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플레이어를 대체한 보통명사 - 아이팟(iPod)
“아이팟은 음악 산업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건 나만의 과대평가가 아니다.”–스티브잡스
“아이팟이 없었다면 디지털 음악 시대는 노래와 앨범 대신 파일과 폴더로 분류됐을 것이다. 비록 음악의 수단이 변했을지라도, 아이팟은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활기를 준다.”– 존 메이어 (싱어송라이터)
“아이팟나노가 날씬했기에 케이트 모스는 코카인을 끊을 수 있었다.” 빌 마허 (TV쇼 진행자)
“아이팟은 사람들이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버렸다.”– 칼 라거펠드 (패션디자이너)
“아이팟이 없었던 시절을 상상하기 어렵다. 아이팟은 음악 플레이어 그 이상이다. 그것은 개성의 연장선이자 어딜 가든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최상의 방법이다.”– 메리 제이 블라이즈 (가수)
전 세계 누적 판매량 2억 7500만 대를 기록하며 명실공히 MP3 플레이어의 최강자로 우뚝 선 애플 아이팟(2010년 1월 기준). 미국에서 팔리는 MP3 플레이어 4대 중 3대는 아이팟이다. 이는 과거 카세트 플레이어 시장에서 소니의 워크맨이 차지했던 위상과 견줄만 하다. 워크맨이라는 상품명이 카세트 플레이어라는 보통명사보다 더 널리 쓰였듯이, 영어권 시장에서 아이팟은 MP3 플레이어를 대체하는 보통명사가 된지 오래다. 아이팟은 애플과 스티브잡스가 만들어낸 시대의 아이콘 중 하나이자 이후 등장한 아이폰, 아이패드의 모태가 됐다.
아이팟의 탄생
엄밀하게 말하면 아이팟의 아버지는 스티브잡스가 아니다. 아이팟의 핵심, MP3플레이어와 온라인 음원 판매를 연동하는 방식은 애플의 아이팟 담당 부사장이었던 토니 파델(Tony Fadell)의 아이디어다. 그는 원래 필립스 엔지니어였지만 1990년 후반 회사를 나와 ‘퓨즈(Fuse)’라는 디지털 음악 기기 벤처를 설립했다. 그러나 사업은 뜻대로 잘 되지 않았고, 결국 투자자를 모집하러 여러 회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단 한 곳, 애플만이 그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2001년 애플은 파델을 고용하고 30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MP3 플레이어 전담팀을 배정했다. 개발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진행됐다. 하드웨어의 기본 바탕은 포털 플레이어(Potal Player)라는 회사의 제품에서 빌려왔고 스티브잡스가 외형 및 디자인을 결정하는데 깊이 관여했다. 특히 첫 번째 시제품이 나온 이후로, 잡스는 거의 매일 회의에 참석했다. 아이팟의 소리가 다른 MP3 플레이어보다 상대적으로 큰 이유는 스티브잡스가 난청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아이팟이라는 이름은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인 비니 치에코(Vinnie Chieco)가 제안했다. 그는 시제품을 본 순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명대사 “할, 포드베이도어를 열어!(Open the pod bay door, Hal!)"를 떠올렸다. 시제품이 우주선의 문을 빼닮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애플의 제품명에 따라붙던 ‘I’가 합쳐져 ‘iPod’으로 최종 결정됐다.
팀이 구성된지 8개월 후인 2001년 10월, 첫 번째 아이팟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플래시메모리를 사용했던 다른 MP3플레이어와는 달리, ‘아이팟 1세대’는 1.8인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채택했다. 가능한 많은 음악을 담기 위해서였다. “1,000개의 노래가 호주머니에(1,000 songs in your pocket)” 라는 슬로건이 이를 나타낸다. 대신 가격이 399달러로 매우 비싼 편이었다. 전문가들은 가격이 너무 높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지만 소비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팟은 그야말로 날개돋힌듯 팔렸다.
애플은 매년 새로운 아이팟을 선보였다. 기본형 제품인 아이팟 클래식,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든 아이팟 미니, 플래시메모리 기반의 아이팟 나노, 액정화면을 없애고 꼭 필요한 부분만 남긴 아이팟 셔플, 터치로 동작하는 아이팟 터치 등 수많은 제품군이 시장을 강타했다. 비록 아이폰 등장 이후로 카니발라이즈(비슷한 자사 제품이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를 겪고 있긴 하지만 아이팟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MP3 플레이어다.
아이팟의 성공 요인
아이팟의 성공은 더 이상 하드웨어의 사양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사실 아이팟 1세대의 사양은 기존 제품에 비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하드디스크를 채택해 많은 수의 음악을 담을 수 있었지만 그만큼 크기가 크고 배터리를 빨리 소모했다. 또한 가격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아이튠즈라는 엄청난 동맹군이 있었다. 아이튠즈는 아이팟이 없는 사용자들도 PC에서 많이 이용하는 음악 관리 서비스다. 아이튠즈를 사용하면 수많은 음악이 태그별로 자동 분류되어 원하는 음악을 빨리 찾을 때 유용하다. 또한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에서 음악을 구매하기도 쉽다. 폴더를 일일이 뒤져 원하는 노래를 찾거나 CD를 MP3로 변환하는 수고를 덜어준 것이다. 이 아이튠즈에 아이팟을 동기화하면 아이튠즈의 음악이 그대로 아이팟에 옮겨온다. 다른 제조사들이 단순히 하드웨어의 사양과 부가기능에 열을 올릴 때, 애플은 콘텐츠 생태계와 사용자 편의성에 집중한 것이다.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기존 MP3 플레이어는 검정 일색에 조잡한 버튼이 전면에 다수 붙어있는 전형적인 외형을 띠고 있었다. 이에 아이팟은 단순하고 유려한 디자인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또한 원형 모양의 휠 버튼 하나로 모든 명령이 가능하게끔 만들어졌다. 스티브잡스는 사람들이 원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 버튼을 세 번 이상 누를 필요가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러한 점 때문에 국내에서는 오히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아이튠즈 자체가 생소했을 뿐 아니라 한국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해 사용하는 사람은 소수였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DMB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가격은 비쌌다. 전세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아이팟에게 한국은 넘지 못할 장벽과도 같았다. 그러나 아이팟에 전화, 카메라, GPS 등을 추가한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애플은 국내에서도 수백만 대의 아이폰을 팔아치우며 아이팟 시절의 설움을 보란듯이 날려버리게 된다.
아이팟의 종류
아이팟 클래식
아이팟 클래식은 담배갑 모양의 기본형 제품이다. 전면부 상단에는 액정화면이 있고 하단에는 원형의 휠 버튼이 있다. 2001년 첫 출시된 제품은 5GB 저장 용량을 갖춰 약 1,000곡을 담을 수 있었으며 2011년 현재는 160GB 저장 용량에 최대 40,000곡 또는 200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담을 수 있는 제품이 판매중이다.
아이팟 미니
아이팟 미니는 마이크로드라이브(MD)를 채택해 두께를 절반 가량으로 줄인 제품이다. 두께를 제외하고는 아이팟 클래식과 비슷하게 생겼다. 2004년 4GB 용량의 1세대 제품이, 2005년 4GB/6GB 용량의 2세대 제품이 출시됐다. 이후 아이팟 미니는 더 이상 출시되지 않고 있으며 아이팟 나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아이팟 나노
플래시메모리를 사용한 아이팟 나노는 아주 얇고 가볍다. 다른 아이팟에 비해 저장용량이 작은 대신 가격이 저렴하다. 2005년 1세대 제품이 출시된 이후로 2010년까지 매년 꾸준히 신제품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전세계적으로 배터리 과열 사고를 잇따라 일으킨 문제작이기도 하다.
아이팟 셔플
아이팟 셔플은 아이팟 시리즈 중 가장 작은 외형을 자랑한다. 또한 액정화면이 없는 최초의 아이팟이기도 하다. 2005년 1세대 제품을 시작으로 2010년 4세대 제품까지 출시됐다. 휴대성이 좋기 때문에 옷깃이나 암밴드에 클립으로 끼우고 운동할 때 많이 사용한다. 노래를 임의로 재생한다고 해서 셔플(뒤섞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이팟 터치
아이팟 터치는 아이팟 시리즈 중 가장 고급형 제품이다. 손가락 등을 화면에 문질러 사용하는 멀티터치 방식을 채택했다. 아이폰에서 전화, 카메라, GPS를 제거한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선 인터넷을 사용해 웹서핑을 할 수 있고 애플 앱스토어에서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을 수도 있다. 2007년 1세대 제품이 출시됐고 2010년에는 4세대 제품이 출시됐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