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 SSD', 성능을 위한 최적의 조합
자연의 섭리를 기초로 하는 ‘역학(易學)’을 보면, 12지간(支干, 띠)의 조합에 따라 ‘삼합(三合)’ 또는 ‘원진(元嗔)’이라 하여 각 지간 사이의 어울림과 어긋남을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어, ‘사유축(巳酉丑, 뱀/닭/소)’삼합은 3지간이 만나면 나쁜 것은 상쇄하면서 좋은 것은 더욱 좋게 만든다. 반대로 ‘축마(丑馬, 소/말)’ 원진은 나쁜 것만 도드라지게 되어 불안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이렇게 띠를 통해 상호 관계를 점쳐 보는 게 ‘겉궁합’이다).
이러한 조합의 미학은 역학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적용된다. 컴퓨터 분야에서는 각 부품 간의 적절한 조합과 함께 균형(밸런스)도 필요하다. 최근에는 CPU나 메모리, 그래픽카드 등의 주요 부품 성능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조합보다는 균형을 더 의미 있게 여긴다. CPU는 최상위급인데 메모리 용량도 적고 그래픽카드도 중저급이라거나, 반대로 그래픽카드는 훨훨 날라 다니는데 CPU는 벅벅 긴다면 컴퓨터가 제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데스크탑과 달리 노트북은 부품 선택이 제한적이다. 대부분 메모리 증설 외에 CPU나 그래픽카드 등을 교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노트북 제조사는 최근 들어 노트북용 하드디스크(HDD)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드디스크는 모든 데이터가 저장되는 공간이므로, 이를 업그레이드하면 전반적으로 현저한 성능 향상을 체감할 수 있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성능(CPU 역할)도 중요하지만, 처리된 데이터를 저장(쓰기)하거나 새 데이터를 불러 오는(읽기) 성능도 무시할 수 없다.
노트북에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SSD(Solid-state Drive)가 뜨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반 하드디스크에 비해 데이터 입출력 성능이 압도적으로 높을 뿐더러, 무게는 가볍고 소비 전력도 낮아 노트북에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고속으로 회전하는 디스크도 없으니 그에 따른 발열도, 소음도 없다.
결정적인 특징은 막강한 내구성이다. 노트북은 아무래도 휴대하다 보면 크고 작은 충격이 가해질 수 있는데, SSD는 내부에 물리적으로 동작하는 부분이 없어 외부 충격에도 데이터가 손상되지 않는다. 노트북에 SSD가 최적의 조합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성능보다는 내구성 때문이라 하겠다.
다만 SSD는 아직 일반 하드디스크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그리고 용량도 상대적으로 적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서는 SSD를 장착한 노트북이 점차 인기를 얻고 있다. SSD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을 뿐 아니라 드라이브 성능과 내구성을 고려하는 소비자가 증가하기 때문이라 판단할 수 있다.
잘 나가는 SSD 노트북, 눈 여겨 볼 제품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노트북은 도시바의 프리미엄 노트북인 ‘포테제(Portege)’ R830이다. 13인치 크기에 인텔 2세대 코어 i7 프로세서(인텔vPro 보안 기술 내장), 메모리 8GB, 인텔 내장 그래픽 HD 3000, DVD-콤보 드라이브 등을 달고도 무게는 1.5kg에 불과하다. 더구나 무려 ‘500GB 짜리 SSD(도시바 제품)’를 내장해 용량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다만 그런 만큼 가격은 300만원 대로 만만치 않다(물론 타사 제품도 이 정도 사양이라면 가격대는 비슷하다).
아울러 R830은 마그네슘 합금 케이스와 벌집(honeycomb) 구조 공법으로 외형적 내구성을 강화했다. 6셀 6,200mAh의 대용량 배터리를 제공해 최대 8시간 사용을 보장한다. 더구나 일반 하드디스크보다 소비 전력이 훨씬 낮은 SSD를 채택했으니 사용 시간 확보에 더욱 유리하다. 이외에 R830은 프리미엄 노트북답게 USB 3.0 • 블루투스 3.0 •eSATA•HDMI 포트 등을 모두 제공하고 있다. 다만 각종 고급 사양을 다 달고 있으면서 그래픽은 일반적인 인텔 내장 칩셋을 적용한 점은 사용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운영체제는 MS 윈도우 7 프로페셔널 64비트가 설치돼 있다.
실제로 500GB SSD를 내장한 포테제 R830(PT321K-04Y004)의 평균 부팅 시간은 약 15초다. 이는 전원 버튼을 누른 후 윈도우 바탕화면이 나타나 사용 준비가 완료되기까지 시간이다. 일반 하드디스크는 구조적 특성 상 데이터가 쌓일수록(시간이 지날수록) 액세스 시간이 느려지기 마련인데, SSD는 ‘초지일관’, 변함 없는 입출력 성능을 보여준다. 시스템 종료는 부팅보다 더 빠르다. 몇 개의 프로그램을 실행해 뒀든 전원이 꺼지기까지 채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부팅 • 종료뿐 아니라 프로그램 설치나 제거 • 실행 시에도 기존 하드디스크보다 월등한 성능을 보인다. 데이터를 읽고 쓰는 게 빠르면 컴퓨터의 전반적인 성능이 얼마나 향상되는지 절실하게 깨닫는다.
얼마 전 출시된 소니 바이오 Z 시리즈 중 ‘VPCZ217GK/X’ 모델 역시 256GB SSD(128GB x 2)를 내장했다.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자부심을 부여하는 바이오 Z 시리즈는 노트북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감성적 프리미엄’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13인치 디스플레이(최대 해상도 1,920 x 1,080)에 인텔 2세대 코어 i7 프로세서• 8GB 메모리• AMD 라데온 HD 6650M 그래픽 칩셋• 외장형 블루레이 ODD• USB 3.0 포트•엑스모어(Exmor) 센서 웹캠•노이즈캔슬링(잡음/소음 차단) 이어폰 등 고급 옵션의 합집합 노트북이다. 이런 걸 다 달고도 무게는 1.2kg. 경이로운 무게다. 물론 가격은 350만원이 넘는다.
삼성전자도 최근에는 SSD를 장착한 센스 노트북(NT900X3A-A78)을 선보였다.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관심을 얻고 있는 ‘시리즈 9’이다. 전투기 동체 소재로 사용되는 ‘듀랄루민’을 채택하여 내구성은 높이고 무게는 줄였다. 13.3인치 디스플레이• 2세대 인텔 코어 i5 프로세서• 8GB 메모리• 256GB SSD• 인텔 내장 그래픽 HD 3000 등을 장착하고 무게는 약 1.3kg이다. 단 ODD는 없다. 가격은 약 250만원 선으로 위 두 제품보다는 저렴하다.
HP도 비즈니스 전문 노트북인 프로북 5330M에 128GB SSD를 적용했다. 5330M은 장점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석구석 튼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외부 충격에 강한 마그네슘 합금 ‘듀라피니시’로 본체 전부를 덮었고, 여기에 SSD까지 내장함으로써 ‘철통’같은 내구성을 갖췄다. 또한 미국 국방성의 군사용 기기 내구성 테스트를 통과함으로써 ‘튼튼한 노트북’의 대명사가 됐다.
이외에도 대만 최대의 컴퓨터 제조사인 에이서(Acer)도 자사 노트북, 아스파이어 타임라인X 3830TG에도 120GB의 SSD를 탑재하는 등 국내외 주요 노트북 제조사들이 SSD 적용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시장 수요도를 중시하는 제조사가 이처럼 반응한다는 건 SSD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불안하고 느린 500GB보다 안전하고 빠른 100GB가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낳은 환상의 커플
SSD는 윈도우의 디스크 조각 모음을 실행할 필요가 없다(아니 오히려 실행하지 않는 게 좋다). SSD는 하드디스크처럼 원형의 디스크에 저장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스크탑에서도 기존의 하드디스크에 비해 탁월한 성능과 내구성을 발휘하겠지만 아무래도 노트북만 못하다. 노트북 CPU • 메모리 • 그래픽카드의 성능적 공백을 SSD는 훌륭하게 메울 수 있다. 또한 바닥에 떨어뜨려도 노트북은 고장 날지 언정 SSD 안의 데이터는 안전하게 보호된다. 발열도 극히 낮으니 쿨러나 방열판 등을 제거할 수 있어 노트북도 ‘슬림’하게 제작할 수 있고, 소음도 낮아 정숙한 환경에서 사용하기도 유리하다. 뿐만이랴, 일반 하드디스크에 비해 전력 소비도 대단히 낮아 동일한 배터리로 오랜 시간 사용이 가능하다.
다만 아직까지는 가격이 비싸 일부 중고급 노트북에 장착되고 있지만(그래도 예전보다는 상당히 저렴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가격이 떨어질수록) 적어도 노트북에서는 SSD가 일반 하드디스크를 완전히 대체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