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효율과 장인정신의 사이에서
고려시대에 청자를 빚던 도공들, 일본 전국시대에 일본도를 만들던 도검 제작자들이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하나의 명품을 만들기 위해 일단 만들어진 물건도 몇 번이고 다시 손질하고, 아주 자그마한 흠집이라도 있으면 가차 없이 그 물건을 부수고 다시 처음부터 작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생산 효율성만으로 보자면 거의 최악이겠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나온 완성품은 후세에 길이 남을 명품이 되었다.
하지만 빠르게 생산하고 대량으로 소비되는 현대의 공산품에 이런 장인정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한대를 설계하는데 몇 년이 걸린다면 설계가 끝날 즈음에는 이미 그 제품은 출시해봤자 아무도 사지 않는 구형 제품이 되어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비효율’은 절대 악에 가깝다.
그런데 2012년 현재 활동중인 IT기업 중에 이런 비효율을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기는 업체가 있다. 그곳은 다름아닌 애플이다. 물론 장인정신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일 정도는 아니지만, 이들의 제품 개발 및 출시 형태는 확실히 경쟁업체들의 그것과 다르다. 스마트폰만 해도 경쟁업체들에서는 분기마다 몇 개씩 출시하곤 하는데, 애플의 스마트폰인 ‘아이폰’ 시리즈는 고작 1년에 한 모델씩 신제품이 나오며 그나마 완전한 신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은 2년에 한번씩 나온다.
이를테면 애플은 2008년에 ‘아이폰 3G’를 출시한 후 2009년에는 아이폰 3G의 일부 기능을 개선한 이른바 ‘마이너체인지’ 제품인 ‘아이폰 3GS’를 내놓았다. 근본적인 디자인과 성능까지 확 바뀐 ‘아이폰 4’는 2010년에야 나왔다. 그리고 2011년에는 역시 아이폰 4과 디자인이 같으면서 일부 기능만 개선한 ‘아이폰 4S’를 출시한다. 단일 모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신제품의 출시 속도도 느리다는 것인데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제품이라도 흥행에 실패한다면 회사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런데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인 조나단 아이브는 2012년 3월 13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을 따라잡으려고 하는 경쟁사들이 보다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 생각을 하는 대신 새로운 것만 찾아 다니고 있다" 라고 언급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애플의 경쟁사 대부분은 무언가 '다르고 새로운 것'을 찾는데 혈안이 돼 있다"며 "그러한 접근은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격이나 요상한 마케팅이 아닌 '원칙'이 필요하며 이것이 애플을 이끌어 온 것"이라 강조했다.
조나단 아이브의 이러한 발언을 분석해 보면 애플은 자사 제품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아예 엄두에 두고 있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경쟁사들의 움직임과 상관 없이 자신만의 길을 갈 것이라는 뚝심까지 엿보인다.
물론, 다른 업체들에서도 이러한 ‘언론플레이’를 하곤 하지만, 실제로 애플의 이러한 자신감이 단순한 허언만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제품을 개발하고 제조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더욱 그러하다. 아이폰 3GS의 경우, 업계에서 생산되는 소재 중에서도 강도가 높고 질감이 고급스럽기로 유명한 몽블랑 플라스틱으로 제조되었다. 이는 몽블랑의 펜에 주로 사용되던 것인데, 단가가 높은 편이라 이윤을 많이 남겨야 하는 대량생산 제품에 적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아이폰 4와 아이폰 4S의 경우, 가볍고 강도가 높은 스테인레스 스틸 재질의 테두리에 와이파이, 블루투스, GPS 등의 무선 신호용 안테나 기능을 넣어 기능성을 높이고 안테나 사이에 매우 미세한 구조의 특수 고무를 넣어 이음세가 느껴지지 않도록 했다. 또한, 화면 패널 위에 강화유리를 틈새 없이 부착하여 독특한 입체감을 자아내면서도 고급스런 느낌을 주는 디자인을 완성시켰다. 사실 이러한 제작과정은 상당히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쉽게 도입하기 어렵다.
물론, 부작용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아이폰 4 초기 모델의 경우, 본체 테두리 부분을 손으로 잡으면 안테나의 수신율이 저하되는 이른바 ‘안테나 게이트’를 겪기도 했으며, 아이폰 4S의 경우,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경쟁사의 제품들이 앞다투어 도입한 4G LTE 고속 통신 기능을 적용하지 않은 점 이 아쉬움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더욱이, 유려한 본체 디자인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자가 직접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 기능을 넣지 않는 등, 기능 면의 불편함이 지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아이패드를 비롯한 애플의 제품들은 나올 때마다 변함 없이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이 정도로 애플에 ‘무한신뢰’를 보내는 애플 제품의 애용자들에게 ‘앱등이(애플의 열광적인 팬을 지칭하는 속어)’라는 비아냥이 따라붙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애플의 행보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애플 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IT동아와의 통화에서 “국내 기업의 경우 외형 디자인 경쟁력은 향상되었으나 단가 문제로 값싼 소재를 선택하거나 디테일을 포기하는 부분이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시리즈는 단순한 하드웨어 스펙을 강조하기보단 사용자 경험과 편리성을 추구한다.”고 강조하며, “요즘은 국내 기업도 새로운 제품을 내놓으며 애플의 철학을 따라 하고 있는 중” 이라고 꼬집었다.
애플의 이러한 사업 방침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특히, 애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스티브 잡스 창업주가 2011년에 세상을 뜨면서 차후의 애플 제품이 사뭇 다른 방향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분분했다. 하지만 이후에 나온 아이폰 4S나 신형 아이패드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도 당분간은 애플의 기본적인 기조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경쟁사들의 공세가 점차 심해지고 있는 IT시장에서 애플이 언제까지 '비효율'과 '장인 정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