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인증 취소 사태, 소비자들이 알아둬야 할 점은?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당분간 전자제품을 중고거래를 할 때는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 업체 378곳에서 위조된 시험성적서로 ‘방송통신기자재에 대한 적합성평가’(이하 적합성평가)를 받은 사실이 대거 적발되며 해당 기자재들에 대한 적합성평가가 지난달 모두 취소되는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전파법에 따라 적합성평가를 받지 않은 미인증 제품을 판매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는 개인 간 중고거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무엇이 문제가 됐나

여기서 말하는 적합성평가란, 흔히 말하는 전자제품의 ‘전파인증’이다. 스마트폰, 태블릿, 무선 이어폰, TV 등 전파를 이용하는 모든 제품은 적합성평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기기 간 전파 혼선으로 인한 오작동, 과도한 전자파 노출로 인한 피해 등을 막기 위한 규제다.

전파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정부 지정 시험기관에서 기준에 따른 시험을 거쳐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때 국내 시험기관이 아닌, 상호인정협정(MRA)이 체결된 국가의 지정 시험기관이 발급한 시험성적서도 인정이 된다. MRA가 체결된 국가끼리는 서로 적합성평가 결과를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이번에 취소가 된 기자재들도 국내가 아닌 BACL라는 다국적 시험기관에서 발급한 시험성적서로 적합성평가를 받았다.

BACL은 미국, 대만, 중국 등 각지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적발된 사례들은 중국 등에 위치한 BACL에서 발급한 시험성적서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BACL에서 시험한 것처럼 위조했다. 같은 BACL이라도 미국과 달리 MRA 체결이 되지 않은 중국 소재 기관에서 발급한 시험성적서는 국내에서 인정이 되지 않는다.

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이 같은 내용을 제보받은 건 지난해 11월이다. 이후 약 5개월간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와의 협조로 사실관계 조사, 행정처분 사전통지, 청문 등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지난달 17일 최종적으로 378개 업체의 기자재 1,696건에 대한 적합성평가를 취소했다.

업체들은 업무 처리 절차를 숙지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라고 소명했지만, 과기정통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의나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적법한 적합성평가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전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취소처분을 받은 업체는 1년간 해당 기자재에 대해 다시 적합성평가를 받을 수 없으며, 다시 적법하게 적합성평가를 받기 전까지 해당 제품들을 제조·수입하거나 판매할 수 없다.

소비자들은 받는 영향은?

과기정통부는 업체가 이번에 취소 처분을 받은 제품들을 유통망에서 수거하고, 이미 판매된 제품은 3개월 이내 적합 여부를 재검증하여 구매자들에 고지하고, 부적합하면 제품을 수거하도록 했다. 그러나 처분 발표 한 달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도 향후 대책에 관한 계획이나 구제책을 내놓고 있는 업체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에 적발 업체 중에는 드론 1위 업체 DJI를 비롯하여 삼성전자, 브리츠, 레이저 등 국내에서 널리 사용되거나 유명한 브랜드 제품들도 많다. 제품군도 드론, 스피커, 블루투스 이어폰, 노트북, PC 주변기기 등 다양하다. 이러한 편법으로 적합성평가를 통과하는 행태가 이어진 기간도 8년에 달한다. 적지 않은 소비자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번 적합성평가 취소 대상에 포함된 DJI의 매빅2 프로 (출처=셔터스톡)
이번 적합성평가 취소 대상에 포함된 DJI의 매빅2 프로 (출처=셔터스톡)

미인증 제품이라도 개인이 사용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장이 나서 서비스를 받아야 할 때는 불편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미인증 제품은 유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리를 위한 부속품이나 교환용 완제품도 들여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국내에서 AS가 불가능해지고 해외로 보내 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더욱 큰 문제는 개인 간 중고거래에서 발생한다. 전파법 58조 2항에 따라 미인증(미등록) 제품을 판매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실제 판매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판매 글을 올리기만 해도 ‘진열’에 해당하기 때문에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 대상이다.

실제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번에 적합성평가가 취소된 제품을 중고로 판매하려다 신고당해 진술서를 썼다는 사연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번 사태 이전에도 해외에서 직구한 미인증 제품을 중고로 판매하려다 전파법 위반으로 신고당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이러한 내용의 법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알더라도 판매하려는 제품이 이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혹여나 신고를 당하더라도 상습적인 업자 사례가 아닌, 개인의 거래 사례라면 훈방 조치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전파관리소, 경찰서 등을 방문해 진술서를 작성하고 조사를 받는 과정 자체가 매우 번거로운 데다가 기소까지 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처음부터 전파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다. 가능하면 전자제품 거래 전에 꼭 적합성평가 인증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자.

적합성평가 인증 확인 방법은?

국립전파연구원 홈페이지에서 업무안내▶부적합방송통신기자재현황에 접속하면 이번 사태 혹은 다른 이유로 적합성평가가 취소된 부적합 기자재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상호나 제품 모델명, 인증/등록번호를 입력하면 검색할 수 있다.

국립전파연구원 홈페이지에서 부적합 방송통신기자재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국립전파연구원 홈페이지 캡처)
국립전파연구원 홈페이지에서 부적합 방송통신기자재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국립전파연구원 홈페이지 캡처)

만약 검색 결과에 나오지 않는다면 부적합 목록에 없다는 뜻이므로 적합한 제품이다. 다만 대소문자 구분, 띄어쓰기에 따라 목록에 있는 제품인데도 검색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검색어를 입력할 때 가능한 한 정확하게 입력하는 게 좋다.

제품 뒷면에서 인증/등록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예시를 위한 사진으로, 해당 제품은 정상적으로 적합성평가를 받았다
제품 뒷면에서 인증/등록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예시를 위한 사진으로, 해당 제품은 정상적으로 적합성평가를 받았다

모델명이나 인증/등록번호는 제품 뒷면이나 아래 라벨 부분이나 포장 박스, 박스 내 설명서나 인증정보 등 문서에 기재되어 있다. 보통 국가통합인증마크(KC마크) 옆에 있으므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제조사나 유통사 홈페이지, 다나와와 같은 쇼핑몰에 올라와 있는 제품정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품 상자에 표기된 경우. 여러 기기가 짝으로 구성된 제품이라면, 기기마다 따로 전파인증을 받기 때문에 인증/등록번호도 여러 개다. 예시를 위한 사진으로, 해당 제품은 정상적으로 적합성평가를 받았다
제품 상자에 표기된 경우. 여러 기기가 짝으로 구성된 제품이라면, 기기마다 따로 전파인증을 받기 때문에 인증/등록번호도 여러 개다. 예시를 위한 사진으로, 해당 제품은 정상적으로 적합성평가를 받았다

본체와 리모컨, 무선 이어폰과 충전 케이스처럼 여러 기기가 짝으로 구성된 제품이라면 구성품에 따라 전파인증을 따로 받기 때문에 인증 여부도 각각 확인해야 한다.

제조사·유통사 홈페이지, 다나와 등에서도 등록/인증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예시를 위한 사진으로, 해당 제품은 정상적으로 적합성평가를 받았다 (출처=다나와 캡처)
제조사·유통사 홈페이지, 다나와 등에서도 등록/인증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예시를 위한 사진으로, 해당 제품은 정상적으로 적합성평가를 받았다 (출처=다나와 캡처)

또한 같은 제품이라도 제조상의 미세한 변화에 따라 전파인증을 새로 받는 경우도 있으니 '펫네임'이라고 하는 통칭이나 모델명으로 지레짐작하지 말고 인증/등록번호로 확실히 조회할 필요가 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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