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되다'... 1년 내로 파산 선고받은 기업이 세계 최고가 된 비결
[IT동아 강일용 기자] '아마존되다(To be amazoned)'라는 신조어가 비즈니스 업계를 휩쓸고 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제창한 이 용어는 '아마존이 당신의 사업 영역에 진출했으니 당신에게 남은 것은 망할 일뿐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제록스하다(문서 복사기를 이용하다)', '구글하다(인터넷 검색을 하다)' 등 특정 기업의 이름이 어떤 활동을 지칭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비즈니스 업계 전체에 강렬한 영향력을 미치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존 로고>
창업자는 세계 최고의 부호... 기업 시가총액은 전세계 2위
1994년, 제프 베조스가 시애틀의 자그마한 차고에서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한 이 기업은 24년 만에 미국 전체 온라인 소비의 40%를 장악한 유통업계의 거물로 성장했다. 미국 가정의 54%가 아마존의 유료 회원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해 아마존이 제공하는 다양한 할인 혜택과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 / 출처 제프 베조스 페이스북>
아마존은 단순히 제품과 콘텐츠를 유통하는 기업이 아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 버금가는 IT 기술 혁신의 선두주자다. 2006년 세계 최초로 컴퓨팅 자원을 빌려주는 임대 서비스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개시해, 전 세계적으로 44%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2~4위 사업자의 점유율을 모두 합쳐도 아마존의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비서 및 쇼핑 서비스 '알렉사'는 미국, 독일 등의 가정에 깊숙히 침투한 상태다. 구글 어시스턴트와 함께 상용화된 인공지능 서비스 1~2위를 겨루는 알렉사는 최근 기업용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B2C 뿐만 아니라 B2B로도 그 세를 확장하고 있다.
제품 유통, IT 서비스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사용자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동영상 플랫폼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하면 다양한 최신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과 오리지널 콘텐츠(플랫폼 기업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영국의 유명 차량 다큐멘터리 '탑기어'의 제작진을 통째로 데려와 탑기어의 실질적인 후속작을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공해 파란을 일으키키도 했다. 얼마 전에는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 업계에서 유튜브를 제치고 1위를 점유하고 있는 '트위치'를 인수해 아마존 생태계의 일원으로 편입시켰다.
아마존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기업 가운데 하나다.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약 7500억 달러로 애플 다음으로 전 세계 2번째에 위치해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을 제치고 얻은 성과다. 이러한 주가 상승에 힘입어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제프 베조스는 100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세계 제일의 부자에 등극했다. 얼마 전까지 부자라 하면 모두들 빌 게이츠를 떠올렸으나, 이제 부자라하고 하면 제프 베조스를 떠올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장난감 제국을 망하게 하고, 월마트와 넷플릭스조차 두려움에 떨게 하다
이렇게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해 성과를 내고 있는 아마존에 밀려 망한 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으로 미국의 장난감 전문 체인인 '토이저러스'를 들 수 있다. 토이저러스는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미국 내 모든 매장 문을 닫겠다고 선언했다. 고객들이 토이저러스에서 장난감을 이용만 해보고 실제 구매는 토이저러스보다 훨씬 저렴한 아마존에서 했기 때문이다.
1948년에 창업해 반 세기 넘게 전 세계 1800여개 매장에서 장난감을 판매해온 장난감 제국조차 아마존을 감당할 수 없었다. (국내에서 토이저러스 사업이 중단될지는 미지수다. 국내 토이저러스 사업은 롯데가 본사와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미국 야후는 망했지만, 소프트뱅크에서 진행 중인 야후 재팬은 정상 운영되고 있는 것과 같다.)
<미국의 장난감 유통매장 토이저러스. 결국 아마존되고 말았다. 출처 위키피디아 공용>
토이저러스뿐만 아니라 많은 미국의 오프라인 유통 사업자들이 아마존에 밀려 파산하거나 사업 규모를 축소해야만 했다. 스포츠용품을 취급하는 '스포츠 오서리티'는 지난 해 사업을 중단했다. 미국의 대표 백화점 '시어스'는 39개에 달하는 매장의 문을 닫았고, '메이시스'도 전체 매장의 15%를 폐점했다. 모두 아마존의 저렴한 제품 가격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실제로 미국의 한 호스팅 업체의 CEO는 아마존에 밀려 호스팅 사업을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 CEO는 현재 아마존의 파트너 사업자로 전업했다.
아마존 제국의 진격을 지켜보며 경쟁사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아마존이 유기농 식품 판매업체인 '홀푸드'를 인수해 오프라인 유통에 진출하자, 기존 미국 오프라인 유통의 최강자였던 '월마트'는 아마존은 상도덕이 없는 기업이라고 비난하고 자사의 모든 IT 인프라를 아마존에서 철수시키고 아마존의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로 옮겼다.
<인사이드 아마존>
아마존과 같이 신흥 IT 기업의 일원인 'FANG'으로 분류되는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조차 아마존이 아마존 프라임을 앞세워 콘텐츠 유통에 진출하는 것을 보면서 "아마존은 모든 영역에서 못하는 것이 없는 정말 두려운 회사다"며, "아마존의 목표는 월마트이지만, 우리(넷플릭스)의 목표는 스타벅스다. 우리만의 특색있는 콘텐츠로 아마존과 경쟁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존이 최근 가장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회사는 구글이다. 둘은 곧 모바일을 제치고 새롭게 IT 업계의 흐름로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겨루고 있다. 구글의 인공지능 서비스에선 아마존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없다. 아마존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아마존 알렉사에선 유튜브 등 구글의 몇몇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으나, 구글에서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렸다. 순수 인공지능 기술면에선 구글이 아마존을 앞선다고 알려져 있으나, 아마존닷컴과의 강력한 쇼핑 연동 기능과 2만 5000개가 넘는 제 3자 기업의 추가 서비스 덕분에 인공지능 생태계 구축면에선 아마존이 구글을 앞선다는 평가다.
<아마존은 아마존고라는 이름의 무인매장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아마존의 지배력은 모든 산업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상품과 콘텐츠의 온라인 유통에서 벗어나서 오프라인 유통, 물류, 은행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15일 "아마존이 진출한 분야에 종사하는 기업들의 주가뿐만 아니라 아마존이 진출할 것이라고 소문이 도는 분야의 기업들조차 주가가 폭락하는 '아마존되다'의 효과가 미국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지난 해 미국 대기업 경영진들이 컨퍼런스콜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트럼프 대통령이나 세금이 아닌 아마존일 정도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적자를 감수한 최저가 공세... 시장을 초토화한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
아마존이 이렇게 기존 기업들의 악몽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 최저가 공세다. 적자를 보더라도 경쟁사보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판매해 시장을 초토화하고, 고객들이 아마존 생태계에서 떠날 수 없게 '락인(Lock in, 속박)'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출처 인사이드 아마존>
아마존을 운영하는 제프 베조스의 비즈니스 철학은 사실 딱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무조건 경쟁사보다 저렴하게." 이 전략을 실천하기 위해 아마존의 영업이익은 바닥 수준이다. 작년의 경우 1778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30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순수 영업이익은 41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경쟁사가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내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렇게 매출에 비해 영업이익이 형편없거나, 적자를 기록하는 것은 아마존 설립 이래 꾸준히 유지되어온 전통이다. 영업 이익이란 기업의 내실을 파악할 수 있는 척도 아닌가. 우리의 상식으론 아마존의 비즈니스 구조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렇게 아마존의 낮은 영업 이익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는 2001년 지금 구조대로 사업을 진행하면 아마존은 1년 내로 파산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인사이드 아마존>
그러나 이러한 투자은행의 발표와 우리의 상식은 모두 기우에 불과했다. 매출에 비해 낮은 영업이익은 제프 베조스가 추구하는 고도의 경영전략이다.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을 주지 않고, 대신 사용자들에게 보다 저렴하게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장지배력을 확보하면 낮은 영업 이익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전략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새로운 사업 영역 개척 및 R&D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한다. 아마존은 투자 대신 벌어들인 현금을 투입해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고 R&D 비용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방침 덕분에 베조스는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
제프 베조스는 "성장(Growth)은 낮은 비용구조(Lower Cost Structure)와 낮은 가격(Lower Price)에서 나오고 이는 곧 훌륭한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으로 이어진다. 훌륭한 고객 경험은 곧 홈페이지 트래픽 증가(Traffic)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상품과 서비스 판매자들(Sellers)을 끌어들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판매자가 늘어난 만큼 고객 경험의 질도 한층 상승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베조스가 그린 아마존의 경영전략이다. 그 어디에도 이윤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이러한 아마존의 비즈니스 전략은 제프 베조스가 자필로 작성한 이미지에 잘 설명되어 있다.
<제프 베조스가 자필로 설명한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 1) 비용 구조를 낮춰 저렴하게 팔아 고객의 경험을 향상시키면 향상된 고객 경험이
트래픽을 높여 더욱 많은 판매자의 유입을 유도하고, 2) 그 결과 규모의 경제를 통한 비용 절감은 물론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논리다>
결국 제프 베조스의 경영 전략이 옳았다. 아마존의 파산을 예측한 리먼브라더스는 중이 제 머리를 못 깍는 것처럼 2008년 파산했다. 반면 아마존은 세계 제일의 기업으로 우뚝 섰고, 수 많은 기업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이러한 비즈니스 전략을 제창한 제프 베조스는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었다. 한동안 제프 베조스의 자리를 위협할 인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최저가 전략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 아마존의 독특한 기업 구조에 있어...
물론 제프 베조스의 전략에도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제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앞서 제품을 확보할 수 있는 막대한 선자본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선자본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삼성전자에 반도체라는 캐시카우가 있듯이, 아마존에도 한 가지 강력한 캐시카우가 있다.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클라우드는 인터넷 서비스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최신 IT 기술을 개발하고 데이터를 보관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를 기업에게 빌려주는 서비스다. 그 중요성 때문에 4차산업혁명 시대의 은행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마존은 이러한 클라우드 업계에서 전 세계 4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한 독점 사업자다. 이를 바탕으로 2010년 이후 8년 동안 막대한 돈을 빨아들였다. 이것이 바로 아마존이 지속적으로 최저가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비결이다. 실제로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을 망하게한 최저가 전략은 이렇게 아마존의 클라우드 사업이 자리를 잡은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전략을 유지하기 위해 제프 베조스는 한 가지 편법을 쓰고 있다. 우리가 아마존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만, 사실 아마존은 두 개의 기업이 연합한 것이나 다름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온라인 및 오프라인 유통을 추진하는 '아마존닷컴(Amazon.com)'과 클라우드 사업을 추진하는 '아마존웹서비스(AWS)'다. 두 사업부는 최고경영자마저 따로 두고 있을 정도로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아마존에는 세 명의 최고경영자가 존재한다.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닷컴을 이끄는 제프 윌키, 아마존웹서비스를 담당하는 앤디 제시다.)
<아마존웹서비스 로고>
아마존닷컴은 미국, 독일, 일본 등 특정 지역의 온, 오프라인 유통망을 장악하기 위해 꾸준히 최저가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는 전 세계에서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여기서 막대한 영업이익이 나오고 있다. 제프 베조스는 둘을 절충시켜 아마존의 영업이익이 최소화되도록 조율하고 있다. 만약 아마존이 클라우드 사업에서 더 많은 영업이익을 낸다면 그만큼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더 저렴해질 것이란 얘기다.
(물론 아마존은 클라우드 업계에서도 경쟁자들을 제압하기 위해 막대한 영업이익을 바탕으로 경쟁적으로 가격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61번의 가격 인하를 달성한 상태다. 이러한 아마존의 가격 인하 전략 때문에 클라우드 업계에서도 아마존만큼 튼튼한 체력을 갖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알리바바 외에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제프 베조스의 전략은 미국의 독점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반독점법에 대한 방패가 되어주고 있다. AT&T, 마이크로소프트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독점 기업들은 미국의 강력한 반독점법의 철퇴를 두려워해야만 했다. 하지만 수 많은 오프라인 유통사들을 망하게 했음에도 미국 정부내에서 아마존의 독주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미약하다. 미국의 반독점법은 소비자의 이익이 계속 유지된다면 독점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러 국가의 독점규제법이 이러한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독점규제법의 궁극적인 목적이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는데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최저가 공세로 소비자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제 우리는 낡은 경영학 교과서의 내용을 고쳐야만 한다. 20세기의 경영학 교과서에는 독과점 기업은 시장을 장악한 후 물건과 서비스 비용을 올려 부당한 이익을 추구한다고 적혀있었다. 아마존과 제프 베조스는 이를 정면으로 비웃고 있다. 21세기의 독점 기업은 영업 이익 같은 '사소한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사용자들을 기업 생태계에 붙들어 놓을 수만 있으면 낮은 영업이익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기업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다양하고 저렴한 아마존 생태계 속에서 사용자들은 만족을 얻을 테고 아마존 제국은 영원할 것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