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의실] IBM 호환 PC에 대항하는 개인용 컴퓨터 - 매킨토시

강일용 zero@itdonga.com

[용어로 보는 IT 2015년 개정판] 1970 ~ 1980년대는 개인용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이자 관련 기업들의 ‘춘추전국시대’로 기억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컴퓨터 제조사 및 컴퓨터 제품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곤 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던 제품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애플(Apple)사의 ‘애플 II’였다.

매킨토시
매킨토시

<1977년에 처음 출시된 애플 II는 큰 인기를 끌며 애플을 거대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출처 (cc) Marcin Wichary (mwichary at flickr.com)>>

1977년에 처음 출시된 애플 II는 본체와 키보드를 일체화하고 크기를 줄여 공간 활용성을 높였으며 사용법도 간편했다. 가격도 1,298달러로 당시의 컴퓨터 중에는 저렴한 편이었다. 이런 이유로 애플 II는 큰 인기를 끌었는데, 1978년에 7,600대 팔리던 것이 1980년에는 그 10배인 78,100대가 팔릴 정도였다. 이 덕분에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Stephen Gary Wozniak)과 스티브 잡스(Steve Paul Jobs)는 단숨에 부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81년에 IBM 사에서 ‘PC(Personal Computer)’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애플 II의 독주가 위협받기 시작했다. IBM PC 시리즈의 최대 특징은 바로 완전한 공개형 아키텍처(Architecture: 시스템 전반의 구조 및 설계방식)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때문에 IBM 외의 제조사에서도 이와 완전히 호환되는 PC 본체 및 주변기기,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설계, 생산할 수 있었다. 애플 II도 호환 기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애플에서 저작권을 상당히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애플 II 호환 기종의 대부분은 비공식적인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이런 애플II의 호환 기종들은 법적, 성능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잘 나가던 애플, 위기에 처하다

IBM PC 및 IBM PC 호환 기종들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나갈 것으로 예상되자 애플은 애플 II의 후속 모델인 ‘애플 III’를 개발, 1980년에 출시했다. 애플 III는 디즈니랜드를 통째로 빌려서 출시 행사를 하는 등, 그야말로 사운을 걸고 개발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개발된 나머지 애플 III의 소프트웨어는 오류투성이였고, 애플 II와의 호환성도 좋지 않았다. 특히 애플 III의 개발을 총 지휘한 스티브 잡스는 본체 내부에서 소음을 발생시키는 냉각팬을 모두 제거할 것을 지시했는데, 그 결과 애플 III는 심각한 발열 때문에 종종 고장을 일으키곤 했다. 가격도 문제였다. 애플 III를 구매하려면 기본형 제품은 4,000달러 이상, 고급형 제품은 7,800달러 이상을 줘야 했다. 당연히 잘 팔릴 리가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애플은 엄청난 손실을 보고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매킨토시
매킨토시

<야심작이었던 애플 III(1980년, 왼쪽)와 애플 리사(1983년, 오른쪽)의 실패로 애플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애플 III와 비슷한 시기(1983년)에 출시된 ‘애플 리사(Lisa: 스티브 잡스의 딸 이름과 같지만 관계가 있는지는 불명)’의 실패 역시 애플의 몰락을 부채질했다. 애플 리사는 개인용 컴퓨터 최초로 GUI(Graphical User Interface, 문자가 아닌 그래픽으로 표시되는 인터페이스) 운영체제인 ‘리사 OS’를 탑재하고 용량 증설이 가능한 메모리 슬롯을 갖췄으며, 하드디스크(외장형)를 지원하는 등 여러모로 획기적인 기능을 다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격이 무려 1만 달러에 육박했고, 많은 기능을 소화하기에는 부족한 CPU(모토로라 MC68000 5MHz)의 속도, 그리고 부족한 소프트웨어 호환성 등을 이유로 시장에서 외면 받았다. 애플 III와 애플 리사의 실패, 그리고 사내 갈등으로 인해 스티브 잡스는 1985년에 애플을 떠나게 된다.

새로운 컴퓨터, 그 이름은 ‘매킨토시’

연이은 실패로 인해 애플은 사세가 크게 기운 반면, IBM의 PC와 그 호환 기종들은 시장을 거의 지배하기에 이른다. 애플은 이를 만회하기 위한 신제품의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1984년, 그 결과물로써 매킨토시(Macintosh, 통칭은 ‘맥’)가 등장했다. 매킨토시라는 이름은 매킨토시 컴퓨터 프로젝트팀의 리더였던 ‘제프 러스킨(Jef Raskin)’의 제안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그가 좋아하던 사과의 품종인 ‘Mcintosh(철자는 다르지만 발음은 같다)’에서 유래된 것이다.

매킨토시
매킨토시

<매킨토시(1984)의 등장으로 GUI 기반 운영체제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매킨토시는 여러모로 이전의 컴퓨터와 차별점이 많았다. 일단 본체와 모니터를 일체화하면서 크기와 무게를 크게 줄이고 본체 위에 손잡이를 달아 운반이 편하도록 했다. 그리고 내부 구조를 간략화하여 첫 번째 모델(MC68000 8MHz CPU, 128KB 메모리)의 경우 가격을 2,495달러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획기적이었던 것은 애플 리사에서 처음 적용된 GUI 기반 운영체제인 리사 OS를 다듬어 한층 편의성을 높인 ‘맥(Mac) OS(당시 이름은 ‘애플 시스템’)’가 처음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불편한 문자 입력 방식 운영체제가 아닌, 창과 아이콘을 클릭하며 편하게 컴퓨터를 다루는 GUI 운영체제의 장점이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출판 및 교육,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호평

매킨토시는 마케팅 기법도 상당히 화제가 되었는데,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출시 당시 방영했던 TV광고였다. 광고 제작에는 저명한 SF영화감독인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이 참여했다. 광고의 내용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인 1984의 내용을 모티브로 한 것인데, 빅브라더(IBM)에게 지배당하는 민중들을 해방하기 위해 영웅(매킨토시)이 등장, 빅브라더의 대형 화면을 깨부순다는 것이었다.

매킨토시
매킨토시

<1984년에 방영된 매킨토시의 TV 광고는 IBM을 ‘빅 브라더’로 묘사, 화제를 불렀다>

매킨토시는 이러한 독특한 마케팅과 제품의 편의성이 높은 평가를 받았고, 특히 GUI 운영체제 특유의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덕분에 출판 및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각광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1987년에 고화질 컬러 그래픽을 지원하는 ‘매킨토시 II’ 및 보급형 제품인 ‘매킨토시 SE’가 동시에 출시되는 등 그 인기를 이어갔으며, 1990년대 초 중반부터는 최상위 기종인 ‘매킨토시 쿼드라’, 중상급형인 ‘매킨토시 센트리스’, 보급형인 ‘매킨토시 클래식’, 저가형인 ‘매킨토시 LC’ 등으로 라인업이 세분화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94년에는 이전까지 사용하던 모토토라 MC68000 계열이 아닌 파워 PC(Power PC) CPU를 탑재한 ‘파워 매킨토시’가 출시되었다. 파워 PC는 애플과 IBM, 그리고 모토로라가 협력하여 개발한 고성능 CPU인데, IBM 호환 PC에 적용되던 인텔 펜티엄(Pentium) CPU에 비해 한층 우수한 성능을 발휘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파워 매킨토시는 고성능을 요구하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매킨토시가 컴퓨터 그래픽 작업에 적합하다는 이미지를 심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현재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애플로 돌아온 구원투수, 스티브 잡스

다만, 매킨토시가 이렇게 상당히 선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컴퓨터 시장의 주도권은 IBM 호환 PC가 쥐고 있었다. 그리고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의 IBM 호환 PC용 운영체제인 ‘윈도우 95’가 출시되어 인기를 끌면서 IBM 호환 PC도 매킨토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GUI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일부 전문가층을 제외한 일반 대중들이 IBM 호환 PC 대신 매킨토시를 사야 할 이유가 거의 없어진 것이다. 매킨토시의 판매량이 떨어지고 애플은 다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애플에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1985년에 애플을 떠났던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애플을 떠난 후, ‘넥스트(NeXT)’사를 세워 독자적인 워크스테이션 컴퓨터 및 워크스테이션용 운영체제의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경영 능력과 NeXT의 기술력이 필요했던 애플은 1996년, NeXT사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를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시키기에 이른다.

매킨토시
매킨토시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후에 나온 아이맥 G3(1998)는 매킨토시 부흥의 기폭제가 되었다>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다소 혼란스러웠던 매킨토시 시리즈의 라인업을 정리하여 간략화함과 동시에, 디자인 및 사용 편의성이 우수한 컴퓨터와 새로운 운영체제의 개발을 지시한다. 대표적인 결과물이 1998년에 발표된 ‘아이맥(iMac) G3’이다. 아이맥 G3는 본체와 모니터를 일체화하여 마치 초대 매킨토시를 연상시켰는데, 반투명과 화려한 원색이 어우러진 전반적인 모습이 매우 미려하고 공간 활용성도 높아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시도는 노트북에도 이어져, 1999년에는 아이맥 G3의 디자인 컨셉을 노트북에 적용한 ‘아이북(iBook) G3’(현재의 ‘맥북’ 시리즈)를 내놓아 인기를 이어가게 된다.

다만, 하드웨어가 좋아졌다고 해도 이를 구동하는 운영체제의 발전이 없으면 헛일이다. 스티브 잡스의 복귀 무렵까지 매킨토시의 운영체제로 쓰이던 맥 OS는 기능이나 성능 면에서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 새로운 운영체제로의 교체가 절실했다. 이에 따라 2001년, 새로운 매킨토시용 운영체제인 맥 OS(Mac OS) X가 등장했다. 맥 OS X는 명칭 상 10번째의 맥 OS를 의미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애플이 1996년에 인수한 넥스트 사의 워크스테이션용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NeXTSTEP)’에 기반을 두고 있어 기존의 맥 OS와 많은 차이가 있다. 디자인은 물론, 성능 및 기능도 크게 향상되어 매킨토시 시리즈의 이미지를 향상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IBM 대신 인텔을 택하다

지난 2005년 열린 애플 개발자 회의(WWDC)에서 잡스는 참석자들이 자신의 귀를 의심할 만큼 충격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맥에 IBM 파워PC G5 프로세서 대신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PC 시장을 주도한 것은 언제나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PC란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IBM과 그래픽 사용자 환경(UI)를 최초로 도입한 애플은 인텔과 MS 연합(이른바 윈텔)에 밀려 2인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두 회사는 필연적으로 손 잡을 수밖에 없었다. 파워 매킨토시가 그러한 이유로 등장한 제품이다. 이후 10년 동안 IBM과 애플은 함께 윈텔과 경쟁했다.

프로세서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애플 맥 제품군에는 맥OS(현 OS X) 외에 다른 운영체제를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매킨토시 제품을 구매한 사용자는 맥OS와 맥OS에 맞춰 개발된 소프트웨어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일반 사용자들이 매킨토시 제품을 구매하는데 큰 장벽으로 다가왔다. 애플과 어도비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두 회사의 사이가 매우 좋았다)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투입해 사용자들이 매킨토시를 구매하도록 유도했지만, MS의 윈도 생태계를 넘을 수는 없었다. 결국 매킨토시는 그 세련된 디자인에 반한 극히 일부의 마니아층과 출판, 인쇄, 디자인 업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만 사용하는 제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잡스는 이렇게 맥이 비주류 제품으로 머무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11년 동안 지속된 IBM과의 관계를 끊고, 인텔과 손잡는 다는 결정을 내린다. 당시 잡스는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함으로써 맥은 3GHz의 프로세서 속도로 작업을 처리하면서 발열도 줄일 수 있었다." (기존 맥 프로와 파워북은 발열이 심하다고 꾸준히 지적 받았다.)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함으로써 맥의 구조는 IBM 호환 PC와 완전히 동일하게 변했다. 이는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맥에 윈도 운영체제를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맥을 구매하고 싶지만, 윈도와 윈도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친 일반 사용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결정 이후 맥의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한다. 결국 맥은 '변방'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컴퓨터 시장의 ‘주축’으로 우뚝 서게 된다. 애플은 2014년 4분기 기준 575만 대의 맥을 출하해, 7.1%의 점유율로 전세계 PC 시장 5위를 차지했다(IDC 조사 기준). 또한 판매량이 작년 같은 분기 대비 18.9% 성장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컴퓨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종류는 크게 세 가지

현재 매킨토시 라인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문가를 위한 워크스테이션 ‘맥 프로’ 시리즈, 가정용 일체형 컴퓨터 ‘아이맥’ 시리즈, 노트북 ‘맥북’ 시리즈가 그것이다.

매킨토시
매킨토시

<애플 맥 프로>

맥 프로는 원래 확장성을 강조한 대형 워크스테이션이었지만, 2013년 출시된 신형 맥 프로는 ‘워크스테이션은 덩치가 크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산산조각낸 독특한 제품이다. 어지간한 개인용PC보다 훨씬 작은 크기 속에 워크스테이션급 고성능을 담았고, 썬더볼트 단자를 통한 성능 확장을 추구해 애플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다.

매킨토시
매킨토시

<아이맥 레티나 5K>

아이맥은 아이맥 G3의 직계 후손이다. 컴퓨터와 모니터를 함께 제공하는 일체형 컴퓨터라는 콘셉트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알루미늄을 통째로 깎아서 제작된 본체 구조와 매우 얇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사용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2014년 10월에는 화면 화소 네 개를 하나로 묶어 더욱 선명한 화면을 보여주는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27인치 대화면에 적용한 최상위 모델 ‘아이맥 레티나 5K’가 출시되기도 했다.

매킨토시
매킨토시

<애플 맥북>

맥북은 인텔 프로세서 채택과 함께 발표된 애플의 노트북 라인업이다. 일반 노트북인 맥북, 고성능 노트북 맥북 프로, 휴대용 노트북 맥북 에어로 나눌 수 있다. 맥북 프로의 경우 2012년부터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전면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맥북 에어는 잡스가 서류봉투에도 넣을 수 있을 만큼 얇은 제품이라고 휴대성을 강조한 바 있다. 맥북은 원래 플라스틱 본체로 제작된 보급형 제품이었으나, 맥북 에어와 그 위치가 겹쳐 2011년 단종됐었다. 하지만 최근(2015년) 매우 뛰어난 휴대성과 무소음을 갖춘 고급 노트북으로 다시 부활했다.

매킨토시의 매력

매킨토시와 맥OS X의 놀라운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아직 윈도우 천하다. 매킨토시 시리즈의 컴퓨터 시장 점유율은 미국을 제외하면 한 자리 수를 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시중에 나오는 대부분의 응용 프로그램들이 윈도우 전용으로 나오고 있다. 인터넷 환경 역시 매킨토시와 맥 OS X에 우호적이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매킨토시와 맥OS X 사용자는 인터넷 뱅킹이나 홈쇼핑 등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매킨토시에 대해 ‘비싸기만 하고 불편한 컴퓨터’, 혹은 ‘소수의 전문가만을 위한 특수 컴퓨터’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는 편견에 불과하다. 인텔 프로세서 채택 이후 IBM 호환 PC와 매킨토시는 하드웨어적으로도 다를 게 없다. 많은 매킨토시 사용자들이 매킨토시에 윈도우 운영체제를 설치해서 IBM 호환 PC처럼 사용하고 있다. 매킨토시 사용자들에게 매킨토시란 맥OS X만 이용해야 하는 제품이 아니라, 맥OS X과 윈도우 운영체제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제품이다. 윈도우 운영체제를 설치하면 매킨토시에서도 인터넷 뱅킹이나 홈쇼핑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여담으로, 이번 캐스트에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널리 알려진 ‘매킨토시’와 ‘맥OS X’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애플은 두 단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아이맥 G3 이후 매킨토시 대신 ‘맥’이라는 이름으로 간결하게 부르고 있고, 맥OS X 역시 맥이라는 글자를 제거하고 ‘OS X(오에스 텐)’이라고 부르고 있다. 맥과 OS X이 정확한 이름이니 착오 없길 바란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의 '용어로 보는 IT' 코너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IT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