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6, 6+ 속에 숨어있는 세 가지 혁신
마침내 올 것이 왔다. 더 커지고, 더 얇아지고, 더 빨라진 새로운 아이폰이.
애플이 9일(현지시각) 미국 쿠퍼티노 플린트 센터에서 신제품 발표행사를 개최하고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를 공개했다. 처음 제품이 공개되자 사용자들은 실망했다. 더 커진 디스플레이 외에는 새롭다고 할만한 게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 사실 큼지막한 디스플레이조차 패블릿의 본고장인 한국의 사용자들에겐 식상한 변화다. 일부 매체와 사용자들은 애플에게 더 이상 혁신은 없으며, 남은 것은 화려한 마케팅뿐이라고 혹평하기까지 했다. 정녕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는 시시한 제품에 불과한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렇지 않다.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는 흥미로운 변화를 품고 있다. 관점을 달리하면 충분히 혁신이라고 부를만하다. 단지 언론과 사용자의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에 숨어 있는 세 가지 혁신을 살펴보자.
벤치마크에 집착하는 그들을 비웃다, 애플 A8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는 64비트를 지원하고 20나노 공정으로 제작된 애플 A8 모바일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A8은 널리 사용되는 ARMv8 아키텍처를 iOS에 맞게 뜯어 고친 사이클론 아키텍처를 품고 있는 모바일 프로세서다. 같은 사이클론 아키텍처로 제작된 전작 애플 A7 모바일 프로세서(아이폰5s에 탑재)의 경우 듀얼코어 프로세서임에도 불구하고 성능면에서 동세대 쿼드코어 프로세서(스냅드래곤), 옥타코어 프로세서(엑시노스)를 압도했다. A8은 이러한 A7조차 뛰어 넘었다. 애플은 A8을 소개하며 A7보다 성능이 25% 향상됐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A7보다 개별 코어의 성능이 뛰어난 모바일 프로세서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A8 역시 현존 최고의 모바일 프로세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모든 코어를 합칠 경우 A7보다 성능이 뛰어난 모바일 프로세서는 제법 많다. 인텔 아톰 베이트레일, 퀄컴 스냅드래곤805, 삼성전자 엑시노스5433 등이다.)
이렇게 성능이 향상됐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세서 다이 사이즈(크기)는 13% 줄어들었다. 때문에 제품을 한층 여유있게 설계할 수 있다. 막강한 그래픽 프로세서 성능에도 불구하고 너무 거대한 프로세서 다이 사이즈탓에 스마트폰용으로 활용할 수 없는 경쟁 64비트 모바일 프로세서 '엔비디아 테그라K1'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흥미롭게도 64비트 운영체제 안드로이드L의 레퍼런스 프로세서는 테그라K1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진정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A8은 '스로틀링'이 없는 모바일 프로세서라는 것이다. 스로틀링이란 발열을 줄이기 위해 프로세서와 그래픽 프로세서의 성능을 강제로 제한하는 기능이다. 대부분의 모바일 프로세서 역시 이 스로틀링이 적용돼 있다. 스마트폰을 켜고 처음 몇 분 동안은 최대의 성능으로 제품을 활용할 수 있으나, 3D 게임 등 고사양을 요구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 성능이 급격히 하락한다. 때문에 스마트폰의 실제 체감 성능은 벤치마크 결과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벤치마크 앱의 경우 길어야 1~2분 정도만 스마트폰을 혹사하니 최대 성능으로 측정된다. 반면 실제로 고사양 작업을 수행하면 5분만 경과해도 성능이 하락하고, 20분 정도 지나면 최대 성능의 절반 정도만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A8은 다르다. 애플은 A8을 공개하며 20분 동안 연속으로 혹사해도 실제 성능의 변화가 전혀 없음을 강조했다. 무분별한 클록(속도) 뻥튀기로 벤치마크 결과만 잘 나오고, 실제 성능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경쟁 모바일 프로세서들을 조소한 것이다.
더욱 빠르고 아름다운 게임을, 메탈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의 그래픽 프로세서가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단지 A7(이매지네이션 파워VR G6430)보다 성능이 50% 향상됐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사실 진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메탈 렌더링 API(Metal Rendering API )'다. 지난 6월 열린 WWDC 2014(애플 개발자 회의)에서 공개된 이 API가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에 본격적으로 적용된다.
메탈은 개발사가 보다 쉽고 간단하게 2D/3D 게임을 제작할 수 있도록 자체 개발한 그래픽 라이브러리다. 그래픽 라이브러리란 개발자가 쉽고 간단하게 2D/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다이렉트X, 오픈GL, 멘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메탈은 드로우콜(draw call) 속도를 '오픈GL ES'보다 10배 향상시켜 뛰어난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고(비교한 오픈GL ES의 버전은 미공개), 스프라이트 킷 및 장면 킷 등 다양한 애셋(예제)을 제공해 캐주얼 게임도 간편하게 제작할 수 있다. 애플은 발표행사에서 인디 게임개발사 슈퍼이블메가콥사가 메탈을 활용해 개발한 AOS 게임 '베인글로리'를 시연하며, 스마트폰에서도 비디오게임기나 PC 못지 않은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EA, 게임로프트, 에픽게임즈, 로비오스타, 유비소프트, 유니티 등 게임 개발사 및 게임 엔진 개발사와 협력해 메탈이 적용된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메탈은 애플 혼자서 만든 게 아니다. 개발자들의 접근성을 위해 업계의 거물과 협력했다. 바로 언리얼 엔진으로 유명한 에픽게임즈다. 최신 언리얼 엔진(4.3)에는 오픈GL ES뿐만 아니라 메탈도 포함돼 있다. 차세대 유니티 엔진에도 메탈이 추가될 예정이다. 국내외 모바일 게임 개발사들이 언리얼 엔진과 유니티 엔진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만큼 메탈의 보급 속도는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모바일 게임 개발에 사용되는 그래픽 라이브러리는 크로노스 그룹이 개발한 오픈GL ES가 대세였다. 하지만 애플이 직접 메탈을 공개함에 따라 두 라이브러리간 경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A7 모바일 프로세서는 오픈GL ES 2.0까지만 지원하고 오픈GL ES 3.0 이후 버전을 지원하지 않았다. 이는 A8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메탈 보급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메탈이 애플의 AP 'A 시리즈'에 최적화된 그래픽 라이브러리인만큼 'iOS 게임 개발은 메탈, 안드로이드 게임 개발은 오픈GL ES' 같은 형태로 양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완벽한 색감을 향해, 듀얼 도메인 픽셀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가 광시야각 IPS 디스플레이를 채택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이폰4부터 내려온 유구한(?) 전통이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르다. 기존 IPS 디스플레이는 '싱글 도메인 픽셀'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적색(R), 녹색(G), 청색(B). 세 가지 보조 화소(Sub-Pixel)가 세로 방향으로 일렬로 배치돼 하나의 온전한 화소(RGB)를 구성하는 형태다. 모니터나 스마트폰의 화면을 확대 촬영하면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싱글 도메인 픽셀 IPS
디스플레이, 출처: 아난드텍>
반면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는 '듀얼 도메인 픽셀'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보조 화소를 일렬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배치했다. 왜 이런 독특한 형태를 취한걸까. 서브 픽셀을 지그재그로 배치하면 색재현력이 향상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면을 측면에서 바라봐도 색상이 왜곡되지 않는다. 기존 IPS 디스플레이 역시 측면에서 바라봐도 색상이 왜곡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눈에 잘 띄지 않는 미세한 색감 변화가 나타난다. 눈이 민감한 사용자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듀얼 도메인 픽셀 IPS
디스플레이, 출처: 아난드텍>
듀얼 도메인 픽셀은 이러한 기존 IPS 디스플레이(싱글 도메인 픽셀)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방식이다. 보조 화소가 서로 다른 방향의 광학 투사를 가지게 되어, 시야각이 달라지더라도 색상이나 명암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실제로 IPS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타사의 최신 스마트폰(예를 들어 LG G3) 역시 듀얼 도메인 픽셀을 채택하고 있다.
과거에는 듀얼 도메인 픽셀을 채택하면 검은색이 짙은 보라색으로 보인다고 지적 받았으나, 기술의 발달로 이제 검은색 역시 정상적으로 보인다. LG 디스플레이에서 제작한 듀얼 도메인 픽셀 IPS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LG G3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의 화면도 LG 디스플레이가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