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왜 '엑시노스 5 옥타'를 두 번 출시했나?

강일용 zero@itdonga.com

삼성전자가 갤럭시S4에 채택된 옥타코어 프로세서 '엑시노스5 옥타'를 23일 한 번 더 출시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프로세서 클럭 속도를 강화하고, 그래픽 프로세서를 교체한 신제품 '엑시노스5420'을 출시했다.

엑시노스5420은 갤럭시S4에 내장된 '엑시노스5410'을 토대로 그래픽 프로세서만 교체한 모바일 프로세서다. 이매지네이션 '파워VR SGX544'를 ARM '말리 T628'로 대체했다.

엑시노스5
엑시노스5

왜 삼성전자는 갑작스럽게 그래픽 프로세서를 교체한 걸까. 스마트폰 시장 흐름 속에 그 답이 있다.

첫째, 모바일 프로세서(SoC) 시장 흐름이 프로세서에서 그래픽 프로세서 중심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 모바일 프로세서는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인터넷 실행조차 버거워 할 정도로 성능이 떨어졌다. 스마트폰 화면이 끊기는 현상도 부지기수였다. 이에 프로세서 제조사들은 3년 동안 성능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최근 등장한 프로세서는 앱, 인터넷 등을 쾌적하게 실행할 할 수 있게 성능이 향상됐고, 화면이 끊기는 현상도 사라졌다.

때문에 사용자들은 프로세서 성능향상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엑시노스4(쿼드)에서 엑시노스5(옥타)로, 스냅드래곤S4 프로(쿼드)에서 스냅드래곤600(쿼드)으로 프로세서의 성능은 꾸준히 향상 중이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성능 향상을 체감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냥 벤치마크 결과표를 보고 "아 전보다 몇 배 더 빨라졌구나"라고 말하는 게 전부다. 때문에 "엑시노스5를 탑재한 갤럭시S4와 스냅드래곤600을 탑재한 옵티머스G 프로 둘 다 앱 실행 잘되고, 인터넷 창이 빠르게 뜨니 모바일에 옥타코어는 불필요하다"는 옥타코어 무용론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능향상을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게임이다. 스마트폰으로도 뛰어난 그래픽을 보여주는 3D 게임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이만큼 스마트폰의 성능을 과시할 수 있는 곳도 없다.

3D 게임 실행 능력을 좌우하는 가장 큰 부분이 그래픽 프로세서다(프로세서도 상당 부분 관여하기는 한다). 그래픽 프로세서가 바뀌면 이를 확연히 체감할 수 있다. 때문에 제조사들은 얼마 전부터 그래픽 프로세서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파워VR SGX544는 출시 당시에는 성능이 뛰어나다고 호평 받았지만, 한 세대 전 그래픽 프로세서라 퀄컴 아드레노330 등 최신 그래픽 프로세서보다 게임 실행능력이 한 수 아래다. 삼성전자에겐 더 강력한 그래픽 프로세서가 필요했다.

둘째, 퀄컴 견제다. 삼성전자와 퀄컴은 서로 최대의 고객이면서, 동시에 모바일 프로세서 분야의 라이벌이기도 하다.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은 퀄컴 스냅드래곤이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삼성전자 엑시노스와 애플 A 시리즈가 쫓아가는 모양새다.

최근 퀄컴이 선보인 스냅드래곤800은 강력한 그래픽 처리 능력으로 주목 받고 있다. 퀄컴은 AMD 모바일 그래픽 프로세서 분야를 인수한 후 스냅드래곤에 아드레노라는 독자적인 모바일 그래픽 프로세서를 채택해왔다. 처음에는 미약했지만 점점 성능을 개선해, 최근 스냅드래곤800과 함께 선보인 아드레노330은 그 뛰어난 성능으로 호평 받고 있다. 아드레노330의 성능은 3D마크 벤치를 기준으로 엔비디아 지포스 8500GT와 대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냅드래곤800은 LG전자 G2, 소니 엑스페리아Z 울트라 등 경쟁사의 하반기 고급 스마트폰에 탑재된다. 하반기에 등장할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가칭)가 경쟁사 스마트폰보다 3D 게임 실행 능력이 뒤쳐져서는 곤란하다. 때문에 그래픽 프로세서를 교체한 신형 모바일 프로세서를 출시하기로 결정한 것.

셋째, 삼성전자와 ARM의 관계 때문이다. 원래 삼성전자는 애플과 마찬가지로 이매지네이션 파워VR을 사용했지만, ARM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갤럭시S2부터 ARM의 그래픽 프로세서 말리를 채택했다. 갤럭시S3도 말리를 채택했고, 당연히 갤럭시S4도 말리를 채택할 것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갤럭시S4에 채택된 엑시노스5410은 파워VR을 내장했다. 이를 두고 온갖 억측이 오갔다. 그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이 해외 IT 전문 매체 아난드텍이 제시한 '말리 미완성 설'이다.

원래 엑시노스5410은 말리 T624를 채택하기로 했지만, T624의 전력 소모 조절 기능이 아직 미완성이라 어쩔 수 없이 파워VR을 채택했다는 것. 아난드텍은 삼성전자가 다음 프로세서에 말리 T624 또는 T628을 채택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그 주장은 맞아떨어졌다.

말리 T628의 성능은?

말리 T628
말리 T628

이제 말리 T628의 성능을 알아볼 차례다. 일단 ARM에 따르면 말리 T628의 성능은 말리 T624의 2배다. 아드레노330을 근소하게 앞서는 수치다. 갤럭시S3, 갤럭시노트2에 탑재된 말리 400은 Open GL ES 3.0만 지원했지만, 말리 T628은 Open CL 1.1과 다이렉트X 11도 지원한다. 따라서 좀 더 화려한 효과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다이렉트X 기반 게임 이식도 한층 쉬워질 전망이다.

그래픽 코어는 6개를 내장했다. 원래 말리 T628은 그래픽 코어를 8개까지 내장할 수 있지만, 전력소모를 감안해 6개로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어디에 사용할지 조금 의아한 생각도 들지만, 헤테로지니어스 컴퓨팅(프로세서와 그래픽 프로세서를 동시에 활용해 부동소수점 연산을 처리하는 기술)도 지원한다. 이것은 원래 말리 T628이 저전력 서버용으로 기획됐기 때문. 말리 T628이 일반 연산 작업도 지원하는 그래픽 프로세서(GPGPU)란 뜻이다.

또한 WQXGA(2,560x1,600) 등 초고해상도를 화면에 표시해도 전력소모량이 적다. 사진,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데이터 압축기술(MIC IP)을 활용해 화면에 효율적으로 출력하기 때문이다. 2K 이상 초고해상도 태블릿PC가 보편화되고 있는 만큼 유용한 기술이라 할 수 있겠다.

아직 엑시노스5420을 탑재한 스마트폰, 태블릿PC가 출시되지 않은 만큼 말리 T628의 자세한 성능은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말리 T628과 겨룰 그래픽 프로세서는 차세대 아이폰에 탑재될 것이 유력시되는 파워VR SGX545, 아드레노330 등을 들 수 있다.

그래픽 프로세서를 제외하면 엑시노스5420의 성능은 엑시노스5410과 얼추 비슷하다. 4개의 고성능 코어와 4개의 저전력 코어를 혼합한 빅리틑 기술 기반 옥타코어 프로세서다. 클럭 속도는 고성능 코어 1.8GHz, 저전력 코어 1.3GHz로 조금 향상됐다. LPDDR3 메모리를 채택했고, 28나노 HKMG(하이-케이 메탈게이트, 공정이 미세화됨에 따라 발생하는 전력 누수를 방지하는 기술) 공정으로 제작된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5420을 오는 24일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리는 제40회 국제 컴퓨팅 그래픽 컨퍼런스 '시그래프 2013(SIGGRAPH 2013)'에 출품하고, 다음달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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