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IT] 웹크롤링 판례 (2) 야놀자와 여기어때 간 숙박정보 크롤링

김동진 kdj@itdonga.com

‘판례’란 법원이 특정 소송에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내린 판단입니다. 법원은 이 판례를 유사한 종류의 사건을 재판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IT 분야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속도보다 현저히 빠른 특성을 보여 판례가 비교적 부족합니다. 법조인들이 IT 관련 송사를 까다로워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IT 분야에도 참고할 만한 판례들이 속속 쌓이고 있습니다. IT동아는 법무법인 주원 홍석현 변호사와 함께 주목할 만한 IT 관련 사건과 분쟁 결과를 판례로 살펴보는 [그때 그 IT]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야놀자와 여기어때 간 숙박 정보 크롤링 판례’로 본 웹크롤링의 민·형사상 책임(서울고등법원 2022.8.25. 2021나2034740 판결, 대법원 2022.5.12. 2021도1533 등)

“조금만 더 정리하면, 경쟁 회사의 영업전략과 현황을 알 수 있겠는데?”

바야흐로 디지털 플랫폼 경제 시대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비대면 수요가 늘면서, 오프라인 기반의 전통적인 영업방식을 고수해 왔던 산업군에서도 디지털 전환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됐습니다. 이제 쇼핑과 음식 배달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금융, 부동산 등에서도 디지털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으며,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기술이 발전할수록 플랫폼 산업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은 이용자의 편의성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플랫폼의 기본적인 역할은 상품, 서비스 등을 공급하는 업체와 소비자를 중개하는 것이지만, 플랫폼 이용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흩어져 있는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소비자가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발품과 손품을 팔아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고 하더라도, 플랫폼 내에서 클릭 한 번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은 바쁜 현대 사회에서 소비자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디지털 플랫폼은 이용자에게 차별 없이 가공된 정보를 제공합니다. 경쟁업체에서도 어느 업체에서 상품을 공급하는지, 상품 재고는 얼마나 되고, 공급가는 얼마인지 등 중요한 영업정보를 기존 플랫폼 내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후발주자에게는 기존 플랫폼 내에 존재하는 정보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영업전략이지만, 기존 플랫폼 사업자 입장에서 무분별한 정보 수집은 데이터 탈취로 비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숙박 플랫폼인 야놀자와 여기어때 사이의 데이터 크롤링 관련 분쟁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발생했습니다. 후발주자인 여기어때는 회사 설립 시부터 경쟁사 분석 업무를 담당하는 영업지원팀을 두고, 선두주자인 야놀자의 숙박업소 관련 정보를 수시로 취합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관련 정보를 편리하게 수집할 수 있는 크롤링 프로그램을 개발, 2016년 1월경부터 약 9개월간 본격적으로 야놀자의 제휴 숙박업소의 업체명, 지역, 주소, 가격 등 숙박업소 정보를 무단으로 복제해 자신의 영업을 위해 이용했습니다. 야놀자는 뒤늦게 이같은 사정을 확인하고 여기어때를 상대로 데이터 탈취 등을 이유로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출처=각사
출처=각사

2018년 초부터 시작된 야놀자와 여기어때 사이의 소송은 5년이 지난 2022년이 돼서야 종결됐습니다. 대법원은 2022년 5월경 여기어때의 크롤링 행위에 대해 정보통신망법상 정보통신망 침해, 저작권법상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침해 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소된 자들에 대해 전부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재판부는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 무단으로 복제된 데이터베이스의 양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여기어때가 수집한 정보들은 이미 상당히 알려진 정보이고 야놀자 앱에도 공개됐기 때문에 이를 야놀자의 허락 없이 수집했다 하더라도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반해, 민사 법원에서는 여기어때의 크롤링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야놀자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는 숙박 정보 데이터베이스는 일반적으로 공개·판매하는 숙박업소의 정보와 그 경제적 가치가 같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어때가 이러한 정보를 계획적, 조직적으로 무단 수집해 경쟁 영업행위에 이용한 것은 부정경쟁방지법상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여기어때에 대해 10억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갈린 법원의 판결에 대해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의 판시 이유와 결론에 모순이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후발주자가 공개된 데이터를 자신의 영업에 활용하는 데 있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기존 업체가 입는 영업상 피해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킬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습니다. 여기어때 측에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민사 항소심 판결에 대해 불복하지 않아, 결국 민사책임 유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플랫폼 경쟁이 과열될수록 데이터 무단 수집 이용에 대한 분쟁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데이터 산업진흥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부정경쟁방지법이 개정되는 등 데이터 보호 및 활용 촉진을 위한 법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시각각 발전하는 기술의 속도를 반영할 수는 없기에 시장의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어디까지가 허용되는 경쟁행위인지 모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존 판례를 살펴보는 것은 최소한의 기준점을 설정하기 위한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음 기고부터는 주제를 바꿔 기술 유출에 관한 판례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처음 다룰 사례는 2000년대 초 삼성전자와 벤처기업인 벨웨이브 사이 휴대폰 기술 유출 판례(대법원 2003. 10. 30. 선고 2003도4382 판결 등)입니다.

글 /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홍석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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