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악으로 버틴 인공각막 연구개발 10여 년,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바이오 벤처기업 티이바이오스는 2009년 설립 이후 12년 동안 인공각막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수익이 거의 없이 10년 이상을 운영하고 있다니, 의문이 들었습니다. 기업 운영에 자금은 필수입니다. 수익이 전부는 아니지만, 일단 살아야 합니다. 이 회사 정도선 대표는 “10년간 무상으로 일했다. 기관으로부터 투자도 받았다”고 했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가시밭길이었음에 분명합니다. 바이오 업계, 바이오 스타트업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스케일업팀은 CL파트너스의 이현규 상무(의학박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상무는 서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 의사면허를 취득, 2016년까지 약 16년간 서울대 의과대학 의학 연구원 및 의학과 병리학과실, 연세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과 면역질환연구실에서 조교와 강사, 기초연구조교수, 연구교수 등을 지냈습니다. 이후 한국투자파트너스 바이오팀 투자 이사를 거쳐 Lee&Partners 대표이자 CL 파트너스의 파트너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대상 투자와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

바이오 산업, 연구개발 10년은 당연하다

데스밸리(Death Valley). 이른바 죽음의 계곡. 스타트업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 중 하나다. 명확한 사전적 의미는 없지만, 흔히 초기 스타트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난 뒤 외부자금을 받지 못해 온갖 시행착오와 위기 등을 겪는 시기를 뜻한다. 혹자는 험난하고 치열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악어와 해파리 떼가 가득한 호주 북부 해변 다윈의 바다에 비유하기도 한다.

스타트업의 성장곡선에서 음푹 파인 구간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라 함, 출처:클래스101, 인터비즈 재가공
스타트업의 성장곡선에서 음푹 파인 구간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라 함, 출처:클래스101, 인터비즈 재가공

실제로 올해 3월 1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역동적 창업생태계 조성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창업기업의 5년 차 생존율(2020년 기준)은 29.2%에 불과하다. 5년 내 스타트업 중 2/3 이상은 사라진다는 뜻이다. 창업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은 ‘생계형 창업’인 문화·스포츠·여가업과 숙박·요식업 등의 생존율도 OECD 평균을 크게 밑돈다.

출처: 대한상공회의소
출처: 대한상공회의소

그만큼 어렵다. 열정, 도전, 꿈이라는 단어는 생존 앞에 힘을 잃는다. 그런 상황에서 티이바이오스는 10년 이상을 ‘버텼다’. 이 같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CL 파트너스 이 상무는 “바이오 산업, 바이오 업계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설명한다.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신약 개발을 예로 들어보죠. 현재 사용하는 유명한 항암제나 정신치료제 등은 연구 개발 시작 후 실제 사용하기까지 평균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최근에는 10~12년 정도로 앞당겨졌다고 하지만…, 그만큼 오래 걸리는 일이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바이오 스타트업과 일반적인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스타트업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정확히는 시장에 통용할 수 있는 기준을 충족하기에 투여하는 노력과 시간이 다르죠”라며 “사람이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약과 스마트폰에 설치해 사용하는 앱을 대하는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약이나 치료법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이론을 거쳐 가능성을 시험하고, 단계별 동물 실험을 거쳐,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임상시험을 통과해야죠. 당연히 오래 걸립니다. 그만큼 비용도 많이 필요하고요”라고 덧붙였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오랜 기간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 업체가 당장의 수익을 건질 수 없는 구조다. 당연하다. 사람이 먹는 약이고, 사람에게 적용해야 하는 새로운 약이고 치료법이다. 안전성을 테스트해야 하는 상황인데, 무턱대고 판매부터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모두가 ‘필요하다’고 공감한다.

바이오, 의학은 그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에 민감하다. 아무리 완벽한 이론과 임상시험 결과라도 생명과 연관 지어져 있다. 때문에 보수적이다. 모든 신약과 새로운 치료법이 시중에 통용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방법과 기준, 시장 파급력 등을 고려해야 한다.

가이드라인조차 없었던 인공각막

실제로 티이바이오스는 지금의 인공각막 임상시험 단계까지 끌고 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단 국내에 인공각막 관련 기준이 없었다. 해외에서도 마땅한 기준을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티이바이오스 정 대표는 “2015년에 이르러 인공렌즈 부분의 소재를 바꿔가면서 서울성모병원과 동물실험을 진행했고, 자체적인 판단하에 이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 허가를 요청할 단계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했지만, 임상시험까지 오는 데는 그로부터 5년이 더 걸렸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식약처에 관련 문의를 했지만, 마땅한 답변도 받지 못했다. ‘기술문서(인허가를 받을 때 필요한 기술 계획서 및 안정성과 유효성 등을 담은 보고서 등)를 가져오라’는 답변에 가이드라인을 요청했지만, 그 조차도 없었다. 정 대표는 “돌이켜보면, 지난 10년은 지금의 인공각막 임상시험을 위해 필요한 단계를 하나씩 정립하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답보 상태에 빠졌던 티이바이오스는 식약처가 제공하는 ‘신개발의료기기 등 허가도우미 제도(이하 허가도우미)’를 적극 활용했다. 허가도우미는 식약처를 중심으로 다기관 협력을 통해 제품 개발 초기부터 허가 과정에서 요구되는 분야별, 맞춤형, 선제적 지원으로, 허가 소요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 등의 효과를 높여 신속 제품화를 지원하는 제도다.

신개발의료기기 등 허가도우미 지원범위,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신개발의료기기 등 허가도우미 지원범위,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도우미를 통해 지원받기 시작한 2015년이 전환점이었다. 2016년 3월, 식약처로부터 산업자원부가 지원하는 신속제품화지원사업에 추천받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 2017년 1월 인공각막 허가 가이드라인이 고시되었고, 그때부터 전임상 과정에 돌입했다. 공인 시험기관과 함께 공인 데이터화 과정에 참여하며 지금까지 인공각막 관련해 없던 것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당장 먹을 것조차 막막했던 중소기업이 제 살길을 스스로 찾아야만 했던 셈이다.

정 대표는 “인공각막을 개발하겠다고 다짐했던 초기, 그러니까 2009년 겨울, 지금의 아내에게 동의를 구했었습니다. 당시에 유통 분야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돈은 잘 벌었지만 어딘가 허전했거든요. 사회에 필요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라며, “결혼 전이었던 아내가 허락해 줘서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때 아내가 안된다고 했으면, 티이바이오스도 없었겠죠.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라고 웃었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이 상무는 “실제로 바이오 관련 인허가 과정은 많이 빡빡합니다. 새로운 신약이나 치료법이 등장하면 이를 검증해야 하는데,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많이 부족하죠. 한 예로 국내에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전문가가 얼마나 있을까요? 채 100명이 안됩니다”라며, “코로나19 이후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은 크게 늘어났지만, 정작 바이러스 전문가는 많지 않습니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죠”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필요합니다

필요성과 현실의 괴리감이다. 국내 바이오 업계가 풀어야 하는 숙제와도 같다. 바이오 업계에서 전문가나 돈이 되는, 인기 있는 분야에 몰린다. 이는 비단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글로벌 1위 시장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관심 없는 분야는 포기해야 하나? 그럴 수는 없다.

이 상무는 “어디에 집중해야 하고, 무엇이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어려운 일입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오 산업에 대한 지원과 투자는 필요합니다”라며, “당장 바이오 전문가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산업 전반을 유지하고, 순환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닦아야 합니다. 인력을 양성하고 산업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에 IT 버블이 없었다면, 지금의 네이버, 카카오, 넥슨, NC소프트 같은 IT 기업이 등장할 수 없었을 겁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세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한 지원과 투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세대 먹거리인 바이오 업계에도 필요한 일입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새로운 치료법,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 것이 최고라는 생각은 버렸습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개선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며, “인공각막은 필요한가? 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실되게 집중하겠다는 각오로 도전했습니다. 그래야 시장에서 선택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웃었다.

자문 / CL 파트너스 이현규 상무
글 / IT 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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