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스마트TV 접속 차단, 무엇을 위해?
앞으로 한동안 상당수 스마트TV 이용자들은 제품의 기능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될 것 같다. 오늘(9일) KT에서 스마트TV에 대한 인터넷 접속을 차단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스마트TV란 인터넷 접속을 통해 VOD(주문형 비디오)를 감상하거나 어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이하 어플)을 설치해 PC나 스마트폰과 같은 다양한 부가기능을 쓸 수 있는 차세대 TV를 의미한다.
스마트TV의 대다수 부가 기능은 인터넷 접속 없이는 무용지물이 된다. 물론, 인터넷 접속을 하지 않고도 일반 공중파 방송 시청은 가능하지만 이래서야 일반 TV와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이번 KT의 접속 차단 발표는 스마트TV 제조사는 물론, 해당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에게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KT가 이런 ‘초강수’를 두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전반적인 초고속 인터넷 망의 트래픽(부하) 증가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을 즈음해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의 수는 더 이상 늘지 않는 정체상태에 이른 반면, 인터넷 망을 이용하는 기기 및 콘텐츠의 수는 계속 증가해왔다. 이로 인해 KT를 비롯한 인터넷 망 제공 사업자들은 늘어나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수익은 늘지 않는 악순환을 감내해야 했다.
특히 스마트TV의 핵심적인 부가 기능인 VOD나 지난 방송 다시 보기 서비스와 같은 실시간 동영상 감상 서비스는 단순한 인터넷 서핑에 비해 훨씬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킨다. 더욱이, 최근 대용량의 HD급 고화질 동영상이 일반화되면서 이는 더욱 심화되었다. 스마트 TV를 통해 HD급 화질의 VOD를 감상하면 PC를 이용해 웹 하드에서 수십GB를 넘는 대용량의 파일을 다운로드 받는 것과 같은 트래픽을 유발, 최대 수백 배까지 전체 인터넷 속도를 느려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KT의 설명이다.
이런 표면적인 사정만 본다면 KT의 이번 조치가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순진하게 이를 동의하기에는 입맛이 쓴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KT는 이번 조치를 취하면서 ‘스마트TV 제조사들이 정당한 대가 없이 인터넷 망을 무단 사용’하는 것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스마트TV 제조사들이 제품을 판매하려면 KT를 비롯한 인터넷 망 사업자들에게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이 경우 돈을 내야 하는 것은 스마트TV 제조사들이 아닌 스마트TV 사용자들이다. 스마트TV에 인터넷 접속 기능을 단 것은 제조사들이지만, 이를 이용해 인터넷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은 사용자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KT를 비롯한 인터넷 망 사업자들은 하나의 회선에 1대의 PC만 접속하는 것을 전제로 서비스를 실시해 왔으며, 한 집에서 2대 이상이 접속할 경우에는 추가 회선에 대한 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사실, 인터넷 망 제공사들은 그동안 사용자들이 인터넷 공유기 등을 이용해 하나의 인터넷 망에 복수의 장비로 연결해 동시에 인터넷을 쓰는 것을 사실상 묵인해 왔으며, 스마트 TV를 이런 식으로 추가 연결해 사용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굳어지는 듯 했다. 이는 KT뿐 아니라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 같은 다른 인터넷 망 사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이러한 관행을 깨고 1회선당 1기기 접속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2대 이상의 기기 사용 시 요금을 부과하게 된다면 사용자들의 반발을 살 뿐만 아니라 경쟁사로 고객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 때문에 KT는 사용자들이 아닌 스마트TV 제조사들에게 비용을 요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에 대해 스마트TV 제조사들은 당연히 반발하고 있으며, 비싼 돈 주고 산 스마트TV를 제대로 쓸 수 없게 된 사용자들의 항의도 곧 빗발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KT는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2011년 기준으로 782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어, SK브로드밴드(419만 명)나 LG유플러스(281만 명)에 비해 업계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
한편, KT의 이번 조치가 자사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IPTV 사업을 보호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IPTV는 케이블이나 공중파와 달리 인터넷 회선을 통해 시청하는 TV이며, 연결 방식이나 기능이 스마트TV의 그것과 상당수 겹친다. 아직 스마트TV의 보급률이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접속차단이라는 강수를 두는 것은, 장차 스마트TV의 보급률이 높아질 경우 IPTV 사업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IPTV 역시 HD급 화질의 방송을 송출하고 있으므로 이 역시 트래픽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은 스마트TV와 마찬가지라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KT측은 IPTV는 스마트TV와 데이터 전송방식이 달라서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발생시키는 트래픽자체도 스마트TV에 비해 적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마트TV의 성장세가 IPTV 보급에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이번 조치와는 무관하다는 것. KT의 이러한 주장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시간을 두고 검증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번 KT의 조치가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9일 현재, KT의 경쟁사인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아직 스마트TV 접속 차단에 대해 검토만 하고 있을 뿐, 실제로 이를 실시할 계획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양사가 KT의 행보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KT는 혼자서 비난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 대규모 가입자 이탈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인터넷 트래픽에 대한 책임을 통신망 사업자뿐 아니라 기기 제조사 및 콘텐츠 사업자도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이른바 ‘망 중립성’ 원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요즘, 이번 KT의 스마트TV 인터넷 접속 차단 조치로 인해 이에 관한 논의가 한층 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