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개인용 슈퍼 컴퓨터 '젯슨TK1' 공개

강일용 zero@itdonga.com

지난 23일 엔비디아가 국내 임베디드 HW 개발자들을 한 군데로 불러모았다. 자사의 모바일 프로세서를 활용한 신형 임베디드 HW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이날 공개한 제품은 크게 2가지다. 엔비디아의 최신 모바일 프로세서 '테그라K1(Tegra K1, TK1)'과 '젯슨TK1(Jetson TK1)'이다.

엔비디아 젯슨TK1
엔비디아 젯슨TK1

강력한 그래픽 처리 능력으로 증강현실을 노린다

테그라K1은 지난 CES 2014에서 엔비디아가 공개한 모바일 프로세서다. ARM 코텍스 A15 공정을 기반으로 제작됐고, 32/64비트를 모두 지원한다. 퀄컴 스냅드래곤800, 애플 A7, 삼성전자 엑시노스5와 유사한 수준의 모바일 프로세서다.

하지만 테그라K1만의 강점도 존재한다. 엔비디아가 어떤 회사던가. 그래픽 프로세서 '지포스'로 유명한 회사다. 테그라K1도 마찬가지다. 3D 그래픽 처리 능력에 중점을 둔 모바일 프로세서다. 데스크톱용 그래픽 프로세서 지포스 700 시리즈와 동일한 케플러 아키텍처를 적용했다. 케플러 아키텍처는 엔비디아가 자체 개발한 HPC(슈퍼컴퓨터)용 3D 그래픽 아키텍처로, 프로세서를 병렬로 연결해 보다 빠르게 3D 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테그라 K1
테그라 K1

여기에 3D 그래픽을 보다 실물에 가깝에 표현해줄 때 필요한 셰이더 코어도 192개나 탑재했다. 수천 개가 넘는 셰이더 코어를 탑재한 데스크톱용 그래픽 프로세서와 비교하면 많이 모자라지만, 모바일 프로세서인 점을 감안하면 수준급이다. 최신 그래픽 기술도 아낌없이 도입했다. 테셀레이션, TXAA(Temporal Anti-Aliasing), CUDA5.0, 피직스 등이 적용돼 있다.

벤치마크 결과도 뛰어나다. GFX 벤치 기준 애플 A7보다 2.5배 이상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언리얼 엔진4와 오픈GL 4.4 등 최신 그래픽 엔진과 라이브러리도 지원한다.

이를 통해 테그라K1은 플레이스테이션3나 엑스박스360과 같은 비디오 게임기보다 뛰어난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다. 두 비디오 게임기는 최신 PC 게임을 HD 해상도, 30프레임으로 실행할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 테그라K1은 못해도 HD급 해상도, 60프레임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 소모는 5W에 불과하다. 사실 이 부분은 평가하기 미묘하다. 절대적으론 엄청나게 적은 수치지지만, 경쟁 모바일 프로세서보다는 전력 소모가 큰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모바일 프로세서는 2~3W의 전력을 소모한다. 전력 소모가 모바일 프로세서치곤 많은 편인 인텔의 4세대 아톰 프로세서 '베이트레일'도 2.5W 내외에 불과하다.

어쩔 수 없다. '그래픽 성능=전력소모'이기 때문이다. 공정 및 아키텍처 최적화로 성능을 유지하면서 전력 소모를 어느 정도 낮출 수 있는 CPU와 달리 GPU는 전력 소모를 줄이면 그래픽 표현 능력도 급감한다. 5W의 전력 소모량은 엔비디아가 뛰어난 그래픽 표현 능력을 유지하면서 낮출 수 있는 한계치였을 것으로 풀이된다.

외부 디스플레이 출력 기능도 뛰어나다. 최대 UHD(3,840x2,160) 해상도, 30프레임까지 출력할 수 있다. 쿼드코어 프로세서에 저전력 코어를 하나 더 추가한 펜타코어 프로세서인 점도 눈에 띈다. 테그라K1은 코텍스 A15 코어 4개와 코텍스 A7 코어 1개로 구성돼 있다.

테크라K1은 다른 모바일 프로세서와는 다른 분야를 노린다. 스마트폰 대신 태블릿PC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위주로 공급한다. 퀄컴, 미디어텍, 애플, 삼성전자 등 다른 모바일 프로세서 개발사와 직접 겨루기 보다 틈새시장 공략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특히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위주로 공급하는 점이 흥미롭다. 지난 구글 I/O 2014에서 엔비디아는 열린 자동차 연합(OAA)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테그라K1을 널리 보급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핵심 기술은 '테그라K1 for ADAS'다. 테그라K1의 강력한 영상, 카메라 처리 기능을 활용하는 증강현실 기술이다. 내비게이션과 차량 전면 유리에 증강현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표지판이 나타나면 그 주위에 노란색 선이 나타나고, 길을 건너는 보행자가 나타나면 빨간색 선으로 강조한다. 물론 소리로도 경고를 보낸다. 찾아가야 할 길을 3D 그래픽으로 자세하게 안내해주는 기능도 있다. 안전 운전과 빠른 길 찾기에 초점을 맞춘 미래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다.

이같은 기술을 바탕으로 테그라K1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20개 이상의 차량 브랜드가 테그라K1을 선택했다. 테크라K1이 내장된 차량은 현재 450만 대 정도 출고된 상태다.

에픽 팀 스위니 최고경영자는 "PC 또는 고사양 비디오 게임기에서 실행되는 그 어떤 게임도 테그라K1에서 실행할 수 있다"며, "모바일에선 3~4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게 이제 가능하다"고 테그라K1을 접한 소감을 밝혔다.

"씬 캐년 게 섰거라" 하이브리드 임베디드 HW, 젯슨 TK1

젯슨TK1은 아두이노, 인텔 씬 캐년 및 에디슨 등과 유사한 임베디드 HW다. 리눅스나 안드로이드로 실행되는 초소형 컴퓨터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쉽겠다. 실제로 젯슨TK1의 구조는 컴퓨터와 동일하다(유사하다가 아니다). 단지 프로세서로 테그라K1을 탑재했을 뿐이다.

젯슨TK1은 지금까지 등장한 임베디드 HW 가운데 가장 완성품에 가깝다. 아두이노의 경우 개발자 마음대로 자유롭게 주무를 수 있지만, 그만큼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 손이 많이 간다. 씬 캐년은 젯슨TK1과 가장 유사한 기계이지만, 저장장치와 운영체제가 빠져 있다. 에디슨은 그 특징 상 아두이노에 가깝다. 개발자가 아무생각 없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이란 얘기다.

엔비디아 젯슨TK1
엔비디아 젯슨TK1
<젯슨TK1>

젯슨TK1의 크기는 가로, 세로 5인치(12.5cm)에 불과하다. 초소형 PC 제작에 사용되는 미니 ITX 규격의 메인보드(가로, 세로 17cm)보다도 작다. 그럼에도 컴퓨터로서 필요한건 다 들어 있다. 프로세서와 그래픽 프로세서, 동영상 가속기, 입출력 콘트롤러는 테그라K1에 내장돼 있다. 여기에 2GB DDR3L(메모리), 16GB eMMC(저장공간), USB 단자 2개(2.0x1. 3.0x1), 미니 PCI 익스프레스 단자, 기가비트 이더넷 단자, HDMI, SATA, 마이크 및 헤드셋 단자, SD 카드 슬롯, 추가 기기 연결을 위한 익스펜션 단자 등을 갖추고 있다. 퍼포먼스 향상을 위해 제품에는 팬이 기본 설치돼 있지만, 무소음 컴퓨터를 구현하기 위해 이를 떼어내고 방열 팬을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엔비디아 젯슨TK1
엔비디아 젯슨TK1
<젯슨TK1의 구조>

제품에 전원을 연결하면 '리눅스 포 테그라'가 실행된다. 리눅스 우분투에 엔비디아 드라이버를 내장한 운영체제다. 다양한 임베디드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도록 데비앙 리눅스 등 다양한 리눅스 운영체제를 설치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설치하는 것은 아직 지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설치를 금지한 것은 아니다. 이미 젯슨TK1 커뮤니티에선 안드로이드를 설치할 수 있도록 포팅을 진행 중이다.

젯슨TK1의 용도는 다양하다. 단순히 개인 개발자가 가지고 노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고, 증강현실, 로봇, 자동차, 의학(의료용 기기), 국방(UAV) 등에 사용할 수도 있다. 엔비디아는 젯슨TK1을 활용한 사례로 두 가지 제품을 공개했다. 첫 번째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인식하고 이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는 애완용 로봇 '슈퍼컴퓨터 온 레그'다. 엔비디아 내부의 개발자가 남는 시간에 취미 삼아 제작한 로봇이다. 두 번째는 GE에서 제작한 프로젝트 터보다.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험지에 다가가 다양한 작업(예를 들어 지뢰 제거)을 수행하는 소형 로봇이다.

젯슨TK1은 미국 현지에서 개발자킷을 192달러(약 20만 원)에 판매했고, 곧 국내에도 출시할 예정이다.

엔비디아 젯슨TK1
엔비디아 젯슨TK1

엔비디아는 젯슨TK1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이루려는 걸까. 엔비디아는 젯슨TK1을 개인용 슈퍼 컴퓨터라고 표현했다. 물론 실제 성능은 슈퍼 컴퓨터는 커녕 PC보다도 떨어진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와 대동소이하다(아이러니하게도 이 정도만 해도 사람을 달로 쏘아 보내기엔 충분한 성능이다). 하지만 젯슨TK1은 병렬 컴퓨팅을 이용해 그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다. 엔비디아의 병렬 컴퓨팅 기술 CUDA를 이용해서다.

CUDA는 수많은 그래픽 프로세서를 병렬로 연결해 복잡한 3D 그래픽을 빠르게 처리하는 기술이다. 전세계 8,000여개의 기관에서 CUDA 병렬 컴퓨팅을 사용하고 있고, CUDA를 지원하는 GPU만 해도 전세계에 5억 2,200만 개 이상 존재한다. 그린 컴퓨팅 순위 100위 이내의 HPC 대부분이 CUDA를 이용해 3D 그래픽 및 부동소수점 연산을 처리하고 있다.

젯슨TK1 역시 CUDA 5.0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수많은 젯슨TK1을 연결하면 개인도 슈퍼 컴퓨터급 성능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엔비디아 측의 설명이다.

엔비디아는 구글 이미지 검색을 예로 들면서 GPU의 활용도가 넓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과거 슈퍼컴퓨터는 정수연산과 이에 따른 CPU 기능만 뛰어나면 됐지만, 데이터가 보다 복잡해지고 화려해지면서 부동소수점 연산과 이에 따른 GPU 기능도 함께 뛰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헤테로지니어스 컴퓨팅이 보다 고도화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HPC 또는 서버의 구조가 x86 또는 파워PC 두 가지로 나뉜 기존 형태에서 벗어나 x86 CPU + CUDA GPU(테슬라K 시리즈를 의미한다), 파워PC CPU + CUDA GPU, ARM CPU + CUDA GPU 등의 형태로 다양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엔비디아는 이러한 사례로 시라스케일의 2대의 ARM 프로세서 + 2대의 테슬라K 그래픽 프로세서로 구성된 블레이드 서버와 IBM의 파워PC 8 프로세서+ 테슬라K 그래픽 프로세서로 구성된 메인프레임을 들었다.

태블릿PC, 임베디드HW에 주력하겠다는 신호

눈이 빙빙 돌아갈 정도로 어려운 용어가 가득하다 보니 평소 프로세서, 그래픽 프로세서 시장에 관심이 있던 사용자를 제외하면 기사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때문에 요약 및 분석을 조금 덧붙인다. 모바일 프로세서는 ARM의 설계를 바탕으로 각 제조사가 자사의 기술을 더해 완성한다. 때문에 각자 독특한 특징을 보유하고 있다. 퀄컴 스냅드래곤의 경우 일부 모델을 제외하고 데이터 통신칩셋이 일체화(원칩)되어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제작할 때 따로 데이터 통신칩셋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퀄컴이 본디 통신칩셋을 설계, 생산하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엑시노스의 경우 모바일DRAM(메모리)이 일체화되어 있다. 삼성전자가 전세계 제일의 DRAM 생산 회사이기 때문.

이제 테그라의 그래픽 처리 능력이 뛰어난 것이 이해된다. 지포스 등을 개발하며 축적된 그래픽 기술을 활용해 모바일 프로세서 가운데 가장 그래픽 처리 능력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스마트폰은 이만큼 뛰어난 그래픽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차라리 퀄컴의 원칩 기술이 훨씬 요긴하다. 게다가 그래픽 처리 능력을 강화하다 보니 쓸데없이 전력 소모량과 다이 사이즈(프로세서의 크기)가 커졌다. 스마트폰용으론 불합격이다.

그래서 엔비디아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태블릿PC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전력 소모량과 다이 사이즈가 조금 커도 상관 없는 곳, 그러면서 뛰어난 그래픽 처리 능력이 필요한 곳이다. 여기에 완성된 임베디드HW를 보급해 임베디드HW 시장까지 발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주요 시장에서 경쟁사와 힘겹게 싸우지 않고 틈새 시장을 장악하려는 엔비디아의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테그라K1과 젯셋TK1의 성패를 지켜보면 알 수 있겠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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