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저작권의 목적은 '처벌'이 아닌 '상생'입니다

안수영 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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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에는 유독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안 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경기 침체와 안녕하지 못한 현실도 이유이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이 사라진 것도 원인으로 지적됐습니다. 왜 크리스마스인데 캐럴이 들리지 않았을까요? 바로 저작권 때문입니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대형 매장이나 옥외에서 음악을 사용할 경우 음악 사용료와 공연 보상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에 매장들이 거액의 금액 지불에 부담을 느껴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지 않은 거죠.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은 분분했습니다. "어쩔 수 없다. 음악가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쉽지만 저작권은 지켜야 한다"라는 의견을 표명한 네티즌들이 있었습니다. 한편, "저작권을 지나치게 강요하다 보면 결국 아무도 음악을 듣지 않을 것이다. 마트를 가도 시식을 하고 사는데, 음악을 들어야 구입할 것 아닌가", "음악이라는 게 듣기 위해 만드는 것인데… 각박한 현실이다", "매장에서 돈 주고 산 CD를 재생할 텐데 사용료를 또 내야 하나. 오히려 매장에서 틀면 홍보 효과가 있는 것 아니냐"라는 의견을 낸 네티즌들도 많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작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작권은 왜 있을까요? 흔히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이 일반적인데요, 실은 추가적인 의미가 더 있습니다. 저작권의 궁극적인 목표는 '상생을 통한 산업 발전'입니다. 창작자뿐만 아니라 사용자, 콘텐츠까지 모두 보호했을 때 비로소 문화 산업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 저작권 기술 콘퍼런스 정홍택 조직위원장은 2012년 9월 IT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저작권의 개념은 3가지다. 첫 번째는 창작자 보호, 두 번째는 사용자 보호, 세 번째는 콘텐츠 보호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지켜져야 한다. 사용자를 보호하지 못하면 사용자들이 저작권법 위반을 우려해 콘텐츠 사용을 꺼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창작자와 콘텐츠를 보호하지 못하면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이 사라진다. 그러면 콘텐츠 산업은 죽고 만다".

이처럼 상생을 위한 저작권 준수에 힘쓰는 동시에 저작권에 대한 개념을 산업 발전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제도, 법안은 아직 미비한 것이 현실입니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저작권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이와 같은 논쟁과 갈등을 쉽게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창작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생존권 사이, SW 저작권

현재 저작권 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불거지는 영역 중 하나가 소프트웨어(이하 SW)입니다. 불법 복제한 SW를 사용하는 것은 현행 저작권법에 어긋납니다. 저작권의 궁극적 목표인 산업 발전을 고려한다면 사용자는 정당하게 SW 사용권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야 SW를 만든 창작자와 SW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불법 SW를 사용한다면 창작자는 정당한 수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힘 빠지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어떤 창작자도 SW를 개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법 SW 사용자들을 모두 단죄한다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문제가 벌어집니다. 불법 SW를 쓰는 업체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소규모 사업장입니다. IT 기업에 CAD, CAM, MAYA, 3D MAX 등은 필수입니다. 해당 SW를 쓰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 거죠. 문제는 정품 가격이 몇 백~천만 원에 호가할 만큼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영세 업체들은 이런 비용을 마련할 여력이 없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불법 SW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이런 업체들을 모두 단속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해당 SW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IT 산업이 침체될 것입니다.

SW는 음악이나 영화와 달리 엔터테인먼트형 콘텐츠가 아닌 산업 생산도구입니다. 그래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영세 업체는 봐줘야 한다'는 감성팔이가 아닙니다. 영세 업체들이 모두 무너진다면 산업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자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작권은 사용자도 보호해야 합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충분히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와 같은 대안은 어떨까요. 가령 영세 업체들이 필요로 하는 SW를 무상으로 제공하되, 해당 업체들이 해당 SW로 개발한 콘텐츠로 이익을 볼 경우 수익의 일부를 저작권 비용으로 천천히 갚아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는 정부 차원에서 스타트업이 SW 라이선스를 걱정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창조경제 아닐까 합니다. 저작권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되려면 '정품 쓰세요'라는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사회적 제도와 지원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물론 사용자들도 불법 SW 사용을 근절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령 사무용 SW가 필요하다면 '오픈 오피스'와 같은 무료 SW로 대체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대안을 충분히 따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 복제한 SW를 쓴다면 잘못이겠지요. 또한, SW 사용권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공짜라는 이유만으로 불법 SW를 쓴다면 단속되어야 합니다. SW도 노력의 산물인데 이를 가벼이 여기는 태도도 근절되어야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물건(하드웨어)은 돈 주고 구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유독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소프트웨어)에는 돈을 지불하기 아깝다며 불법 다운로드하는 것은 이중적이거니와, 동시에 창작자의 설 자리를 짓밟는 것이니까요.

블로그에 연예인 사진 올렸다가 합의금 폭탄?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제도가 아직 온전히 자리잡지 못하다 보니, 저작권 침해를 둘러싼 분쟁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영세 사업자나 블로거들을 대상으로 한 저작권 소송 문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A씨는 모 법무법인으로부터 유명 연예인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해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내용 증명을 받았다. 알고 보니 A씨가 5년 전 블로그에 예쁜 헤어스타일의 연예인 사진을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해당 법무법인은 소송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1,000만 원에 합의를 보자고 제시했다.

최근 일부 법무법인들이 '퍼블리시티권(초상 사용권)'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유명인의 얼굴이나 이름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로, 현재 국내에는 법적 근거나 처벌 규정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최근 이런 허점을 노리고 합의금을 요구하는 법무법인들이 있습니다. 연예기획사도 부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보니, 이 같은 사례는 더욱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은 판례도 있지만, 이를 인정한 판례도 있어 논란은 여전합니다.

이와 같은 사례만 보더라도 저작권 자체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저작권이라 하면 '산업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개념보다는 '어기면 처벌받는다'는 개념이 너무나 강합니다. 어쩌면 이런 분위기를 악용한 것이 위와 같은 법무법인 사례라고 분석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저작권'을 생각할 때 처벌보다는 '산업 발전과 상생을 위한 것'이라는 개념을 먼저 떠올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면, 이와 같은 법무법인의 악용 사례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사용자가 사진을 올릴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목소리로 맞설 수 있었을 테니까요.

더불어 저작권에 대한 각종 법안들이 하루빨리 마련되고,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어디 불안해서 블로그에 사진 한 장 올릴 수가 있을까요. 또한, 이런 것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블로그 포스팅이라는 문화가 활성화되기 어렵겠죠.

저작권의 참된 의미 새겨보기

인간이 법을 만드는 이유는 사회 질서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만큼 법을 준수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법 자체가 인간을 앞서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인간을 보호하기보다는 법 자체를 우선시하고, 상황을 고려하기보다는 처벌을 하는 데 급급하게 되니까요.

저작권, 물론 중요합니다. 다만 창작자, 사용자, 콘텐츠, 그리고 산업 발전을 모두 보호하고 아우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균형이 틀어지면 생태계가 무너집니다.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고 저작권법이라는 잣대를 먼저 들이댄다면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 그리고 콘텐츠를 이용하는 문화는 점점 사라질 것입니다. 이처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법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니까요. 물론, 사용자도 창작자를 존중하고 콘텐츠에 정당한 대가를 치른다는 마음가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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