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너만 알고 있어 사실 난 게임기야, 구글 넥서스 플레이어

강일용 zero@itdonga.com

넥서스9과 넥서스6에 밀려 사용자들의 관심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구글은 15일(현지시각) 에이수스와 함께 제작한 '넥서스 플레이어(Nexus Player)'라는 기기를 공개했다.

넥서스 플레이어는 대체 어떤 제품일까? 애플TV나 구글 크롬캐스트 같은 OTT(콘텐츠 중계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아니다. 넥서스 플레이어는 TV나 모니터와 연결한 후 다양한 앱과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기기다. OTT처럼 다른 스마트 기기의 도움따윈 필요로 하지 않는다.

넥서스 플레이어와 가장 비슷한 기기를 꼽으라면 비디오게임기 소니 플레이스테이션4(PS4)와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원을 들 수 있겠다. 저렴한 비디오 게임기라고 부르는 게 가장 옳은 표현이다.

넥서스 플레이어
넥서스 플레이어
<구글 넥서스 플레이어>

거실 진출 계획의 선봉장, 안드로이드TV

8세대 비디오 게임기인 PS4와 엑스박스 원은 게임이라는 막강한 킬러 콘텐츠(많은 사용자가 관심을 보내는 콘텐츠)를 앞 세워 사용자들의 거실에 침투했다. 그 다음 넷플릭스, MLB, 트위치 등 다양한 앱을 추가해 사용자가 원하는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전략은 주효했다. PS4와 엑스박스 원은 북미에서만 매달 20~50만 대씩 판매되며 사용자의 거실을 장악해나갔다.

OTT도 나름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기를 몰아내고 거실을 장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크롬캐스트만해도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높은 판매량을 보여줬지만, 사용자들이 그리 오래 사용하진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드러냈다. 모바일과 웹을 벗어나 거실로 진출하려는 구글에겐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했다.

그래서 꺼내 든 것이 지난 6월 구글 I/O(개발자 회의)에서 공개한 '안드로이드TV 플랫폼'이다. 안드로이드TV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용 운영체제였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스마트TV에 적합하게 고친 운영체제다. 개발자들은 몇 가지 사용자 환경 최적화만 거치면 안드로이드용 게임과 앱을 안드로이드TV에 손쉽게 이식할 수 있다.

넥서스
플레이어
넥서스 플레이어
<안드로이드TV의 사용자환경>

물론 콘텐츠도 이미 준비된 상태다. 구글 플레이 무비, 유튜브, 넷플릭스 등 다양한 동영상 앱을 실행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속에 들어있는 동영상 콘텐츠도 기본 제공되는 '구글 캐스트' 기능을 통해 안드로이드TV로 전송해 큼직하게 감상할 수 있다.

넥서스 플레이어
넥서스 플레이어

게임도 편리하게 즐길 수 있다. 다른 비디오 게임기처럼 안드로이드TV에 직접 게임 패드를 연결해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게임 패드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엑스박스 스마트글래스와 같다).

안드로이드TV
안드로이드TV
<안드로이드TV로 게임을 즐기는 모습>

음성 인식 기능도 눈에 띈다. 구글의 음성 비서 서비스 '구글 나우' 기반의 음성 인식 기술을 채택해 채널을 바꾸고, 감상할 콘텐츠를 선택하는 등 모든 작업을 음성으로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도 리모콘 대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성공의 열쇠는 가격과 게임

넥서스 플레이어는 이러한 안드로이드TV의 기준(레퍼런스) 기기다. 가장 큰 특징은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다. 99달러(약 10만 5,000원)에 불과하다. 본체, 리모콘(마이크를 탑재해 음성 명령을 내릴 수 있다)을 함께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별매인 게임패드(39.99달러, 약 4만 3,000원)를 함께 구매해도 140달러(약 15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넥서스 플레이어
넥서스 플레이어
<넥서스 플레이어용 게임패드>

어떻게 이렇게 저렴한 가격이 가능한 것일까. 넥서스 플레이어의 사양에 그 답이 있다. 넥서스 플레이어는 4세대 인텔 아톰 프로세서 '베이트레일'을 탑재했다. 베이트레일을 탑재한 안드로이드 태블릿PC에서 화면만 뺀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게임이나 앱 실행, 동영상 감상, 웹 서핑 등 태블릿PC로 할 수 있는 작업은 넥서스 플레이어로도 모두 할 수 있다.

인텔은 베이트레일을 탑재한 기기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모바일 프로세서 업계를 장악한 ARM, 퀄컴 등과 경쟁하기 위해서다. 인텔의 보조금 덕분에 베이트레일 태블릿PC는 20만 원대로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넥서스 플레이어도 마찬가지다. 인텔의 보조금을 바탕으로 99달러까지 가격을 낮추는데 성공했다.

제품 보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가격이다. 구글의 전략은 간결하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넥서스 플레이어를 최대한 많이 보급하려는 것이다. 먼저 시장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앱, 게임 개발자를 끌어들일 계획이다.

사실 넷플릭스, 유투브 등 동영상 콘텐츠는 기기 보급에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스마트폰, 스마트TV, 심지어 경쟁 비디오 게임기까지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는 '차별성 없는 콘텐츠'이기 때문. 당연히 있어야 할 것에 더 가깝다. 크롬캐스트가 높은 판매량에 비해 사용률이 높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크롬캐스트만의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 덕분에 초기 판매량은 높았지만, 계속 사용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TV나 모니터 뒤에 꽂혀있는 '뒷방 늙은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안드로이드TV와 넥서스 플레이어가 성공하려면 차별화된 콘텐츠가 필요하다. 답은 바로 게임이다. 비디오 게임기가 다른 경쟁자를 몰아 내고 거실을 장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구글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넥서스 플레이어에 제대로 된 게임 콘트롤러를 연결할 수 있는 이유이며, 6월부터 개발자 도구를 공개하며 게임 개발자들의 안드로이드TV 참여를 독려하는 이유다.

물론 넥서스 플레이어의 성능은 8세대 게임기보다 한참 떨어진다. 6세대와 7세대 게임기의 중간쯤 된다. 그래픽이 뛰어난 게임을 원하는 하드코어 게이머들을 만족시키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시장을 형성하고, 게임 개발자들을 지속적으로 끌어 들인다면 안드로이드TV와 넥서스 플레이어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

10년 전부터 비디오 게임기 업계는 소니, 닌텐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삼파전으로 굳어 있는 상태다. 구글의 안드로이드TV가 이 구도에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넥서스 플레이어
넥서스 플레이어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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