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 휩쓴 반도체 품귀, 다른 시장까지 번질까?
[IT동아 남시현 기자] 작년부터 이어져 온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불황이 자동차 산업을 넘어 소비가전, 통신, 게임 및 IT 플랫폼 등으로도 번질 조짐이다. 이미 7월 D램 고정 가격은 전월 대비 7% 상승하며 상승 폭을 키우고 있으며, 세계 3위 전자제품위탁생산업체(EMS·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s)인 플렉스는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최소 1년은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품귀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코로나 19로 인한 수요 및 공급의 불확실성을 지목하고 있다..
대만·한국에 집중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반도체 산업은 제조에만 집중하는 팹(Fabrication, Fab), 그리고 제조 시설 없이 기술 개발에만 투자하는 팹리스(Fabless) 기업으로 나뉜다. 이는 반도체 산업이 연간 매출의 20% 이상을 연구 개발에 투입해야 할 정도로 많은 기술력을 필요로 해 한 기업이 생산과 개발을 모두 추진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중에서도 미국은 전자 설계 자동화와 핵심 지적 자산, 고급 제조 장비 등을 앞세워 팹리스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대만과 한국이 고급 인력과 정부 인센티브, 반도체 생산 시설을 앞세워 고성능 반도체의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기술과 자본 집약적이지 않은 반도체는 중국과 동남아 시장이 맡고 있다.
지난 30년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분업화된 생태계로 성장해왔으며, 각 기업과 정부 역시 생산과 개발을 나눔으로써 상호 이득을 취해왔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치와 미국·중국 간 무역 분쟁, 코로나 19로 인한 반도체 수요의 급격한 변화가 분업화된 생태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게 이번 반도체 품귀 현상의 배경이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는 ‘TSMC’의 수요 예측 실패
현재 반도체 부족 사태에 직격탄을 맞은 업계는 자동차 산업이다. 코로나 19로 2020년 2분기까지 차량 생산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2020년 하반기부터 자동차 수요가 원상 복귀하면서 생산량이 증가했고,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했다. 차량 원가의 2% 내외에 불과한 반도체가 차량 생산을 막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MCU(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라고 부르며, 최근에는 16~40nm의 공정으로 제조된다. MCU는 파워트레인과 전자 안정 제어장치, 차체 제어 모듈,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은 물론, 자율 주행과 인포테인먼트까지 모든 부분에 들어가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부품이다.
하지만 고도화된 제조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요 차량용 반도체 제조 기업은 반도체를 설계만 하고 생산을 위탁하며, 대만의 TSMC가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의 70%를 수탁 생산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TSMC가 코로나 19로 인한 2020년 생산량 제한을 발표하며 MUC 공급이 줄어들었고, 반대로 2020년 하반기부터 차량 수요가 원상 복귀하며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게 이번 사태의 발단이다.
IHS Markit은 2021년 1분기 글로벌 차량 생산량이 2020년 1분기 대비 50% 성장한 것으로 집계했지만, 반도체 공급망의 문제로 약 140만 대의 차량이 제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3분기부터는 반도체 공급이 개선되고, 4분기 혹은 2022년 1분기에 수요가 맞춰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만 TSMC가 내년 3분기 양산을 목표로 기존 5nm 공정을 개선한 N5A 공정을 자율주행과 디지털 클러스터(전자 계기판)용 반도체 생산에 배정하고, MCU 공정에도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면서 내년에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 소비자용 반도체, 장기적으로는 상승 곡선
시장조사기관 트랜드포스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D램 가격은 전 분기 대비 3~8%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1년 2분기에 18~23%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그나마 상승세가 누그러진다. 일반 소비자용 제품은 보통 8~10주분의 재고가 있기 때문에 가격이 즉시 반응하고 있지는 않지만, 서버용 D램의 수요 증가가 일반 소비자용 제품 공급을 경색시키고 있다. 아울러 동남아시아의 코로나 19 악화로 인해 모바일 D램 재고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가격이 상승해 스마트폰의 가격도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그래픽 카드용 GDDR6의 수급도 원활하지 않아 3분기에만 8~13% 가격이 상승할 전망이다.
일반 소비자용 반도체의 가격 상승 역시 코로나 19와 밀접하게 관련돼있다. 작년 초 코로나 19로 야기된 국가 간 봉쇄와 재택근무의 확산은 기업들에 있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앞다퉈 전사적 디지털 전환과 자산의 디지털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디지털 인프라를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 및 서버 업체로 반도체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 그 결과 일반 사용자용 제품의 우선순위가 밀리면서 공급이 줄어들고, 가격은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코로나 19,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 바꾸는 중
글로벌 반도체 수급 불안은 예고된 상황이었고, 코로나 19는 촉매였을 뿐이다. IoT 애널리틱스는 2021년 이후 사물인터넷 관련 지출이 연간 26.7%씩 증가해 2025년에는 309억 개의 사물인터넷 장치가 활성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KPMG는 글로벌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가 2025년 1,549억 달러(약 175조 원)에서 2035년 1조 1,204억 달러(약 1,227조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코로나 19가 아니더라도 글로벌 반도체의 공급 부족은 이미 시작했는데, 여러 사건들이 겹치면서 더욱 두드러진 것이다.
여기에는 예기치 않은 변수와 지정학적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 올해 2월 텍사스의 대규모 폭설로 삼성전자, NXP, 인피니언 반도체 공장이 정지한 바 있고, 3월에는 일본 르네사스(RENESAS) 공장이 화재로 피해를 보았다. 대만 TSMC도 56년 만에 발생한 대가뭄으로 공정을 15% 감축하는 등의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덧붙여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갈등과 자국 우선주의,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고, 미국, 중국, 유럽 등이 반도체 자립을 시도하면서 오랜 기간 이어진 반도체 공급망도 와해할 여지가 있다.
반도체 산업은 생산 라인에서 생산할 수 있는 양이 고정돼있기 때문에 수요가 폭등했다고 해서 생산을 갑자기 늘릴 수 없다. 생산량이 부족하면 공장을 증설하는 수밖엔 없다. 따라서 작년부터 시작된 반도체 수급 불안은 빨라도 22~23년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이 역시 변수가 없을 때의 이야기다. 만약에 지정학적 문제나 또 다른 요인이 생산에 영향을 미친다면 반도체 품귀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