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사전 동의권, 핵심은 스타트업과 투자자의 ‘존중·신뢰’

한만혁 mh@itdonga.com

[IT동아 한만혁 기자]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는 투자자와의 계약으로 성사된다. 이때 투자자는 여러 가지 항목을 조건으로 내건다. 그중 하나가 사전 동의권이다. 투자 이후 투자자의 관리 및 감독 권한을 보장하는 조항이다. 스타트업이 이를 어기면 투자금 회수, 위약벌 등의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 13일 대법원은 투자자 사전 동의권 약정 위반 관련 소송에서 투자자 사전 동의권은 무효라는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투자자 사전 동의권 무효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특정 투자자의 차등 지위를 정당화하는 사유가 있다면 허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법무법인 미션이 한국벤처투자,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함께 투자자 사전 동의권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향후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는 ‘벤처투자 혹한기, 현명하게 헤쳐 나가는 법’ 포럼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법무법인 미션 김성훈 대표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의 법리적 해석과 쟁점, 대안을 제시하며 “중요한 것은 투자자와 스타트업 간의 존중과 신뢰”라고 강조했다.

‘벤처투자 혹한기, 현명하게 헤쳐 나가는 법’ 포럼. 출처=IT동아
‘벤처투자 혹한기, 현명하게 헤쳐 나가는 법’ 포럼. 출처=IT동아

투자자 권리 보호, 투자자 사전 동의권

투자자 사전 동의권은 스타트업 경영에 변경 사항이 생기면 투자자에게 사전 공유하고 동의를 구하라는 조항이다. 투자 이후 관리 및 감독을 통해 스타트업의 안정적이고 건설적인 성장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김성훈 변호사에 따르면 투자자가 사전 동의권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부족한 기업 정보다. 스타트업의 경우 운영 상황, 지표, 성과 등 기업 정보를 투명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금 사용처, 투자자 이익 침해 행위 등을 사전에 파악하기가 어렵다. 특히 대부분의 투자자가 집행하는 투자금은 정부 정책자금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투자금에 대한 투명한 관리가 필요하다.

둘째는 소수 주주로서의 한계다. 상법에 따르면 50% 이하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지분에 따라 주어지기 때문에 최대 주주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다. 자칫 투자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자산적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투자자는 사전 동의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빅베이슨캐피탈 김초연 책임심사역은 “스타트업 투자는 상장사 투자에 비해 기업 정보가 부족하고 위험성이 높다”라며 “투자자 사전 동의권은 스타트업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김 변호사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선 의사결정의 속도가 느리다. 특정 사안에 대한 결정이 필요한 경우 모든 투자자에게 각각 동의받아야 한다. 시리즈B 이상 투자를 유치하면 보통 10곳 안팎의 투자자와 관계를 맺는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렵다. 적절한 시기를 놓쳐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사전 동의권은 투자자 간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다른 투자자가 모두 동의하는데 특정 투자자만 반대하는 경우가 생긴다. 일부 투자자는 위약벌, 주식 매수 청구권 등을 빌미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다. 심한 경우 회사 존폐에도 영향을 미친다.

투자자는 기업 정보 확인, 소수 주주로서의 한계를 이유로 사전 동의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출처=IT동아
투자자는 기업 정보 확인, 소수 주주로서의 한계를 이유로 사전 동의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출처=IT동아

투자자 사전 동의권 위반 소송

최근 대법원이 사전 동의권 관련 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소송 내용은 이렇다.

지난 2016년 12월 디스플레이 제조사 뉴옵틱스는 클라우드 가상화 및 메타버스 오피스 전문기업 틸론이 발행한 20만 주의 주식을 20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뉴옵틱스는 투자금 회수를 담보하기 위해 추후 신규 주식 발행 시 사전에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사전 동의권을 제시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손해배상 명목으로 투자금을 조기상환하고 투자금에 해당하는 위약벌 20억 원을 부담하도록 했다.

이후 틸론은 뉴옵틱스 사전 동의 없이 2018년 8월과 11월 각각 18만 주, 8만 주를 새로 발행했다. 이에 뉴옵틱스는 약정 위반을 이유로 투자금 반환 및 위약벌로 약 40억 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뉴옵틱스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투자 계약상 사전 동의를 받아야 했으나 이를 위반했으니 투자금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이유다.

화제가 된 것은 2심 판결이다. 지난 2021년 10월 진행된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1심을 뒤엎고 투자자 사전 동의권 조항은 무효라며 틸론의 손을 들었다.

뉴옵틱스에 우월한 권리를 부여해 다른 주주들보다 강력하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한 점, 약정 위반 시 출자금 배액 초과 금액을 반환하는 권리를 부여해 투자금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한 점 등이 주주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상법은 ‘보유 지분을 넘어 특정 주주에게 우월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이 주주평등의 원칙이다.

지난 13일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주주평등의 원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대법원, 사전 동의권 무효 예외 조항 제시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2심 판결 내용을 그대로 인정했다. 특정 주주에게 차등적으로 우월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무효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2심과 대법원 판결의 가장 큰 차이는 투자자 사전 동의권에 대한 차등적 지위를 인정하는 기준을 제시한 점”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은 ▲차등적 취급의 구체적 내용 ▲차등적 취급을 하게 된 경위와 목적 ▲차등적 취급이 회사 및 주주의 이익에 필요한지 여부와 정도 ▲차등적 취급이 관계 법령에 근거를 두었는지 ▲주주의 의결권을 침해하는지 여부 ▲차등적 취급에 따라 다른 주주가 입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주주의 동의 여부와 전반적인 동의율 ▲주주와 회사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등 8가지다.

김 변호사는 “회사와 모든 주주에게 이익이 된다면 특정 주주한테 우월한 권리를 부여하는 약정은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사전 동의권을 무효화하면 투자 자체가 위축될 수 있고 투자 이후 관리 감독할 수단이 없어지기 때문에, 예외 조항을 두고 허용하자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라고 해석했다.

위약벌과 주식 매수 청구권 역시 대법원은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특정 주주에게 투자금의 절대적인 회수를 보장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한다. 다만 투자자 사전 동의권 위반으로 인한 위약벌과 주식 매수 청구권은 손해배상의 성격이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판단이다.

김성훈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을 분석하고 쟁점 및 대안을 제시했다. 출처=IT동아
김성훈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을 분석하고 쟁점 및 대안을 제시했다. 출처=IT동아

효율적인 투자자 사전 동의권을 위한 과제

김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을 해석하며 두 가지 쟁점을 제기했다. 첫째는 지분 양도 시 권리 승계 부분이다. 대법원은 ‘투자자가 사전 동의권을 갖더라도 이는 채권적 권리에 불과하고 제3자가 투자자의 주식을 양수받아도 그와 같은 지위가 승계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사전 동의권은 창업자와 투자자의 계약이기 때문에 상법이 정하는 의결권을 대체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투자 계약에는 ‘투자자 지분 양도 시 권리 승계’에 대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투자자는 언제든 자유롭게 주식을 매도할 수 있으며, 이때 계약상 모든 권리는 매수인에게 승계된다는 내용이다. 대법원이 언급한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또한 계약에 대한 권리가 주식을 매수한 제3자에게 승계되면 이는 새로운 형태의 주식이 된다. 김 변호사는 “상법에서 허용하지 않는 범위의 주식은 유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라며 “투자 계약의 지분 양도 시 권리 승계 조항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사전 동의권의 의사결정 방법론이다. 그는 “투자자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스타트업 경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전 동의권이 될 수 있도록, 좀 더 효율적인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와 미국의 사례를 비교했다. 미국의 경우 투자 라운드에 여러 투자자가 몰리면 하나의 계약서를 작성한다. 또한 큰 규모로 투자를 진행할 경우 기존 투자자의 계약 내용을 확인하고 새롭게 조율하는 주주간계약(Shareholders agreement, SHA)을 체결한다. 사전 동의권도 지분에 따라 투표하도록 협의한다. 덕분에 스타트업은 빠르고 신속한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 투자자 개별 행동도 막을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투자자마다 계약서를 작성한다. 투자자 사전 동의를 구할 일이 생기면 각각 동의를 받아야 한다. 김 변호사는 “투자 라운드별 단일 계약서, SHA 등이 전체 투자자의 정당한 이익을 보장하면서 스타트업 경영 의사결정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미국의 경우 SHA를 통해 사전 동의권의 효율성을 높인다. 출처=법무법인 미션
미국의 경우 SHA를 통해 사전 동의권의 효율성을 높인다. 출처=법무법인 미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중·신뢰

김 변호사는 스타트업 창업자와 투자자에게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창업자에게는 “공시 정보가 부족함에도 자신의 비전을 믿고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하는 투자자를 공동창업자처럼 생각하는 존중이 있어야 한다”라고 조언하고, 투자자에게는 “기업에 문제가 생길 경우 가장 큰 책임을 지는 것은 창업자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권한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신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회사와 사업 진행 상황, 비전 등 충분한 공유를 통해 창업자와 투자자가 신뢰를 쌓는다면 사전 동의권이 필요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쟁 없이 긍정적으로 풀어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사전 동의권의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라며 “창업자와 투자자 간의 충분한 신뢰를 통해 건설적인 방법으로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 IT동아 한만혁 (m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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