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어제 산 코어 i7 PC가 구형이라고?
대학생 박 모 씨는 지난 주에 PC를 새로 구매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박 씨는 최신 게임도 문제 없이 즐길 수 있는 고성능 PC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PC 중에 최상위급이라는 ‘인텔 코어 i7’급으로 골랐다. PC에 대해서 잘 모르는 박 씨였지만, 현재 팔고 있는 CPU(컴퓨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칩) 중에서 코어 i7급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 정도는 들어본 터였다. 판매점에서도 ‘높은 성능을 원한다면 코어 i7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PC의 성능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서 박 씨 역시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박씨는 대학 친구들에게 새 PC를 샀다고 자랑했는데, PC에 대해서 잘 아는 이른바 ‘컴 고수’인 김 모씨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 씨의 이야기인즉슨, 박 씨가 산 PC는 이미 구형 제품이며, 나중에 업그레이드도 힘들다는 것이다. 기분 좋게 새 PC를 장만한 박씨로서는 당연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혹시 친구 김 씨가 셈이 나서 장난을 치는 것일까? 아니면 판매점에서 거짓말을 한 것일까?
결론을 말하자면 이 친구가 장난을 치는 것도, 판매점에서 사기를 친 것도 아니다. 다만, 그 판매업자가 이 PC를 판매한 의도에 대해서는 약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1년 4월 현재 인텔에서 판매하고 있는 PC용 CPU는 크게 보급형인 ‘코어 i3’와 중급형인 ‘코어 i5’, 그리고 상급형인 ‘코어 i7’으로 제품군이 나뉜다. 따라서 확실히 코어 i7급 PC라면 최상급이 확실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인텔 코어 시리즈에는 1세대 제품과 2세대 제품이 따로 있다는 것.
2010년까지 판매되던 1세대 인텔 코어 시리즈는 ‘코어 i3 560’, ‘코어 i5 750’, 그리고 ‘코어 i7 870’과 같이 ‘브랜드명 + 3자리 숫자’의 형태의 모델명이 붙는다. 하지만 2011년에 새로 출시된 2세대 인텔 코어 시리즈(개발 코드명: 샌디브릿지)는 ‘코어 i3 2100’, ‘코어 i5 2500’, 그리고 ‘코어 i7 2600’과 같이 브랜드명 + 4자리 숫자’의 모델명이 붙는다는 점이 다르다. 위에 소개한 박 모씨가 구매한 제품은 ‘코어 i7 870’으로, 분명 ‘최상위’ CPU이긴 하지만 ‘최신형’은 아닌 것이다.
혹자는 어차피 같은 브랜드의 CPU인데 최신형이 아니라도 상관 없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형 코어 시리즈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고성능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세대 코어 시리즈의 성능 및 기능이 1세대 보다 향상된 것은 분명하며, 무엇보다도 가격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세대 제품인 ‘코어 i7 870’과 2세대 제품인 ‘코어 i7 2600’은 CPU 가격만 따지면 2011년 4월 현재의 인터넷 최저가가 31~33만원 정도로 거의 같다. 하지만 코어 i7 870의 클럭(동작속도)는 2.93Ghz인 반면, 코어 i7 2600의 클럭은 3.4Ghz다. 같은 작업을 할 때 당연히 코어 i7 2600의 속도가 더 빠르다. 더욱이, 코어 i7 2600는 2세대 코어 시리즈 특유의 ‘터보 부스트 2.0’이라는 신기술을 갖추고 있어서, 과부하가 걸리는 작업을 할 때 클럭을 순간적으로 3.8Ghz까지 높일 수 있다.
반면 1세대 코어 시리즈의 터보 부스트 1.0 기술만 갖춘 코어 i7 870은 순간 최대 클럭이 3.46Ghz에 불과하다. 두 제품의 가격이 거의 비슷하다면 당연히 2세대 코어 시리즈를 구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외의 세부 기능까지 따져본다면 더욱 1세대 코어 시리즈를 구매할 이유는 줄어든다. 코어 i7 2600은 코어 i7 870과 달리 CPU 내부에 그래픽 기능을 내장하고 있어서 별도의 그래픽 카드를 추가 구매하지 않아도 화면의 출력이 가능하다. 1세대 코어 시리즈 중에서도 그래픽 기능을 내장한 모델이 있긴 했지만 성능(특히 게임 구동 능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고, 아예 상당수 모델들은 이 기능을 내장하고 있지 않았다. 2세대 코어 시리즈는 거의 모든 모델이 그래픽 기능을 기본으로 갖췄고, 해당 성능도 제법 향상된 것을 감안하면, 1세대 코어 시리즈 구매자들은 더더욱 ‘본전’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1세대 코어 시리즈를 갖춘 PC라 하더라도 나중에 CPU만 2세대 코어 시리즈로 업그레이드 하면 될 것이 아니냐 하겠지만 이것 역시 불가능하다. 메인보드(PC의 주기판) 규격 때문이다. 1세대 코어 시리즈는 ‘소켓 1156’, 혹은 ‘소켓 1366’ 규격의 메인보드를 사용하지만, 2세대 코어 시리즈는 ‘소켓 1155’ 규격의 메인보드를 사용한다.
AAA 규격 전지를 사용하는 손전등에 AA 규격 전지를 넣을 수 없는 것처럼, 1세대 코어 시리즈 기반의 PC는 2세대 코어 시리즈 CPU로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더욱이 인텔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소켓 1155 메인보드에만 쓸 수 있는 CPU만 주로 내놓을 것이므로 지금 1세대 코어 시리즈 기반의 PC(소켓 1156, 1366)를 구매한다면 앞으로 업그레이드에 애로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PC 시장에서는 1세대 코어 시리즈와 2세대 코어 시리즈가 함께 팔리고 있다. 그 이유는 지난 2월 초에 2세대 코어 시리즈용 소켓 1155 규격 메인보드의 일부 기능에 결함이 있는 것이 밝혀져 리콜을 실시한 탓에 한동안 2세대 코어 시리즈 PC까지 판매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이미 구형이 된 1세대 코어 시리즈 PC가 다시 시장의 주력 상품이 되었고, 덕분에 판매점에서는 구형 제품의 재고를 집중적으로 처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던 메인보드는 시장에서 전량 회수되었고, 4월 현재 출고되는 소켓 1155 메인보드는 이러한 문제가 없는 ‘B3’ 버전의 제품이다. 현재 상황에서 결함이 있는 2세대 코어 시리즈 PC를 구매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세대 코어 시리즈 PC를 일부러 구매할 이유는 거의 없다. 다만, 1세대 코어 시리즈 CPU 및 메인보드를 많이 보유한 일부 판매점의 경우 재고 처리를 위해 고객들에게 구형 제품을 추천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현재 시점에서 1세대 코어 시리즈를 구매할 이유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성능이나 기능은 물론 업그레이드의 여지, 심지어 가격 면에서도 2세대 코어 시리즈를 선택하는 쪽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PC의 구매를 생각하고 있다면 해당 PC의 사양표를 꼼꼼히 따져보며 특히 CPU의 모델명을 분명히 확인하는 게 좋다. 재고 처리를 위한 ‘호구’가 되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