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코리아에 꼭 필요한 것들
삼성전자와 대학원생 이종길씨 간의 김치냉장고 디자인 소송 건은 디자인권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 지난 10월 29일, 소송은 3천만 원의 손해배상으로 종료되었지만 이 사건이 영향을 미친 파장은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관련기사: ‘디자인 코리아’에 디자인은 없다? http://it.donga.com/newsbookmark/7416/).
디자인권에도 ‘힘의 논리’가?
디자인원 저작권자가 중소기업, 순수 창작인, 학생이나 작가라면 그 권리를 보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번 사건에서 이종길씨는 대학원생 신분으로 삼성전자 측과 용역 계약을 했다. 즉, 국내 최대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고용업체의 입장이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사건 이후 자사 블로그 ‘삼성 투모로우’에 ‘김치냉장고 디자인 관련 법원 판결에 대해 알려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포스트를 게재했다. 이 포스팅에 관해 여러 매체들이 삼성전자가 사과문을 게재했다고 보도했으나, 실제 내용이나 제목을 꼼꼼히 살펴 보면 사과문이라고 보기에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이 씨와의 디자인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디자이너 '카렌 리틀'이 렌더링한 김치 냉장고에 들어갈 문양을 국내 정서에 맞도록 수정, 발전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카렌 리틀’의 렌더링 개선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이 씨의 디자인 특성이 가미된 것을 간과했다’라고 해명한 부분이다. 즉, 해외 디자이너의 이름을 표기했던 상황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디자인 시대, 창의력은 기업의 필수 경쟁력 - 작가, 학생과 공생할 수 있어야
이씨는 삼성전자의 해당 포스팅에 대해 댓글로 ‘판결을 존중하신다면 정확한 사실을 기반으로 사과문을 작성하길 바랍니다’라며, ‘제 이름을 카렌리틀과 병기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카렌리틀이 아닌 제 이름만 기록했어야 하는 겁니다’라고 응했다. 또한, ‘사실을 왜곡해서 사과문을 올리면 안되지요’라고 꼬집었다. 즉, 이씨에게 중요했던 점은 보상이 아닌 진정성 있는 사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성전자 측은 이씨에 대한 사과문 외에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명성을 빌어 제품을 홍보해 판매한 뒤 이 내용을 믿고 고가의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에게 일말의 사과나 배려가 없었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디자인 저작권을 침해하고 디자이너의 자존심을 훼손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디자인 시대에 살아 숨쉬는 창의력은 기업의 필수 경쟁력이며, 이를 위해 창의적인 작가 또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지닌 학생 등과 기업의 조인은 필수불가결하다. 결국 양측이 공생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디자인 저작권에 대한 상호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성립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힘의 논리’를 지배하는 측의 이해와 의지다.
디자인권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 의식 개혁 더해져야
디자인권에 관해 얽혀 있는 실타래를 단숨에 풀기는 어렵다. ‘힘의 논리’ 외에도 여러 가지 요인들이 가로 놓여 있으며, 이 문제들이 단시간에 해결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조짐도 보인다. 지난 7일, 특허청은 모방 디자인 출원에 대한 심사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특허청은 관련 단체로부터 캐릭터, 디자인 자료를 수집해 디자인 심사관들에게 배포할 계획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유명 캐릭터를 모방한 디자인 출원의 경우, 세부적인 부분이 유명 캐릭터와 다르더라도 주요 특징이나 모티프가 유사하면 등록을 거절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다음 달에는 국내 최대 규모로 ‘2011 상표ㆍ디자인권전’이 열려 디자인권에 대한 일반인의 인지도 향상을 돕는다. 이번 행사에서 모조품이 많이 유통되는 유명 브랜드 및 디자인에 관해 진품과 모조품을 맞히는 퀴즈 대회도 열릴 예정이다.
슬로건에 걸맞는 디자인 코리아를 이룩하려면 디자인권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당사자들이 서로의 권리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또한, 위에 언급한대로 디자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보완과 의식 개혁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3천만 원 이상의 의미를 남긴 이번 김치냉장고 소송이 디자인코리아로 나아가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 본다.
글 / IT동아 이문규(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