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리의 잇(IT)트렌드] '도쿄' 올림픽인데…일본의 첨단 IT 기술은 어디에?
[IT동아]
전국 직장인, 그중에서도 열정 하나만으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대리님들을 위한 IT 상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점심시간 뜬금없는 부장님의 질문에 난감한 적 있잖아요? 그래서 저 송대리가 작게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장님, 아니 더 윗분들에게 아는 ‘척’할 수 있도록 정보 포인트만 쏙쏙 정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테슬라, 클럽하우스, 삼성, 네카라쿠배 등 전 세계 IT 소식을 언제 다 보겠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피곤한 대리님들이 작게나마 숨 한번 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1. 올림픽도 이제 반환점을 돌았지? 또 새로운 얘깃거리가 있을까?
이전에 선수들의 훈련과 준비과정에서 사용된 스포츠 과학과 첨단기술, 경기 중 사용되는 계측 기술에 관한 얘기를 했는데요. 스포츠 외적인 분야에는 어떤 IT 기술들이 있는지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엑스포, 월드컵, 올림픽 같은 대형 국제 이벤트는 개최국이 기술력을 과시하는 무대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 행사를 계기로 데뷔하거나 보급되는 신기술들도 많고요.
예를 들어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영국 BBC가 전 종목 경기를 HD급 고화질로 중계해 주목받았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5세대이동통신(5G)을 활용한 자율주행 버스가 행사장을 누벼서 눈길을 끌었죠. 하지만 이번 도쿄 올림픽에는 이전 올림픽과 달리 혹할 만한 기술의 발전을 보여줄 만한 것들이 딱히 없었네요. 오히려 일본 기술 산업의 쇠퇴를 보여준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2.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린 건 처음이 아니잖아. 예전에는 어땠어?
네, 1964년에도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렸었죠. 당시 일본은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시속 210km로 달리는 고속철도인 신칸센을 공개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세계 최초 고속철도였죠. 아시겠지만 이후 몇십 년간 일본은 기술 대국으로 전성기를 누렸잖아요. 소니의 비디오카세트 레코더, 도시바 플래시 메모리가 있었고요. 일본 비디오게임들이 세계를 제패할 만큼 큰 인기를 끌기도 했고요. 그래서 세계 무대에서 '기술 우위'란 곧 일본을 의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미국을 제치고 최대 경제 대국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깐요.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이번 올림픽에서 일본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습니다. 이미 다른 기업들이 상용화했거나 세계 수준에 못 미치는 기대 이하의 기술만 보여줬네요. 일본의 기술이 ‘공황' 상태에 빠져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텔레비전, 녹음기, 컴퓨터 발전을 주도하던 시절은 옛날이 돼버렸습니다. 한때 소니 '워크맨'이 유행을 선도했는데, 이제는 애플 '아이폰' 천하가 됐잖아요.
3. 이번 올림픽에서 일본이 어떤 걸 보여줬길래 수준 이하라고 하는 거야?
우선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도요타의 무인자율주행 차량이 있습니다. ‘E팔레트’라는 전기차인데요. 이번 올림픽에서 16대를 선수촌 내 주요 시설을 오가는 셔틀버스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업계에서의 평가는 박합니다. "새로운 게 없는 기술"이라는 평가예요.
자율주행이라곤 하지만 정해진 단거리 코스를 오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미국 웨이모와 중국 디디추싱 등의 자율주행은 이미 운전자 없이 일반 도로에서 승객을 태우고 주행할 수 있는 수준이거든요. 비교해보면 첨단 기술이라고 평가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 같습니다. 원래 목표는 셔틀버스가 아닌 자율주행 택시라고 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고요. 실현됐다고 하더라도 웨이모, 디디추싱 등 이미 진행중인 자율주행 택시와 비교해 딱히 더 뛰어난 점을 보여주기도 어려웠을 거 같네요.
전자기업 파나소닉은 레이저 프로젝터와 초고화질 OLED TV를 활용해 가상 공간에서 육상 선수가 훈련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는데요. 일단 화질부터가 LG전자에서 나오는 OLED TV에 한참 못 미쳤다는 평가입니다.
일본 정부는 올림픽 전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실시간 통역기술을 선보여 세계 어느 나라 말을 해도 어려움 없이 소통하게 해 주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요. 이것도 이번 올림픽에서 실현되지는 못 했습니다. 대신 외국인 안내 로봇이란 건 있었어요. 나리타공항에 5대가 배치됐는데요. 일본 로봇벤처 기업 오리연구소에서 개발했습니다. AI가 아니라 안내원이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해 응대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일본의 기술력이 세계 수준과 비교해 얼마나 퇴보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네요. 세계를 놀라게 했던 과거의 위용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4. 그래도 세계적인 행사인데,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공개된 기술 중 눈에 띄는 건 없었어?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회사는 아니고요. 오히려 해외 기업들 제품과 기술력만 더 눈에 띄네요. 우선 열사병을 막는 이어웨어라는 게 있습니다. 일본은 여름에 덥고 습하기로 악명이 높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이번 올림픽 기간에도 도쿄에서는 한낮 체감 최고기온이 38~40도에 이르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 기간 중 실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열사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건데요. 이번 올림픽 파트너 기업 중 한 곳인 중국 알리바바에서 개발했습니다. 이어폰처럼 귀에 착용하는 장비인데, 체온과 심박 수를 측정한 뒤 열사병 위험 수준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고 합니다. 기온, 습도, 일사량과 같은 환경지수도 물론 모니터링해주고요. 고위험으로 파악된 직원에게는 경고와 함께 물 섭취 같은 예방조치 사항을 전달합니다.
그리고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눈길을 끌었던 장면 중 하나가 밤하늘을 수놓은 ‘드론쇼’였는데요. 3년 전 평창에서도 비슷한 걸 봤었죠? 이번에는 드론 무리가 올림픽 엠블렘 형태를 그리다가 지구 모습으로 변하는 공연을 펼쳤습니다. 평창 때와 마찬가지로 인텔의 작품이었는데요. 전체 드론 숫자는 약 1,200대였던 평창보다 1.5배 늘어난 1,824대였다고 합니다.
5. 드론 숫자가 늘었다곤 하지만 평창 때 이미 봤던 거라 큰 임팩트는 없었던 거 같은데?
맞습니다. 배터리 시간도 늘어나고, 드론 움직임이 더 좋아졌다고는 하나 새로운 느낌이 없었죠. 사실 일본은 원래 드론쇼보다 훨씬 극적인 이벤트를 구상했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기 실현됐다면, 1964년의 신칸센보다 더 큰 화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어떤 거냐면, 인공 별똥별 쇼입니다. 말 그대로 우주공간으로부터 하늘을 가로 지르며 떨어지는 별똥별을 인공으로 재현하는 건데요.
방식은 간단합니다. 초소형 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 뒤 이 위성에서 지름 1㎝ 정도의 금속물체를 발사합니다. 금속 알갱이인 거죠. 이 금속 알갱이가 고속으로 낙하해 대기권에 돌입하면 공기의 압축이나 마찰에 의해 운동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면서 고온 상태가 되거든요. 그러면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빛을 발하기 때문에 밝게 빛나게 되는 겁니다. 지구에 떨어지거나 누가 맞으면 어떡하냐고요? 다행히 알갱이는 불타면서 소멸하기 때문에 지구에 떨어지거나 우주 쓰레기가 될 염려는 없습니다. 실제로 구현만 됐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볼거리가 됐을 텐데 말이죠. 대신 등장한 게 이전 올림픽에서 이미 봤던 드론쇼니깐 아무래도 아쉽죠.
6. 혹시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이 기술력을 과시한 사례도 있어?
물론이죠. 그것도 일본 측에서 먼저 한국에게 도와달라고 먼저 요청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도핑 전문가들을 일본으로 파견 보냈습니다. 이들은 도핑 금지약물에 대한 선수들의 생체 시료 분석과 함께 최신 검출기술 노하우를 전수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첨단 도핑 약물 검사에 관해 세계적인 수준을 갖춘 한국 전문가들을 일본이 직접 초청한 겁니다. 한국은 최근 주요 국제 대회를 잇따라 개최하면서 도핑 검사 노하우를 많이 쌓았거든요.
그리고 이 외에도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기업이 맡은 분야는 결제 시스템, 5G 서비스, 티켓 발매 시스템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무관중 경기라 의미가 조금 퇴색하긴 했지만, 티켓 발매 시스템은 현재 인터파크가 제공 중입니다. 인터파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도 티켓 발매 시스템 구축해 운영했거든요. 그 노하우를 인정받아서 이번 도쿄 올림픽 티켓 발매 사업도 맡게 됐습니다.
이외에도 삼성전자는 도쿄 올림픽에 맞춰 5G 서비스를 본격 상용화하려는 일본 정부와 손잡고 올림픽에서 쓰이는 5G 장비를 공급했고요. 원스라는 정보보안 전문기업은 도쿄 올림픽의 통신주관사를 맡은 일본 NTT도코모에 침입방지시스템의 보안 솔루션을 제공했습니다. 이 보안 솔루션은 통신 기지국에서 설치돼 외부의 침입 시도를 감지하고 이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시스템입니다.
카드 결제 인프라에도 한국 기업 손길이 닿았는데요. 일본은 신용카드보다 현금 사용을 선호하는 편이라 카드 결제 인프라가 조금 뒤처져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민관이 협력해서 현금 외 결제 인프라를 확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현대카드의 ‘H-ALIS’라는 플랫폼을 도입하게 됐는데요. 일본 시장에 최적화한 솔루션으로 매월 카드 거래 약 1억 5천만 건 이상을 안정적으로 처리한다고 합니다.
7. 그러고 보니 이번 올림픽에서는 올림픽 마케팅을 보기 힘든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올림픽은 원래 기업들에겐 절호의 홍보 기회인데,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요. 기업들은 이번 올림픽과 연관됐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줄까 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최국인 일본 기업들이 이런 움직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도쿄올림픽 최대 후원사로 알려진 도요타자동차부터가 그렇습니다. 도요타자동차는 2015년 IOC와 10년 후원계약을 맺으면서 무려 16억 달러(약 1조 8,288억 원)를 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막상 올림픽이 다가오자 관계를 끊으려는 듯한 모습입니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을 비롯한 고위 임원들이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하는 건 물론, TV 광고도 보류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유를 밝히진 않고 “여러 가지가 이해되지 않는 올림픽이 돼 가고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사실 말을 안 해도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 올림픽을 둘러싼 일본 내 여론이 워낙 안 좋습니다. 개막식을 보셨다면 아마 다들 분위기를 느끼셨을 겁니다. 주경기장 바깥에서 열린 올림픽 반대 시위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혔으니깐요. 올림픽 개막 직전까지도 절반이 넘는 일본인이 올림픽 개최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국민들은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데, 무지막지한 적자를 떠안으며 이런 행사를 여는 게 맞냐는 거죠. 상황이 이러니, 올림픽을 활용해 홍보에 나설 경우 외려 역풍을 맞겠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죠.
도요타자동차만 그런 게 아니라 파나소닉, NTT도코모, NEC 등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통신회사들도 도쿄올림픽을 사실상 ‘손절’한 모습입니다. 이번 올림픽 후원에 일본 기업들이 쓴 돈이 약 30억 달러(약 3조 4,290억 원)에 달한다고 하는데, 돈만 쓰고 홍보 효과는 못 누리게 된 셈입니다.
올림픽 마케팅을 주저하는 건 우리나라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 올림픽과는 분위기가 다르잖아요? TV에서 올림픽을 활용한 광고…보셨나요? 저는 거의 못 본 거 같습니다. 확실히 이번 올림픽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전 올림픽보다 관심이 덜한 듯합니다. 무관중 올림픽이어서 긴장감과 몰입도가 떨어지는 데다 함께 모여 응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잖아요. 게다가 악화일로인 한일관계도 국내 기업들이 올림픽 마케팅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올림픽은 여러모로 악조건이 겹친 탓에 아쉬움이 많이 남게 됐는데요. 언젠가는 예전처럼 신기술의 향연이 펼쳐지는 축제 분위기의 올림픽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송태민 / IT전문가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대기업까지 다양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현재 KBS 라디오 ‘최승돈의 시사본부’에서 IT따라잡기 코너를 담당하고 있으며, '애플워치', '아이패드 미니', '구글 글래스' 등의 국내 1호 구매자이기도 하다. 그는 스스로를 IT 얼리어답터이자 오타쿠라고 칭하기도. 두 딸과 ‘루루체체 TV’ 유튜브 채널, 개그맨 이문재와 ‘우정의 무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어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이며, IT 전문서, 취미 서적 등 30여 권을 집필했고, 음반 40여 장을 발표했다.
정리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