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화질은 나의 정체성, 소니 브라비아 HX920
A/V(Audio/Visual)기기에 관심이 많은 마니아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기기가 몇 개 있다. 음향기기라면 매킨토시의 진공관 앰프나 B&W의 스피커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고, 영상기기라면 소니의 TV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이전의 소니는 고화질 트리니트론 브라운관을 갖춘 베가(Vega)시리즈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브라운관의 시대가 가고 LCD, PDP를 비롯한 평판 디스플레이를 갖춘 TV가 시장의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소니의 TV도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니 평판 TV를 상징하는 새로운 브랜드, '브라비아(Bravia)'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베가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브라비아 시리즈 역시 '화질'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업체간의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 되다 보니, 실제 눈으로 보는 화질과는 상관 없이 해상도, 밝기, 명암비와 같은 단순한 사양표 비교만으로는 소니의 브라비아가 딱히 타사 제품들을 압도하고 있다고 보긴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화질은 제쳐두고서라도 여러 가지 디자인이나 편의기능에 집중하여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은 제품도 다수 출시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소니의 TV가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끊임 없는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2011년형 브라비아 시리즈를 한국 시장에 내놓는 소니의 각오는 남다르다. 화질은 물론, 디자인, 편의성까지 모두 다른 브랜드를 압도할 자신이 있다고 당당히 선언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TV시장의 최대 화두인 3D 입체영상을 지원하는데다 일부 스마트 TV의 기능도 포함하고 있다. 2011년 브라비아 중 최상위 제품인 브라비아 HX920 시리즈, 그 중에서도 55인치 모델인 KDL-55HX920을 자세히 살펴보자.
보다 얇게, 그리고 고급스럽게
소니의 제품답게 브라비아 HX920은 디자인부터 뭔가 있어 보인다. 화면과 프레임 부분이 일체화되어 자연스럽게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화면을 지탱하는 스탠드(좌우 20도 회전 가능)도 알루미늄 재질이라 확연히 고급스러운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제품의 두께는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다. 기존의 LCD TV에 쓰이던 CCFL(냉음극형광램프) 방식의 백라이트가 아닌 LED(발광다이오드) 방식의 백라이트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LED 백라이트는 소자의 크기가 작아서 제품의 크기를 줄이는데 유리하며, 밝고 균일한 화면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얇아진 두께 덕분에 벽걸이 형식으로 TV를 설치하기에도 적합하다.
벽걸이 형식으로 TV를 설치할 때 가장 아쉬운 점이 바로 후면의 외부기기 입력 단자부를 이용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브라비아 HX920의 후면 단자부는 뒤쪽이 아닌 아래쪽을 향하게 케이블을 꽂도록 설계되어있다. 또한, 측면의 단자부가 오히려 후면보다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벽걸이로 TV를 설치할 때도 외부기기 접속에 불편을 겪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향을 따르는 포트의 구성과 배치
브라비아 HX920의 단자부 구성을 살펴보면 고화질의 구현이 가능한 HDMI 포트가 총 4개나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화질이 떨어지는 컴포지트 및 컴포넌트, 그리고 D-Sub 포트는 각각 1개뿐이다. 그것도 컴포지트와 컴포넌트는 동봉된 단자부 확장 어댑터를 꽂아야 이용할 수 있다. 연결 인터페이스가 HDMI로 통합되고 있는 최근의 추세를 잘 반영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 기능을 위한 유선랜 포트를 갖추고 있으며,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무선랜(Wi-Fi) 기능도 내장하고 있다.
측면 단자부에는 영상입력 포트뿐 아니라 USB 2.0 포트도 2개 있다. 여기에 USB 메모리나 외장하드를 꽂아서 영화 파일이나 음악파일, 혹은 사진 파일을 재생할 수 있다. USB 2.0 포트는 기본적으로 전원 공급 능력이 있으므로 여기에 3D 안경을 연결하여 충전할 수도 있다.
안구가 정화되는 깔끔한 화면
이제는 소니 브라비아 HX920을 직접 체험해 볼 차례다. 브라비아 HX920의 풀HD LCD 패널에 내장된 백라이트는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는 직하 방식의 LED다. 저가형 제품의 경우, 화면의 가장자리에만 LED를 배치하는 엣지(edge) 방식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당연히 색감이나 밝기 면에서 직하 방식이 유리하다.
직하 방식 LED만이 부릴 수 있는 재주 중의 하나가 바로 로컬 디밍(Local Dimming)인데, 이는 화면 각 부분의 LED 밝기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는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명암 차이를 표현하는데 유리한데, 특히 어두운 배경에 회색 빛 사물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실제로 브라비아 HX920의 명암 표현 능력은 상당히 우수하다. 어두운 밤에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이 등장해도 또렷하게 표현되는 것을 확인했다.
부드러움의 절정, 모션플로우 XR 960 기능
브라비아 시리즈의 전통이라면 다양한 화질 보정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브라비아 HX920의 화질 보정 기능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모션플로우(Motionflow) XR 960'이다. 이는 원본 영상이 초당 60프레임으로 구동된다면 브라비아 HX920는 이를 16배에 달하는 초당 960프레임에 상당하는 수준으로 보정하여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션플로우 XR 960을 활성화시키면 매우 부드럽게 움직이는 화면을 볼 수 있으며, 잔상도 사라진다. 이는 특히 스포츠나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시청할 때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실제로 모션플로우 XR 960 기능을 적용한 상태에서 자연 다큐멘터리 블루레이 타이틀인 '살아있는 지구'를 시청해 보았는데, 화면에 나타나는 동물들의 움직임이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표현되는 것을 확인했다.
다만, 모션플로우 XR 960 기능이 확실히 신통한 기능이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꺼두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특히 영화는 대부분 초당 24프레임 기준으로 제작되므로 모션플로우 XR 960기능을 적용해서 움직임을 부드럽게 만들면 오히려 영화적 연출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도록 하자.
3D 영상의 화질도 수준급
브라비아 HX920의 구매자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이 바로 3D 입체 영상 출력 기능일 것이다. 최근 3D TV 시장은 화면 구현 방식에 따라 화질 면에서 유리한 셔터글래스 방식, 그리고 편의성 면에서 유리한 편광 방식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화질을 강조하는 소니의 3D TV는 셔터글래스 방식을 채택했다.
셔터글래스 방식 3D TV의 최대 단점은 주기적으로 충전해줘야 하는 3D 안경이 필수라는 것이다. 다만, 최근에는 제조사들의 노력으로 인해 이런 단점이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브라비아 HX920와 짝을 이루는 3D 안경인 소니 TDG-BR250은 USB 케이블로 충전하며, 평소 브라비아 HX920의 USB 포트에 연결해 두면 30분 충전으로 30시간 동안 쓸 수 있어 큰 번거로움 없이 사용이 가능하다.
브라비아 HX920에 플레이스테이션 3를 연결하고 3D를 지원하는 신작 게임인 '킬존 3'를 플레이 해 보았다. 타이틀을 구동한 후에 게임 내부 옵션에서 3D 설정을 활성화하니 TV에서 3D 신호를 감지했다는 메시지가 출력되며 자동으로 화면 모드가 전환되었다.
그리고 3D 안경을 착용한 후에 킬존 3를 플레이 해 보았다. 3D 영상의 깊이가 상당한 수준이었으며, 셔터글래스 방식 3D TV 답게 화질저하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또한 화면과의 거리와 각도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고 입체 영상을 볼 수 있어 전반적으로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다. 다만, 감상 중에 고개를 옆으로 많이 기울이면 3D 효과가 금방 사라져버리는 셔터글래스 방식 3D TV의 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점은 다소 아쉬웠다.
브라비아 HX920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일반 2D 영상 콘텐츠를 3D로 변환해 감상하는 기능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3D 콘텐츠가 부족한 현 시점에서 이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일반 블루레이 영화와 공중파 방송을 2D/3D 변환 기능으로 감상해 보니, 상대적으로 입체감이 더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처음부터 3D로 제작된 콘텐츠를 감상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떨어진다. 2D/3D 변환 기능은 어디까지나 덤 정도로 생각하고 너무 큰 기대를 하진 않는 것이 좋겠다.
부가 기능의 활용에는 다소의 아쉬움 있어
최근 '스마트 TV'가 주목 받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 TV란 PC의 기능을 일부 갖춘 TV를 발하는 것으로, 인터넷 검색도 하고, VOD도 감상하며, 각종 어플리케이션의 설치도 가능한 TV를 말한다. 브라비아 HX920도 완전하진 않지만 스마트 TV에 준하는 기능 몇 가지를 갖췄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각종 인터넷 동영상을 즐길 수 있는 '브라비아 인터넷 비디오' 기능인데, 유튜브, 다음 TV팟, blip, epi 등 20여 가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가 제공된다. 유튜브와 다음 TV팟을 제외하면 다른 서비스들은 국내에서는 그다지 쓰이지 않긴 하지만, 위 두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동영상의 양만 해도 상당하기 때문에 나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브라비아 HX920는 스마트폰처럼 화면 상에 위젯을 띄우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 지원되는 위젯은 날씨, 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이며, 리모컨의 '위젯' 버튼을 눌러 띄우거나 감출 수 있다. 다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이용할 때 리모컨으로 글자를 입력 해야 하기 때문에 빠른 타이핑이 힘들고, 한글 입력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어디까지나 TV를 시청하면서 친구들이 새로 올린 글을 틈틈이 확인하는 정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브라비아 HX920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내장하고 있어서 일반적인 웹 서핑도 가능하다. 다만, 브라우징 속도가 느린편이고 플래시(flash)를 지원하지 않아서 웹 페이지가 정상적으로 표시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역시 한글 입력 기능을 지원하지 않아 국내 사이트를 검색하는데 사용하는 데는 여러모로 불편하니 그다지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리모컨으로 하는 글자 입력이 불편하다면 소니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인 '미디어 리모트(Media Remote)'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디어 리모트를 설치하면 스마트폰을 리모컨처럼 이용, 무선랜을 지원하는 소니의 AV기기들을 조작할 수 있다. 기본 기능인 채널이나 볼륨 조절 외에 스마트폰의 자판을 이용한 글자 입력 기능도 있어서 한층 편하며, 한글 입력도 가능하다.
그외에 브라비아 HX920는 PC에서 사용하는 동영상이나 음악, 사진파일을 감상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측면의 USB 포트에 미디어 파일을 담은 USB 메모리나 외장하드를 꽂으면 이를 TV에서 곧장 볼 수 있다. 재생을 지원하는 동영상 파일은 AVI, MP4, MPG, WMV, DivX 등이며 1080p 풀 HD급 영상의 재생도 지원한다. 다만, 실제로 여러 가지 파일을 재생해 보니 해상도나 코덱에 따라 재생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많은데다가, 자막 파일 표시기능을 지원하지 않아서 국내 실정에 다소 맞지 않는 느낌이다.
TV의 본질을 극한까지 추구하다
소니 브라비아 HX920은 '소니', 그리고 '브라비아'라는 이름이 붙은 제품답게 TV로써의 기본기가 매우 뛰어나다. 특히 화질에서는 비슷한 사양의 타사 제품에 비교해 봐도 한 수 위다. 단순히 하드웨어적인 사양(해상도, 주사율, 밝기 등)이 높아서 화질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화면을 구현하는 프로그램이나 화상 엔진, 다양한 화면 보정 기술이 충실하며, 그리고 이들을 조율하는 제작자의 섬세한 손길이 더해진 덕분에 이러한 고화질을 구현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소니가 여전히 A/V 기기의 강자로 평가 받는 이유는 이러한 노하우 때문이다.
다만, 영상이나 음향 같은 기본적인 요소를 제외한 부가기능(인터넷, 위젯, 동영상 재생 등)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조작성이나 편의성 면에서 본격적인 스마트 TV에 비해 확실히 부족한 면이 있으며, 국내 실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부분도 종종 눈에 띄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제품을 구매한다면 이런 부가 기능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TV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TV로서의 본질인 화질과 음질, 그리고 디자인 면에서 소니 브라비아 HX920는 확실히 시장에 나와 있는 수많은 TV 중에서도 단연 최상위급의 평가를 받을 만하다. 소니 TV가 지금까지 추구하던 가치를 정말 충실하게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600만 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TV를 선뜻 구매할 만한 소비자는 분명히 존재할 것 같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