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최고경영자 마이크 모하임>

의기투합한 세 명의 친구, 자그마한 게임 개발사로 뭉쳐

모하임은 1967년 미국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78년, 모하임은 그의 운명을 바꿀 기기를 접하게 된다. 초창기 비디오 게임기 가운데 하나였던 '볼리 프로페셔널 아케이드(Bally Professional Arcade)'다. 당시에는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기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볼리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통해 게임의 내용물을 바꿀 수 있었다. 이러한 프로그래밍 경험을 통해 어린 모하임은 게임이라는 산업에 큰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성인이 된 모하임은 UCLA(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에 진학해 전기공학을 배웠다. 사실 모하임은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가 아니라 반도체를 만드는 연구원이 되려했다.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로칩스에서 인턴십을 수료하는 등 반도체 연구원으로서 경력을 쌓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인생을 바꿀 동료를 만났다. 대학 동기였던 앨런 애드햄(Allen Adham)이 모하임에게 함께 게임을 만드는 회사를 차리자고 제안해온 것이다.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창업자들. 왼쪽부터 피어스, 모하임, 애드햄>

애드햄은 모하임과 달리 항상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코딩을 스스로 공부했고, 대학교 때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인 브라이언 파고가 창업한 회사인 '인터플레이(발더스게이트, 폴아웃 등으로 유명한 그 회사가 맞다)'에 합류해 게임 개발을 도와주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애드햄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만의 게임 개발사를 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나 IBM에서 밥벌이를 하는 삶은 지루하다. 더 색다르고 즐거운 일을 해보자." 모하임과 피어스가 이에 응했다. 두 명 역시 대기업의 일원으로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보다는 모험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1991년, 대학을 졸업한 애드햄은 자신의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먼저 학교를 졸업하고 웨스턴디지털(WD)에 근무하던 모하임도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했다. 세 명은 친숙한 동네인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 어바인 시에서 '실리콘&시냅스(Silicon & Synapse)'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바로 이 회사가 현재 블리자드의 전신이다.

회사를 창업하고 세 명은 각자의 역할을 정했다. 애드햄과 피어스는 게임 개발에 집중하고, 모하임이 회사를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블리자드의 삼두 정치 체제는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모하임이 최고경영자로서 회사 경영을 담당하고, 애드햄과 피어스가 부사장으로서 게임 개발을 지휘하고 있다. (단 블리자드의 실질적인 창업자인 애드햄은 2004년 블리자드를 퇴사해 게임 업계를 떠났다가, 2016년 다시 복귀했다. 당시 애드햄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개발을 총 지휘한 것에 따른 과로와 스트레스로 많이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블리자드
<실리콘&시냅스 로고>

여담으로, 모하임이 최고경영자를 맡게 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실리콘&시냅스 초기 창업 자금을 모하임이 조달했기 때문이다. 모하임은 자신의 할머니를 찾아가 1만 5000 달러를 빌렸다. 이를 종잣돈으로 삼아 사무실을 빌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모하임이 할머니에게 빌린 1만 5000 달러 수표는 지금도 블리자드 사무실에 전시되어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오다... 워크래프트로 이름 알려

모하임을 비롯한 세 명의 애송이들이 넘보기엔 게임 업계는 너무나도 치열한 시장이었다. 회사를 설립한 후 세 명은 아미가(IBM 호환 PC와 겨루던 초창기 컴퓨터 플랫폼 가운데 하나. 멀티미디어 성능은 IBM 호환 PC보다 우수해 제법 양질의 게임이 발매되었으나, 시장의 대세였던 IBM 호환 PC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닌텐도 슈퍼 패미컴(슈퍼 컴보이), 세가 제네시스(슈퍼 알라딘보이) 등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기용 게임을 만들었다. '길 잃은 바이킹'과 '락앤록 레이싱' 등이 대표적이다. 두 게임은 애드햄의 인맥 덕분에 인터플레이를 통해 시장에 유통될 수 있었다. 하지만 판매량은 시원찮았다.

마이크 모하임
<실리콘&시냅스 시절 블리자드 개발 인력. 로스트 바이킹 등의 게임을 만들던 시절이다. 가장 오른쪽 인물이 마이크 모하임>

실리콘&시냅스는 늘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다. 15명이 채 되지 않는 직원들의 월급은 세 명의 창업자들의 개인 신용카드에서 나왔다.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인터플레이의 자회사로 편입되는 것까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물론 이러한 고민은 인터플레이 역시 자금 상황이 좋지 않아 무산되었다.

게임 개발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모하임은 1994년 실리콘&시냅스를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데이비슨&어소시에이츠’의 자회사로 편입시키기로 결정했다. 회사 이름도 케이오스 스튜디오를 거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로 변경했다. 케이오스 스튜디오는 이미 그 이름을 선점한 회사가 있어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데이비슨&어소시에이츠는 블리자드에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고, 블리자드는 공동창업자 세 명의 뜻대로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고생 끝에 블리자드에 한줄기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1994년 11월 발매한 RTS(실시간 전략) 게임 '워크래프트: 오크앤드휴먼'이 큰 호평을 받고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것이다. 워크래프트는 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과 세세한 디테일 덕분에 당시 난립하던 RTS 게임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러한 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과 세세한 디테일은 지금도 블리자드가 만든 게임의 특징으로 꼽히고 있다.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미국 본사 내 위치한 워크래프트 이미지 관련 포스터>

이어 1995년 워크래프트의 단점을 개선하고 멀티플레이(인터넷을 이용해 원거리에 있는 타인과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것)를 추가하는 등 콘텐츠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 후속작 '워크래프트 2: 어둠의 물결'을 출시했다. 워크래프트2는 120만 장이 넘게 판매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도 PC통신과 모뎀을 이용한 워크래프트2 멀티플레이가 활성화되는 등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워크래프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애드햄의 세심한 게임 개발 관리와 비주류 플랫폼이었던 아미가를 버리고 주류 플랫폼인 PC(MS-DOS)를 선택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당시 PC 게임은 사무용 기기라는 한계 때문에 애니메이션과 세세한 디테일 표현이 약했는데, 아미가에서 애니메이션 개발에 대한 노하우를 쌓은 블리자드는 PC 게임 업계에서도 훌륭한 애니메이션과 디테일을 보여주었다.

회사 상황이 호전되자 인재들도 블리자드에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빌 로퍼다. 세 명이 만든 블랙쏜을 보고 감명받은 빌 로퍼는 블리자드의 문을 두드렸고, 이내 세 명의 인정을 받아 신작 게임 개발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이때를 전후해서 모하임은 아예 게임 개발에서 손을 떼고 회사 경영에만 집중하게 된다. 게임 개발은 애드햄, 피어스, 빌 로퍼 등 훌륭한 개발자들의 몫으로 넘겼다.

모하임은 어려운 경영 사정에도 불구하고 한 회사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저스티스 리그 태스크포스'라는 게임을 함께 만들면서 알게 된 '콘도르'라는 회사였다. 모하임은 콘도르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블리자드의 자회사로 편입시킨 후 게임 제작비를 지원해주었다. 콘도르와 블리자드 모두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회사로, 콘도르가 좀 더 북쪽에 있어서 '블리자드 노스'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후 블리자드 노스는 '디아블로'라는 게임을 출시했다. 디아블로 역시 워크래프트처럼 큰 인기를 끌었다.

모하임과 블리자드는 디아블로와 함께 '배틀넷(Battle.net)'이라는 멀티플레이 전용 공간을 선보였다. 당시 PC 게임의 멀티플레이는 인터넷이나 PC통신 커뮤니티를 활용한 주먹구구식 플레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커뮤니티에서 먼저 같이 게임을 할 사람을 구해야만 했다. 불특정 다수가 한 군데 모여 같이 게임을 즐긴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마이크 모하임
<현재 배틀넷 로고>

블리자드가 만든 배틀넷이 이러한 편견을 깼다. 배틀넷에 접속하면 누구나 손쉽게 접속해 친구 또는 처음보는 사람과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있었다. 1996년 12월 디아블로와 함께 등장한 배틀넷은 출시 1개월 만에 이용자수가 15만 명을 넘어섰고, 출시된지 14개월 만에 이용자수 150만 명을 돌파하며 PC용 멀티플레이 공간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워크래프트2 이후 블리자드가 선보인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2’의 성공에도 배틀넷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멀티플레이를 통해 게임의 수명이 늘어났고, 그만큼 블리자드의 게임은 오랜 기간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배틀넷이 인기를 끌던 90년대 후반은 블리자드가 대한민국 게이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시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국민 게임이자, 이제는 민속놀이의 반열에 오른 스타크래프트가 출시(1998년)됐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는 그 뛰어난 게임성과 배틀넷을 통한 멀티플레이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 인기는 본토인 미국을 능가할 정도였다.

마이크 모하임
<스타크래프트 게임 시작 화면 /출처 블리자드>

스타크래프트 때문에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PC방이라는 새로운 자영업자가 생기고, 초고속 인터넷망이 빠르게 보급됐다. 심지어 한국의 게이머와 방송사들은 스타크래프트를 활용해 E-스포츠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했다. E-스포츠의 등장은 게임이 즐기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모하임은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에서 45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는 것을 보면서 아시아에서 일본,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존재하는 것을 인지하고 그들을 위한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블리자드는 한국 게임 시장에 게이머를 위해 많은 지원과 배려를 하는 외국 게임 개발사다. 스타크래프트2를 공개한 2007 블리자드 월드 와이드 인비테이셔널(blizzard Worldwide Invitational, 블리자드의 신작 게임 발표 행사)을 이례적으로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개최할 정도였다. 모하임 역시 연례행사처럼 한국에 방문하며 한국 시장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지속되는 적자... 대규모 기업 산하로 합류

잠깐 예전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등 히트작을 쏟아내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모하임의 근심은 나날이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나날이 늘어나는 매출, 게임 판매량과 달리 영업이익은 적자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블리자드가 적자를 기록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블리자드 게임의 가장 큰 인기 비결이었던 배틀넷이다. 게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누구나 ‘무료’로 배틀넷에 접속해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있게 했지만, 이에 따른 인프라, 인력 지원 비용이 영업이익을 갉아먹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모하임이 내린 결정은 좀 더 든든한 자금을 갖춘 모회사를 찾는 것이었다. 1997년 모하임과 블리자드는 프랑스의 미디어 그룹 비방디(Vivendi)의 자회사가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비방디의 자금을 바탕으로 배틀넷을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대규모 게임 개발 자금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2, 워크래프트3 등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1999년 모하임은 자회사의 대표로서 비방디 게임즈 이사회의 일원이 됐다.

마이크 모하임
<비방디 로고>

대형 미디어 그룹의 자회사가 된다는 것에 진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회사의 간섭을 걱정한 많은 개발자들이 블리자드를 떠나기도 했다. 빌 로퍼도 이 시기에 독립해 자신만의 게임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모하임을 이러한 공백을 비벵디에서 투입된 자금으로 메꿨다. 마침 블리자드의 오랜 이웃이자 형제 기업이나 다름없었던 인터플레이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망하면서 인터플레이 소속되었던 우수 개발자들이 시장에 풀려나왔다. 그 가운데 롭 팔도(Rob Pardo)라는 인물이 있었다. RPG 디자이너로서 훌륭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던 롭 팔도는 곧 모하임의 눈에 띄어 블리자드에 채용되었고 이내 애드햄과 함께 블리자드의 핵심 개발 인력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2004년 애드햄이 블리자드를 떠난 후 롭 팔도는 최고창작책임자(CCO)로서 블리자드의 차세대 게임 개발을 지휘했다.

배틀넷 때문에 2003년까지 블리자드는 비방디의 애물단지였다. 높은 매출과 사용자수 때문에 결코 내칠 수는 없지만, 계속되는 적자를 막기 위해 씨름해야 했다. 하지만 2004년 한 게임이 출시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지금도 전 세계 1위 MMORPG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다. 애드햄의 평생 소원이자 회심의 역작이었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출시와 함께 전 세계를 휩쓸었다. 많은 사용자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즐기기 위해 지갑을 열었고, 블리자드의 재정은 급격히 안정화되었다. 지금까지의 누적된 적자를 순식간에 청산하고 세계 최고의 게임 기업으로 우뚝섰다.

이후는 우리도 잘 아는 이야기다. 블리자드는 2010년대에 들어 디아블로3, 하스스톤, 오버워치 등의 히트작을 선보이며 전 세계와 대한민국의 게이머들을 사로잡았다. 주기적으로 수 천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게임을 만들어 세계 최고의 게임 업체로 우뚝 섰다. 모하임과 그의 동료들의 27년에 걸친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모하임은 2008년 게입 업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 가운데 하나인 AIAS(Academy of Interactive Arts & Sciences, 쉽게 설명해 게임판 아카데미상이다) 명예의 전당을 수상했다.

게임계의 적통 액티비전과의 합병... 세계 최대 게임 개발사로 거듭나

2007년 블리자드의 모회사인 비방디 게임즈는 ‘콜 오브 듀티’로 유명한 북미의 대규모 게임 개발사 액티비전과 합병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회사가 액티비전블리자드다. 액티비전은 최초의 비디오게임 전문 개발사 아타리에서 경영진의 간섭을 거부한 개발자들이 독립해서 세운 회사로, 아타리가 망한 현재 게임계의 적통(嫡統)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다.

2012년 비방디는 미디어에 집중한다는 명목으로(실제로는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액티비전블리자드에서 자사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 액티비전블리자드는 비방디가 보유했던 모든 지분을 사들였다. 이로서 비방디와 블리자드는 남남이 되었다. 모하임 역시 블리자드의 최고경영자이면서 동시에 액티비전블리자드 이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마이크 모하임

액티비전블리자드는 일반 회사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구조로 운영된다. 쉽게 설명해 회사 운영은 같이하지만, 개발은 따로한다는 것이다. 액티비전블리자드 산하에는 액티비전, 블리자드, 킹, 인피니티워즈, 트레이아치, 번지 등 수 많은 게임 개발사가 존재한다. 이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이름 아래 하나로 집계되지만, 게임 개발은 각각의 개발사가 알아서 한다. 액티비전블리자드는 게임 출시 시기만 조율하지 어떤 게임을 개발하든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심지어 유통망도 따로 쓴다.

이는 게임 개발자들의 창의성을 존중하기 위함이다.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핵심 축인 액티비전이라는 회사 자체가 경영진의 간섭을 거부한 게임 개발사들의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또 다른 축인 블리자드 역시 최고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 출시 시기는 얼마든지 늦출 수 있다는 개발자 중심주의 아래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회사들이 뭉쳤기 때문에 개발자의 창의성을 중시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춘 회사가 태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선 넥슨이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더 나은 게임 개발을 위해 소속된 게임 개발사간의 협력은 긴밀히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블리자드와 번지의 교류다. RPG 게임의 명가였던 블리자드는 번지에 RPG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려줬고, FPS 게임의 명가인 번지는 블리자드에 FPS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들려줬다. 그 결과물이 지금 액티비전블리자드를 먹여 살리는 주력 게임 시리즈인 ‘오버워치’와 ‘데스티니’다.

모하임이 꿈꾸는 블리자드의 미래? ‘보는 게임’과 ‘탈(脫) 스팀’

모하임은 이제 블리자드가 단순히 게임을 개발해서 판매하는 업체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블리자드의 경영자로서 두 가지 핵심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고 있다.

첫 번째 비즈니스 모델은 E-스포츠를 야구, 농구, 축구 등과 대등한 일반 스포츠의 반열에 올려 놓는 것이다. 게임을 즐기는 것(Play)에서 보는 것(Watch)으로 확장시키겠다는 야심이다. 이를 위해 자사의 전략 FPS 게임인 오버워치를 활용한 E스포츠 대회 ‘오버워치 리그’를 출범시켰다.

오버워치 리그는 MLB, NHL, NBA 등 미국의 유명 스포츠 리그처럼 E-스포츠 팀들이 연고지를 두고 1년 단위로 경기를 벌여 종합 성적을 통해 우승자를 가리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블리자드는 오버워치 리그를 통해 블리자드는 특정 종목에 대한 저작권과 리그 운영권까지 모두 보유한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 거듭나게될 전망이다. 수백억 원의 비용을 내야 팀을 꾸려 참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업가들이 E-스포츠 리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앞다투어 참여했다. 현재 세계 최대의 실시간 스트리밍 업체로 떠오른 트위치는 약 9000만 달러를 선불로 지급하고 오버워치 리그의 독점 중계권을 사들였다. 오버워치 리그의 시청자는 현재 한 경기당 약 10만 명 전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크 모하임

두 번째 비즈니스 모델은 블리자드 게임만을 위한 멀티플레이 공간이었던 배틀넷(현 블리자드넷. 작년에 이름을 변경했으나 배틀넷이라는 브랜드가 워낙 강해 둘을 함께 사용 중이다)을 다른 회사에도 개방해, 블리자드넷을 밸브의 스팀처럼 다양한 게임을 유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모하임은 블리자드넷을 액티비전블리자드 산하의 모든 개발사에게 공개했다. 번지의 ‘데스티니2’가 블리자드넷을 통해 유통되었고, 액티비전의 핵심 게임 프랜차이즈인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최신작인 ‘콜 오브 듀티: 블랙옵스4’도 올해 말 블리자드넷을 통해 유통될 예정이다. 스팀으로 나가는 유통 수수료는 줄이고 유통 영향력을 키운다는 구상이다.

블리자드코리아는 블리자드넷을 이용해 모회사인 액티비전의 게임을 국내에 적극 유통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시작은 블랙옵스4다. 오는 10월 블랙옵스4를 음성, 자막까지 완전 한국어화해 국내에 출시한다. 이를 통해 2년 전 오버워치가 국내 PC방과 게임 업계에 가져온 돌풍을 재현하고, 배틀그라운드에 빼앗긴 지분을 되찾아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