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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PC의 ‘로망’을 기억하십니까

김영우

1990년대 중순부터 2000년대 초는 그야말로 PC 시장의 전성기였다. 새로운 PC, 혹은 관련 기술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주목했고, 이를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새 PC를 장만하거나 기존 PC를 업그레이드 하곤 했다. 그리고 주변에 자랑을 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2013년 현재, PC 관련 자랑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시중에 판매되는 PC의 성능이나 기능이 상향 평준화된 탓도 있지만 PC라는 물건 자체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전에는 중요하게 여기던 사항이 이제는 아예 무의미해진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세월의 흐름에 따른 PC의 변화상을 되짚어보자.

PC 앞쪽을 장식하던 '32X', '52X'가 사라진 이유

CD-ROM 드라이브는 말 그대로 CD-ROM 디스크를 넣고 데이터를 읽어 들이는 역할을 하는 보조기억장치다. CD-ROM의 용량은 700MB 남짓이다. 1TB급의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가 대중화된 지금 기준으로는 보잘것없는 용량이지만 1.44MB 용량의 플로피디스크도 일반적으로 쓰던 1990년대 까지만 해도 CD-ROM은 그야말로 꿈 같은 매체였다.

따라서 CD-ROM 드라이브가 PC에 달렸다는 것은 최첨단의 상징이었고, 동작 속도가 빠른 신형 CD-ROM 드라이브가 달린 PC일수록 주변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당시 제조사들도 소비자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 자사의 CD-ROM 드라이브가 얼마나 신형인지를 알 수 있는 표시를 제품 앞에 해서 눈에 띄게 했다. 이것이 바로 '배속'이다.

CD-ROM

이를 테면 4배속 제품이라면 4X MAX, 8배속 제품이라면 8X MAX 라고 표기하는 식이다. 물론 CD-ROM을 읽는 속도가 빠르다고 하여 PC 전체의 성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용자들의 머리 속에는 '배속이 높은 CD-ROM 드라이브를 탑재한 PC = 신형 PC'라는 공식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때문에 나머지 사양은 낮더라도 CD-ROM 드라이브만큼은 신형을 고집하곤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를 즈음해 CD-ROM 드라이브의 속도 경쟁은 52배속(52X) 즈음에서 한계에 닥쳤다. 제조사들이 디스크의 물리적인 회전 속도를 그 이상으로 높이는데 부담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40배속 즈음부터 회전 소음이 급격하게 커졌으며, 디스크가 고속으로 회전하다가 드라이브 내에서 폭발해버리는 사고도 종종 일어났다. 일부 제조사가 72배속 CD-ROM 드라이브를 개발하기도 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예전만 못했다.

그리고 이 즈음부터 HDD의 용량이 수십GB 이상으로 늘어났고, 인터넷을 통한 데이터 교환도 활발해지면서 CD-ROM과 같은 디스크 매체를 쓰는 빈도가 크게 줄어들었다. 결국 광디스크드라이브 시장은 급속히 줄어들었으며, 드라이브 앞에 배속을 표기하던 관행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광디스크드라이브 자체를 거의 쓰지 않게 되었고, 나와있는 제품의 속도도 거의 비슷한데 굳이 이를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우스꽝스러워졌기 때문이다.

필수에서 선택으로, '사운드카드'

PC가 멀티미디어 기기로 떠오르게 된 것도 1990년대 말부터다. MP3 파일을 이용해 음악을 듣고 디빅스(Divx)로 대표되는 동영상 파일로 영화를 감상하는 문화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PC의 사운드 기능을 좌우하는 부품인 사운드카드(sound card) 역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싱가포르 크리에이티브사의 사운드블래스터(Sound Blaster)는 고급 사운드카드의 대명사로 취급 받았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사운드카드 제조사였던 훈테크사의 사운드트랙(Sound Track)은 사운드블래스터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

사블, 사트라는 줄임말로 더 많이 불리던 두 제품은 치열한 시장 경쟁을 했으며, PC 사용자들 역시 자신의 PC에 어떤 사운드카드가 달렸는지에 따라 그 PC의 등급을 구분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사블이 달린 PC는 두말할 나위 없는 고급PC, 사트가 달린 PC는 '가성비'를 중시한 알뜰파 PC로 분류했으며, ESS사의 제품으로 대표되는 저가형 사운드카드가 달린 PC는 '컴맹'들이나 쓰는 하급 PC로 분류하기도 했다.

사운드블래스터

하지만 사운드카드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PC의 메인보드(주기판)에 사운드 기능이 내장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굳이 사운드카드를 사서 꽂지 않아도 ‘어찌되었건’ 사운드를 들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PC의 구성품목 중 사운드카드를 제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초기의 내장 사운드는 음질이 형편 없는데다 PC 전반의 성능을 저하시키기도 했기 때문에 상당수의 PC매니아들은 여전히 사운드카드를 따로 꽂는 것을 고집했다. 그리고 사운드카드 제조사들 역시 5.1채널 입체음향 출력 기능이나 디지털 출력 기능을 넣는 등, 제품의 고급화를 하면서 시장을 지켜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메인보드 내장 사운드의 음질이 점점 좋아졌고, PC 전반의 성능 향상으로 인해 내장 사운드를 탑재했다 하여 PC의 성능이 저하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게다가 2005년 즈음부터는 5.1채널 입체음향 출력 기능이나 디지털 출력 기능 같은 고급 기능이 메인보드 내장사운드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결국 사운드카드는 PC의 '필수' 구성품에서 '선택' 사항으로 입지가 줄어들었으며 일부 매니아들의 전유물이 되고 만다.

config.sys와 autoexec.bat 파일과의 기나긴 투쟁

1995년에 윈도95 운영체제가 등장하면서 정말로 오랫동안 지속되던 도스(Dos) 운영체제의 시대는 끝이 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후에도 여전히 도스용 프로그램을 함께 써야 하는 상황이 상당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게임이었다. 윈도95 출시 초기에는 정말로 할 만한 윈도용 게임이 없었으며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는 윈도용 게임도 품질이 형편 없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윈도95 출시 이후에도 여전히 도스용 게임을 즐겨야 했다.

문제는 도스용 게임을 원활히 구동하기 위해서는 익혀야 할 전문 지식이 제법 많았다는 점이다. 특히 직접 다룰 수 있는 시스템 메모리가 640KB에 불과한 도스의 한계 때문에 게이머들은 도스 운영체제의 부팅을 관장하는 시스템 설정파일 내의 문자 명령어를 직접 수정해 메모리를 확보하는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전부터 도스 운영체제를 다뤄온 '고수'라면 나름 익숙한 작업이었겠지만, 윈도95 출시 이후 유입된 신규 사용자들에게 이 작업은 이해하기도 힘들고 복잡하기만 한 암호 풀이나 다름 없었다.

config.sys

C드라이브 상에 있는 config.sys와 autoexec.bat 파일을 문서편집기로 열고 LH C:\MOUSE\MOUSE.COM devicehigh=c:cdromgscdrom.sys /D:MSCD001 등의 긴 명령어를 입력해야 비로소 게임 중에 마우스나 CD-ROM 드라이브, 사운드카드 등이 온전히 작동했으며, 메모리 점유율이 높은 일부 게임의 경우, 일부 하드웨어를 일부러 비활성화시켜 메모리를 확보해야 구동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다시 config.sys와 autoexec.bat 파일의 내용을 수정하는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함은 당연한 순서였다.

하지만 1995년 10월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 게임 개발자들을 위해 개발한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의 일종인 다이렉트X(DirectX)를 내놓고 수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기능을 개선해나가자 윈도용 게임의 품질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게임 개발에 드는 비용이나 시간도 크게 단축되었다. 이로 인해 2000년대 초반에 들어 PC 게임 시장의 중심은 윈도 기반으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그리고 2001년에 도스 운영제체와 완전히 결별한 윈도XP가 PC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config.sys 및 autoexec.bat와의 기나긴 투쟁은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간략화와 고속화, 그리고 대중화의 흐름

이 외에도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PC 관련 요소는 다수 있다. 사운드카드와 마찬가지로 메인보드 내장형 장치의 하나가 된 랜(LAN)카드,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쓰지 않게 된 전화모뎀, USB의 등장으로 인해 효용성이 크게 줄어든 직렬/병렬/PS2 포트 등도 있다.

이러한 변화상을 살펴보면 그 동안의 전반적인 PC 환경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왔는지를 살펴 볼 수 있다. 여러 개로 나뉘어 있었던 하드웨어는 하나로 합쳐져 공간활용성과 생산성이 높아졌으며, 인터페이스와 저장장치는 고속화와 온라인화를 이루었다. 또한 개발자 및 전문가 중심으로 운용되던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는 사용자 중심, 대중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흐름이 가속화된다면 앞으로의 PC는 기존의 PC와 제법 다른 형태를 띄게 될 것이며, 그 때는 PC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바뀔 가능성도 있다. 데스크탑에서 노트북으로, 노트북에서 태블릿PC로 PC 시장의 중심이 옮겨지고 있는 현상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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