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없다고 애플 무너지랴?
“애플 최고경영자(CEO)로서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수 없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여러분들에게 제일 먼저 알리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날이 왔네요. 저는 이제 애플 CEO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24일(현지시간)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잡스는 애플 이사회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이사회에서 허락한다면 CEO 자리에서 물러나 이사회장과 애플의 한 직원으로 근무하고 싶다”고 밝혔다. 차기 CEO는 현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팀 쿡(Tim Cook)이 맡는다.
갑작스러운 잡스의 발표에 전 세계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어느 누가 잡스가 없는 애플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소식이 전해진 순간 애플의 주식은 시간외 거래에서 5% 가량 급하락했고, 경쟁사와 협력사들의 주식도 덩달아 춤을 췄다. 애플은 일생 일대의 위기에 봉착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만 하루가 지나자 점차 침착함을 되찾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전문가들은 잡스의 사임이 단기적으로는 애플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향후 2~3년 동안에는 잡스가 미리 준비한 로드맵에 따라 제품이 출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급락한 주식도 다시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증권 애널리스트들은 애플의 주식이 떨어졌을 때 매입해야 한다고 투자자들에게 권하고 있다. 잡스가 아무리 대단한 인물이라고 해도, 그 역시 애플이라는 거대 기업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그 톱니바퀴는 그 동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역할을 담당했고 매우 특별해서 딱히 대체할 부품을 찾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잡스 없어도 괜찮은 이유
잡스 없어도 애플이 잘 돌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잡스의 결정이 ‘은퇴’가 아니라 ‘사임’이기 때문이다. 잡스는 이제 애플의 수장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사장으로서 애플에 근무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사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사장은 이사회를 주재하는 최고 임원으로, 기업에 따라 CEO와 겸임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경우도 있고 명예직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스포츠업체 나이키의 이사장으로서 회사의 정책결정에 깊이 관여하는 필 나이트(Phil Knight)가 전자에 해당하고, 구글의 대표이사인 에릭 슈미트(Eric Schmidt)가 후자에 해당한다. 잡스가 어느 쪽에 가까울지는 아직 누구도 확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단순한 ‘얼굴마담’ 역할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때문에 잡스의 창의성과 영감은 앞으로도 계속 애플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새로운 CEO인 팀 쿡이 꽤 훌륭한 경영자라는 사실이다. 잡스처럼 번뜩이는 창의성이나 넘치는 쇼맨십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잡스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지난 2004년, 2009년, 2011년 초 잡스가 병가를 냈을 때마다 쿡이 경영을 맡았고 애플의 주식은 꾸준히 상승했다. 경영능력에서는 이미 검증을 받은 셈이다. 또한 쿡은 잡스의 최측근이자 잡스의 로드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잡스가 사임한 다음 날, 쿡은 전사메일을 통해 직원들에게 “애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길 바란다”며 “나는 (잡스가 만들어 놓은) 애플 특유의 원칙과 가치를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쿡이 ‘잡스의 사람’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잡스 때문에 아이폰 산 것 아니거든요
한편 애플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별다른 동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잡스의 사임이 애플 제품 판매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약 86%의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사고자 하는 의지에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이전에 비해 애플 제품을 사기 싫어졌다”고 답한 사람은 약 10%며, “더 사고 싶어졌다”고 답한 사람은 약 3%다. 이 말은 잡스가 애플의 CEO였기 때문에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산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다. 물론 잡스가 애플에 끼진 영향력은 막대하지만, 잡스가 CEO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애플이 금방이라도 망할 것처럼 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건강 때문에 일선에서 물러났을 뿐 잡스는 여전히 애플 그 자체다. 단순히 CEO가 바뀌었다고 해서 ‘사과’가 ‘개살구’가 되지는 않는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