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코멕스산업 (2) 턴어라운드를 위한 비움과 채움

오래된 집엔 쌓인 것이 많다

밀폐용기 전문기업, 코멕스산업(이하 코멕스)은 1971년에 설립, 금년에 창립 50돌을 맞이했다. 근현대사 유산으로 지정되는 왠만한 원조식당 보다 오래된 기업이다. 90년대의 핫(Hot)템, 바이오탱크라는 최신식 물통으로 기억되는 코멕스는 한국산업의 성장과 함께한, 그 기나긴 업력은 충분히 존경의 대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1994년 코멕스산업의 ‘바이오탱크’ 지면광고, 출처: 코멕스산업
1994년 코멕스산업의 ‘바이오탱크’ 지면광고, 출처: 코멕스산업

그 존경스러운 업력만큼이나 오래된 기업에는, 당연히 오래된 유산들이 쌓이고 또 쌓인다. 직원들도 다 기억하지 못할 이런 제품, 저런 제품이 유산처럼 쌓이고 또 쌓여 있다. 연 매출 504억 원(2020년 기준)의 코멕스가 판매하는 제품은 무려 1,000가지 이상이다. 필자처럼 코멕스를 ‘밀폐용기 전문기업’으로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고무장갑, 도마, 휴지통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이 방대한 상품군에 놀랄 수 밖에 없다.

출처: 코멕스산업
출처: 코멕스산업

성장의 정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밀폐용기 전문기업이라고 생각한 건 필자의 착각이었을 뿐, 코멕스는 생활용품 전반을 다룬다. 그들의 비전 또한 ‘생활문화를 창조하는 고객의 기업’이다. 밀폐용기가 대표적 상품이기는 하나, 위 제품군 나열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야외용품, 소모품, 주방잡화, 리빙잡화 등 다양한 제품 영역을 취급하고 있다. 뭐든 다 있다는 ‘다이소’를 차려도 손색 없을 다양성을 자랑한다.

어떤 기업이 다품종을 취급하든, 소품종에 집중하든, 각각의 장단점은 있으니 전략적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다만, 다품종을 선택한 코멕스 전략은 적어도 성장 측면에서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2015년 656억 원이던 매출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0년 505억 원 수준으로 떨어졌고, 수출액과 영업이익 또한 정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매출은 줄었는데 영업이익 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산업의 가치사슬과 비즈니스모델의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유지한다는 점은 누군가의 희생을 기반으로 창출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누군가는 직원이거나, 혹은 협력사일 테다.

출처: 필자 제공
출처: 필자 제공

코멕스가 매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기간동안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았다. 2012년 아이코멕스라는 B2B 전문판매법인을 설립했으며, 2018년 온라인유통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공격적인 온라인 전략을 실행했었고, 2019년 ‘친환경’ 트랜드에 맞춰 식물성 소재 식기를 출시하는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다양하게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매출 하향곡선을 볼 때 ‘Turn Around’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영업에 집중하면 성장할 수 있다?

궁금했다. 왜 이렇게 많은 제품을 취급하고 있는지. 다행히 임직원들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런 말을 들었다.

“유통사 고객을 만나다 보면 이런 제품은 없냐고 물어봐요.
판매기회를 잡기 위해서 다양한 제품을 취급해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채널고객(유통사)과의 접촉에서 최대한 많은 매출을 창출해야 한다는 점에 누가 이견을 내겠는가? 이런 지향점을 가진 영업조직은 고객군별로 담당자를 배치하며,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기회를 만들기에 효율적이다. 이와달리 제품중심 영업조직이라면, 하나의 채널고객에 제품별 영업 담당자가 제각각 상대해야 하므로 매우 비효율적이다.

영업의 효율성을 택한 코멕스는 역시 ‘판매’를 매우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대회의실에 걸려진 보드에 보이는 성과지표(KPI) 항목은 사업부문별 매출액이 전부였다. 그간 해왔던 전략적 차원의 변화 또한 B2B 전문판매법인, 온라인유통전문 자회사 등 판매확장을 염두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유통 및 마케팅 전문가를 새로운 CEO로 영입한 것 또한 영업력 강화에 방점을 찍은 결정으로 보여진다. 코맥스가 생각하는 기업의 핵심역량은 ‘영업력’이고 이에 집중하고 있다.

영업과 마케팅에 집중하는 것을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분들 또한 수레의 한쪽 바퀴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으실 거다. 그렇다. 혁신적 제품이 있어야 영업도 빛날 수 있다. 혁신적 제품과 영업력이 만나야 성장으로 갈 수 있다. 이쯤에서 필자는 업계 1위인 락앤락이 궁금해졌다.

밀폐용기 1위, 락앤락은 무엇이 다를까?

밀폐용기와 주방용품 영역에서 국내 업체 중 1위를 차지하는 락앤락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전략을 실행하고 있을까? 2020년 기준 락앤락 매출은 5,020억 원(연결매출)에 달한다. 국내 본사 기준으로만 따져도 2,132억 원으로 코멕스 대비 월등한 규모를 자랑한다.

성장추세의 지속 (2018 ~ 2020년)

출처: 2020년도 락앤락 사업보고서 – 공시자료
출처: 2020년도 락앤락 사업보고서 – 공시자료

2018년(제14기) 매출 4,343억 원에서 2020년 매출 5,019억 원 수준까지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나, 영업이익은 365억 원에서 2019년 243억 원으로 크게 낮아진 것을 볼 수 있다. 그 원인을 2019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살펴보면, ERP 투자, 핵심인력충원, 오프라인(Off-line) 매장 확장 등에 투자한 금액이 많았다고 밝힌다. 락앤락 또한 사업 정체를 벗어나 Turn Around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했고, 그 효과로 영업이익률의 점진적 상승을 만들고 있었다.

분산되고 다각화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의 안정감

락앤락이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전인류적 위기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이들의 제품이 비대면 생활에 적합했다는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등 해외시장에 선도적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해 성장한 바가 크다. 더 나아가 각 국가별 주력제품이 다르고, 다변화된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아래 표와 같이 국내에서는 밀폐용기가, 중국에서는 텀블러가, 베트남에서는 소형가전 등이 각각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출처: 필자 제공
출처: 필자 제공

성장을 위해 이들이 한 일은?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것은 ‘락커룸’이라는 소형가전 브랜드다. 2019년 4월, 소형가전 전문 브랜드 ‘제니퍼룸’을 인수한 이후 진공쌀통, 칫솔살균기, 스팀에어프라이어 등 차별화한 소형가전상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2020년 4분기 락앤락의 소형가전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516% 상승하는 성과를 창출했다.

필자가 이 부분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급성장한 매출때문이 아니라 기존의 밀폐용기 및 주방용품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생활가전’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했기 때문이다. 기존 신제품은 생활용품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제니퍼룸을 인수해 생활용품이 아닌 가전으로 비즈니스모델을 확장했다. 향후 샤오미가 그렇듯 중저가 생활가전에 IoT로 연결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락앤락이 ‘브랜드파워’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는 점이다. 락앤락은 국내에서 밀폐용기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브랜드이며,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상당한 브랜드 파워를 구축했다. 브랜드 파워가 중요하지 않은 상품이 어디 있겠냐만, 밀폐용기와 텀블러와 같이 소재와 기술이 평준화된 제품 영역에서는 더 높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선물용으로 대량구매하는 중국과 베트남의 특성을 고려하면, 브랜드의 영향력은 더더욱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락앤락은 브랜드라는 무형 자산과 비즈니스모델 확장이라는 유형 자산, 양쪽에서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발전했다. 그리고 무형 자산이든, 유형 자산이든 이는 곧 고객에 제공하는 가치 향상으로 이어진다.

제품 혁신 VS 비즈니스모델 혁신

성장을 위해서는 혁신적 제품과 영업력이라는 두바퀴를 갖춰야 한다. 여기서 혁신적 제품이란, 반드시 ‘Product’를 말하지 않는다. 고객 입장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제품이 제공하는 ‘혁신적 가치’이며, 혁신적 가치는 제품 단위 또는 비즈니스모델 단위에서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IT와의 결합이 필수적인 시대에는 제품 그 자체로는 부족하다. 비즈니스모델 차원에서 혁신적 가치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코멕스는 제품이 아닌 비즈니스모델 차원의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 경쟁사 또한 혁신적인 비즈니스모델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아직 없다.

제품 혁신과 비즈니스모델 혁신을 이해하기 어려운 독자를 위해 코멕스 밀폐용기를 사례로 조금 더 풀어보면 이렇다.

[ 제품 혁신 ]

어떤 주부가 냉장고를 새로 샀다. 그 냉장고에 딱 맞아서 최적의 수납 효율을 제공하는 밀폐용기 시스템을 코멕스가 생산해 판매한다. 네이버에 검색해서 자신의 냉장고 모델에 적합한 제품을 구매하면 된다.

출처: 코멕스산업
출처: 코멕스산업

[ 비즈니스모델 혁신 ]

어떤 주부가 냉장고를 새로 샀다. 구매하는 과정에서 전용 밀폐용기 시스템이 있으며, 각각의 밀폐용기는 내용물 신선도를 측정할 수 있단다. 이에 스마트폰으로 냉장고에 저장한 음식의 신선도를 한눈에 파악할 수도 있고. 게다가 구독모델을 통해 6개월에 한번씩 밀폐용기를 교체해주기까지 한단다. 이 신선보관 IoT 시스템은 밀폐용기 전문기업인 코멕스와 냉장고 제조사 L사가 공동 개발한 것이며, 앱(App)을 통해 신선도 확인, 밀폐용기 구독과 교체 신청은 물론 코멕스의 다른 제품 구매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출처: LG전자
출처: LG전자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영역에서라면, 제품 혁신은 어떤 경쟁사든 쉽게 따라할 수 있다.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런 유형의 사업자는 ‘Originality’를 만들어내고자 많은 자금을 브랜드 마케팅에 쏟아 부어야 한다. 반면, 비즈니스모델 혁신은 고객 유지(Lock-in)와 반복구매 효과를 만들어 내며 협력자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기술적, 사업적 진입장벽을 만들기 때문에 그 지속성과 성장성이 달라지게 된다.

비워야 채워진다

코멕스는 쌓인 것이 많은 회사다. 1,000여종 이상의 제품 하나 하나마다 원하는 고객이 있고, 유지해 나가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비워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이 채워진다.

결론적으로, 비워야 할 것은 제품군이고 새롭게 채울 것은 제품에 대한 ‘Ownership’이다. 그래야 제품 혁신과 온라인으로의 영업/마케팅을 재편할 수 있기에.

이미 온라인 마케팅을 열심히 하고 있는 기업에 무슨 온라인 재편인가 싶으실거다. 필자는 온라인 마케팅의 실행여부를 따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 마케팅 실행조직을 언급하고자 한다. 실행조직이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이므로 제품에 대한 주인의식 여부를 말하고자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제품의 범위와 상관없이 고객군별로 담당하는 조직에서는 제품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을리 없다. Product Ownership이 없으므로 세부 제품군별 시장을 조망하고, 기획 - 생산/공급 - 마케팅/영업에 이르는 전체를 책임지고 조율하는 사람이 없다. 이런 체계에서는 제품 변화와 혁신 추진 동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코멕스가 취급하는 생활용품의 주고객층은 주부이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활동은 매우 깊은 고객과 제품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고도의 전술을 요구한다. 누가 1,000가지 제품과 그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을까? 게다가 수요의 다양성과 규모가 성장하는 해외시장의 대응은 가능한 것일까?

주력제품과 비주력제품을 전략적 차원에서 분리하고, 비주력제품은 분사 등의 방법을 통해 비우되, 주력제품군에 대한 전담 조직 구성과 책임경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각각의 제품 중심 조직은 인원 부족 때문에라도 지금처럼 발로 뛰는 영업에서 비대면 영업과 온라인 마케팅을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접근 가능한,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영업 성과로 이어질 것이다.

노인의 용기(用器)가 아닌 용기(勇氣)가 필요한 때

그 옛날 바이오탱크라는 식수통을 필자도 본 기억이 있다. 우리집 씽크대와 냉장고 곳곳에 코멕스의 제품이 있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 밀접하고도 익숙한 기업이다. 이런 익숙함에 익숙한 회사에게 비즈니스모델 변화는 가능한 것일까?

다행히도 밀폐용기든 생활용품이든 해당 업계에서 고객의 기대가치를 뛰어넘는 혁신적 가치를 제공하는 업체는 아직 없다. 따라서 코멕스에게도 아직 시간과 기회가 있다. 밀폐기술을 반드시 생활용품에만 적용할 이유는 없다. 소재와 기계, 심지어 반도체 산업까지 밀폐기술을 필요로 하는 고객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용기(用器)에 적용하는 기술 또한 반드시 소재에 국한할 이유도 없다. IT와 센서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고객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다. 다만, 이런 도전을 가능케 하는 비움과 채움의 용기(勇氣)가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코멕스산업
출처: 코멕스산업

생활 속 익숙함을 만들어낸 장본인, 구자일 회장은 산업계 어르신답게 앉아만 있어도 관록이 느껴진다.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장에 대한 높은 의지를 보여주셨다. 그 의지에 비움과 채움을 실행할 수 있는 용기를 더해, 코멕스의 혁신과 성장을 실현하는데 필자의 제언이 조금이나마 도움되길 기원한다.

글 / 인사이터스컨설팅 황현철 대표
실전 비즈니스모델 컨설팅 전문가. 19년간 비즈니스 전략, 프로세스, 생산, 품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장 중심의 컨설팅을 수행했으며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대기업에서 스타트업까지 실체적 비즈니스모델 컨설팅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본격 기업 극화 소설 '비즈니스모델러'의 저자이기도 하다.

정리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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