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게임이 인류의 뇌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나진희 najin@itdonga.com

'앵그리버드(Angry Bird)'. 새를 날려 돼지를 무너뜨리는 이 캐쥬얼 게임은 전세계적으로 무척 사랑받았다. 각 플레이어의 게임 시간을 합쳤을 때 하루에만 300억 분이 플레이된 적도 있단다. 무려 600년의 시간이다.

만약 사람들이 앵그리버드가 아니라 '아이와이어(eye wire)' 게임을 하는데 시간을 투자했다면? 인류의 뇌 지도 완성의 날은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뇌 연구 권위자 세바스찬 승 교수가 주도하고 있는 아이와이어는 참여자들이 게임을 해 뇌의 지도를 밝혀가는 거대 프로젝트다. 전세계 100여 개국의 14만 명 이상의 참여자가 이 게임을 플레이해 망막 신경 지도를 완성해가고 있다.

KT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
KT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

KT가 '커넥톰(Connectome, 뇌의 지도)'을 완성하는 아이와이어 프로젝트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일명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Countdown to Neuropia)'다. KT는 12일 승 교수(프린스턴 대학교)와 협력 조인식을 진행했다. 국내 사용자가 아이와이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게임 한글화, 홍보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참고로 KT는 세계 최초로 아이와이어에 협력하는 기업이다.

커넥톰? 뇌의 지도!

은하계에는 약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그런데 뇌에 있는 '뉴런(neuron, 신경세포)의 수도 1,000억 개다. 괜히 우리의 머릿속을 우주에 비유하는 게 아니다. 거기다 하나의 뉴런은 약 1,000개 정도의 '시냅스(synapse, 뉴런과 다른 뉴런이 연결되는 부분)'를 만든다. 전체 뉴런의 시냅스는 약 100조 개가 된다.

뉴런과 뉴런이 연결되는 시냅스를 이해하면 우리 뇌의 회로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알 수 있다. 승 교수는 자신의 휴대폰을 손에 들고 이 과정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 사람들은 '이 휴대폰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이 속에서 전자 회로가 어떻게 작용해 휴대폰이 작동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뇌의 지도는 전자회로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응한다.

지금까지의 의학은 MRI 등을 통해 '화가 나면 뇌의 이 부분이 활성화된다' 정도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뇌의 지도를 밝혀내면 마치 컴퓨터 회로의 작동법처럼 뇌가 '어떻게(How)' 작용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치매, 우울증, 격리 불안, 자폐증 등 여러 신경학적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색칠공부 게임을 하면 뇌의 지도가 완성된다

아이와이어는 인간과 유사하다고 알려진 쥐의 망막(Eye)에 연결된 뇌 신경 세포들의 연결상태(Wire)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컴퓨터가 파악한 연결 상태를 토대로 게임 참여자들이 오류를 찾는 역할을 한다. 이 프로젝트의 게임 참여자를 '시민 과학자(citizen scientist)'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승 교수는 영국의 과학 전문지 네이처(Nature)에 뇌모방 전자회로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그 공조자로 아이와이어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KT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
KT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

아이와이어 게임은 무척 쉽다. 어렸을 때 하던 색칠 공부를 떠올리면 된다. 망막 사진의 특정 부분을 따라가며 색칠을 계속 하면 이것이 3D 큐브 안에서 연결된다. 한겹씩 색칠한 것이 겹쳐져 뉴런의 줄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수많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한 것이 모여 전체 커넥톰을 그린다. 게임을 수단으로 '집단지성'이 발현한다. 한 명이 실수해도 다른 플레이어들의 결과와 합쳐지면 오류가 보완되므로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정확성은 점점 올라간다.

솔직히 게임의 진행 방식이 그다지 흥미로운 편은 아니다. 승 교수의 말대로 '누군가에게 돈을 줄 테니 계속 이를 반복하라'고 했다면 금방 질렸을 만하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이 게임에 빠져들었을까? 승 교수는 이에 대해 '경쟁심'을 꼽았다. 게임을 진행하면 포인트를 주는데 게임이 끝나면 이 포인트가 많은 순서대로 순위를 보여준다. 거기다 자신이 한 게임이 신경과학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뿌듯함도 덤으로 느낄 수 있다.

KT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
KT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

실제 이날 행사에서 KT 황창규 회장도 직접 아이와이어 게임을 플레이했다. 승 교수의 조언을 들으며 색을 칠한 후 'Finish' 버튼을 누르자 소정의 포인트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인 참여하면 완성 속도 2배 빨라질 것"

아이와이어의 단기 목표는 망막의 특정 구역, '카운트다운 존'의 348개 뉴런 구조를 밝히는 것이다. 지난 2012년 12월 게임이 나온 후 약 1년 9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목표의 약 24%, 즉 85개의 구조가 밝혀졌다. 일주일에 약 3개꼴이다. 이 속도라면 앞으로 2년 후에야 전체 348개가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KT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
KT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

국내 사용자들이 아이와이어에 참여한다면? KT와 승 교수는 단 1년이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는 '열심히'와 '빨리빨리' 정신이 있기 때문.

전체 카운트다운존을 완성하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뇌는 미지의 영역이다. 무엇이 있을지는 단순히 추측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완성함으로써 아무도 몰랐던 새로운 뉴런의 구조가 발견될 수도 있다. 뉴런 종류에 대한 연구는 의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망막의 특정 종류 뉴런이 문제라 실명을 하는 경우라면 그 뉴런만 치료하는 유전자 테라피를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KT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
KT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

승 교수는 "우주 비행사들은 우주를 탐험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우리는 지구 밖이 아닌 우리가 모두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우주를 연구하자. 뇌의 탐험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전이라 믿는다"며, "당신이 어디에 있든 그 누구든 목숨을 걸지 않고도 이 모험에 동참할 수 있다"며 참여를 독려했다.

기자의 눈으로 본 행사

KT의 아이와이어 프로젝트 협력은 꽤 이례적으로 보일 수 있다. 최근 수많은 ICT 기업이 헬스케어 분야에 본격 진출하고 있지만 '인류' 단위까지 갈 정도로 큰 목표를 내걸지는 않았다. 단순히 병원 진료나 건강 관리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ICT 기술을 도입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정도였다. 당장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기초 과학 분야에 발을 들이는 것은 큰 위험 부담을 안는 것이기 때문.

KT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
KT 카운트다운 투 뉴로피아

하지만 KT는 역시 노련했다. "ICT 기술을 활용해 인류 행복 증진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황창규 회장의 말처럼 커넥톰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뇌의 지도 완성 프로젝트에 세계 최초로 협력한 기업'으로서의 평가를 얻는다. 만약 프로젝트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KT는 별로 잃을 것이 없다.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 한글화'나 '대학생 홍보단' 정도 수준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성공한다면 그 보상은 대단하고, 실패한다 해도 손해는 크지 않다.

어찌 됐건 KT의 이번 협력으로 아이와이어가 '국내 사용자의 참여'라는 큰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아이와이어 게임은 공식 홈페이지(https://www.eyewire.org/signup)에서 해볼 수 있으며, 3D 그래픽 구현 등을 위해 구글 크롬 웹브라우저를 통해 접속해야 한다.

글 / IT동아 나진희(najin@itdonga.com)

IT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