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DONGA

무심코 유명 브랜드 강제? 국방부 입찰공고 보니

김영우

[IT동아 김영우 기자] 특정한 기업에서 내놓은 제품 브랜드가 바로 해당 분야 전체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봉고차(기아자동차의 승합차)', '미원(대상의 MSG 조미료)', 'PC(IBM의 컴퓨터 브랜드)'나 '노트북(도시바의 휴대용 컴퓨터)', '스카치 테이프(3M의 접착식 비닐 테이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고유명사의 일반명사화가 이루어진 셈인데, 이는 그만큼 해당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높고, 업체의 마케팅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후발 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해 공정한 경쟁을 하는데 장애가 되는 경우도 있다. 선도 기업의 제품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선도 브랜드의 아류 제품 정도로 취급 받는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중형차는 '쏘나타급', 스마트폰은 '갤럭시S급'으로 말하다 보니

이를테면 국내에서 중형차는 '쏘나타급' 이라고 흔히 지칭되곤 한다. 때문에 중형차를 구매하려는 한국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부터 고려하기 마련이다. 기아자동차의 K5, 르노삼성의 SM6, 한국GM의 말리부 등이 분명 쏘나타 못지않은 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쏘나타의 아성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제품 교체 주기가 짧은 스마트폰 시장은 이런 경향이 더 심하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가 사실상 국내 스마트폰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플래그십급 스마트폰의 대명사는 갤럭시S 시리즈다. 새로운 세대의 갤럭시S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해당 시기 전후에 나온, 혹은 유사한 성능을 가진 경쟁사의 제품은 덩달아 '갤럭시S몇 급'의 제품으로 묶여버린다. 이를테면 LG전자의 G6는 '갤럭시S8급'의 제품이며, 팬택의 아임백은 '갤럭시S5 급'에 가까운 성능을 가졌다고 말하곤 한다.

국방부 PC는 인텔 CPU만 써야?

심지어 정부기관에서 물품조달을 위해 입찰공고를 낼 때도 제품 요구 사양에 특정 기업의 브랜드를 넣기도 한다. 일례로 지난 5월, 국방부 국군재정관리단이 입찰공고한 소요예산 59억원 규모의 ‘2017 PC(중소) 도입사업’의 내용에 따르면, 데스크톱 PC의 CPU 규격을 ‘인텔 코어 i3-6100(3.7GHz)급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PC용 CPU를 생상하고 있는 업체는 인텔 외에 AMD도 있으며, 인텔의 코어 시리즈와 유사한 성능을 내는 타사의 CPU로는 A시리즈 APU나 FX 시리즈, 라이젠 시리즈 등의 제품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납품 공고 기준에서 이러한 CPU를 탑재한 PC는 입찰에서 탈락할 수 밖에 없다.

국방부 국군재정관리단이 입찰공고한 2017 PC(중소) 도입사업에서 지정한 PC 사양표<국방부 국군재정관리단이 입찰공고한 2017 PC(중소) 도입사업에서 지정한 PC 사양표>

정부기관의 물품조달을 총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에서 지난 2016년에 '업무용 PC 구매에 있어서 CPU 규격을 특정회사의 제품만을 지정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통용되는 주요 제품을 병기하거나 그 외 동등 이상의 물품의 문구를 명기할 것'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각 정부기관에 배포한바 있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물론, 그렇다 하여 정부기관에서 특정 기업의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워낙 해당 브랜드가 익숙하기 때문에, 혹은 설명의 편의를 위해 무심코 저런 용어를 쓰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사소한 것에도 공정을 기해야 할 정부기관이라면 좀더 신중했어야 옳다.

상향평준화와 경쟁심화의 시대, 중립적 표현에 신경써야

제품의 종류가 많지 않고, 각 기업들 사이의 기술력 격차가 컸던 데다 제품 교체 주기가 길었던 199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저렇게 특정 기업의 브랜드를 일반명사처럼 쓰는 것이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기업들의 기술력이나 제품의 품질이 상향 평준화 되었으며, 신제품의 출시 시기도 눈에 띄게 짧아졌다. 기업간의 경쟁도 극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지 출시 시기가 조금 빨라서, 혹은 기업의 마케팅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특정 브랜드가 일반명사처럼 쓰이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각 제품의 품질이나 성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최대한 중립적인 표현을 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