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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CEO 열전] 15세 게임 만든 천재 개발자.. SW 임대 사업 고안해 5조 원 자산가로, 마크 베니오프

강일용

[IT동아 강일용 기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는 크게 인프라를 빌려주는 '인프라 서비스(IaaS)'와 소프트웨어를 빌려주는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로 나눌 수 있다. 인프라 서비스는 기업이 IT 인프라(서버, 네트워크, 운영체제, DB 등)를 구매하지 않아도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실행할 수 있도록 인터넷을 통해 IT 인프라를 빌려주는 서비스다. 소프트웨어(SW)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만 연결되어 있으면 기업은 웹 브라우저를 통해 SW를 바로 실행하고 이용할 수 있다. SW를 구매하거나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두 서비스는 2010년 이후 기업 활동의 전반을 바꿨다고 평가받을 만큼 영향력 있는 기술이다.

인프라 서비스를 고안해내고 이를 처음 상용화한 인물은 아마존의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다. 그는 2002년 아마존닷컴의 IT 인프라를 외부에 공개할 준비를 하라는 공지를 전 직원에게 보낸 후, 이를 바탕으로 2006년 세계 최초의 인프라 서비스 '아마존 웹서비스'를 출시했다.

마크 베니오프
<마크 베니오프 /출처 세일즈포스 페이스북>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고안해내고 이를 처음 상용화한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마크 베니오프(Marc Russell Benioff) 세일즈포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다. 베니오프는 1999년 세일즈포스를 설립하고 인터넷을 통해 기업용 소프트웨어(CRM, 고객관계관리)를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제프 베조스보다 7년이나 앞서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베니오프가 클라우드 업계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이유다. 베니오프는 어떤 인물인지, 그가 설립한 세일즈포스는 어떤 기업인지, 그리고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과 베니오프의 흥미로운 관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기업용 SW와 서비스의 장벽을 없애다

세일즈포스는 클라우드 기반의 고객 관리(CRM), 영업 관리(Sales), 마케팅 관리(Marketing) 등 기업이 고객을 관리하고 이를 통해 더 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1999년 설립되어 올해로 18년 차를 맞이한 세일즈포스는 2016년 83억 9000만 달러(약 9조 110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2만 50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서비스 기업이다.

아마존, 토요타, 필립스 등 전 세계 15만 개 이상의 기업이 세일즈포스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전체 소프트웨어 서비스 시장에서 세일즈포스의 비중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365(MS 오피스)'에 이어 2위다. 기업이 MS 오피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마크 베니오프
<곧 완공될 예정인 세일즈포스 타워 /출처 세일즈포스 타워 공식 홈페이지>

이러한 세일즈포스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일화가 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에는 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마천루 '세일즈포스 타워'가 세워지고 있다. 미국 서부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고, 샌프란시스코에선 가장 높은 건물이다. 2018년 완공될 예정인 이 건물의 원래 이름은 트랜스베이 타워였으나, 세일즈포스가 이 건물을 새 본사로 이용하기로 결정하자 건물의 이름을 세일즈포스 타워로 바꿨다.

세일즈포스는 두 가지 이유에서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첫 번째는 클라우드를 통해 기업의 SW 도입 비용과 도입 기간을 획기적으로 절약해준 것이다. 기업이 비즈니스용 SW를 도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SW를 실행할 IT 인프라를 구매하고, SW를 구매해서 설치해야 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SW가 제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리도 해주어야 한다. 때문에 초기 도입 비용이 많이 필요했고, SW 유지 및 보수를 위한 인력도 필요하게 되었다. 심지어 SW 라이선스 구조와 비용이 복잡해서 기업 구매 담당자의 골치를 썩이는 일도 잦았다.

마크 베니오프
<소프트웨어 설치 대신 클라우드를 사용하라는 세일즈포스의 캠페인 /출처 세일즈포스 페이스북>

세일즈포스의 서비스는 달랐다. 클라우드를 통해 SW를 제공하기 때문에 인프라를 구매하지 않아도 되고, 유지 및 보수 인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저렴한 초기 비용을 내고 서비스에 가입한 후 효과가 있으면 계속 이용하고, 없으면 이용을 중단하면 그만이었다. '인프라 도입' > 'SW 설치' > 'SW 관리'로 이어지는 기존의 사슬을 '서비스 가입 및 이용' 하나로 간소화해준 것이다. 때문에 많은 기업이 부담 없이 세일즈포스의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들은 서비스가 실제로 고객 관리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스란히 세일즈포스의 고객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세일즈포스는 자사의 모든 서비스를 API 형태로 공개해 기업이 자사 ERP에 세일즈포스의 CRM, 마케팅 관리 도구를 바로 접목시킬 수 있게 했다. 지금이야 소프트웨어 서비스 분야에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이지만, 세일즈포스가 처음 선보였을 당시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이를 통해 기업은 이미 이용하고 있던 ERP가 있어도 세일즈포스의 CRM, 마케팅 서비스를 도입하고, 마치 기존 ERP의 일부인 것처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마크 베니오프

두 번째는 앱 장터라는 개념을 고안하고 이를 상용화한 것이다. 세일즈포스는 2005년 기업이 세일즈포스의 플랫폼 위에서 실행되는 응용 프로그램을 올릴 수 있는 앱 장터 서비스 '앱 익스체인지'를 시작했다. 2008년 등장한 애플 앱스토어, 안드로이드 마켓(현 구글 플레이스토어)보다 3년이나 빠른 앱 장터 서비스였다. 기업은 여기에 다양한 기업용 SW와 서비스를 올릴 수 있었다.

다른 기업은 비용을 지불하고 이 기업용 SW와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세일즈포스의 소프트웨어 서비스는 더욱 다양하고 강력한 기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앱 익스체인지에선 IBM, 액센추어 등이 올린 약 3000여 개의 기업용 SW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세계 최초의 앱 장터 앱 익스체인지에는 놀라운 일화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 참고)

세일즈포스의 서비스는 클라우드로 제공되는 만큼 자체 IT 인프라가 없거나 빈약한 스타트업도 별다른 부담 없이 도입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고객 관리, 영업 관리 등은 대기업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으나 세일즈포스의 등장으로 스타트업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곧 스타트업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15만 개가 넘는 세일즈포스의 고객 상당수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크 베니오프
<마크 베니오프는 매우 혁신적인 리더로 인정받고 있다 /출처 세일즈포스 페이스북>

이러한 세일즈포스의 모든 사업 아이디어가 베니오프의 머리에서 나왔다.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쉽고 빠르게 기업용 SW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세일즈포스는 포브스, 포천 등 미국 경제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되었고, 베니오프는 포천, 블룸버그, 하버드 비즈니스리뷰 등에게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리더 가운데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15살에 게임을 만든 천재 프로그래머

이러한 세일즈포스를 이뤄낸 베니오프는 정말 비범한 인물이다. 1969년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베니오프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불과 15살 이란 어린 나이로 '저글링을 하는 법(How to Juggle)'이란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이때 얻은 이익으로 리버티 소프트웨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비디오 게임기 '아타리 8비트'용 게임을 개발해 판매했다. 이를 통해 베니오프는 대학 진학을 위한 학자금을 벌 수 있었다.

마크 베니오프
<베니오프는 세일즈포스를 처음 만들었을 때도 애플 컴퓨터를 사용했다 /출처 세일즈포스 페이스북>

남부 캘리포니아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 진학한 베니오프는 이때 인생을 바꿀 경험을 하게 된다. 실리콘밸리에서 막 태동하고 있던 컴퓨터 제조 업체 애플에 인턴으로 입사해 매킨토시 사업부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어셈블리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을 담당하던 그는 이때 스티브 잡스와의 인연을 쌓는다. 잡스는 그의 스승이었다.

잡스는 베니오프를 신동 프로그래머라고 평가하고, 베니오프가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베니오프는 이때부터 잡스를 그의 우상이자 목표로 받아들였다. 베니오프는 2013년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행사(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콘퍼런스)에 연사로 나와 "스티브 잡스는 나의 위대한 멘토였다. 그가 없었다면 세일즈포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세계 최대의 DBMS(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 개발 기업 '오라클'에 스카우트되었다. 그는 오라클 내에서 승승장구했다. 입사 1년 차에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고 입사 3년 만에 26세란 나이로 최연소 부사장에 임명되었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는 베니오프에게 회사 내의 다양한 중역을 맡겼다. 이후 13년 동안 베니오프는 래리 엘리슨의 오른팔로서 오라클의 성장을 견인했다.

마크 베니오프<창업을 막 시작했을 때의 마크 베니오프 /출처 세일즈포스 페이스북>

그의 커리어는 거침이 없었다. 오라클 내부에 있었다면 나이가 많은 래리 엘리슨의 뒤를 이어 오라클의 CEO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베니오프의 마음 한구석에는 어린 시절 잡스와의 만남에서 얻은 기억이 남아 있었다.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창업자 겸 자선사업가라는 꿈을 이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베니오프는 오랜 고민 끝에 당시 크게 확장하고 있던 인터넷을 통해 SW를 빌려준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설치형 SW의 단점을 해결할 수 있는 놀라운 아이디어였다. 이를 창업 아이템으로 정한 베니오프는 래리 엘리슨을 찾아가 투자를 요청했다. 래리 엘리슨은 이에 응하고 베니오프가 설립한 회사의 이사가 되었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설립 당시 사용하던 원룸 /출처 세일즈포스 페이스북>

베니오프는 1999년 파커 해리스, 데이브 모엘렌호프, 프랭크 도밍고 등 여러 업계 전문가와 함께 세일즈포스를 설립했다. 사무실은 집 앞의 좁은 원룸이었다.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체화해야 할지 몰랐던 베니오프는 자신의 스승 잡스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잡스는 그에게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었다. 잡스의 첫 번째 조언은 기업을 24개월 내로 10배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조언은 서비스를 개시한 즉시 에이번(미국의 대형 화장품 회사)과 같은 대규모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애플리케이션 경제(App Economy)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언을 들은 후 이를 바탕으로 베니오프는 자신의 아이디어 실천에 나섰다. 월 65달러에 이용할 수 있는 CRM 서비스를 출시한 후 '(설치형) SW는 끝났다'는 캠페인을 벌여 사람들이 세일즈포스의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했다. 골치 아프게 설치형 SW를 이용하지 말고 SW 설치 및 관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단지 이를 빌려 쓰기만 하면 된다는 내용의 캠페인이었다. 이에 당시 실리콘밸리의 주류였던 설치형 SW를 판매하는 기업들이 반발했다. 베니오프를 오라클에 추천한 사람이었던 크레이크 콘웨이 피플소프트 최고경영자조차 "베니오프의 아이디어는 잘못되었다. 그의 사업은 곧 망할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세일즈포스의 사업은 앞에서 설명한 두 가지 혁신을 바탕으로 보란 듯이 급격히 성장했다. 2004년에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기업을 공개했고, 2013년에는 10만 개가 넘는 고객사를 확보하게 되었다. 현재 베니오프는 세일즈포스 전체 지분 가운데 5%를 소유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50억 달러(약 5조 43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억만장자가 되었다. 미국에서 151번째로, 전 세계에서 441번째로 부유한 인물이 된 것이다. (2017년 11월 포브스 기준)

세일즈포스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인 마크 베니오프는 스티브 잡스와의 돈독한 관계로 유명하다. 그는 20살의 나이로 애플 매킨토시 사업부에 인턴으로 입사해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잡스와 인연을 쌓았다.

옛 스승에게 조언을 듣다

오라클을 그만두고 세일즈포스를 설립한 그는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라는 개념을 떠올렸지만,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사업을 진행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옛 스승인 잡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베니오프는 잡스에게 "세일즈포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다. 당신의 조언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잡스는 이에 동의했고, 베니오프는 잡스를 만나 소프트웨어 서비스라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려주었다. 회사의 핵심 비밀을 아낌없이 털어놓은 것이다. 이를 들은 잡스는 베니오프에게 솔직하게 조언했다.

마크 베니오프
<스티브잡스와 마크 베니오프 /출처 마크 베니오프 공식 트위터>

"나는 소프트웨어를 잘 모른다. 하지만 서비스가 무엇인지는 안다. 당신은 성공을 위해 세 가지 과제를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 첫 번째로 회사 규모를 24개월 안에 10배 이상 성장시켜야 한다. 두 번째로 서비스를 개시한 즉시 에이번 같은 대규모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세 번째로 애플리케이션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들은 베니오프는 잡스에게 애플리케이션 경제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잡스는 "나는 아직 애플리케이션 경제의 개념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 하지만 베니오프 당신은 이것을 이해하고 서비스에 접목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마크 베니오프
<마크 베니오프 /출처 세일즈포스 페이스북>

베니오프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하지만 세 번째 과제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베니오프는 오랜 기간 잡스가 던져준 애플리케이션 경제란 명제를 두고 씨름했다. 그리고 마침내 애플리케이션 경제란 명제를 앱 장터로 구체화할 수 있었다. 앱 장터란 한 기업이나 사용자가 자신이 개발한 앱을 올려 다른 사용자나 기업이 이를 내려받을 수 있게 해주는 장소를 뜻한다. 앱 장터가 활성화되면 기존에 없었던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플랫폼 생태계가 더욱 강화되고 풍부해질 수 있다. 앱을 개발한 사용자와 기업뿐만 아니라 플랫폼을 개발한 기업까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베니오프는 세일즈포스의 서비스를 플랫폼으로 전환하고 세일즈포스 플랫폼을 위한 앱 장터를 열기로 결정했다. 앱 장터의 영문명인 앱스토어닷컴(www.appstore.com)을 매입하고, 이를 세일즈포스의 상표로 등록했다. 하지만 2005년 세일즈포스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앱 장터의 이름은 앱스토어가 아닌 '앱 익스체인지'였다. 베니오프는 앱스토어 도메인과 상표를 활용하지 않고 단지 보유만 하기로 결정했다.

앱 익스체인지라는 서비스 덕분에 세일즈포스의 서드파티들은 세일즈포스와 베니오프가 상상치 못한 혁신적인 비즈니스 SW를 쏟아내었다. 이를 통해 세일즈포스 플랫폼은 더욱 성장했고, 세일즈포스와 서드파티의 매출도 쑥쑥 늘어났다.

3년이 흐른 뒤 베니오프는 옛 스승이 화려하게 재기한 자리에 참석했다. 2008년 WWDC(애플이 개최하는 개발자 콘퍼런스)에 참석한 베니오프는 잡스가 아이폰을 위한 앱 장터 '앱스토어'를 발표하는 순간을 지켜봤다. 자신의 멘토가 자신과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것에 베니오프는 크게 감동받았다. 행사가 끝난 뒤 베니오프는 잡스를 만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앱스토어 도메인과 상표를 선물로 건네주었다. 잡스는 제자의 선물에 미소로 답했다.

옛 상사와의 대립

베니오프의 일화에서 옛 상사와의 대립도 빼놓을 수 없다. 베니오프는 오라클에서 13년 동안 재직하며 래리 엘리슨을 보좌했다. 둘의 사이는 돈독했다. 베니오프가 래리 엘리슨의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고, 래리 엘리슨이 세일즈포스의 초기 투자자 겸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마크 베니오프

하지만 오라클이 소프트웨어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면서 둘의 사이는 틀어졌다. 오라클이 세일즈포스와 SAP를 견제하기 위해 자사의 설치형 CRM과 ERP를 소프트웨어 서비스로 전환한 후 래리 엘리슨은 세일즈포스의 이사회를 떠나야 했다. 이후 래리 엘리슨과 오라클은 틈만 나면 세일즈포스의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뛰어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럴 때마다 베니오프는 옛 상사와 회사에 대한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둘의 대립은 2010년과 2011년에 들어 극에 달했다. 2010년 래리 엘리슨은 오라클 오픈월드(오라클의 개발자 콘퍼런스) 기조연설 자리에서 인프라를 빌려주는 서비스야말로 진정한 클라우드이고, 소프트웨어를 빌려주는 서비스는 클라우드라고 부르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세일즈포스를 깎아 내렸다. 대신 아마존 웹서비스를 극찬하고, 아마존 웹서비스야말로 클라우드가 지향해야 될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에 베니오프는 래리 엘리슨이 기조 연설을 한 컨벤션 센터 바로 옆에 있는 극장에서 행사를 개최하고 "클라우드는 상자(오라클의 제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클라우드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멀티테넌트)을 여러 고객이 나눠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래리 엘리슨과 오라클을 비판했다.

마크 베니오프
<오라클의 CEO 래리 엘리슨 /출처 Oracle PR at flickr>

2011년에도 둘의 대립은 어김없이 이어졌다. 오라클은 원래 베니오프를 오라클 오픈월드의 기조연설자로 초빙했으나, 하드웨어를 무시하는 그의 기조가 오라클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후 행사를 하루 앞두고 그의 기조 연설을 취소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렇게 무례한 처사에 화가 나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베니오프도 래리 엘리슨 못지않게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는 즉시 행사장 옆에 레스토랑을 빌려 세일즈포스의 자체 행사를 개최했다. 오라클 오픈월드에 온 기업, 개발자, 언론을 불러들여 취소된 자신의 기조 연설을 진행했다. 이 연설을 통해 오라클의 차세대 하드웨어는 비전이 없고, 오직 클라우드만이 IT 업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날 래리 엘리슨이 한 기조 연설과 정확히 반대되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베니오프는 오라클의 핵심 인력을 지속적으로 세일즈포스에 영입해 래리 엘리슨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예를 들어 현재 세일즈포스의 부사장 겸 최고운영자를 맡고 있는 키스 블록도 오라클에 재직하던 시절 베니오프의 동료였고, 오라클의 중역이었다.

이러한 대립과 별개로 베니오프는 래리 엘리슨과 공통점이 많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소한 부분 하나까지 회사의 모든 사업을 직접 챙기는 점, 외부 행사에 나와 거리낌 없이 경쟁사를 비판하는 점, 인수 합병을 통해 경쟁사를 미리 시장에서 제거하는 점 등이 닮았다. 비록 지금은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래리 엘리슨의 경영 방식과 경영 철학은 베니오프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하다.

마크 베니오프
<둘은 대립관계이긴 했지만 전략적으로 협업을 하기도 했다 /출처 세일즈포스 페이스북>

또한 세일즈포스와 오라클의 협업도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최고경영자간의 감정 싸움과 별개로 두 회사의 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오라클은 자사의 ERP 서비스와 세일즈포스의 CRM 서비스를 결합한 통합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출시했고, 세일즈포스는 레드햇과 오픈소스를 이용하던 기존 인프라와 DB를 오라클의 것으로 바꾼 상태다.

자선과 평등을 실천하다

오라클을 나와 세일즈포스를 설립한 베니오프의 목표는 경영자 겸 자선사업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경영자 뿐만 아니라 자선사업가라는 자신의 목표도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 베니오프는 회사의 자본 1%, 제품 기여금 1%를 지역 사회에 기부하고, 전 직원 업무시간의 1%를 자원봉사 활동에 투입한다는 1-1-1 사회봉사모델을 만들었다.

마크 베니오프
<베니오프는 꾸준히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 /출처 오클랜드 베니오프 아동 병원 페이스북>

그가 만든 사회봉사모델은 구글, 옐프, 징가 등 700개 이상의 실리콘밸리 기업에게 받아들여져 활용되고 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아동 병원과 베니오프 아동 병원(구 오클랜드 아동 병원)에 1억 달러씩 기부해 지역 아동의 건강 상태 향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외에도 바다 쓰레기를 제거하는 비영리 단체에 쓰레기 제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개발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베니오프는 자선사업가일뿐만 아니라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인디애나 주에서 종교나 신념 등의 이유로 성별, 인종 등(이른바 LGBT)을 차별할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법이 통과될 기미를 보이자 해당 주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해 법이 통과되는 것을 막아내었다. 또한 2015년에는 세일즈포스 직원의 모든 급여 체계를 검토해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임금과 대우를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베니오프는 유대계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이제 더 이상 유대교를 믿지는 않고 있다. 그는 불교 신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승이었던 잡스처럼 인도로 떠나 수행하기도 했다. 그는 세일즈포스의 직원들이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근무 시간 도중 명상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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