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스타트업] 스페바이오 "미래 바이오 '엑소좀' 시장, 우리 생산 기술로 선점"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지난 2019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기습적인 반도체 분야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소부장 공급이 막히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당시 정부는 이 위기를 소부장 국산화와 다변화로 돌파하고자 했다. 이에 소부장 독립을 선언하고, 이듬해인 2020년에는 소부장 기업 육성, 특화단지 조성 등의 내용을 담은 ‘소부장 2.0 전략’도 수립했다. 수출 규제 사태가 특정 국가에 소부장 공급을 의존하는 산업 구조로는 안정적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러한 흐름의 일환으로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020년부터 ‘소부장 스타트업 100’이란 이름으로 소부장 기업 육성 사업을 펼치고 있다. 소부장 자립에 기여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매년 20개씩 선정해, 오는 2025년까지 100개 기업을 육성하는 게 목표다. 선정된 기업들은 사업화 자금, 멘토링, 연구개발 등을 지원받는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는 이 ‘소부장 스타트업 100’ 사업 첫해부터 꾸준히 주관 기관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도 최종 8개 기업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선정된 8개 기업 중 융합 바이오 분야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스페바이오(SPHEBIO)를 만나봤다.

안근선 스페바이오 대표와 윤석환 이사
안근선 스페바이오 대표와 윤석환 이사

스페바이오는 차세대 치료제로 각광받는 엑소좀(Exosome) 치료제 생산에 필요한 장비와 소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다. 엑소좀이란 세포가 다른 세포나 외부 환경과의 정보 교환을 위해 분비하는 나노 크기 입자인 세포외소포(Extracellular Vesicles, EV)의 일종이다. 이 엑소좀에는 유전 정보나 다양한 단백질이 함유돼 있어 조직 재생 촉진, 면역 조절 등을 수행한다. 2010년대부터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치료제로써의 가능성을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근래들어 세포 치료제 개발이 종양 발생 가능성이나 보관 문제 등 각종 난관에 부딪히자,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도 안전성은 더 높은 엑소좀 치료제가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세포없이 세포 치료제와 유사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세포(Cell-Free) 치료제’라는 표현도 쓴다. 현재 바이오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차세대 바이오 의약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DBMR리서치는 전 세계 엑소좀 시장 규모가 2021년 11억 7400만 달러(약 1조 4000억 원)에서 2026년 316억 9200만 달러(약 38조 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선두주자로 꼽히는 미국 코디악 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2020년 전임상 성과만으로도 나스닥에 기업 가치 8300만 달러(약 994억 원)를 인정받으며 상장했다. 위탁생산개발(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 CDMO) 분야 세계 1위인 론자도 지난해 대대적인 엑소좀 설비와 인력 인수 확보에 나선 바 있다. 그 외 국내외 수많은 제약사도 이미 엑소좀 치료제 개발 및 공동협력에 뛰어들었다.

안근선 스페바이오 대표
안근선 스페바이오 대표

안근선 스페바이오 대표도 바이오 기업에서 세포 치료제를 다루다가 엑소좀 치료제로 눈을 돌린 경우였다. 엑소좀 치료제로 시선을 돌린 후, 그가 발견한 건 엑소좀 생산 기술의 한계였다. “엑소좀을 치료제에 활용하려는 연구를 시작한 지 불과 10년 정도 밖에 안 됐다보니 생산 기술에 대한 연구도 부족했습니다. 세포가 분비하는 물질이다 보니 산업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들의 한계가 명확했던 거죠. 대부분 기존 세포배양 기술을 그대로 활용하여 엑소좀을 생산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엑소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근원이 되는 세포를 배양해야 한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기존 기술은 2차원 세포배양과 바이오리액터 배양이 있다. 하지만 두 방식 모두 엑소좀을 효과적으로 생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2차원 세포배양은 실험실에서 연구자들이 하듯 접시에 세포를 배양하는 방법이다. 수작업이라 생산 효율이 극도로 낮다. CDMO 등에서 활용하는 바이오리액터 배양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지만 결과물의 품질이나 순도가 떨어졌다.

“3차원 세포 배양체인 세포 응집체(Cell Aggregate, Spheroid)를 활용하면 엑소좀 생산 효율이 높아진다는 게 연구 등을 통해 밝혀진 상태입니다. 문제는 이 세포 응집체를 균일하게,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포 응집체 생산을 자동화하는 기술을 저희가 자체 개발한 겁니다.”

출처=스페바이오
출처=스페바이오

15년 넘는 세월을 3차원(3D) 바이오프린팅 전문가로 지낸 안 대표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엑소좀 생산에 적용했다. 바이오잉크를 활용한 3D 바이오프린팅으로 세포 응집체 생산을 자동화하는 생산장비와 이를 활용한 EV 생산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기존 방식에 비해 균일한 세포 응집체를 생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 효율도 높다. 건강한 닭이 좋은 달걀을 낳듯, 균일하고 안정적인 세포 응집체일수록 유효한 성분을 지닌 엑소좀을 균일하게 분비할 수 있다.

엑소좀 치료제는 아직 시판된 제품이 없다. 하지만 주요 글로벌 제약사들이 관심을 쏟으며 투자를 시작한 만큼 앞으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스페바이오는 이 경쟁에 직접 뛰어드는 대신 소부장 분야를 선점하는 전략을 택했다. 보통 신약 개발에는 10년이 넘는 기간이 걸리는 만큼, 스페바이오도 일반적인 스타트업보다 훨씬 더 긴 호흡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엑소좀 치료제 시장을 목표로 두고 있지만, 당장 열리는 시장이 아니다. 스페바이오는 무작정 버티며 기다리는 대신, 시기별 사업화 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웠다. 먼저 현재 수요가 발생하고 있는 연구용 엑소좀, 화장품 원료 및 진단분야 관련 엑소좀을 제조해 판매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분말과 액상로 형태 두 종류로 시제품 생산을 완료했다. 화장품 원료 분야에서도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을 논의 중이다.

스페바이오의 기술을 설명 중인 윤석환 이사
스페바이오의 기술을 설명 중인 윤석환 이사

바이오 생산 기술 전문가인 안근선 대표와 줄기세포 및 치료제 연구개발 전문가인 윤석환 이사가 지난 2020년 8월 힘을 합치며 출발한 스페바이오는 이제 본격적인 사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자체적인 생산장비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유수의 대학병원과 협력하여 치료제 개발 준비도 진행하고 있다. 1년 반남짓한 시간이 흐른 지금, 7억 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정부 사업비 14억 원을 따내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상표출원 3건, 특허등록 1건, 특허출원 4건 등의 지식재산권도 확보했다. GS 그룹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더 지에스 챌린지’, 포스코의 벤처 육성 프로그램 ‘아이디어 마켓플레이스’에 선정되는가 하면, 범부처재생의료사업 및 민간 주도형 기술창업 투자 프로그램인 팁스(TIPS)에도 선정되며 그 가치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앞으로 엑소좀 치료제 개발과 시판이 본격화될수록 스페바이오의 몸값은 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지난해 8월 한국바이오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산업에서 수입 원·부자재 비중은 90%에 육박한다. 바이오 산업의 차세대 소부장을 선점할 수 있는 스페바이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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