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저는 ‘장미녀’, 장어에 미친 여자입니다”, 웰피쉬 정여울 대표
[스케일업 x 서울먹거리창업센터] 웰피쉬 (1)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맞기 전까지는.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마이크 타이슨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018년 9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아쉬운 점을 해결하고자 시도했던 '스케일업 프로젝트’의 첫 시작을 알리는 문구였는데요. 매 순간 도전에 나서는 스타트업에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경구라고 생각합니다.
창업을 통해 링에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창업 후 완성한 제품과 서비스로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는, 정글과 같은 무한 경쟁 속 시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맞이합니다. 도전자는 많지만 살아남아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드문 이유죠.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창업 후 투자유치에 실패하고 방향성을 잃어 사라집니다. '죽음의 계곡'을 건너고, '다윈의 바다'를 향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스케일업(Scale-Up)', 성장입니다. 전 세계는 단순 창업보다 외형 확대와 성장을 뜻하는 스케일업을 주목합니다. 이제 우리는 스타트업이 아닌 스케일업을 찾아야 합니다.
지난 2016년 12월 개관한 서울먹거리창업센터는 2020년 12월 기준 푸드테크 스타트업 141개를 지원했습니다. 센터를 거쳐간 스타트업은 누적매출액 645억 원, 투자유치액 220억 원, 일자리창출 526명 등의 성과를 올렸죠. 처음 오픈한 가락시장 현대화 시설인 가락몰 1관과 2관에서 서울시 강동구에 위치한 강동그린타워 8층과 9층으로 장소도 확대 이전했습니다. 먹거리 스타트업에 맞도록 오픈키친을 영상 촬영에 용이하도록 재구성했죠. 식품 기본 성분을 분석할 수 있는 R&D랩실, 영상 촬영을 위한 미디어룸 등도 마련했습니다.
서울먹거리창업센터는 스타트업 성장의 중요성에 공감해 작년부터 저희 스케일업팀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올해 먼저 소개해드릴 스타트업은 수산물 섭취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간편식을 개발하고 있는 ‘웰피쉬(WELLFISH)’입니다.
“장어에 미쳤습니다”
서울먹거리창업센터에 입주해 있는 웰피쉬 정여울 대표는 스스로를 ‘장미녀’라고 소개했다. 장미녀? 미녀? 무슨 뜻이지? 잠시 고개를 갸웃하는 기자에게 정 대표는 “주변 사람들이 저를 보고 그러세요. ‘장어에 미친 여자’라고. 그래서 장미녀라고 말하시네요”라고 웃었다.
잠시 멍하게 바라보던 기자에게 정 대표가 말을 이었다. 그는 ““장어를 좋아합니다. 굉장히 좋아해요. 정확히는 바닷장어인데요. 어려서부터 바닷장어와 같은 수산물을 접했어요. 통영에서 수산업을 하셨던 친척 덕분이었습니다. 대학교 때 갔던 MT에 친척이 보내준 바닷장어를 들고 갔더니 모두 놀래더라구요. 저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즐겼던 바닷장어를 친구들은 낯설어하더라구요”라며, “처음 먹어본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 때 친구들의 부모님이 바닷장어 구매를 부탁하기도 했었고…. 어렸던 당시에도 막연하게 ‘수산물을 바로 배송하는 것도 하나의 아이템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었죠”라고 웃었다.
91년생 정 대표의 나이는 올해로 31살이다. 바닷장어를 좋아하는 31살의 여성이라니. 재밌었다. 아니, 신기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수산물(생선)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기자의 아들은 식탁 위에 생선을 올리면 저만치 치워 놓기 바쁘다. 생선 특유의 냄새, 자꾸 걸리는 가시,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는 모습 등, 생선은 아이들이 기피하는 음식 중 하나다.
“바닷장어에 미쳐서일까요. 저희 웰피쉬는 수산물 간편식을 만듭니다. 농산물이나 축산물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잖아요? 하지만, 수산물은 아직 다양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기를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는 사람은 많지만, 생선을 찾는 사람은 적잖아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웰피쉬는 먹기 편한 수산물, 맛있는 수산물을 찾아드리고 있어요.”
“스타트업? 내 사업을 원했습니다”
웰피쉬는 2020년 7월 법인을 설립했다. 이제 막 1년을 넘긴 신생 스타트업. 약 1년간 교육 스타트업에 일한 뒤, 정 대표는 창업을 선택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창업하는데 어떤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기업을 만들고, 이끄는 사람. 기업가 또는 CEO라고 할까요. 그런 사람을 동경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교를 진학하며 경영학과를 선택했고, 과제 프로젝트로 가볍게 창업을 경험하면서 ‘내 사업’을 꿈꿨습니다.”
대학교 졸업 후 교육 스타트업에서 일한 1년간의 경험도 ‘내 길이 아니다’라는 확신을 줬다고. 수험생을 위한 공부법 연구원으로 일했는데, 잘못하면 오히려 수험생에게 잘못된 역량을 심어줄 수 있겠다는 무서움을 느꼈다. 결국 정 대표는 내 사업을 원했다. 드라마틱한 계기나 세상을 혁신하겠다는 신념은 아니지만, 기존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해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쫓았다.
2017년부터 창업 아이템을 찾아 헤맸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지?’라는 자문에 ‘먹거리’라는 답을 찾았다. 그 때 떠올린 것이 수산물이다. 어려서부터 정 대표 주변에 있었고, 남들과 달랐던 먹거리는 ‘수산물’이었다. 시장조사부터 시작했다. 전세계 1위 수산물 섭취 국가이지만, 여전히 먹는 사람만 먹는 현실에 집중했다. 조리하는 것도, 먹는 것도 불편한 수산물의 문제점에 집중했다.
정 대표는 생각했다.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면? 생선 가시를 바를 줄 모른다고? 그럼 가시를 제거한 수산물이라면? 방향을 잡았다. 이제 방법을 찾을 차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간편하고 쉽게 즐기는 맛있는 수산물 간편식을 만들어야 했다.
“일단 부딪혔습니다”
바닷장어를 기억해낸 정 대표는 사업계획서 하나 들고 통영시청을 방문했다. ‘여기 좋은 아이디어 있으니까 들어달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생떼였다.
정 대표는 “이렇게 말하셨어요. 왜 우리가 도와줘야 하냐고. 통영 사람도 아니고, 사회적 기업도 아닌데. 도와줘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거였죠”라며, “억울했어요. 분명 성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인데, 왜 안들어줄까 생각했죠. 국내 바닷장어 생산의 70%가 통영에서 나오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구요? 2년을 계속 찾아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통영시청 다음에는 근해통발수협을 찾아갔어요. 바닷장어로 만들려고 하는 간편식이 있으니, 싸게 좀 달라고 요청했죠. 황당하셨을 겁니다”라며, “그래도 그렇게 무작정 찾아가면서 안면을 쌓았고, 조금씩 지인을 만들 수 있었어요. 지금도 도와주시는 감사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통영에서 가공 업체를 만나고, 원료 업체를 만나고,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죠. 지금은 경상남도에서도 도와주십니다. 수산과 공무원들은 이제 ‘장미녀’하면 다 아세요”라고 웃었다.
2017년부터 자그마치 2년을 돌아다녔다. 통영을 위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는 발걸음부터 옮겼다. 바닷장어를 리어카에 실어 나르며 달려드는 갈매기와 싸웠고, 바닷장어 가공을 위해 분쇄할 수 있는 공장을 찾았는데 냄새가 심하다며 거절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바닷장어는 양식도 안된다. 모두 통발로 잡아서 올린다. 재료를 수급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그렇게 재료를 구하고, 좋은 간편식 제조법을 찾기 위해 2019년까지 아등바등 전국을 누볐다.
정 대표는 “서울창업허브 3층에 위치한 푸드인큐베이팅 센터에서 2019년에 1기 참여기업을 모집했었어요. 바닷장어 소스를 개발하겠다고 지원했는데, 선정됐죠. 당시 연구실만 이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우연찮게 식당 운영에도 참여할 수 있었어요. 6주 정도… 처음 가게를 낸거죠. 센터에서 아침에 장어 삼각김밥을 만들고, 점심에 장어탕과 장어 두루치기를 내놓고, 장어 호떡, 장어 강정 등을 만들어 냈어요. 조금씩 경쟁력을 확인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개인사업자를 내고 공유주방에서도 장어를 판매했습니다. 장어구이, 장어덮밥, 장어강정 등… 개발한 레시피만 100개 정도였어요. 반응은 좋았습니다. 장어구이 1인분에 바닷장어 3마리를 간장, 고추장, 소금으로 양념해 구워 팔았어요. 약 1년간 남는 것 없이 경험을 쌓았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바닷장어와 함께하며 찾은 수산물 간편식
현재 웰피쉬는 바닷장어를 바탕으로 수산물 간편식을 판매하고 있다. 명태와 멸치를 안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명태꾸어랑’과 ‘멸치꾸어랑’, 통영 자연산 바닷장어의 뼈와 산마 등 숙취와 활력에 좋은 성분을 넣은 건강 식품 ‘팔팔환’, 바닷장어를 오븐에 구워 포 형태로 제작한 ‘바닷장어포’, 톳을 분쇄하지 않고 그대로 넣어 식감을 살린 ‘톳 만두’ 등이다.
2020년 12월, 크라우드펀딩 와디즈에 ‘간편한 장어’를 소개하며 펀딩을 받았고, 같은 기간 경남청년임팩트펀드를 통해 시드투자도 받았다. 그리고 올해 2월, 서울먹거리창업센터에 입주했고, 5월에는 ‘국가대표혁신기업 1,000’에 선정되면서 신용보증기금을 받았다. 최근에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도 입교했다. 이래저래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정 대표는 “바닷장어는 대부분 일본에 수출합니다. 전세계 바닷장어의 70% 소비하는 나라가 일본이에요. 하지만, 코로나19로 바닷장어 수출길이 막혔습니다. 통영을 포함해 국내에 바닷장어는 많이 쌓여 있어요”라며, “만남의광장에서 백종원 선생님이 바닷장어를 소개하신 적이 있어요. 장어볶음 밀키트를 이마트에 판매했었는데, 덕분에 저희도 부가효과를 얻었었습니다. 분명 바닷장어를 원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수요를 확인한 결과였어요”라고 조심스럽게 자신감을 전했다.
이어서 그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수산물을 활용한 레시피를 개발하고, 현지를 찾아가서 협력 공장을 찾고,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고, 오픈마켓과 계약하고, 크라우드펀딩를 거쳐 시드투자도 받았습니다. 20대부터 40대까지 요식업을 경험한 팀원들도 합류했죠. 이제 열심히 판매하는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지금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정 대표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제품을 만드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경쟁력을 확인했다고 생각해요. 판매도 해봤고, 평가도 받았습니다. 이제는 팔아야 할 때입니다”라며, “어떻게하면 제품을 잘 팔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하고 있습니다. 마케팅과 홍보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저희 웰피쉬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