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발사 성공의 숨은 공신, 시뮬레이션
지난 1월 30일 대한민국의 로켓 '나로호'가 마침내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성공하기까지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2009년에 발사한 첫 번째 로켓은 대기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2010년 발사한 두 번째 로켓은 남해에 추락했다. 결국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성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로켓 발사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로켓만 설계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발사 위치, 각도, 풍향 등 주변환경도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도록 발사 관련 데이터 수집이 절실하다.
직접 로켓을 쏴보며 정보를 수집하면 좋겠지만, 한번 발사할 때마다 발생하는 수천억 원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해결책은 시뮬레이션(Simulation, 모의실험)이다. 로켓을 발사한다고 가정하고 관련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해 그 결과를 유추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로호 발사를 성공시키고자 국내 엔지니어들은 슈퍼 컴퓨터(HPC, High Performance Computing)와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동원해 결과값을 유출해냈다. 이를 토대로 발사 시기, 발사 방향, 로켓에 주입할 연료량 등을 결정했다. 결국 나로호 발사를 성공시켰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스페이스 클럽에 11번째로 가입하게 됐다.
나로호 발사의 성공은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의 공이 컸다. 나로호 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 자동차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 설계에도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는 우리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표적인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제작사 앤시스(Ansys)가 12일 기자 간담회를 개최하고 향후 국내 시뮬레이션 시장을 전망했다.
앤시스는 시뮬레이션의 대세가 CAD(Computer Aided Design)에서 CAE(Computer Aided Engineering)로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단순 제품 설계(CAD)'에서 벗어나 '해당 제품을 실제로 제작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미리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CAE)'는 것.
이와 함께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두산중공업, 포스코 등 국내 엔지니어링 기업들이 CAE를 도입해 제품 설계에 활용하고 있는 사례를 소개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다. 앤시스는 삼성전자가 CAE를 활용해 제품이 얼마나 튼튼할지, 전자파 흡수율은 얼마나 될지(소위 휴먼 바디 이펙트) 여부를 미리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뮬레이션 분야는 크게 전기전자(Eletronics), 유체동력(Fluids), 구조역학(Mechanical)으로 나눌 수 있다. 전기전자는 특정 전자기기가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것이고, 유체동력은 특정 제품이 주변 환경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을지 예상하는 것이다. 구조역학은 제품이 얼마나 튼튼한지 확인하는 것이다. 전기전자는 삼성전자, 파나소닉, 엔비디아 등이 자사 제품의 설계를 검증할 때 사용된다. 유체동력은 레드불 F1, 보잉 등이 자사의 레이싱 머신과 비행기를 공기 저항을 적게 받도록 설계할 때 사용된다. 구조역학은 군수 기업들이 튼튼하면서도 가벼운 제품을 제품을 설계할 때 활용한다. 나로호의 경우 유체동력과 구조역학을 중심으로, 갤럭시의 경우 전기전자와 구조역학을 중심으로 시뮬레이션을 활용했다.
앤시스 김한석 공학박사는 "시뮬레이션 소프트에 실제 제품을 10번 개발할 예산과 3번 만들 수 있는 시간을 투입하면 200번 이상의 테스트를 수행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더 정교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결과값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앤시스는 자사의 매출을 토대로 국내 산업의 현황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국내 GDP와 유사하게 전자/전기분야의 비중이 42%로 가장 높았고, 군수/기계 분야 16%, 자동차 산업분야 12% 순으로 나타났다. 화학, 정부기관, 반도체 분야가 그 뒤를 이었다. 아직까지는 제조업의 비중이 높다는 의미다.
앤시스코리아 신동수 대표는 "2010년 한국지사 설립 후 매년 30% 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관련 솔루션을 국내에 공급하고 지원하고 있다"며, "앤시스는 '시물레이션을 통한 제품 개발의 완성(Simulation Driven Product Development)'이라는 비전을 근간으로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개발,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CAE시장은 각 분야별 융합(컨버전스)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앤시스코리아의 올해 매출목표는 2012년 대비 30% 가량 성장한 약 520억 원 이다"고 말했다. 앤시스는 이와 함께 지난해 선보인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앤시스 14.5버전'의 후속 제품인 '앤시스 15버전'을 2013년 내에 선보일 계획이다. 앤시스 15버전은 그래픽 유저인터페이스(GUI)를 적용해 훨씬 빠른 처리속도와 다양한 해석 프로세스를 지원하는 제품이다.
기자의 눈으로 본 행사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에도 진출
최근 공과대학의 커리큘럼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추가되는 추세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다루기 위함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제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그 장/단점을 파악하는 시대는 저물었다. 제품을 제작하기에 앞서 어떤 제품이 될 것인지 미리 파악해 예산과 시간을 아껴야 한다.
앤시스 코리아 관계자는 이날 행사에서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는 이제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과정이 됐다며, 카이스트, 포스텍, 한양대 등이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전했다.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공부한 우수 인력들이 나로호 발사 성공 이상의 성과를 내길 기대해본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