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뱀부 패드, 마우스를 대체할까요?
여기 대단한 야심을 품고 세상에 나온 제품이 있다. 태블릿 전문 기업 와콤이 내놓은 '뱀부 패드'가 그것이다. 뱀부 패드는 터치펜을 포함한 터치 패드다. 뱀부 패드는 '마우스를 대체하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전세계 PC 사용자 손에 마우스 대신 뱀부 패드가 있을 테니 그 판매량이 어마어마하리라.
뱀부 패드는 노트북의 터치 패드 부분을 따다가 확대한 모양새인데 오른쪽 모서리에 터치펜을 수납한다. 와콤은 뱀부 패드를 태블릿이 아닌 터치 패드로 분류한다. 참고로 뱀부 패드의 터치펜으로 정밀한 그림을 그릴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것이 좋다. 뱀부 패드는 마우스처럼 PC 프로그램의 여러 기능을 제어할 때 훨씬 유용하다.
참고로 와콤은 얼마 전 자사 제품군을 구매자 기반으로 바꾸었다. 초보용 제품은 '뱀부', 중수용은 '인튜어스', 고수용 제품은 '신티크'로 분류한다. 그러므로 '뱀부' 패드는 일반 사용자용 제품이다.
처음에는 왠지 모를 거부감… '그러나'
솔직히 뱀부 패드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마우스를 대체한다고? 대체 왜?'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딱히 그동안 마우스가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쓴 마우스가 손에 익어 빠르고 정확하게 윈도의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녀왔다. 그래서일까. 마우스에서 느끼는 익숙함이 뱀부 패드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났다.
거부감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직접 체험해보는 것. 눈 딱 감고 정든 마우스를 데스크톱PC에서 뽑은 후 뱀부 패드를 연결했다.
직접 써보니 뱀부 패드는 생각보다 괜찮은 물건이었다. 손가락 여러 개를 움직여 특정 명령을 불러 오는 제스처 기능이(아래에 자세히 설명) 특히 편리했다. 익숙해지니 마우스만큼 세밀한 선택도 가능했다. 잠시 뱀부 패드를 '굴러들어온 돌' 취급했던 것에 미안해졌다. 뱀부 패드는 (익숙해지기만 하면) 마우스를 책상 서랍에 고이 넣어두게 할 만큼 매력 있는 물건이었다. 일단 마우스의 기능은 기본으로 갖췄고 거기에 제스처 기능, 터치펜 등을 더했기 때문.
물론 처음부터 뱀부 패드가 손에 익었던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손에 잡지 않은 채 뻗은 손가락이 어색했다. '딸깍' 소리가 나는 클릭 대신 터치패드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니 엉뚱한 것이 선택될 때도 잦았다. 그때면 다시 마우스를 쓰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하지만 뱀부 패드 사용 후 한 시간도 안 되어 이내 뱀부 패드에 적응했다. 그제야 뱀부 패드의 장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뱀부 패드는 터치패드 부분, 버튼 두 개, 터치 펜으로 이루어져있다. 네모 부분을 손가락으로 터치하고, 때에 따라 아래의 고무 재질로 된 버튼을 누른다. 이 버튼은 노트북 터치패드의 그것처럼 마우스 왼쪽 버튼/오른쪽 버튼과 대응한다. 사실 사용하다 보면 왼쪽 버튼은 거의 누를 일이 없다. 오른쪽 버튼이야 메뉴나 옵션 창을 부를 때 필요하지만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은 왼쪽 버튼을 누르기보다 터치패드를 가볍게 두 번 두들기는 편이 빠르다.
제스처 기능
앞서 언급했듯이 뱀부 패드의 강점은 제스처 기능이다. 손가락 1~3개로 특정 동작을 해 여러 기능을 불러온다. 참고로 뱀부 패드는 4개까지 멀티 터치를 인식한다.
손가락 두 개를 터치패드에 대고 위아래로 움직이면 페이지가 스크롤된다. 이 제스처는 마우스 휠 버튼에 대응한다. 평소 검지로 웹 페이지를 탐색하다가 아래로 내릴 때 중지를 펴서 그대로 올리면 페이지가 아래로 내려가므로 빠르고 편리하다.
손가락 세 개를 뱀부 패드에 대고 양쪽으로 움직이면 웹 페이지의 뒤로 가기/앞으로 가기 기능을 불러온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면 뒤로 가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앞으로 간다. 스크롤 기능과 함께 웹 검색 시 유용하게 자주 썼던 기능이다.
두 손가락을 꼬집듯이 오므리거나 펴면 화면이 축소/확대된다. 이 기능 덕에 PC 화면이 마치 스마트폰 화면 같은 느낌이다. 마우스로 하려면 'Ctrl' 키를 누른 채 휠 버튼을 돌려야 한다.
다만 페이지 스크롤과 페이지 확대/축소 모두 손가락 두 개를 이용하므로 가끔 의도치 않게 기능이 혼용됐다. 사람의 손가락 두 개가 일(一)자를 이루기는 힘들기 때문. 따라서 스크롤을 하려다 확대나 축소가 될 때가 종종 있었다. 물론 조금 지나면 미묘하게 감이 와서 실수가 줄어든다.
손가락 세 개를 뱀부 패드의 아래에 대고 위로 올리면 '바탕 화면 보기'로 현재 열린 창들이 모두 최소화된다. 다시 아래에서 위로 올리면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또한, 손가락 세 개를 뱀부 패드에 대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면 시작 메뉴를 불러온다. 다시 위에서 아래로 내리면 시작 메뉴가 사라진다.
무선의 자유로움
뱀부 패드는 유선/무선 두 종류로 나뉜다. 다른 제품들이 그렇듯이 뱀부 패드도 무선이 유선보다 비싸다(약 2만 4,000원). 이번에 사용한 것은 무선 제품이다. USB 동글을 PC의 USB 포트에 꽂으면 PC가 알아서 드라이버를 설치한 후 뱀부 패드를 인식한다.
무선 제품은 거추장스럽지 않아 좋다. 이미 PC 주변에 선들이 너무 많다. 거기다 뱀부 패드는 따로 마우스패드도 필요 없다.
뱀부 패드는 진줏빛이 도는 흰색에 포인트로 보라색이 들어가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무선 뱀부 패드의 색상은 메탈릭그레이/블루/퍼플/그린 등 4종이다. 크기는 141.4 x 166.5 x 4.5.mm이고, 건전지와 펜을 포함한 무게는 170g이다.
터치펜은 조금 아쉬워
내심 터치펜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은 진리였다. 이전에 와콤 태블릿을 몇 번 사용해봤기 때문에 그 격차가 더 크게 느껴졌다. 뱀부 패드의 터치펜은 어디까지나 터치 패드용이다. 터치 패드의 터치펜을 태블릿의 터치펜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뱀부 패드의 터치펜은 512레벨까지 압력을 인식한다. 이는 와콤 터치펜치고 상당히 낮은 수치다. 심지어 삼성전자 갤럭시노트용 터치펜(와콤 기술 적용)도 1,024단계까지 인식하는데….
직접 사용해보니 이 터치펜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것은 포기하는 게 좋다. 직접 어도비 포토샵, 그림판 등 그래픽 관련 프로그램으로 무언가를 그리려고 시도해봤으나 그 결과가 처참했다. 터치펜을 뱀부 패드에 댔다가 땔 때마다 그 반응 속도가 한 박자씩 느리기 때문.
영문 필기체는 모든 선이 하나로 이어지지만, 한글은 한 글자를 쓸 때도 펜을 몇 번씩 패드에서 떼어야 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글씨를 쓰려면 서예 수준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제야 뱀부 패드의 설명서에 '서명'할 때 유용하다고 쓰여있던 것이 생각났다. 서명은 보통 선 하나로 이어 완성하기 때문이다. 굳이 터치펜으로 그림을 그려야겠다면 하트, 별, 세모, 네모, 동그라미 등 한 선으로 잇는 도형들을 그리길 권한다.
사실 뱀부 패드의 터치펜은 손가락 터치와 그 기능이 거의 비슷하다.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것에 익숙한 사용자라면 굳이 잃어버리기 쉬운 터치펜을 꺼내 쓰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터치펜의 버튼을 누른 후 패드를 터치하면 해당 프로그램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른 효과가 있긴 하다. 메뉴창이나 옵션창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이 기능을 사용하려고 터치펜을 꺼내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와콤은 뱀부 패드가 기존 태블릿 제품의 소비자를 뺏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터치펜을 이 정도로 만든 듯싶다. 이 제품으로도 충분히 그래픽 작업이 가능하다면 더 비싼 태블릿을 구매할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뱀부 패드는 AAA 건전지 2개가 들어간다.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하루 2시간 사용 시 4주간 쓸 수 있다. 와콤 공식 쇼핑몰에서 무선 뱀부 패드는 9만 5,000원이고 유선 제품은 7만 1,000원이다. 뱀부 패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와콤 홈페이지(www.wacom.com)에서 볼 수 있다.
다음 기사는 뱀부 패드의 활용 방법을 소개한다.
글 / IT동아 나진희(naji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