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리의 잇(IT)트렌드] 게임으로 질병을 치료한다? 디지털 치료제

전국 직장인, 그 중에서도 열정 하나만으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대리님들을 위한 IT 상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점심시간 뜬금없는 부장님의 질문에 난감한 적 있잖아요? 그래서 저 송대리가 작게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장님, 아니 더 윗분들에게 아는 ‘척’할 수 있도록 정보 포인트만 쏙쏙 정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테슬라, 클럽하우스, 삼성, 네카라쿠배 등 전세계 IT 소식을 언제 다보겠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피곤한 대리님들이 작게나마 숨 한번 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1. 디지털 치료제? 약을 디지털로 먹는다는건가?

하하. 농담이시죠? 디지털 치료제는 먹는 알약이나 주사 같은 것이 아닙니다..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질병이나 장애를 예방, 관리, 치료하는 방법을 뜻하는데요. 디지털과 치료제(Therapeutics) 더해, 약자로는 ‘DTx’라고 합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스마트폰 앱이나 게임,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환자를 치료할 때 활용하는데요. 특히, 심리적인 병을 치료하는데 많이 이용합니다. 1세대 치료제 ‘저분자 화합물(알약이나 캡슐)’, 2세대 치료제 ‘생물 제제(항체, 단백질, 세포)’에 이은 3세대 치료제로 분류합니다. 디지털 치료제도 다른 치료제처럼 임상시험으로 효과를 확인하고, 미국식품의약국(FDA)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디지털 치료제는 기존 신약과 비교해 개발 비용은 적고, 개발 기간이 짧은데요. 기존 의약품을 대신하거나 병행할 수 있어 치료제를 개발하기 어려운 의료 분야에 활용할 수 있어 기존 제약사들이 진출하기 적합한 분야로 꼽히고 있습니다.

2. 심리 치료에 디지털을 활용한다는걸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지난 1997년, 미국 조지아 공대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의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VR을 활용해 치료한 바 있습니다. VR을 통해 베트남 현지 모습과 헬기 탑승 같은 경험을 재연했죠. PTSD 치료 방법 중 하나는 트라우마를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것인데, 전쟁 당시 상황을 VR로 비슷하게 구현한거죠. 당시를 떠올리면서 심리적 불안이나 공포를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2005년에는 이라크 참전 군인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버추얼 이라크 게임’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시각 이외에도 후각과 청각까지 느낄 수 있도록 정교화했답니다. 실제 이라크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나리오도 제작했는데요. 시가지, 검문소, 작은 마을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네요.

3. 또 어떤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까?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는 데 활용합니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치매 노인에게 먼 바다의 해변을 보여주고, 고소공포증 환자에게 고층 빌딩을 간접경험하도록 제공하죠. 공포를 느끼는 높이에서 과일을 딴다는 등의 VR 체험으로 증상을 68% 이상 감소했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하루 30분씩 가로, 세로, 회전 등의 영상으로 자극하는 게임을 통해, 살아있지만 비활성화 상태인 뇌세포를 깨워 뇌졸중 환자의 시야 장애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형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 중인 한 연구원의 시범, 출처: 알파테라퓨틱스
게임형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 중인 한 연구원의 시범, 출처: 알파테라퓨틱스

일상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꽤 많은 사람이 대중 앞에 서는 것을 불안해하는데요. 흔히 무대 공포증, 무대 울렁증이라고 말하죠. VR 속 무대에 지속적으로 서보는 겁니다. PTSD 장애에 시달리는 군인을 치료하는 것처럼 말이죠. 서너 명 규모의 작은 그룹부터 몇백명 이상의 대중 앞 무대까지, 점점 단계를 올려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중 앞에 서는 연습을 VR에서 익숙해지는거죠.

4. 디지털 치료제가 FDA 승인을 받았다고?

최초 디지털 치료제로 평가받는 제품은 약물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페어 테라퓨틱스가 개발한 ‘리셋’입니다. 리셋은 2017년 9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는데요. 알콜, 코카인, 대마 등으로 걸린 중독 증상과 의존성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입니다. 이를 활용하려면, 의사 처방을 받아야만 했죠. 19세 이상 외래 환자 대상으로 약 12주간 기존 치료 프로그램에 추가해 사용할 수 있답니다. 물질에 대한 중독을 완화하고, 기존 치료 프로그램에 대한 순응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고 하네요. 무작위 임상시험을 통해 외래 상담치료와 병행한 결과 치료 효과는 22.7%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리셋(reSET)', 출처: 페어 테라퓨틱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리셋(reSET)', 출처: 페어 테라퓨틱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에도 활용하는 FDA 승인 디지털 치료제도 있습니다. 8세부터12세 환자들이 컴퓨터 게임을 통해 주의력을 향상시키는 디지털 치료제인데요. 주위가 산만한 아이들한테 게임 속에서 악당을 잡고 장애물을 피하도록 해 뇌의 어떤 특정 신경 회로를 자극하는 원리입니다. 실제 임상시험 결과 게임을 사용한 아동 중 1/3은 증상을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네요.

ADHD 환자가 게임 기반 디지털 치료제를 이용하는 모습, 출처: 아킬리 인터렉티브
ADHD 환자가 게임 기반 디지털 치료제를 이용하는 모습, 출처: 아킬리 인터렉티브

5. 학부모는 게임이라 그러면 부정적으로 생각하잖아. 혹시 게임을 이용한 다른 치료도 있나?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에 빠져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게임 치료제가 있어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리랄까요. 그리고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VR도 있습니다. 음주를 유발하는 VR 체험인데요. VR 속에서 음주를 거절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미 워싱턴대의 인지심리학과 교수인 ‘헌터 호프만(Hunter Hoffmann)’ 박사는 스노우 월드(Snow World)라는 컴퓨터 게임을 통해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화상 환자의 통증을 감소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스노우 월드는 사용자가 움직이는 펭귄과 눈사람에게 눈덩이를 던지면서 얼음으로 덮인 협곡을 빠져나가는 내용의 게임인데요. 화상의 원인인 불을 눈과 얼음이라는 시각적 효과로 상쇄시킨다는 취지로 개발됐습니다.

치료 중 게임하는 환자는 게임을 하지 않는 다른 환자보다 통증을 최대 50% 덜 느깐다네요.

6. VR 말고 다른 치료방법도 있을까?

웨러러블 기기를 활용해 수면장애를 해결할 수도 있답니다. AI 알고리즘을 이용하는건데요. 웨어러블 기기를 손목에 착용한 뒤, 수면 사이클 패턴을 AI로 분석하는거죠. 사용자가 만약 악몽을 꾸는 것 같으면 실제 잠은 깨지 않을 정도로 진동해 악몽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한답니다.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이 있으면 살짝 흔들어 잠은 깨우지 않고 코고는 것을 멈추는 것 처럼요.

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7. 디지털 치료제는 부작용 같은게 없나?

생체적인 독성은 없습니다. 아직 알려진 큰 부작용은 없구요. 개발 과정에 필요한 코딩이나 복제 비용, 서비스 제공 단가도 낮습니다. 비용이 저렴하다는 뜻이죠. 그리고 대부분의 디지털 치료제는 환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24시간 실시간으로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죠. 아, 동의는 필요하지만요. 현재 알려진 부작용은 좌절, 두통, 현기증 정도입니다. 현실이 아닌 VR 속 경험으로 인한 인지부조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미국 FDA 승인처럼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허가, 심사 가이드라인을 공개했습니다. 강박장애 치료, 치매 치료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를 임상 시험 승인 받은 상태라고 하네요. 국내에서도 나름의 기준을 마련하고 준비 중이라는 뜻입니다.

디지털 치료제가 기존 의약 체계를 100% 대체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렴하고, 기존 치료 방식의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는 것은 분명 장점입니다. 특히,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 시대에 병원을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되죠. 그리고 거동하기 불편해하는 어르신들에게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과도한 낙관론도 금물입니다. 디지털 치료제가 마치 모든 것을 고치는 완벽한 치료제는 아니니까요. 스마트 기기에 의존하는 건강관리가 환자에게 질환 발병, 증상 개선 책임을 떠넘기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죠. 잘 보완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술, 서비스가 등장하길 희망해봅니다.

송태민 / IT전문가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대기업까지 다양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현재 KBS 라디오 ‘최승돈의 시사본부’에서 IT따라잡기 코너를 담당하고 있으며, '애플워치', '아이패드 미니', '구글 글래스' 등의 국내 1호 구매자이기도 하다. 그는 스스로를 IT 얼리어답터이자 오타쿠라고 칭하기도. 두 딸과 ‘루루체체 TV’ 유튜브 채널, 개그맨 이문재와 ‘우정의 무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어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이며, IT 전문서, 취미 서적 등 30여 권을 집필했고, 음반 40여장을 발표했다.

정리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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