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기기를 닮아가는 오디오형 노트북
자동차 실내는 어찌 보면 음악 애호가에게 가장 개인적이면서 훌륭한 리스닝 룸(listening room)이다. 전후방에 배치된 스테레오 스피커와 함께(고급 스피커가 아니더라도), 창문을 닫으면 완전히 밀폐되어 소리가 바깥으로 새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 애호 운전자들은 카 오디오에도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한다. 그들에게 자동차는 ‘탈 것’이 아닌 ‘듣는 것’이기도 하다. 고급 승용차의 경우 아예 고가의 카 오디오 전문 시스템이 차량에 기본 내장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운드 개혁’은 노트북 분야에서도 일고 있다. 최근 들어 사운드 기능을 개선/강조한 제품이 부쩍 늘어 났기 때문이다. 예전까지는 노트북 사운드라 하면, 제조사도 사용자도 그저 ‘소리가 나면’ 그만이라 여겼지만, 최근 출시되는 엔터테인먼트 노트북의 경우 프리미엄 사운드 솔루션이나 스피커, 또는 고급 음향/음장 기술 등이 내장되어 사용자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그만큼 요즘의 노트북 사용 패턴이 다분히 멀티미디어 지향적임을 의미한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감상하는 노트북이라면 이제 제대로 된 사운드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다.
AV 전문기기의 사운드 기술, 노트북으로 강림
물론 이전의 노트북에도 부분적으로 사운드 효과/기술이 적용되긴 했다. HP와 델(dell)은 전통적으로 ‘알텍랜싱’ 사의 스피커를 자사 노트북에 내장하고 있는데, 알텍랜싱(Altec Lansing, 미국)은 1941년에 설립된 음향기기 전문 업체로, 스피커, 헤드폰, 마이크 등을 생산해 전세계에 판매하고 있다. 중급 브랜드지만 가격대비 음질 성능에서 누구라도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다.
노트북 사운드로는 ‘SRS음향 기술’도 자주 띈다. 미국의 SRS랩스(SRS Labs) 사의 입체 음향 솔루션인 SRS는 돌비서라운드, DTS(Digital Theater System)과 함께 세계 3대 음향 기술로 손꼽히고 있다. SRS랩스가 2000년에 발표한 SRS WOW 음향 기술이 MS 윈도우의 미디어 플레이어에 삽입되면서, 이후 TV, 휴대폰, MP3, PMP 등의 다양한 오디오 기기에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SRS랩스의 주요 사운드 솔루션에는 트루서라운드(Trusurround) XT, 트루서라운드 HD, WOW HD 등이 있다.
최고급 프리미엄 사운드 기술이 고스란히 들어간 노트북도 있다. 아수스의 N 시리즈 노트북(N43, N53, N73, NX90)에 적용된 ‘뱅앤올룹슨(Bang &Olufsen)’이 대표적이다. 뱅앤올룹슨은 1925년에 설립된 덴마크 업체로 명실공히 현존 최고가의 명품 오디오 브랜드다. 독일 명차인 아우디(Audi)의 고급 모델인 A8과 S8 전용 카 오디오를 공급하고 있으며, 홈씨어터 사운드 시스템, TV, 전화기, 오디오 PC 등의 AV 관련 전문기기를 생산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할 수 있는 한 가정용 홈씨어터사운드 시스템(BeoSound 9000)의 경우 가격이 4천만원이 넘는다.
앞서 언급한 아수스 N 시리즈 노트북에는 뱅앤올룹슨이 독자 개발한 ‘아이스파워(ICEpower)’라는 디지털 앰프가 내장됐다. SRS랩스 등의 소프트웨어 음향 기술이 아닌 100% 하드웨어 사운드 기술이다. 여기에 뱅앤올룹슨과 아수스가 공동 개발한 소닉마스터(SonicMaster) 사운드 기술도 탑재됐다. 노트북 사운드의 태생적, 구성적 한계를 극복한 ‘사운드 개혁’이라 할 만 하다.
HP의 고급 노트북 시리즈인 엔비(ENVY)에는 일명 ‘박태환 헤드폰’으로 유명세를 탄 ‘비츠(Beats)’ 오디오 솔루션이 적용됐다. 비츠 오디오 솔루션은 미국 AV 케이블 제조사인 ‘몬스터 케이블(Monster Cable)’이 공급하는 사운드 시스템으로, ‘닥터드레(Dr, Dre)’ 등의 미국 유명 뮤지션들이 애용하는 정통 오디오 브랜드다. 특히 HP 엔비비츠에디션은 비츠 솔로(SOLO) 헤드폰까지 포함되어 일반 사용자는 물론 사운드 전문가들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도시바의코스미오(Qosmio) 노트북은 세계적 명성의 카 오디오 브랜드인 ‘하만/카돈’(Harman/Kardon)’ 사운드 기술을 내장했으며, 델의 XPS 노트북 시리즈 역시 명품 AV 스피커인 ‘JBL’ 시스템을 내장했다. 아쉽게도 국산 노트북에는 이러한 고급 사운드 기술을 내장한 이렇다 할 제품이 아직 없다. 음질을 고려하는 사용자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판단해서인지, 아직까지 사양이나 성능, 디자인에만 집착하고 있다.
노트북 프리미엄 사운드, 얼마나 다른가
여기서는 아수스의 프리미엄급 노트북인 N53SV를 통해 ‘뱅앤올룹슨’의 고급 사운드 품질을 체험해 본다. N53SV는 15인치 와이드 디스플레이에, 인텔 2세대 코어 i7 2720QM 프로세서, 메모리 4GB, 엔비디아지포스 GT 540M, 하드디스크 500GB 등의 기본 사양에 뱅앤올룹슨의 ‘아이스파워’ 사운드 기술을 적용하고도 1백원 대에 판매되고 있다(2011년 6월 기준).
아수스 N53SV에는 뱅앤올룹슨의 ‘아이스파워’ 디지털 앰프와 아수스의 ‘소닉마스터’ 사운드 솔루션이 내장되었고, 앰프 출력은 3W(일반 노트북은 2W), 스피커(유닛) 크기는 25mm(일반 노트북은 약 20mm 이하), 사운드 울림통(챔버, chamber)은 일반 노트북의 2배인 40cc다. 이 정도면 거의 데스크탑용 스피커라 해도 무리 없을 수준이다. 실제로 N53SV는 키보드 상단에 있는 약 30cm 길이의 바 형태의 스피커를 제공하고 있다. 내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열어 볼 순 없지만, 양쪽 끝으로 25mm 스피커 유닛이 배치되어 있으리라 짐작된다. 흡사 시중에서 판매되는 USB 외장 스피커를 따로 달아 놓은 형태다. 외형만 봐도 충분히 비범한 음질을 기대할 수 있을 만하다.
1) 영화 감상
요즘 영화는 화질도 화질이지만 사운드의 역할이 대단히 크다. 드라마, 멜로 장르에서는 서정성 있는 심금을 울리는 잔잔한 클래식이, 공포 장르에서는 손이 베일 듯한 날카로운 효과음이, 액션/SF 장르에서는 관객의 혼을 뺄 만큼 강렬한 폭발음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 동안 노트북에서는 그러한 사운드 효과를 제대로 만끽하기 어려웠지만, 아수스 N53SV는 노트북 내장 스피커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풍부하고 섬세한 사운드를 들려 준다. 뱅앤올룹슨 사운드 기술 덕이다.
우선 N53SV는 블루레이 디스크를 지원하니 블루레이 영화 타이틀로 사운드를 확인했다. 블루레이는 1080p의 고해상도(풀 HD) 영상과 함께 무손실음성 데이터도 들어 있어, 용량은 크지만 눈과 귀가 호강하는 영화 관람이 가능하다.
영국 BBC에서 제작한 환경 다큐멘터리 타이틀인 ‘planet earth’를 재생했다. 15인치 크기라 이긴 하지만 역시 블루레이의 화질은 두말 할 나위 없이 깔끔하고 선명하다. 사운드 품질은 더욱 그러하다. 밀림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배경음악, 성우의 내레이션, 각종 새소리, 풀벌레 소리, 들짐승 소리 등이 빠짐 없이 모두 출력된다. 주변 환경이 어수선한 상태였음에도 상당히 또렷하게 들린다(물론 볼륨은 최대 상태지만). 다른 노트북이었으면 분명 주변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을 테다. 사운드를 직접 들려 줄 순 없지만, 노트북 내장 스피커 만으로 이 정도의 음량, 음질, 음향을 낸다는 건 뱅앤올룹슨의 사운드 기술이 괜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2) 음악 감상
노트북은 오디오가 아니다. 하지만 오디오의 역할은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신혼 혼수 가전에 오디오가 포함되지 않는 이유도 노트북이나 데스크탑이 오디오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전까지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써야 했다면, 이제는 마음 놓고 편하게 음악을 감상하면 된다.
무손실음원 파일인 ‘flac’ 형식의 팝송을 재생했다. 미국 대중음악 전문지 ‘롤링스톤’이 선정한 세계 100대 기타 연주곡(Rolling Stone Magazine’s 100 Greatest Guitar Songs of All Time)이다. 각 파일의 평균 용량이 50MB 이상인 만큼 기타 연주에 심취할 만큼 풍부한 음질을 들려 준다. 특히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지미 핸드릭스(Jimi Hendrix)’의 ‘Machine Gun’은,강렬한 드럼 사운드와 리드미컬한 기타 선율, 끈적끈적한 보컬 보이스가 정확하게 어우러져 아무리 들어도 노트북 내장 스피커에서 나오는 사운드라고 믿기지 않는다. 헤드폰이 아님에도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함성도 빠짐 없이 들려 주고 있다. 지미 핸드릭스의 신들린 연주가 집필을 방해한다.
3) 게임 실행
컴퓨터 게임에서도 사운드는 적지 않은 비중이 있다. 특히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른 소리를 정확히 구분해야 하는 FPS(총쏘기) 게임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든어택’의 경우 원래 배경음악이 이렇게 장엄하고 웅장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결전을 치르기 전 비장한 각오를 갖게 한다. 게임 내 효과음, 배경음 모두 이전의 노트북 사운드보다 훨씬 공간적으로 들린다. 소총 격발 소리와 수류탄 폭발 소리가 뒤덮어도 적국의 군화 발소리는 명확하게 잡힌다. 주변이 소란스러워도 볼륨만 약간 높이면 능히 즐길 수 있을 수준이다. 영화도 그렇지만 게임도 역시 소위 ‘사운드빨’이다. 그래픽 품질은 둘째치고 사운드가 풍부하고 섬세하니 게임 몰입도가 한층 더한다. 사운드만 듣고자 시작한 서든어택을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잡고 있다(게임만 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
게임에서도 사운드 효과를 톡톡히 발휘하는 장르는 공포/호러물이다. 컴퓨터 게임에 관해서는 식견이 짧지만, 공포/호러 게임의 교과서는 ‘사일런트힐(Silent Hill)’임을 알고 있다. 이에 ‘사일런트힐: 홈커밍(Home Coming)’을 설치하여 게임을 진행하면서, N53SV의 소닉마스터 사운드 기술이 표현하는 공포 효과를 체험했다. 헤드폰을 쓰지 않아도 N53SV는 사일런트힐 특유의 음산함과 괴기함을 사운드로 나타내고 있다. 별도의 음향/음장기능을 적용하지 않아도 병원 수술실, 복도 등에 따른 공간/환경적 사운드 효과를 제대로 출력한다. 워낙 다양하고 음산한 효과음이 많은 게임이다 보니, 누군가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게임 효과음인지 주변에서 발생하는 실제음인지 헛갈린다. 모두 퇴근한 텅 빈 사무실에서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몇 번이나 깜짝 놀랐는지. 뱅앤올룹슨의 아이스파워, 아수스의 소닉마스터 사운드 기술의 영향이 대단히 컸다.
노트북 멀티미디어의 진화를 영접하라
아우스 N53SV로 확인한 노트북 사운드 솔루션은 스피커 모양과 크기에 비해 음질, 음향, 음장 등에 있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어설픈 외장 스피커보다도 훨씬 디테일한 품질의 사운드를 들려 줬다. 이러한 전문 사운드 기술이 적용됨으로써 가격대가 대폭 높아진다면 고민의 소지가 있겠지만, 이전 제품과 큰 차이 없는 수준이라면 어떤 용도로든 이를 마다할 게 없다. 노트북으로 즐길 수 있는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굉장히 다양해졌고, 그에 따라 노트북에서도 사운드는 기본 사양이나 성능만큼 중요한 자원이 됐기 때문이다. 노트북이니까 그래픽 화질이 떨어질 수 있고, 노트북이니까 단차원적 사운드를 내도 용서 받는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다. 우수한 기술이 세상에 공개됐으면 그걸 인지하고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사용자의 역할이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