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블랙베리를 놓지 못하는 이유

이문규 munch@itdonga.com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의 절대다수가 애플 아이폰 또는 구글 안드로이드폰을 선택하지만, 본 기자는 과감하게 RIM 사의 블랙베리를 사용하고 있다. 블랙베리는 솔직히 두 거물급 스마트폰에 비해 대중성도 떨어지고 앱(애플리케이션) 수도 초라할 만큼 적다. 국내 실정은 더욱 열악하다. 한글 앱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며, 그나마 제공되는 앱도 기능적으로 제한이 많다(다행히도 ‘카카오톡’은 된다. 물론 이마저 기능이 다소 제한적이다). 그래서 본 기자는 블랙베리를 스마트폰이 아닌 ‘스마트한 기능의 일반폰’이라 칭한다.

그럼에도 블랙베리를 놓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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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블랙베리를 놓지 못하는 이유 (1)

그럼에도 블랙베리를 놓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아, 물론 '약정 의무사용'이라는 족쇄가 있긴 하지만 이는 부수적 이유에 불과하다.

그 첫째는, 쿼티 자판이다. 약 2개월 정도 사용하면서 완전히 적응한 블랙베리 고유의 쿼티 자판은 일반적인 터치식 자판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절대적인 타이핑 감을 제공한다. 특히 외근이 잦은 업무 환경에서 쿼티 자판의 효율성은 다른 스마트폰을 압도한다. 물론 작은 키 때문에 오타도 더러 발생하긴 하지만, 손끝으로 느껴지는 키 누름이 확실하고 명확하기 때문에 터치 방식의 입력보다는 리드미컬한 입력이 가능하다. 타이핑 속도도 당연히 빠르다(물론 터치 입력이 빠른 독자도 많겠지만). 더구나 자판을 내려다보지 않고 타이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니 유연한 문자 입력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웬만한 문서(또는 이메일)는 블랙베리를 통해 자투리 시간(화장실, 지하철/버스, 잠자기 전 등)에 작성할 수 있다. '에버노트'나 '구글 닥스' 등의 문서 작성 앱을 사용하니 금상첨화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1~2초 내에 신속하게 타이핑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본 기자에게는 확실한 ‘메리트’를 부여한다. 이른바 '스마트워크'의 기틀이다.

그럼에도 블랙베리를 놓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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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블랙베리를 놓지 못하는 이유 (2)

본 기사 역시 지하철로 이동하며 틈틈이 블랙베리의 쿼티 자판(과 에버노트)으로 집필한 것이다. 물론 완벽한 문서를 만들기에는 부족하지만, 외부 이동 중 초고를 작성한 다음, PC에서 최종적으로 검수 및 탈고 작업만 거치면 된다. 이메일 작성도 마찬가지다.

블랙베리를 비롯한 몇 안 되는 쿼티형 스마트폰 사용자가 쿼티 자판을 선호하는 이유도 위와 같은 장점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를 스크린골프(터치 입력)와 실제 필드골프(쿼티 자판 입력)에 비유한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쿼티 자판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고개를 끄덕이리라 예상한다.

특히 쿼티 자판은 한글처럼 겹자음, 이중모음을 사용하지 않는 알파벳 언어 사용자에게는 확실히 주효한 입력 메카니즘이다. 그래서인지 외국을 나가보면 쿼티형 스마트폰의 인기가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 못지않음을 깨닫는다. 블랙베리를 비즈니스용 스마트폰이라 말하는 이유도 전적으로 이 쿼티 자판에 있다. 이메일이나 문자 발송, 트위터/페이스북 등의 SNS 사용, 간단한 업무 문서 작성에 탁월한 입력 효율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블랙베리를 선호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메시지 통합 관리 기능이다. 대부분의 스마트폰 사용자가 그러하듯 본 기자 역시 이메일, 문자메시지, 메시지 앱(카카오톡), SNS(페이스북) 등을 주로 사용한다. 블랙베리의 메시지 통합 시스템은 각기 다른 메시지를 모두 하나의 화면으로 모아 일괄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에는 다소 생소했는데 점차 적응되니 이젠 각각 확인해야 하는 기존 방식이 번거롭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해당 메시지는 하나의 화면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송수신할 수 있다. 즉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메일을 보내기 위해, 또는 카톡을 보내기 위해, 페이스북에 글을 쓰기 위해 해당 앱을 각각 실행시켜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블랙베리를 놓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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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블랙베리를 놓지 못하는 이유 (3)

물론 이러한 메시지 통합 도구 역시 쿼티 자판으로 인해 더욱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여러 가지 메시지를 단일 창구로 편리하게 받은 다음 신속하게 보내는 데는 쿼티 자판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흔치 않을 테지만 주변에서 블랙베리 사용자를 혹 만나거든, 그렇게 열악한 사용환경에서도 왜 굳이 블랙베리를 사용하는지 한 번쯤 물어봐 주기 바란다. 아마도 십중팔구는 쿼티 자판의 치명적인 매력 때문이라 답하리라 예상한다(나머지는 약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할 테고). 블랙베리 이외에도 쿼티 자판을 내장한 안드로이드폰도 몇 종류 시판되고 있지만, 한국시장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높지 않다. 때문에 삼성, LG, HTC, 모토로라 등의 스마트폰 주요 제조사도 쿼티 자판 제품은 주로 외국 시장을 겨냥해 출시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본 기자가 경험한 바로는, 한글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충분히 유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더구나 카카오톡의 인기로 단문 입력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 사용자들이라면 쿼티 자판 스마트폰이 이전보다는 좋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블랙베리를 놓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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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블랙베리를 놓지 못하는 이유 (4)

여담으로, 그렇게 훌륭한 쿼티 자판을 갖췄음에도 블랙베리가 한국시장에서 변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건 역시 ‘콘텐츠의 부재’ 때문이다. 명색이 스마트폰이지만 스마트한 무언가를 할 만한 앱이 몇 개 없다. 애초에 비즈니스 용도에 특화된 제품임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사용자를 위한 대중적 콘텐츠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RIM 사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지만, 국내 모바일 앱 개발자들을 움직이지 않는 이상 현재의 열악한 상태를 호전시키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RIM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한국시장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 지도 관건이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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