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 vs 컨트롤러’ 조작법 차이, 애플과 메타 생태계 가를까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애플이 비전 프로를 발표하면서 증강 가상현실 콘텐츠 업계에도 긍정적 분위기가 감돈다. 애플의 참전으로 생태계에 다시 활기가 돌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비전 프로는 ‘공간 컴퓨터’라는 독특한 명칭과 압도적인 칩세트 성능 등을 제외하면 기존 VR·MR(가상·혼합현실) 헤드셋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기능과 특징을 지니고 있다. 기존 VR 생태계에 이미 존재하던 앱과 콘텐츠가 큰 문제 없이 이식되거나 호환 가능하다는 걸 의미한다.

다만 간과하기 힘든 차이점도 있다. 바로 조작 방식이다. 시중 대부분의 VR 헤드셋들은 손에 쥐고 사용하는 전용 컨트롤러를 이용한다. 컨트롤러의 적외선 신호를 헤드셋이 탐지해서 손의 궤적과 방향, 위치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추가로 컨트롤러에 달린 버튼, 아날로그 스틱, 방향키 등이 손을 쥐고 펴는 동작을 비롯한 세세한 움직임을 조종하는 데 쓰인다. 하지만 비전 프로는 착용자의 눈동자 움직임과 손가락 움직임을 활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애플 비전 프로는 기존 VR·MR 헤드셋들과 달리 조작에 별도의 전용 컨트롤러를 활용하지 않는다. 출처=애플
애플 비전 프로는 기존 VR·MR 헤드셋들과 달리 조작에 별도의 전용 컨트롤러를 활용하지 않는다. 출처=애플

미국 블룸버그 통신의 마크 거먼에 따르면 애플은 비전 프로 개발 초기 손가락에 끼우는 컨트롤러나 HTC 제품을 포함한 타사의 VR 컨트롤러도 테스트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별다른 주변기기 없이 눈동자 움직임과 손가락을 활용하는 지금의 방식이 가장 ‘우아한 해법’이라 판단해 최종안으로 채택했다. 마크 거먼은 현재로서는 애플이 비전 프로용 컨트롤러를 추가로 내놓거나, 타사 VR 컨트롤러를 지원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맨손 조작’에 올인한 애플, VR 게임은 어떻게?

비전 프로가 이미 VR 생태계에 보편화된 조작 체계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건 기존 앱과 콘텐츠를 애플 비전 프로에 이식하려면 그에 맞춰 조작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조작법이 단순한 앱이나 VR 영상 같은 단순 감상용 콘텐츠라면 이러한 조작 체계의 차이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VR 게임은 사정이 다르다. VR 게임 중 상당수가 VR 전용 컨트롤러에 맞춰 제작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단순한 조작 체계를 갖춘 게임도 있지만 상당수는 VR 컨트롤러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이를 맨손 조작으로 이식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VR 전용 게임인 '하프라이프 알릭스'. 출처=밸브 코퍼레이션
VR 전용 게임인 '하프라이프 알릭스'. 출처=밸브 코퍼레이션

메타 또한 맨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핸드트래킹’ 기능을 퀘스트에서 지원하긴 하지만 정확도나 반응 속도 등이 컨트롤러보다 떨어진다. 기기 출시 후 실험 단계를 거쳐 추가된 기능이라, 처음부터 맨손 조작을 채택해 관련 센서와 칩세트까지 갖춘 비전 프로와는 완성도와 정확도 면에서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핸드트래킹은 보조적인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VR 게임도 많지 않은 이유다.

설령 조작 체계를 온전히 맨손 조작에 맞춰 바꿀 수 있다고 해도 컨트롤러가 주는 물건을 쥐고 누르는 감각, 진동 등의 물리적 피드백이 없어 몰입감이 떨어질 수 있다.

시중 대부분의 VR 헤드셋이 손에 쥐고 사용하는 전용 컨트롤러를 활용한다. 사진은 메타가 퀘스트3와 함께 발표한 '터치 플러스 컨트롤러'. 출처=메타
시중 대부분의 VR 헤드셋이 손에 쥐고 사용하는 전용 컨트롤러를 활용한다. 사진은 메타가 퀘스트3와 함께 발표한 '터치 플러스 컨트롤러'. 출처=메타

국내 한 VR 게임 업계 관계자는 “기존 VR 게임들은 대부분 컨트롤러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핸드트래킹을 전면 지원하는 게임은 많지 않다”면서 “기존 VR 게임 생태계가 비전 프로에 그대로 이식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비전 프로 발표 당시 공개했던 시연 영상에서 VR 게임이 부재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비전 프로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시연하긴 했지만, VR 전용 게임이 아닌 일반 게임을 증강현실 속 가상의 디스플레이에 띄워서 즐기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애플이 제시한 비전 프로의 생태계에 아직 ‘VR 전용 게임’은 포함되지 않은 셈이다.

‘보급형 기기 + VR 전용 게임’으로 대중과 접점 늘린 메타

반면 메타는 VR 전용 게임 개발에 매우 적극적이다. 지난 2019년 가장 성공한 VR 게임으로 꼽히는 ‘비트세이버’의 개발사인 비트게임즈 인수를 시작으로 산자루 게임즈, 레디앳던, 다운푸어 등 주요 VR 게임 개발사를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올해에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과 법정 공방까지 하는 우여곡절 끝에 VR 운동 게임 ‘슈퍼내추럴’ 개발사 위드인 인수를 마친 바 있다.

메타는 지난 2020년부터는 마치 대형 게임사처럼 VR 게임 발표를 위한 ‘게이밍 쇼케이스’ 행사도 따로 열고 있다. 지난달 열린 행사에서는 새 기기인 퀘스트3를 발표하기도 했다. 퀘스트 프로가 전문가용 기기라면 퀘스트3는 좀 더 저렴한 가격을 지닌 보급형 기기다. 메타가 VR 게임을 대중과의 접점이자 생태계 확장의 첨병으로서 여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트세이버. 출처=비트게임즈
비트세이버. 출처=비트게임즈

물론 애플의 비전 프로가 시장에 자리만 잡는다면 비전 프로에 맞춘 전용 게임도 자연스레 등장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비전 프로 출시 이후 개발되는 게임들은 결국 비전 프로의 조작 체계를 고려해서 디자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결국 보급형 기기의 출시 여부다. 약 450만 원에 달하는 가격을 고려하면 비전 프로가 당장 기기 보급을 통한 생태계 확대에 기여할 가능성은 작기 때문이다. 좀 더 저렴한 보급형 모델의 출시에 업계가 기대를 거는 이유다. 마크 거먼은 애플이 2025년 말 가격을 낮춘 비전 프로의 보급형 모델을 출시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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