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넥서스7, 어서와 넥서스6와 9
간밤에 구글이 놀라운 발표를 했다. 차세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L'의 이름을 5.0 롤리팝(Lolipop, 막대사탕)으로 확정하고, 롤리팝으로 실행되는 패블릿(Phablet) 넥서스6와 태블릿PC 넥서스9을 공개했다.
64비트를 품은 태블릿PC, 넥서스9
가장 눈에 띄는 제품은 넥서스9이다. 넥서스9은 64비트로 실행되는 최초의 안드로이드 기기다. 내장된 모바일 프로세서와 운영체제 모두 64비트를 지원한다.
하드웨어는 당대 최고 수준이다. 엔비디아가 제작한 64비트 모바일 프로세서 테그라K1 덴버(2.3GHz)를 탑재했다. 먼저 덴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테그라K1 덴버는 어떤 프로세서인가요?
테그라K1은 지난 CES 2014에서 엔비디아가 공개한 모바일 프로세서다. ARM 코텍스 A15 공정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퀄컴
스냅드래곤800, 애플 A7, 삼성전자 엑시노스5와 유사한 수준의 모바일 프로세서다. 하지만 테그라K1만의 강점도 존재한다. 엔비디아가 어떤
회사던가. 그래픽 프로세서 '지포스'로 유명한 회사다. 테그라K1도 마찬가지다. 3D 그래픽 처리 능력에 중점을 둔 모바일 프로세서다.
데스크톱용 그래픽 프로세서 지포스 700 시리즈와 동일한 케플러 아키텍처를 적용했다. 케플러 아키텍처는 엔비디아가 자체 개발한
HPC(슈퍼컴퓨터)용 3D 그래픽 아키텍처로, 프로세서를 병렬로 연결해 보다 빠르게 3D 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3D 그래픽을 보다 실물에 가깝에 표현해줄 때 필요한 셰이더 코어도 192개나 탑재했다. 수천 개가 넘는 셰이더 코어를 탑재한 데스크톱용 그래픽 프로세서와 비교하면 많이 모자라지만, 모바일 프로세서인 점을 감안하면 수준급이다. 최신 그래픽 기술도 아낌없이 도입했다. 테셀레이션, TXAA(Temporal Anti-Aliasing), CUDA5.0, 피직스 등을 품고 있다.
벤치마크 결과도 뛰어나다. GFX 벤치 기준 애플 A7보다 2.5배 이상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언리얼 엔진4와 오픈GL 4.4 등 최신 그래픽 엔진과 라이브러리도 지원한다.
이를 통해 테그라K1은 플레이스테이션3나 엑스박스360과 같은 비디오 게임기보다 뛰어난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다. 두 비디오 게임기는 최신 PC 게임을 HD 해상도, 30프레임으로 실행할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 테그라K1은 못해도 HD급 해상도, 60프레임을 실현할 수 있을 전망이다. 모바일에서 비디오 게임을 능가하는 그래픽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 소모는 5W에 불과하다. 사실 이 부분은 평가하기 미묘하다. 절대적으론 엄청나게 적은 수치지지만, 경쟁 모바일 프로세서보다는 전력 소모가 큰 것이기 때문. 현재 모바일 프로세서는 2~3W의 전력을 소모한다. 전력 소모가 모바일 프로세서치곤 많은 편인 인텔의 4세대 아톰 프로세서 '베이트레일'도 2.5W 내외에 불과하다.
어쩔 수 없다. '그래픽 성능=전력소모'이기 때문이다. 공정 및 아키텍처 최적화로 성능을 유지하면서 전력 소모를 어느 정도 낮출 수 있는 CPU와 달리 GPU는 전력 소모를 줄이면 그래픽 표현 능력도 급감한다. 5W의 전력 소모량은 엔비디아가 뛰어난 그래픽 표현 능력을 유지하면서 낮출 수 있는 한계치였을 것으로 풀이된다.
외부 디스플레이 출력 기능도 뛰어나다. 최대 UHD(3,840x2,160) 해상도, 30프레임까지 출력할 수 있다.
덴버는 이러한 테그라K1을 64비트에 맞게 재설계한 프로세서다. 듀얼(2)코어 프로세서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4~8코어 모바일 프로세서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기존 테그라K1을 바탕으로 코어 하나당 프로세스 처리량을 향상시켰고, 동적 코드 최적화(Dynamic Code Optimization) 기능을 추가했다. 앱 개발자가 따로 다중 코어 최적화를 진행하지 않았더라도 앱 실행 속도가 한층 빨라진다는 것이다.
64비트 운영체제 롤리팝
단순히 하드웨어만 64비트로 올라간다고 해서 64비트의 성능을 체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국내에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노트4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드웨어는 64비트를 지원하지만, 운영체제가 32비트에 머물러 있어 제 성능을 내지 못했다. 넥서스9은 다르다. 운영체제가
64비트를 지원하는 최초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롤리팝'이기 때문이다.
롤리팝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64비트를 지원한다는 것과 매우 간결한 사용자 환경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하드웨어와 운영체제가 직접 소통하는 네이티브(Native) 운영체제가 아니라 중간에 가교 역할을 하는 런타임까지 품고 있는 가상(VM) 운영체제다. 같은 퍼포먼스(성능)를 투자해도 네이티브 운영체제에 비해 실제 성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떤 기기에서도 유연하게 실행된다는 장점이 있다.
원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런타임은 달빅(Dalvik) 가상머신이었다. 유연성은 뛰어나지만, 퍼포먼스를 중간에서 너무 많이 소모한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같은 하드웨어 사양을 가져도 iOS를 탑재한 기기보다 체감상 성능이 많이 떨어졌다. 게다가 달빅 가상머신의 일부분은 오라클의 소유다. 오라클이 이 부분을 문제 삼아 구글에게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이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구글 입장에선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구글은 안드로이드 4.4 킷캣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런타임 ART(Android Run Time)를 공개했다. 런타임을 교체하면 기존 앱들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킷캣에 강제로 적용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으로 남겨뒀다.
롤리팝은 달빅 가상머신을 폐기하고 ART로 런타임을 전면 교체한다. 때문에 기존 앱은 ART에 맞게 수정되어야 한다.
ART는 달빅 가상머신보다 퍼포먼스가 월등하다. 또한 모든 처리 과정이 반드시 런타임을 거쳐야 하는 게 아니고, 호환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일부 처리 과정은 하드웨어와 운영체제가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했다. 런타임을 달빅에서 ART로 교체하면 1.25~ 3.75배까지 성능 향상이 있다고 구글은 강조했다. 때문에 사용자는 운영체제를 롤리팝으로 업그레이드한 것만으로도 새로운 제품을 구매한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ART의 또 다른 특징은 64비트 지원이다. 애플이 A7 프로세서와 iOS7을 발표하면서 이행한 '32비트 > 64비트 전환'을 구글도 이뤄낸 것. 64비트로 전환하면 (앱이 64비트 처리 과정을 지원한다는 전제 조건 하에) 전체적인 성능이 향상된다. 메모리도 4GB 이상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기존 안드로이드는 32비트 기반이라 최고급 사양을 가진 스마트폰(갤럭시노트4, G3 등)도 3GB 메모리가 한계였다.
안드로이드는 실시간 멀티태스킹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메모리를 요구한다. 이제 메모리 제한이 풀림에 따라 멀티태스킹을 한층 더 빠르고 쾌적하게 수행할 수 있다. 어쩌면 모바일 운영체제의 한계를 넘어 PC용 운영체제(윈도, 리눅스, OS X 등) 못지 않은 멀티태스킹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ART는 호환성도 뛰어나다. 기존에 널리 사용된 ARM 프로세서뿐만 아니라 x86 프로세서(인텔), MIPS 프로세서(임베디드 업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프로세서) 등도 완벽히 지원한다. 프로세서에 따른 호환성 문제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롤리팝은 전체 사용자환경도 매우 간결하고 플랫(Flat, 명암을 제거하고 단색 위주로 배치해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는 디자인)하게 변한다. 아이콘과 소프트웨어 버튼 디자인도 이에 맞춰 간결하게 교체된다. 메뉴 화면, 지메일, 크롬 모바일 등 구글이 관여하는 모든 부분이 간결하게 변한다. 구글 마티아스 두아르테(Matias Duarte) 디자인부문 부사장은 자신이 제안한 이 디자인을 재료 디자인(Material design)이라고 부르고 있다.
재료 디자인은 깔끔하며, 일관성있다. 중구난방의 UI 디자인 탓에 '기술만 신경쓰고 디자인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온 구글이 내놓은 비장의 카드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비로소 디자인을 입은 것이다.
구글이 넥서스9을 통해 안드로이드에도 64비트 시대가 열렸음을 알린 만큼 가까운 시일 내에 64비트 앱이 속속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년 출시되는 고사양 스마트폰과 태블릿PC는 4GB 이상의 메모리를 탑재할 가능성이 높다.
16:10이 아니라 4:3
넥서스9 자체로도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기존 안드로이드 태블릿PC는 대부분 16:10 화면비를 채택했다. 넥서스 시리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넥서스9은 다르다. 경쟁 제품인 아이패드처럼 4:3 화면비를 채택했다. 크기 8.9인치 해상도 2,048x1,536(QXGA)의 광시야각 IPS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4:3 화면비는 콘텐츠 재생은 조금 불리하지만, 웹 서핑이나 생산적인 작업(예를 들어 문서 작성)에 적합하다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구글은 넥서스9을 선보이며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 문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함께 시연했다. 안드로이드 태블릿PC가 단순히 소비적인 기기가 아님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넥서스9은 이외에도 2GB 메모리, 16~32GB 저장공간, 6,700mAh 용량의 배터리(완전 충전시 웹 서핑 기준 9시간 30분 사용 가능), 802.11 ac를 지원하는 2x2 미모밴드 와이파이, 흠집에 강한 고릴라 글래스3 등을 탑재했다. 무게는 와이파이 모델 425g LTE 모델 436g이며, 색상은 검은색, 하얀색, 베이지색 세 가지다. 가격은 16GB 와이파이 모델 399달러(약 40만 5,000원), 32GB 와이파이 모델 479달러(약 49만 원), 32GB LTE 모델 599달러(60만 5,000원)이다.
국내에는 10월 말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출시되며, 11월부터 일반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국내 출시 여부 미정, 넥서스6
넥서스6는 모토로라가 제작하는 6인치 크기의 패블릿(스마트폰+태블릿PC)이다. 성능은 갤럭시노트4와 대동소이하다. QHD(2,560x1,440) 해상도의 6인치 AMOLED 디스플레이(선명도 493ppi), 1,300만 화소 후면 카메라, 퀄컴 스냅드래곤 805 쿼드코어 프로세서 등을 탑재했고, 넥서스9과 마찬가지로 안드로이드 5.0 롤리팝으로 실행된다.
슬픈 소식을 하나 전하겠다. 넥서스6의 국내 출시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출시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넥서스6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국내 출시가 결정되면 그 때 다른 기사를 통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구글은 넥서스6와 9을 공개하며 넥서스7을 단종시켰다. 출시된지 오래된 데다, 넥서스9과 가격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가격이 동일한데 성능이 훨씬 뛰어나다면 굳이 옛것을 찾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반면 넥서스5는 계속 판매한다. 넥서스6와 크기 및 가격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 작고 저렴한 스마트폰을 찾는 사용자에겐 넥서스5를, 크고 뛰어난 성능을 갖춘 스마트폰을 찾는 사용자에겐 넥서스6를 공급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넥서스7 사용자가 실망할 것은 없다. 넥서스7을 포함해 4, 5, 10 사용자는 다음 주부터 차례대로 롤리팝 업데이트를 받을 수 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