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눅스 탄생 30년차, 레드햇 리눅스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IT동아 김영우 기자] 디지털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고도화, 복잡화되고 있으며 변화의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다. 이는 수많은 사람, 그리고 기업의 집단 지성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기술의 진보를 촉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오픈 소스(Open Source)다. 오픈 소스란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스 코드를 모든 이에게 공개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보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거나 이를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픈 소스의 역사를 뒤돌아본다면 2021년은 기념할 만한 해다. 오픈 소스 대표 주자인 ‘리눅스(Linux)’의 커널(Kernel, 운영 체제의 핵심 부분)이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 30년차가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핀란드 출신의 젊은 프로그래머 ‘리누스 토발즈(Linus Benedict Torvalds)’가 1991년에 최초로 선보인 리눅스는 등장 이후, 수많은 개발자들 및 기업의 손을 거쳐 여러 가지 형태로 진화하며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갈고 다듬은 결과물, ‘레드햇 리눅스’
리눅스의 진화를 이끈 기업 중 가장 독보적인 곳은 단연 ‘레드햇(Red Hat)’이다. 리눅스는 등장 초기부터 다양한 배포판이 출시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개발자인 ‘마크 유잉(Marc Ewing)’이 만든 것이었다. 유닉스(UNIX) 소프트웨어 판매 업체인 ‘ACC 주식회사(ACC Corporation)’를 운영하던 ‘밥 영(Bob Yong)’은 마크 유잉의 리눅스 배포판에 주목했으며, 협의를 거쳐 1993년 3월 26일 래드햇을 공동 설립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인 ‘레드햇 리눅스(Red Hat Linux)’를 이듬해 출시했다.
레드햇 리눅스는 출시 이후 빠르게 이용자 수를 늘려 나갔다. 레드햇 리눅스 이외에도 수많은 리눅스 배포판이 등장했지만 그 중에서도 레드햇 리눅스가 주목받은 이유는 기업 시장에서 선호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오픈 소스 기반의 장점을 살려 높은 경제성을 제공했고, 자유로운 활용이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 상대적으로 충실한 기술 지원까지 받을 수 있는 점이 기업 고객 입장에선 큰 이점이었다. 이에 힘입어 레드햇은 1999년, 나스닥 상장을 하고 25개를 넘는 기업을 인수하는 등, 덩치를 빠르게 키우며 오픈 소스 생태계의 확장을 촉진했다.
패키지 기반 유통 대신 구독 모델 도입, 기업들에게 호평
레드햇 리눅스는 운영 체제 자체의 기능 및 성능 외에 소프트웨어 판매 및 유통 방식에서도 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것이 소프트웨어 업계에 구독(subscription) 모델을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초기의 레드햇 리눅스는 6개월 주기로 새로운 배포판을 출시해 박스에 담긴 CD 형태로 공급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의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들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2002년부터 기존의 레드햇 리눅스를 단종시키고 기업 환경에 최적화된 특화 제품인 '레드햇 엔터프라이즈 리눅스(Red Hat Enterprise Linux, 이하 RHEL)'를 출시해 주력 모델로 삼았다.
RHEL은 패키지 판매 방식을 버리고 업계 최초로 구독 모델을 적용한 것 역시 화제가 되었다. 소프트웨어 자체의 가격을 받는 것이 아닌, 일정한 기간 동안 구독 요금을 받으면서 각종 유지 보수나 업그레이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모델과도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방식의 경우, 새로운 버전이 나오면 추가 비용을 내고 업그레이드해야 지속적인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레드햇이 처음 도입한 구독 모델의 경우, 새로운 버전의 RHEL이 출시되더라도 구독 고객은 추가 비용 없이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며, 구독 기간 중에는 새로운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혹은 보안 위협에 대한 지속적인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오픈 소스의 보안이나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와 더불어 라이선스 등급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기능에 차이를 두는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모델과 달리, RHEL은 어떠한 고객이라도 구독 기간 중에는 제약 없이 모든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대신, 지불하는 구독 비용에 따라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간대나 요일에 차이를 둔다. 각 기업의 업무 특성에 따라 기술 지원이 필요한 시간대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소프트웨어 자체의 가격보다는 유지 보수 및 관리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더 걱정해야 하는 기업들의 특성에 적합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자유롭게 배포하고 이용하면서 지속적으로 성능과 기능을 개선해 나가는 오픈 소스의 취지에도 부합했다. 레드햇을 시작으로 소프트웨어 구독 모델은 업계 전체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대부분의 주요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구독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오픈 소스 특유의 자유로움 추구하는 배포판도 여전
한편, 레드햇 리눅스를 단종시키고 RHEL을 출시한 이후에도 일반 사용자 및 개인 개발자들을 위한 레드햇의 리눅스 배포판은 꾸준히 나왔다. ‘페도라(Fedora)’가 그것이다. 이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아직 RHEL에 적용하지 않은 선구적인 기능도 미리 적용하는 등, 오픈 소스 고유의 특성을 최대한 발할 수 있게 하여 생태계 전체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더불어 RHEL 본래의 형태를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무료로 제공되는 배포판인 ‘센트OS(CentOS)’도 있다. RHEL과 같은 맞춤형 기술 지원은 제공되지 않지만, 스스로의 역량이 있다면 이를 기업용으로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역시 자유로움을 강조하는 오픈 소스의 특징이기도 하다.
오픈 소스의 가치 극대화한 비즈니스 모델 주목할 만
기업 IT 환경의 디지털화, 클라우드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오픈 소스의 중요성은 한층 커지고 있다. 기존의 폐쇄형 시스템에서는 플랫폼을 넘나들며 다양한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을 운용하기 어려우며,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IT 생태계에 재빠르게 대응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전 세계 슈퍼컴퓨터의 순위를 발표하는 TOP500.org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주요 500개의 서버 중 95.6%에 달하는 478개가 RHEL, 센트OS, 우분투(Ubuntu) 등의 리눅스 계열 운영체제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IT 업계의 선두 주자들은 오픈 소스, 그 중에서도 리눅스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디지털 기술은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기업들이 노력한 결과물이다. 특히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고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오픈 소스 기반 운영체제를 선보인 리누스 토발즈, 그리고 그가 처음 선보인 리눅스를 한층 다듬고 발전시켜 시장에 정착시킨 레드햇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리눅스 탄생 30년차를 맞아, 레드햇 리눅스가 이끌어낸 오픈 소스의 가치, 그리고 이를 극대화한 비즈니스 모델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하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