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세심한 배려, 접근성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최근 어르신들 사이에선 밖에서 밥 한번 먹기도 힘들다는 불만이 종종 나온다. 식당을 방문해 음식을 주문하려면 QR 체크인, 키오스크 조작 등 낯선 과정부터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인들도 처지는 비슷하다. 키오스크 같은 무인화 시스템 때문에 오히려 식당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는 한다. 이처럼 어떤 이들에게는 편리한 기술들이, 다른 이들에겐 오히려 장벽이 되기도 하는 이유는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0일은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Global Accessibility Awareness Day)의 날'이었다. 2012년 ‘접근성’ 개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 처음 만들어진 후 올해로 열 번째를 맞았다.

접근성이란 나이, 신체적 특징, 학력 수준 등 여러 제한사항에 구애받지 않고, 가능한 많은 사람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걸 말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접근성 사례로는 휠체어 탑승자를 위해 계단 옆에 따로 마련된 경사로, 청각장애인을 위해 제공하는 수어 통역 등이 있다.

흔히 접근성을 장애인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어려운 한자어 대신 쉬운 말을 사용해서 쓴 글, 시력이 안 좋은 사람도 잘 볼 수 있게 큰 글자로 적은 메뉴판, 색약이나 색맹도 구분하기 쉽도록 배려한 시각디자인 등이 모두 접근성 사례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가 주로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고령층에게 적용되는 말이었다면 접근성은 그보다 더 넓은 범주라고 볼 수 있다.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 등 '배리어 프리' 디자인은 접근성의 가장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출처=셔터스톡)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 등 '배리어 프리' 디자인은 접근성의 가장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출처=셔터스톡)

접근성은 최근 몇 년 사이 보편적인 인권 의식이 높아지면서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IT업계에도 마찬가지다. 각종 정보통신기술이 우리 생활과 밀착하면서 이러한 기술이나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그만큼 중요해졌다.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을 처음 제안하고, 기념행사를 조직한 이들도 웹 개발자, 컴퓨터 공학자 등 IT업계 종사자였다.

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이 큰 만큼 그 접근성 차이에 따른 삶의 격차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의식 있는 여러 IT기업들은 이러한 혜택으로부터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접근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우리가 웹서핑을 하거나 문서 작업을 할 때 쓰는 윈도우 PC에도 접근성을 위한 기능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글자 크기를 좀 더 크게 키우는 텍스트 확대 기능이나 Shift, Alt 등 기능 키를 계속 누르고 있지 않아도 되게 하는 고정 키 기능 등이 그 예시다. 고정 키는 비장애인에게는 필요가 없는 기능일 수도 있지만, 손이 불편해 두 개 이상 키를 동시에 누르기 힘든 사람들에겐 매우 유용하다.

이외에도 화면 내용을 음성으로 해설해주는 내레이터나 소리를 자막으로 표시해주는 등 좀 더 복잡한 기능 등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들도 큰 어려움 없이 PC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윈도우10에 포함된 접근성 옵션
윈도우10에 포함된 접근성 옵션

애플도 접근성 관련 기능에 공을 들이는 기업 중 한 곳이다. 애플은 국내에서는 접근성(Accessibility)을 '손쉬운 사용'이라는 말로 번역해 쓰고 있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 iOS 설정에 가면 있는 ‘손쉬운 사용’ 항목이 바로 접근성 기능이다.

시각 장애인이나 청각 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 기능이나 오디오 설명 등은 물론이고 복잡한 터치 조작을 쉽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능이나 사용자 입맛에 맞게 조작법이나 조작 반응을 바꾸는 옵션이 다양하게 마련돼있다. 아이폰 사용자라면 비장애인이라도 ‘손쉬운 사용’ 항목에서 본인 입맛에 맞게 설정을 바꾼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접근성이 결국에는 모두를 위한 기술임을 잘 드러내는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애플 아이폰에 포함된 다양한 접근성 옵션들
애플 아이폰에 포함된 다양한 접근성 옵션들

우리가 넷플릭스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접하는 ‘자막’도 접근성의 좋은 예시다. 넷플릭스는 다른 국내 OTT와 비교해봐도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자막 지원이 매우 충실한 편이다. 청각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여러 이유로 대사를 잘 못 듣는 경우, 한국어 자막이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넷플릭스는 이외에도 오리지널 콘텐츠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음성을 기본 제공하는 등 접근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자막 옵션. 청각 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자막 지원이 매우 충실하다
넷플릭스의 자막 옵션. 청각 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자막 지원이 매우 충실하다

게임 업계에서도 접근성이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의료진, 여러 장애인 단체 등과 협업해 ‘엑스박스 적응 컨트롤러’라는 장애인용 게임 컨트롤러를 지난 2018년 출시한 바 있다.

엑스박스 적응 컨트롤러는 일반 컨트롤러를 손에 쥐는 것조차 불가능한 사람들도 게임을 할 수 있게 돕는다. 게임 조작에 필요한 조작키 하나하나를 외부 장비와 연결하는 방식이다. 페달, 대형 버튼, 조이스틱 등 장비를 연결하면 턱, 입, 발 등 본인 형편에 맞는 모든 신체 부위를 동원해 게임을 조작할 수 있다.

엑스박스 적응 컨트롤러. 다양한 외부 장비를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다 (출처=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적응 컨트롤러. 다양한 외부 장비를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다 (출처=마이크로소프트)

하드웨어 면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목할 만한 사례였다면, 게임 소프트웨어 쪽에서는 너티독이 출시한 플레이스테이션4용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가 주목할만하다. 게임 자체는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지만, 접근성 측면에서는 이견 여지가 없는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게임어워드' 시상식에서 신설된 ‘접근성 혁신’ 부문 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의 한 장면. 청각 장애인을 위해 소리를 시각화해서 표시하는 기능이 적용된 화면 (출처=플레이스테이션 블로그)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의 한 장면. 청각 장애인을 위해 소리를 시각화해서 표시하는 기능이 적용된 화면 (출처=플레이스테이션 블로그)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는 제작 과정에서부터 장애 관련 자문단 조언을 받아 무려 60가지가 넘는 접근성 옵션을 제공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고대비, 오디오 시각화 기능, 조작 단순화 기능 등 다양한 옵션이 포함돼 기존이라면 게임 플레이를 시도할 엄두도 못 냈을 장애인들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게임 실력이 떨어지거나 컨트롤러 조작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접근성 옵션을 활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접근성을 위한 기능은 장애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만 비장애인들도 유용한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는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선천적 특성이나 질병, 노화, 사고 등 여러 이유로 크고 작은 불편함을 달고 산다. 그만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경계는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접근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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