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이 종이책 보다 많이 팔렸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지난 27일,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닷컴(http://www.amazon.com/)은 분기 실적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전자책(e북) 판매가 대중용 판본인 페이퍼백(paperback)을 앞서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는 “현재 종이책 100권이 팔릴 때, 전자책은 115권이 팔린다. 즉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15% 더 판매된다”라며, “예상했던 것보다 전자책 판매가 종이책 판매를 앞지르는 전환점에 빨리 이르렀다”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자료 조사에서 무료 전자책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아직 국내 전자책 시장과 비교하면 딴 나라, 먼 미래의 얘기일 수 있지만, 언젠가는 국내 전자책 시장도 이와 같이 변화될 것이 분명하다.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만큼 전자책 시장이 급하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것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유독 전자책 시장의 발전이 더디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1995년 설립된 아마존도 처음에는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으로 시작했었는데 말이다.
아마존은 어떻게?
전자책 콘텐츠의 확보
현재 아마존이 보유하고 있는 전자책은 약 81만여 종으로 종이책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작년 6월 63만여 종이었던 것에 비교해 빠르게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전자책의 양도 양이지만 질도 높다.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112권 중 107권이 아마존에 등록되어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전자책은 대부분이 아마존에 등록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가격도 저렴하다. 82.7%에 달하는 67만여 종의 전자책이 9.99달러 이하로 판매되고 있다. 즉, 아마존은 종이책보다 저렴하고 다양한 전자책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전용 전자책 리더기 ‘킨들’의 등장
2007년 11월, 아마존은 전자책 콘텐츠 확보에 이어서 자체 전자책 리더기인 ‘킨들(Kindle)’을 발표했으며. 작년 8월에는 킨들3를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전자책 사업에 뛰어 들었다. 특히, 킨들 3는 와이파이 버전 139달러, 와이파이+3G 버전 189달러 수준의 낮은 가격으로 출시해 인기를 끌고 있다(처음 출시한 킨들의 가격은 399달러로 약 2배 정도의 가격이었다). 현재까지 아마존은 누적 판매량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약 700~800만 대 정도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킨들의 등장은 전자책 판매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대하기 편하고 읽기에 불편함이 없는 e-잉크를 디스플레이로 채택하고, 전자책 수백~수천 권을 담을 수 있는 넉넉한 용량을 보유한 킨들은 소비자가 전자책을 구매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2010년 태블릿 PC 애플 아이패드가 출시되며 킨들 판매량에 영향이 있을 것이란 예상도 빗나가고 있다. LCD 방식의 태블릿 PC와 e-잉크 방식의 전자책 리더기의 차이는 오랜 시간 보고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눈의 피로도에서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애널리스트 앨런 와이너는 “단순한 전자책 리더기로서의 기능에 충실한 킨들은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등과 경쟁하기 위해서 가격이 더 낮아질 필요성이 있다”라며, “그 기준선은 99달러 이하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내 전자책 시장은 어디까지?
2011년 1월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전자책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교보문고로, 약 8만 종의 전자책을 확보하고 있다. 교보문고 측은 매월 1,000종 이상의 전자책을 신규 등록하고 있으며, 올해 일 매출 평균이 2010년 대비 3배 가량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 예스24, 인터파크 등이 전자책 콘텐츠를 판매하고 있지만, 아직 종이책 시장에는 크게 못 미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전자책 콘텐츠 제공 업체와 출판사 간의 저작권 협의가 지지부진하다. 지난 2009년 9월 15일, 국내 최대 규모로 전자책 법인인 ㈜한국이퍼브(http://www.k-epub.com/)가 출범했지만(YES24, 알라딘, 리브로, 영풍 문고, 반디앤 루니스의 인터넷 서점, 한길사, 비룡소, 북21, 북센 등의 관련 업계들이 공동 출자한 공동 법인),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한국이퍼브의 홈페이지는 아직도 공식 홈페이지가 아닌 블로그에 링크된 형식이다.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약 1년 반 동안 제자리걸음에 멈춰서 있을 뿐이다.
이에 전자책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자책 리더기가 선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리버의 스토리, 삼성전자의 SNE-60, LG전자의 솔라 e북, 인터파크의 비스킷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작년 한 해 국내에 출시된 전자책 리더기들은 현재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전자책이라는 콘텐츠와 전자책 리더기라는 하드웨어 기기가 같이 마련되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성장했어야 하는데, 각자의 이익을 앞세워 독자 플랫폼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더 큰 암초는 태블릿 PC와 스마트폰 출시였다. 제대로 전자책-전자책 리더기로 이어지는 시장이 마련되어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이 출시되자, 소비자들이 굳이 전자책 리더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1년 전 오늘과 비교해 본다면, 새로운 전자책 리더기의 출시는 이제 요원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오히려 태블릿 PC나 스마트폰에서 전자책 콘텐츠를 구매하고 읽을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 출시가 활발하다. 아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한 장씩 책장을 넘기며 종이책을 읽는 것이 아직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음악을 듣던 LP와 카세트 테이프가 어느새 과거를 추억하는 상징이 되어 버렸고, MP3라는 디지털 음원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전자책이 종이책 판매량을 앞섰다는 아마존의 이번 발표는 흘려 들을 뉴스가 아니다. 사람들이 종이책을 읽지 않고 이로 인해 서점이 문을 닫으며, 출판 업계 전체에 위기가 온다는 의미로만 걱정할 것이 아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어떻게 책을 읽고, 소비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