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DONGA

삼성전자가 인수한다는 '하만'은 어떤 회사인가요?

강일용

[IT동아 강일용 기자] 삼성전자가 미국의 오디오&전장(커넥티드 카) 전문 기업 '하만(HARMAN International)'을 80억 달러(약 9조 3,900억 원)에 인수한다고 14일 발표했습니다. 하만은 어떤 회사일까요?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한 음향 전문 기업입니다. 삼성전자는 왜 하만을 인수한 것일까요? 하만의 현재 사업 분야와 위치를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만의 역사와 현재 사업 분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삼성전자/하만 합병<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하만의 역사

하만은 시드니 하만 박사(Dr Sidney Harman)가 동업자 버나드 카돈(Bernard Kardon)과 협력해 1953년 설립한 회사입니다. 매출은 70억 달러, 영업이익은 7억 달러(직전 12개월 기준)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오디오& 전장 브랜드입니다.

일반 사용자들은 하만의 이름은 들어봤어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헤드셋, 소형 스피커보다 극장이나 야외에서 사용되는 초대형 스피커와 하이 파이(Hi-fi, 실내용 고급 오디오 시스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만이 우리 근처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만이라는 이름 대신 다른 이름으로 우리 근처에서 영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로 JBL과 AKG입니다. JBL은 세계 최초로 PC용 스피커를 만들어낸 브랜드입니다. 가정용 다중 오디오 채널 시스템과 중소형 스피커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AKG는 고급 헤드셋 및 마이크 브랜드입니다. 개인 음악감상뿐만 아니라 스튜디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전문가용 헤드셋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두 회사 모두 하만의 자회사입니다.

하만 박사는 원래 데이비드 보겐이라는 회사에서 전문가용 사운드 시스템(PA Sound system)을 설계하던 엔지니어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카돈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설립하고자 독립을 결심했습니다.

두 사람은 1953년 페스티발 D1000이라는 라디오 수신기(Receiver)를 생산하면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라디오를 들으려면 신호를 수신받는 'FM 튜너'와 신호를 증폭하고 변조해주는 '앰프' 그리고 증폭한 신호를 소리로 바꿔주는 '스피커'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세 가지 독립된 기기를 하나로 합쳐야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페스티벌 D1000은 FM 튜너와 앰프를 하나로 합친 최초의 현대적인 수신기였습니다(물론 스피커는 별도로 구매해야 합니다. 이 부분 만큼은 현재 고급 음향 시스템에서도 당연한 것입니다). 제품은 성공적으로 팔려나갔고, 하만 브랜드는 고급 오디오 브랜드로서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1958년에는 세계 최초의 스테레오 리시버 페스티벌 TA230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 하만은 두 가지 큰 변화를 꾀합니다. 첫 번째가 JBL을 인수한 것이고, 두 번째가 레이 돌비 박사가 설립한 돌비 음향 연구소와 협력하게 된 것입니다. 불우한 라우드 스피커(Loud Speaker) 기술자였던 제임스 불로프 랜싱(James Bullough Lansing)이 설립한 JBL은 리시버와 앰프에 주력하고 있었던 하만에게 스피커 기술을 가져다 주었고, 돌비 음향 연구소는 스피커에서 발생하는 잡음(Noise)을 줄여주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970년대 하만은 북미 제일의 음향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1976년에 들어 하만 박사는 잠깐 외도를 하게 됩니다. 성공한 사업자에게서 으레 볼 수 있는 현상이죠.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하게 됩니다. 회사는 다른 곳에 매각했습니다. 하지만 음향 기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음향 브랜드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리 없죠. 하만의 가치는 급추락했습니다. 4년 뒤엔 원래 가치의 40% 수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하만 박사는 정치를 관두고 기업 경영에 복귀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1985년이 되어서야 하만 브랜드를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리시버와 스피커의 품질에 따라 음질이 결정되는 아날로그 오디오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카오디오 시스템과 PC 오디오 시스템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죠. 야마하나 온쿄 등 일본 음향 브랜드의 도전도 거세었고요.

다행히 하만은 시대의 흐름에 잘 따라갔습니다. 여러 차량 회사와 협력해 카오디오 시스템을 개발했고, 제품의 가격도 일본 음향 브랜드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헤드셋과 마이크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고 1994년 오스트리아의 음향 브랜드 AKG를 인수했습니다. PC 오디오 시스템 개발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JBL 브랜드로 PC용 스피커를 최초로 선보였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이지셋(Ezset)이라는 음향 입력/변조(Mic/EQ)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자구책을 바탕으로 하만은 다시 음향 브랜드의 왕좌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만의 현재

2000년대에 들어 하만은 두 가지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IT 제조사들과 협력한 것입니다. 그들과 협력해 노트북에 자사의 음향 기술을 적용하거나, 스피커를 대신 설계해주었습니다. 삼성전자, HP(컴팩 포함) 노트북에서 JBL이나 하만 브랜드를 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2010년에 들어 그 영역은 더욱 확장됐습니다. 스마트폰, 스마트TV, 보급형 헤드폰에도 자사의 음향 기술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는 카오디오 시스템을 '전장(차량용 전자 부품, 커넥티드 카의 핵심이다)'의 영역으로 확대한 것입니다. 카오디오 시스템을 공급하면서 만든 파트너십을 십분 활용한 것입니다. 벤츠, BMW, 아우디, 페라리, 람보르기니, 포르쉐, 폭스바겐, 미니, 크라이슬러, 도요타, 랜드로버 등 주요 자동차 업체에 커넥티드카용 인포테인먼트(차량용 내비게이션&A/V), 텔레매틱스(통신 장비), 보안, OTA 부품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포테인먼트(쉽게 말해 음향 기술) 영역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에도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정체되어 있던 매출이 급성장하기 시작했으니까요. 하만은 현재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 시장 1위(24%, 고급 차량 5대 가운데 1대가 하만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장착), 인포테인먼트 시장 2위(10%, 전체 차량 10대 가운데 1대가 하만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장착), 텔레매틱스 시장 2위(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커넥티드 카와 카오디오 사업은 연매출의 약 6배에 달하는 240억 달러 규모의 수주잔고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네요. 자동차 업체들이 자동차 생산에 앞서 미리 하만에 커넥티드 카와 카오디오 시스템을 주문할 정도로 시장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하만의 매출의 65%는 전장(커넥티드 카)에서, 나머지 35%는 오디오(소비자용 음향 시스템과 극장용 음향&조명 시스템)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음향 기업에서 출발한 커넥티드 카 부품 기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하만 박사는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뒤는 인도 출신의 음향 기술자 디네시 팔리왈(Dinesh Paliwal)이 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인도 출신이 강세를 보인다더니, 여기에도 인도 출신 최고경영자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한 이유?

이번 인수를 통해 삼성전자는 자사의 TV, 스마트폰, VR, 웨어러블 등에 하만의 음향 기술과 브랜드를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삼성전자의 디스플레이 사업과 하만의 극장용 음향시스템(조명 포함) 사업을 융합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IT 시장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전장(커넥티드 카) 사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와 하만은 삼성전자의 부품 기술에 하만의 시장 노하우와 브랜드 가치를 결합해 커넥티드 카 시장을 선도한다는 계획입니다.

하만은 현재 AKG(마이크 브랜드), 하만/카돈(극장용 음향&조명 시스템 브랜드), 인피니티(중가 앰프 브랜드), JBL(중고가 스피커 브랜드), 렉시콘(고가 오디오(카오디오 포함) 브랜드. 현대자동차 에쿠스에 채택된 바 있다), 마크 레빈슨(초고가 앰프 브랜드. 렉서스에 채택된 바 있다), B&W(고가 스피커 브랜드) 등을 산하에 거느리고 있습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