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 음향의 표준 규격 - 돌비(Dolby)
19세기 말에 축음기가 처음 발명된 이후, 기계를 통해 소리를 재생하는 노력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 초에 이르러 실용적인 녹음기 및 라디오가 등장해 대중화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깨끗한 소리를 듣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
특히 당시의 오디오 테이프들은 품질이 열악한데다 방송이나 영화 상영용으로 쓰는 경우에는 합성과 편집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더 커지기 마련이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각종 잡음 억제(NR: noise reduction) 기술이 발표되었지만, 성능이나 실용성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것은 없었다. 특히 잡음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원음의 왜곡이 심해지는 것이 문제였다.
레이 돌비, 돌비 연구소를 세우다
이러던 와중 1965년, 영국 출신의 기술자이자 물리학 박사인 ‘레이 돌비(Ray Dolby)’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돌비 연구소(Dolby Laboratories, 이하 돌비사)’를 설립하고 잡음 억제 기술의 개발에 나선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6년에 첫 작품인 ‘돌비 A-타입(Dolby A-Type)’이라는 잡음 억제기술을 발표했다. 돌비 A-타입은 고음과 저음을 여러 대역으로 분리하여 청취에 불필요한 잡음만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어 호평을 받았다.
다만 돌비 A-타입은 잡음 억제 성능이 우수했지만 전문가용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기기의 크기도 크고 가격도 비쌌으며, 돌비사 자체의 생산력으로는 이를 대량으로 생산하기도 어려웠다. 1968년에 등장한 ‘돌비 B-타입(Dolby B-Type)’은 돌비 A-타입에 비해 약간의 기능을 축소했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크기가 작은 기기에서도 유사한 효과를 볼 수 있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돌비 B-타입이 주목 받은 또 하나의 이유는 라이선스 정책 때문이었다. 돌비사에서 직접 기기를 제조하던 돌비 A-타입과 달리, 돌비 B-타입은 기술 개발만 돌비사에서 담당하고 기기의 제조는 다른 제조사에서도 할 수 있었다. 돌비 B-타입 기술은 당시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카세트테이프 기기에 탑재되기 시작, 대중화에 성공한다. 이후에도 돌비사는 전문가용 기기는 직접 제조하지만, 일반 가정용 기기에는 기술만 라이선스 판매하는 전략을 유지했다. ‘소니 워크맨’ 등의 다양한 음향 기기에 돌비 B-타입 기술이 탑재되었고, 이로 인해 돌비사는 전세계에 이름을 알리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돌비, 입체음향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다
잡음 억제 기술로 명성을 얻은 돌비사는 1970년대 후반부터는 입체음향 기술의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당시에는 입체 음향이라고 해봐야 전방 양쪽에 위치한 2채널의 스피커로 구현되는 스테레오(Stereo) 방식이 대다수였지만, 돌비사가 1975년에 발표한 극장용 입체 음향 기술인 ‘돌비 스테레오(Dolby Stereo)’ 기술은 중앙과 후방 채널 스피커를 추가하여 한층 향상된 입체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82년에는 가정용 입체음향 기술인 ‘돌비 서라운드(Dolby Surround)기술’이 발표되어 일반인들도 입체음향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 음원 보다 음질과 사용 편의성이 향상된 디지털 방식의 음원이 주목을 받게 되었고, 입체 음향 역시 디지털화의 과제를 안게 되었다. 돌비사는 1992년, 디지털 방식의 5.1채널(5개의 위성 스피커 + 1개의 서브 우퍼 스피커) 입체 음향의 코덱(Codec: 데이터 압축 기술)인 ‘돌비 AC-3(Dolby Audio Code Number 3)’를 개발했으며, 이는 실제 제품에 적용되면서 ‘돌비 디지털(Dolby Digital)’이라는 정식 명칭을 얻게 되었다. 돌비 디지털은 초기에는 극장용으로만 쓰였으나 영화 DVD나 지상파 디지털 방송 등의 기본 음향 코덱으로 채택되면서 가정용으로도 가장 많이 쓰이는 디지털 입체 음향 규격이 되었다.
돌비의 대표적인 입체 음향 규격
돌비사는 창업 초기에는 잡음 감소 기술을 주로 개발했으나 돌비 디지털의 발표 이후부터는 입체 음향 기술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2011년 현재 쓰이고 있는 돌비사의 대표적인 입체 음향 규격은 다음과 같다.
① 돌비 디지털(Dolby Digital)
돌비 디지털은 하나의 케이블로 전달되는 디지털 신호를 5.1채널의 아날로그 음향으로 분리해 출력할 수 있다. 돌비 사에서 3번째로 개발한 오디오 코덱이라는 의미에서 ‘AC3’라고도 한다. 1992년에 극장 개봉한 ‘배트맨2’에서 처음 사용했다. 돌비 디지털의 최대 비트레이트(Bit Rate: 1초당 전달되는 정보량)는 448kbit/s이다. 극장용 외에도 DVD 및 지상파 디지털 방송에 주로 쓰이며, 플레이스테이션3, Xbox360과 같은 비디오 게임기에서 5.1채널 음향을 출력할 때도 쓰인다. 사실상 디지털 입체 음향의 표준 규격이라 할 수 있다.
② 돌비 디지털 플러스(Dolby Digital Plus)
데이터의 압축률을 낮추면 용량이 커지지만 음질은 향상된다. 돌비 디지털 플러스는 기존 돌비 디지털보다 압축률을 낮춰서 음질을 향상시키고(최대 비트레이트 1.7Mbit/s), 7.1채널 출력이 가능한 규격이다. 블루레이와 HD DVD에 수록되며(경우에 따라선 수록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AC3(돌비 디지털) 규격을 개량한 것이라 하여 E-AC3(Enhanced AC-3)라고도 한다. 만약 사용자의 하드웨어가 돌비 디지털 플러스를 지원하지 못할 경우엔 자동으로 돌비 디지털로 변환되어 출력된다.
③ 돌비 트루HD(Dolby TrueHD)
원본 데이터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음질 손실이 발생하는 돌비 디지털이나 돌비 디지털 플러스와 달리, 돌비 트루 HD는 무손실 압축 코덱을 지향하는 입체 음향 규격이다. 7.1채널 및 8채널 출력이 기본이며 압축률이 매우 낮아(비트레이트 18Mbit/s) 데이터 용량이 크지만 그만큼 원음과 다름 없는 고음질의 입체 음향을 구현할 수 있다. 다만, 돌비 트루HD를 지원하는 음향기기가 많이 보급되지 않은 상태라 2011년 현재 출시되는 블루레이나 HD DVD 타이틀 중에는 돌비 트루HD 음성 트랙이 수록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④ 돌비 프로 로직(Dolby Pro Logic)
돌비 프로 로직은 디지털 입체음향 규격인 돌비 디지털과 달리, 아날로그 방식의 2채널 스테레오 음향 신호를 받아 이를 분리하여 입체음향으로 출력하는 방식이다. 1987년에 발표된 돌비 프로 로직은 4채널, 2000년에 발표된 돌비 프로 로직II는 5.1채널 출력을 지원한다. 저렴한 장비에서 입체음향을 구현할 수 있고, 디지털화되지 않은 오래된 음성 소스도 입체 음향으로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입체감이나 음질은 돌비 디지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단점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