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노인에게 치명적인 낙상사고, 생활의 불편함을 개선하려는 세비앙
지난해 인터비즈 스케일업 프로젝트에서 소개한 세비앙은 28년간 샤워기, 세면대와 같은 욕실 속 제품을 만들어온, 그야말로 ‘욕실’이라는 한 우물을 판 샤워기 전문업체다. 최근 세비앙이 선보인 전해살균수 시스템 ‘씨워터(C-Water)’ 는 코로나19 이후 강조하고 있는 ‘손 씻기’라는 경험을 확장해 욕실 밖으로 꺼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세비앙의 사업모델은 ‘고객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2013년부터 시도하고 있는 ‘수호천사’는 고령화로 치닫는 현실을 반영한 사업아이템. 실내에서 발생하는 낙상(落傷) 사고에 대처하기 위함인데, 욕실에서 실내 생활공간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한 셈이다.
야외보다 실내에서 더 많이 넘어진다?
낙상은 넘어지거나 떨어져서 몸을 다치는 것을 뜻한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추락, 걸리거나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낙상 사고는 모든 연령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특히 노인에게 발생할 확률이 높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개선된 생활 여건 등으로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노인 인구 비율이 늘어나면서 낙상으로 인한 사고는 꾸준하게 늘고 있다.
노인에게 낙상사고는 치명적이다. 바닥에 넘어지면 뼈의 골절만 생각하기 쉽지만, 자칫 폐렴, 뇌 손상, 근육 손상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65세 이상 노인 중 3분의 1이상이 연간 한번 이상 낙상을 경험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의 21%가 낙상을 경험하며, 이 중 36% 이상이 약 2주 이상 입원한다. 모든 노인의 신체 손상 중 절반 이상이 낙상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11 노인 실태조사).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낙상사고는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및 경제 성장을 단기간에 거치며 인구 구성 역시 급변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출산율을 낮추려고 노력했지만, 현재 한국은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로 고령화 현상은 빠르게 진행 중이다. 2000년대 이미 고령화사회(65세 이상 노인인구 7% 이상), 그리고 2017년경 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인구 14% 이상)에 진입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일어나고 있어, 이로 인한 여러 사회 변화 및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한가지 눈여겨볼 점은, 의외로 낙상 사고는 밖이 아닌 실내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의 '2018년 국내 낙상사고 통계'에 따르면 전체 낙상사고 가운데 61.5%는 주거시설에서 발생했다.
한국시큐리티융합경영학회지가 발표한 '노인안전사고 실태와 예방'에 따르면65세 이상 노인이 가정 내에서 가장 많이 낙상 사고를 입는 곳은 방(20.9%)이었다. 이는 욕실·화장실(15.5%)보다 높은 수치다. 주방(13.0%)과 거실(11.7%)이 뒤를 이었고, 계단(2.7%)과 출입구(1.7%)는 오히려 적었다. 평소 익숙한 공간으로 인식하는 방 안에서 방심하기 쉽기에 낙상사고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 안에서의 낙상 사고 원인은 가구 돌출부, 침대에서 떨어짐, 바퀴 달린 의자, 발에 걸리는 전선줄 등으로 다양하다. 잠결에 화장실에 가다가 가구에 부딪히거나,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낙상사고, 생활의 불편함에 접근한 세비앙
세비앙은 여기에 집중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사진을 보자.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세면대, 좌우로 움직이는 변기 옆 안전손잡이, 앉아서 몸을 씻을 수 있도록 벽에 고정된 의자 등의 컨셉을 담은 그림이다. 류인식 세비앙 대표는 “휠체어나 지팡이를 사용해야 하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 앉고, 일어나고, 걷는 일련의 움직임은 정상인의 행동과 똑같을 수 없다”며 “노인 또는 장애인 등이 실생활에서 부딪힐 수 있는 행동의 한계점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라고 설명했다.
생활 속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 일종의 복지용구다. 세비앙은 이를 ‘Care하는 사람을 Care하는 지원 플랫폼’이라고 말한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장애인,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돕는, 도우미를 지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라며 “노인, 장애인과 같은 1차 타깃과 함께 이들을 돕는 사람을 2차 타깃으로 확대해 제품을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브랜드 이름도 ‘수호천사’다. 지난 2013년 첫 선을 보인 뒤, 꾸준한 시장조사와 함께 제품 완성도를 높였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안전손잡이’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변기나 의자에 앉거나 일어설 때, 현관에서 신발을 신기 위해 몸을 굽힐 때 등 몸을 움직이는 행위에 손으로 잡고 지탱할 수 있는 제품이다. 기본적인 안전손잡이는 벽에 붙이거나 바닥과 천장에 봉처럼 고정해 설치할 수 있다.
수호천사를 개발하며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안정성이다. 특히 안전손잡이와 같은 복지용구는 튼튼해야 한다. 잡고 일어서야 하는데, 쉽게 떨어지거나 파손되면 더 위험할 수 있다. 손으로 쥐었을 때 적당한 굵기여야 하고, 손에서 미끄러져도 안된다. 모양이 변형되어서도 안되고, 주변 인테리어와도 어울려야 한다.
이에 세비앙은 손으로 잡는 봉 부위에 원목을 사용했다. 온도 변화에 따라 변형되지 않고, 미끄러움 등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원목을 벽에 고정하는 브라켓은 녹이 슬지 않도록 크롬 도금을 사용했다. 어두울 때 안전손잡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야광띠도 달았다. 이어서 벽에 설치하는 안전손잡이 이외에 화장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변기거치형과 거실, 방, 현관 등에 봉처럼 설치할 수 있는 기둥형 제품도 개발했다.
사회적 책임을 생각한 수호천사
수호천사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품이다. 제품을 구매하고 이용하는 고객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이에 세비앙은 수호천사 전 제품을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제품’으로 등록해 사용자부담을 줄였다. 노인복지지원금을 활용한 제 3자(정부) 페이 방식의 비즈니스모델이다. 정부 지원금을 받아 고객은 매우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이러한 비즈니스모델은 딜라이트 보청기 등 노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에서 많이 발견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전 세계에서 손꼽힌다. 2025년이면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노인인구 20% 이상)에 접어들 전망으로, 빠르게 늙고 있다. 세비앙의 수호천사는 이러한 고령화 사회에 맞춰 준비하고 있는 장기적 비전이다. 행동의 장애를 가진 노인의 욕실 사용이라는 경험에서 문제를 찾았고, 이를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한국벤처컨설팅의 김유광 이사는 “세비앙은 샤워기로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속적으로 욕실 관련 제품을 혁신해 왔고, 이제 실내 생활공간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제공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일반적으로 좋은 아이디어는 내부에서 고민하기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세비앙과 공감하는 다양한 스타트업들과 함께 ‘생활을 혁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민해 보는 것이 좋겠다”라며 의견을 전했다.
글 / IT 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